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퀴즈 플레이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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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1978년 작, 아니면 1982년 작. <빵굽는 타자기>에 이 책을 썼을 때의 정황과 이 책의 출판 과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처음 쓰고 나서 4년 만에야 출판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1978년에 쓴 것을 1982년에 출간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열린책들에서 나온 이 책 <스퀴즈 플레이(Squeeze Play)>는 그 초판본을 가지고 만든 게 아니고, 1997년 <빵굽는 타자기(원제 hand to Mouth)> 속에 묶여 재출간된 것을 번역한 것입니다.

<빵굽는 타자기>  독후감에도 썼듯이, 그 책을 읽고는 이 사람의 소설이 땡겨서 이 사람의 책을 사 모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빵굽는 타자기>를 읽은 지 거의 1년이 지나서야 이 책을 읽었네요. 폴 오스터의 많은 작품 중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이것이 그가 발표한 첫 장편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작가가 땡긴다 싶으면, 그 사람의 작품들을 되도록 발표 순서(아니면 집필 순서)에 따라 읽습니다. 그 사람이 작가로서 성장한 과정을 따라가고 싶어서예요.

<빵굽는 타자기>를 읽을 때도 재치 있는 문체에 탄복했는데, <스퀴즈 플레이>, 이 책은 재기가 넘쳐 농담으로 가득한 듯합니다. 탐정소설로서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읽은 추리소설이나 탐정소설의 폭이 좁아, 비교 대상이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느낌만을 말하면, 정말 재미있습니다. 작년에 케이블TV에서 스포츠 도박에 관한 영화 <Big Shot>(2002)을 봤기 때문에 그다지 충격적이진 않았지만요. 하지만 이 소설은 1980년대 초반에 발표됐으니까, 2002년의 영화를 미리 신경 쓸 수 없었겠지요.

그런데 그 재기 발랄함보다, <빵굽는 타자기>에서 엿볼 수 있었던 그의 20대, 그의 20대가 낳았으리라 짐작되는 사람에 대한 통찰력이 더 은근하게 파고듭니다. 그리고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인 탐정과 전처 사이의 일, 아버지에 대한 브라이언 콘티니의 애증과 슬픔을 보면, 이 소설의 집필과 출간 사이에 작가에게 일어났던 일-힘겨운 생활고, 이혼,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이 떠오릅니다. 소설 속 탐정에게 이토록 감정 이입이 되는 탐정소설이 또 있나요.

이를테면, 사회에서 남과 상대하다 보면, 나 자신을 위해 남을 압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나 자신은 어떤 기분일까요.

"한 사람의 목숨이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 대화가 피냐토에게 나쁜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나 자신이 싫어졌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 밀고 나갔다."-88쪽  

"내 인생이 실로 난장판이라는 것을 입증해야만 비로소 내 인생을 바꿀 수 있기라도 한 듯이, 어떤 면에서는 나 스스로 결혼 생활을 파괴하려고 남몰래 애쓰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나 자신을 가엾게 여기고 싶었고, 결국은 멋지게 소원을 이룬 셈이다."-93쪽

"내 인생에 넌더리가 났고,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나 자신에게 한 모든 일에 넌더리가 났다. 나는 파괴자가 되었고, 내가 누군지도 더 이상 알 수가 없었다."-175쪽

그리고 폴 오스터는 영상으로 구현될 수도 있는 장면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나중에 그가 영화 작업에 뛰어든 것도 이런 능력 때문이 아닐까요. 소설을 읽다 보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르는 문단이 있어요. 하나를 들어보죠.

"내가 지나갈 때는 투수가 막 공을 던진 참이었고, 그 공을 치려고 타자가 방망이를 뒤로 빼고 있었지만,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보기도 전에 그곳을 지나쳐 버렸다. 학교의 벽돌담이 내 시야를 가로막았다. 그것은 시간 속에 얼어붙은 한순간이었고, 공중에 떠 있는 하얀 공의 형상은 영원한 기대의 환상처럼 내 마음속에 남았다."-85쪽

이 사람의 소설을 계속 더 읽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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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4-08-08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글 올리고 오타 고치기도 전에 벌써 보시다니... (전에는 오타가 거의 없었는데 2, 3년 전부터는 영... --;) <폐허의 도시>, 제가 사논 책 중에 있군요. 기억할게요. 고맙습니다. ^^

내가없는 이 안 2004-08-10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빵굽는 타자기 리뷰를 보고 얼른 폴 오스터 작품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며칠 지나 이렇게 또 그의 작품을 올리시니 참... 그의 작품을 하나쯤 읽고 코멘트를 달고 싶었는데 아직 시간이 여의치 않으니 미리 코멘트 답니다. 강력추천이란 게 있음 제가 클릭할 텐데요... ^^

숨은아이 2004-08-10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님의 "강력추천"이란 말씀에 힘이 불끈 솟는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