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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위에 새긴 생각
정민 엮음 / 열림원 / 2000년 7월
구판절판
<돌 위에 새긴 생각>을 다 보았다. 이 책을 매일 한 장씩 다 읽자는 새해 결심 하나는 성취한 셈이다. 그동안 페이퍼를 통해 이 책의 내용을 간간이 소개했는데, 정말 멋진 부분은 포토리뷰로 올리려고 아껴두었다. 사진이 좀 시원찮지만 전각의 세계에 한번 빠져보시길! ^^
17쪽
고개 들어 하늘 보니 하늘 또한 괴롭다 하네.
내용이 참 기막히다. 글자도 예쁘고. 그런데 이 글귀에 대한 정민 선생의 해석(혼자 끙끙 앓다가 세상 일 어째 이리 불공평하냐고 따져 물었다. 하늘이 대답했다. “나도 괴로워 죽겠다. 이 녀석아! 내게 따져 묻질 말아라. 네 혼자 삭혀야지, 내게 물어 어쩌자는 게냐.”)이 맘에 안 들어 연필로 여백에 이렇게 써놨다.
‘네 혼자 삭혀야지?’ 삭히란 말인가? 해결하지 않고? 인간이 노력해 해결해야 한단 뜻이 아닌가?
(올리고 보니 사진을 클릭해야 제대로 보입니다. 죄송.)
24쪽
흰 돌 맑은 샘, 씩 웃는 사람.
전각의 모양새도 기묘하고, 글의 울림이 청아하다. 맑은 약수 한 모금 시원하게 들이켠 듯.
33쪽
남의 선함을 들으면 의심부터 하고
남의 악함을 들으면 덮어놓고 믿는다.
이것은 마음속에 가득한 살기이다.
나쁜 소문은 빨리 퍼진다. 서늘한 가르침이다.
40쪽
거문고 갑 속에 간직하여 두었더니
이따금 줄 끊어지는 소리 들려오누나.
왠지 안타깝다. 끊어질 때 끊어지더라도 힘껏 한 번 울리고 끊어지기를.
50쪽
저녁이 아름다운 집.
나중에 전원주택이라도 마련하면 이대로 써서 문 앞에 걸어두고 싶구나. 글자도 예쁘다.
56쪽
바람이 없는데 일렁이는 파도, 눈을 뻔히 뜨고 꾸는 꿈,
이 모두 도를 향한 마음을 증진시킨다.
눈앞에 보이는 자연, 세상 속에 계시가 가득한 기분, 그런 기분일 테지. 이토록 명백한 것을 왜 그동안 못 보았을까 싶은 것.
62쪽
오만한 사람도 의협심이 강한 사람도,
아첨하던 자도 천한 자도
마침내 모두 다 마른 뼈가 되나니.
65쪽
젊어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은 하나의 불행이다.
정말이다. 젊어서 이름을 떨치는 것도 불행이다.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이 든다.
76쪽
한바탕 노래라도 불러보고 싶지만
눈물이 쏟아지면 걷잡을 수 없으리.
머리말에 따르면 <돌 위에 새긴 생각>은 정민 선생이 <학산당인보>라는 책의 일부를 추려 번역하고 해석을 단 책이다. <학산당인보>는 명나라 말엽 장호(張灝)란 사람이 명나라의 유명한 전각가들이 옛 경전에서 좋은 글귀를 골라 새긴 인장을 모아 엮은 책이다. 그렇다면 이들 글귀는 적어도 500년 전, 짐작건대 천여 년 전에 누군가 썼다. 그렇게 오래 전에 살았던 사람이 지금의 내 심정을 그대로 표현하다니, 신기한 일이다.
85쪽
길이 좁은 곳에서는 한걸음을 남겨 남과 더불어 가고
맛이 깊은 곳에서는 삼분을 덜어 남이 즐기도록 양보해야 한다.
나 같은 욕심쟁이가 특히 유념해야 할 말이다. 길이 좁으면 마주 오는 사람 어깨를 밀치며 갈 게 아니라 한걸음을 남겨 남과 더불어 가야 한다. 맛 좋은 음식이 있으면 한 입이라도 더 먹으려고 달려들 게 아니라 한 숟갈씩 덜 먹을 생각을 하자.
95쪽
마음의 일이 마치 파도 가운데 앉아 있는 것 같아
때때로 화들짝 놀라곤 한다.
가만있어도 요동치는 내 마음이여.
98쪽
귀하지도 않게 부유하지도 않게
가난하거나 천하지도 않게.
딱 그렇게 살면 좋겠다.
99쪽
산을 나서니 구름이 옷깃에 가득하네.
신선이구나. ^^ 글자 모양도 흐르는 구름 같다.
115쪽
세상일은 대부분 유명무실하다.
그러게, 별것도 아닌 걸 다 구색 맞추고 체면 차리라 하니.
134쪽
구름으로 마음 삼고
달로 성품을 삼네.
글의 내용보다 글자 모양이 예뻐서.
147쪽
가슴속에 ‘기(奇)’란 글자 없이는 시를 읊조리지 말라.
그래선지 인장 새긴 모양도 기이롭다. ^^
157쪽
깨달은 사람은 묘하기가 물과 같다.
글자 새긴 모양이 정말 물 같군. ^^
167쪽
지금 사람 가벼이 보지 않고 옛사람도 사랑하네.
글자 새긴 모양도 글만큼이나 호방하다.
175쪽
오늘 시든 꽃
어제 피어난 것.
새기고 또 새겨도 충격적이다. 오늘 시든 꽃은 바로 어제 피어난 그 꽃. 인장 한가운데를 떡 차지한 꽃 화 자(花)가 인상적이다. 저게 꽃 화 자인지 모르는 사람은 영 못 알아보겠지만, 동산에 나무가 솟고 그 아래 꽃이 피고, 동산 아래엔 긴 뿌리가 뻗고, 꼭 그런 모양새를 그려놓은 것 같다.
176쪽
이런 사람 하나쯤 없을 수 없다.
간절한 말이다.
183쪽
선비가 염치를 알지 못하면 옷 입고 갓 쓴 개, 돼지이다.
흥, 내가 알기로 대한민국에서 선비연하는 자들 거개는 염치를 모르던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