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노조 파업을 지지한다.... 2004/07/20 18:26

내일 새벽 4시부터 전국지하철노동조합이 파업에 들어간다. 정부는 벌써 불법파업이라고 단정하였다. 그러나, 나는 수긍하기 어렵다.

 

1. 노동조합 요구에 대한 생각

 

2004년 7월 1일부터 주 40시간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했는데, 우선은 공공부문 및 1000인이상 사업장이 적용된다. 주 40시간이 되면 줄어든 4시간분의 일을 해야할 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만약 인력을 늘이지 않고 그 제도를 도입한다면, 그 제도 도입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따라서, 이번 파업의 핵심적 요구 사항인 인력을 늘이라는 노조의 요구는 지극히 정당한 요구라 하겠다.

 

그런데, 사용자(공사)는 인력을 늘일 수 없다고만 한다. 인력을 늘이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언뜻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인력을 늘리면 예산이 더 필요하고 요금 인상이 뒤따르므로 그럴 수 없다고 하지만, 대중교통은 애초에 이윤을 목적으로 또는 흑자를 목적으로 운영되어서는 안된다. 시민들의 안전과 편의를 우선하여 정책을 잡아가야 하는 것이 대중교통 정책이다. 그러려면, 특히 정한 인원을 적정하게 운용하여 시민들의 안전과 편의가 보장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인원은 과연 적정한가 ? 내가 알아본 바로는(참고로 난 어느 지하철노조의 자문을 맡고 있다) 그렇지 않다. 주 44시간 제도인 현재도 공사가 자체적으로 책정한 정원에도 못미치는 인원이 근무하고 있다. 그것은 곧 적정한 인력보다 부족한 인력이 그 부족한 인력의 일을 나누어 부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럴 경우 어떤 결과가 초래될 수 있을까 ? 시민들 다수가 이용하는 지하철의 경우 시민들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적정하다고 판단한 인력이 그 적정한 일을 해야 함에도 적정한 인력보다 부족한 인력이 일을 하고 있으므로, 과중한 업무로 인해 안전 사고가 발생할 여지는 더 많아진다. 또한,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구조와 시스템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는 데다가 인력마저 부족하게 될 경우, 작년 대구지하철 참사와 같은 대형 사고가 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

 

한편, 서울지하철의 경우 적정한 인원보다 부족한 인원, 즉 신규 인력이 규모를 약 3000명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곧 고용 창출을 의미한다. 주 40시간 제도 도입 목적 중 하나가 바로 노동시간의 단축을 통한 고용 창출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신규 인력의 채용을 통한 주 40시간 제도의 도입 주장은 지극히 상식적이고도 정당한 요구가 된다.

 

위와 같은 여러 이유들을 보면, 나는 지하철노조의 요구 특히 신규 인력 충원이라는 요구에 대해 지지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2. 불법파업에 대한 생각

 

현행법상 쟁의행위(파업 등)가 정당하다고 판단되려면, 목적, 방법, 수단, 절차 등이 정당해야 한다고 하는데, 목적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정당하고 수단과 방법에서도 현재까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없다.

 

다만, 노동위원회가 이른바 직권중재 결정(즉, 노동위원회가 노사 의견을 수렴하여 단체협약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중재재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에 들어감을 확인하는 결정)을 하였고, 현행법상 그 결정 후 15일 동안 쟁의행위는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만약 내일부터 노조가 파업을 하면 현행법상 절차를 위반한 것이니 불법파업이라는 것이다.

 

우선, 직권중재 제도에 대해 보면, 헌법재판소는 최근 2번에 걸쳐 합헌 결정을 하였으나, 위헌이라는 의견 역시 헌법재판관의 반수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단체행동권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대표적인 위헌 조항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직권중재 제도가 생긴 이래, 해당 사업장에는 직권중재 결정이 예외없이 내려졌고(한국통신계약직노조와 보건의료노조만이 예외였다), 그 결과 구속, 해고, 가압류, 재파업 등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더 심각한 것은 사용자들이 직권중재 제도를 믿고 아예 교섭에 나서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위원회는 직권중재 결정을 남발한다. 하여, 해당 사업장 노조는 단체행동권을 행사하여 그들이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박탈되어 버린다.

 

정부마저도(정부가 개입하려 하면 사용자마저도) 노사 문제는 당사자가 풀라고 한다. 그것이 옳다. 그런데 왜 직권중재를 해대는가 ? 노사가 알아서 풀라고 하면 된다. 오로지 노조의 파업으로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다고 해서 그들의 권리를 원천적으로 박탈(제한적 박탈도 아니다. 원천적으로 사전적으로 사후 구제수단마저도 마땅치 않으며 대신할 만한 적정한 방법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할 수 있단 말인가 ?

 

나아가 지하철이 멈춘다고 무슨 큰일이 난다는 것인가 ? 전국에 차량은 1000만대를 넘어선지 오래되었고, 버스 등 다른 대체 교통수단도 많다. 실제 지하철 파업이 그 동안 있었어도 무슨 큰일이 난 적도 없다. 그리고, 그 정도의 불편도 서로 용인하지 못하는 사회와 그것을 불법으로 몰아대며 적대시하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라 할 수 있겠는가 ?

 

직권중재 후 불법파업이라는 주장은 위와 같은 이유로 난 수긍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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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권중재 제도도 없어져야겠지만, 아무 생각없이 직권중재나 남발해대는 노동위원회, 그리고, 그런 절차를 어겼다고 해서 더군다나 노조이 주장에 공익을 위한 주장이 함께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징역을 때리고 수백 수천의 벌금을 내려대는 사법부도 그렇고, 집단행동 자체를 병적으로 혐오하는 것같은 사회 분위기와 몇몇 정신나간 언론과 그에 놀아나는 공권력도 다 함께 찌그러졌으면 한다.

 

다시는 정부와 언론이 시민의 불편, 교통대란 운운하면서 모씨(시민)의 인터뷰를 내보내는 끔찍한 일을 보고 싶지 않다. 정부나 언론 등이 그런 짓을 하더라도 자랑스런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 국민과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그런 인터뷰 요청에 판에 박힌 말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마주보며말하기 2004/07/20
내가 어떤 노조를 자문하고 있다고 해서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라는 점을 노파심에서 밝힌다. 특히 노동법은 노사간 힘의 역관계가 그래도 반영되는 것이 특징이므로, 노동법을 공부한 사람이 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가지고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면, 힘있고 돈있는 자에게 빌붙어 살아갈 가능성이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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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4-07-21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이 법 이야기를 많이 쓰니까 혹시 변호사로 짐작하시는 분이 있을까 봐 밝힙니다. 이 사람은 공인노무사입니다. 노무사는 노동법에 관련된 일을 대행하고, 노조에 법률 자문을 해주는 사람입니다. 가난한 직업이죠. ^^

조선인 2004-07-21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하철 파업을 지지합니다.
비록 출근길은 지옥같았지만, 대구지하철 참사 재발보다야 훨 낫겠죠 ^^

숨은아이 2004-07-21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처럼 먼 길을 출퇴근하시는 분은 정말 힘들겠어요. T_T 파업 때 대체인력으로 투입되는 사람들은 또 적은 수로 그 시간을 메우느라 혹사당한다던데... 이러나저러나 고용 창출이 열쇠입니다. / 따우님께선 노무사를 아시네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데... 반가워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