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파 최○○를 만나다 2004/11/24 22:31



메신저를 켜고, 각시에게 물었다.




혹시 87학번. 그 사람 이름 최○○ 맞지 ?




응...




그렇다. 그가 맞다. 꾹 다문 입술의 골수 주사파, 난 그를 그렇게 기억한다.




십수년전 내 이름을 공개하는 대자보를 쓴 적이 있다. 주사파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가득 채웠다. 언제까지 붙일 것이며, 쓴 사람은 아무개다라고 분명히 밝혔지만, 그 대자보는 곧 떼어졌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내용이라고 할 것도 없다. 도대체 당신들이 하고자 하는 일들이 왜 그 모양이냐고 하는 등등이었다.




세상 보기를 제대로 하라는 철학은 교조주의 취급을 해 버렸으니 당연히 북한은 그저 이상사회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테고, 차이를 넘어 대동단결하자는 말 속에 숨겨진 배타적 생각은 또 얼마나 강하던지. 특정한 시기에 전술로서나 말해봄직한 강한 지도체제 구축이 어찌 수령론이 되어 철학적 지위까지 꿰차고 있게 된 건지....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주체사상은 교내에 널리 퍼져 있었다.




한편, 많은 주사파들은 겉으로 보기에 늘 성실하고 헌신적인 사람들로 기억되기도 한다. 사람이 가져야 할 성정, 태도 등을 통털어 아마 품성이라고 했던가 ? 내 기억 속에 최○○는, 늘 신념에 찬 사람처럼 행동하면서도 품성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사람들로부터 받았지 않았을까 싶다(난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그 품성론(?)도 못마땅해 했고, 실제 주사파 = 좋은 품성의 소유자라는 등식이 맞지 않음을 목격했다).




내가 주사파였다면 그를 간간히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내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지난 세월 속의 사람들은 잊혀지기 마련이고, 내게 특별하지 않으면 더욱 그러할 테니, 그를 잊고 산 것도 십년을 훨 넘었을 게다. 그런 그의 이름을 오늘 발견한 곳은, 그가 이른바 우파들이 모인 단체의 핵심멤버 중 한 사람이라는 신문 기사에서다.




그는 북한의 현실을 알고 주체사상을 버렸다고 한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북한의 실상을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면, 이 땅의 실상에 대해서 그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




그가 속해있다는 단체는 "현 정권의 참여민주주의는 80년대 운동권이 주창했던 민중민주주의의 노무현 버전"이며 "주지하듯이 민중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변종"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현재 논란중인 이른바 4대 개혁입법 등은 "자유를 신장시키기보다 제약"했다. 그들이 이 땅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대충 짐작할 만하다. 그들이 그렇게 늘 입에 달고 다니는 자유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자유인지도 대충 알만하다. 자유를 위해 싸우는 단체가 아니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보수주의를 표방한 단체가 아닐런지.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고, 또 주체사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도 좋다. 그런데, 북한이 그렇고 주체사상이 그렇다고 해서 이 땅의 실상에 대해서 눈감아서도 안될 테다. 그런데, 그들이 내세운 주장들은 보면, 이 땅 민초들의 자유에 대해서는 별로 안중에 없어 보인다. 만약 북한이 없었다면 무슨 말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될지 즉자적인 의문이 들 정도다. 어찌 어찌해서 그런 주장을 하게 되었는지는 따져보지 않고 주사파들의 영향이 남아서 친북, 반미를 한다는 등으로 진단하고 있으니, 그들의 행보가 매우 우려스럽다.




나는 주사파를 우파라고 불렀다(좃선은 최○○를 극좌라고 하더만 ! ). 내가 겪은 주사파 대부분은 (듣기 거북스러울지도 모르겠다만) 오로지 수령님 말씀만 외워댔지 제대로 공부했다는 생각도 안들었다. 직접 수령님 말씀을 듣지는 않았더라도 결국 수령님 말씀대로 했다. 세상을 수령님 눈으로 보게 만든 주체사상을 이제야 제대로 보았다니 다행이다만, 이 땅의 실상에는 눈감으려 하는 것 같으니 이게 웬말인고 !! 그러니, 그들의 변신이 곱게 보이겠는가 ?




(내가 그들에게 한 말이 믿기지 않거든, 시대정신이라는 잡지를 광고하는 홈피에 가보라 !!! )




나도 한 때 주사파였음을 고백하는 그들의 용기는 좋다만, 제발 친북좌파에 목매는 꼴통들하고 한 덩어리 되지는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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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4-11-25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내게, 최○○ 선배의 변신은 충격이다. 그 사람은 그동안 "수령"의 권위에 의지해 살아왔기에, 그 권위가 쓰러지자 쉽게 "반수령"의 권위에 의지할 수 있었을까?

릴케 현상 2004-11-25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사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주사를 맞으면 된다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숨은아이 2004-11-25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명한 산책님 썰렁해요. --;

깍두기 2004-11-25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권위적인 사람들이 기댈 권위가 없으면 자기 몸을 주체 못하는 것 같더라구요.

숨은아이 2004-11-25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운동권 내에선 주사파를 우파라고 했는데...

릴케 현상 2004-11-25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주사파들은 별로...집권당이라고 생각하고 즐기는 듯

숨은아이 2004-11-25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다지 믿고 따를 만한 생각과 전망을 내보인다고 생각되진 않았지만, 대동단결을 외치면서 그 대동단결이란 게 무조건 자기네 뜻을 따르라는 독선인 것도 알았지만, 그래도 그 선배의 열정만은 순수하다고 믿고 싶었어요. 그래서 조금 우울하네요.

릴케 현상 2004-11-25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권을 향한 열정은 여전히 순수하리라 봐요^^

hnsfree 2004-11-26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땅의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서라며 설쳐댔던 저로서는.... ^^;;;;;

숨은아이 2004-11-26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명한 산책님 : 허허... ^^

치카님 :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주체사상을? @.@

hnsfree 2004-11-26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숨은아이님, 설마요... 우린 그리스도 사상을... ^^;

하느님 나라가 바로 자유, 평등, 평화의 나라거든요.

음,, 그냥 살짝 덧붙이면 초대교회공동체는 자발적으로 가진것을 나누고, 서로 일치하며, 기도생활을 하였다고 성서에 나온답니다. '정의로운 사회'와 일맥상통하지 않나요?

^^;;;;;

숨은아이 2004-11-28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화로운 코뮌과 비슷하였으리라... 생각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