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은 2004.8.20. 지난 2000.9.경 아내를 추행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45살 김 모씨에 대해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씨는 이혼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두 손을 움직이 못하게 하고 아내를 강제로 추행해 상해를 입힌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부부간에도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용인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어 대법원이 지난 70년 3월에 '부부간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는 판례를 냈으나 이 사건은 부부간 강제 추행인 만큼 이 판결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을 뿐만 아니라, 설사 그 판결이 선례가 된다고 하더라도, '대법원 판결이 30년이나 경과한 점을 고려할때 재검토할 여지가 있다'고 의견을 제시했다(이상은 YTN 보도 내용을 편집한 것임)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타인을 추행함으로서 성립하는 범죄"이다(형법 제298조).
대법원은 부부관계의 특수성(부부는 성을 서로 향유하는 「특수한」 관계이지 뺏고 뺏기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고려하여, 부부간 강간죄를 부정해 왔다. 지난 70년 대법원이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경우에는 설령 남편이 폭력으로써 강제로 처를 간음했다 하더라도 강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 판결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또한, 그 판례는 형법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와 일치한다고 한다. 그리고, 부부간 강제추행죄도 부부관계의 특수성이라는 같은 이유로 죄의 성립이 부정되어 왔다(김일수, 형법각론(제3판), 141쪽 이하 참조).
그러나, 「강간」「강제추행」은 단순한 「여성의 순결 박탈」이나 그에 준하는 행위가 아니라 「성적 자기 결정권의 침해」를 뜻하며, 혼인한 부부 사이라고 해서 이 같은 「자기 결정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범죄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첫째, 아내는 결혼과 동시에 남편에 대해 무조건적인 성관계에 동의한 것으로 본다는 것.
둘째, 아내는 남편의 배타적인 소유물로 본다는 것.
이 모두가 남성 중심적, 가부장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부 간이라고 해서 강간죄의 예외로 보는 것은 기혼여성에 대한 차별로, 헌법상 평등권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남편이 성욕을 가질 때마다, 아내는 남편의 완력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을 허용하는 셈이기 때문에 부부의 대등한 지위권에 반한다. 무엇보다 여성은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인해 신체의 자유를 침해당할 우려도 있다.
(다만 부부관계는 내밀한 사생활에 해당하기 때문에 「부부강간」의 경우 일반 강간과는 달리 요건을 엄격히 제한한다든지 처벌을 달리하는 등 그 적용에 있어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은 숙고할 만하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부부간에도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을 처벌 목적으로 하는 성범죄"에 대해, 명확한 원칙에 따른 매우 환영할 만한 판결이다.
결혼했다고 해서, 그래서 혼인증명서 한장을 뗄 수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는 없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기 때문이다(1984년 미국 뉴욕법정에서의 “혼인증명서가 남 편이 형사면책을 갖고 강간할 수 있는 자격으로 파악돼서는 안되 며 기혼여성도 미혼여성과 똑같이 자신의 신체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는 판례는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결혼한 여성에게도 인정한 사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