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에이징 솔로 -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 드는가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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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에필로그에 말한 대로 비교적 수월하게 사는 솔로와 자발적 솔로에만 국한된 인터뷰라는 점이 아쉽긴 했지만, 여기 나온 제도나 통계 가운데 절반 정도는 몰랐던 내용이라 읽으면서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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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무렵부터 한국의 주된 가구 형태가 된 1인 가구는 2021년 기준 716만 6,000가구로 전체의 33.4%에 이르렀다. ‘정상가족’이라 불리는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구(29.3%)보다 많다. 전체 가구의 3분의 1이 넘을 정도로 흔한 삶의 유형이 여전히 사회적으로 비정상, 소수, 비주류처럼 이야기되는 것은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통계청의 「2021 인구주택 총조사」에서 1인 가구 중 중년인 40~64세 인구는 269만 7,716명으로 전체 1인 가구의 37.6%를 차지했다. 또 「2021 중장년층 행정통계 결과」에 따르면 40~64세에 해당하는 사람이 1명 이상 포함된 가구 중에서 1인 가구는 20.1%에 이르렀다. 중년도 다섯 집 중 한 집꼴로 혼자 산다는 이야기다. 

세상이 비혼인 중년을 취약하고 비정상적이며 비참해질 것이라고 바라보는 이유는 나이 들어서도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이 생애 과제들을 제대로 치러내지 못하리라 예단하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그건 결혼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성숙해지고 온전한 삶을 살아내는 과정은 애초에 결혼 여부와 상관없는 일이다. 

에이징 솔로 남성도 2명 만났으나 이 책에는 포함하지 않았고, 남성 인터뷰이를 찾는 일도 그만두었다. 아직 가부장제가 역력한 한국 사회에서 남성의 비혼은 남성성에 거의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고, 비혼 남성의 경험은 여성의 경험과 크게 다르다. 절실하다고 느끼는 생애 과제에 큰 차이가 있어서 하나의 이야기로 묶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혼과 비혼이라는 삶의 방식에 어떠한 신념을 갖고 굳게 지키겠다는 ‘~주의’를 붙이는 사람을 존중하기는 해도 좀 어색하다고 느낀다. 자기 삶에서 친밀한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꾸려가느냐 하는 문제는 때와 상황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선택하기 나름이다. 나는 오래 혼자 살아왔지만 누군가와 함께 살게 될 수도 있고 다시 혼자 살게 될 수도 있으며, 친밀한 누군가와 함께 살지는 않되 가까이에서 지내고 싶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삶 안에서도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하고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다들 결혼하는 게 기본이고 결혼하지 않는 게 선택인 양 말하는데, 거꾸로 아닌가요? 뭔가를 하겠다고 하는 게 선택이죠. 

그리고 사람이 인생의 깊은 맛을 꼭 알아야 해요? 세상의 관점에서 내가 철없어 보인다 한들 그러면 뭐 어때요? 잡혀가지 않을 정도로만 상식을 지키고 살면 되는 거죠.” 

세상에 좋은 이야기가 단 하나만 있는 게 아닌 것처럼 하나뿐인 ‘가장 깊고 가치 있는 경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가치 있는 하나의 경험이 있다고 믿는 사람도 그 경험을 모든 사람이 같은 정도의 깊이로 겪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맞벌이 가구 남성의 하루 평균 가사 노동시간은 54분, 여성은 3시간 7분으로 여성이 3.5배 더 많은 시간을 가사 노동에 썼다. 남성 외벌이 가구에서 이 격차는 6.4배로 벌어진다. 흥미로운 유형은 여성 외벌이 가구다. 여성이 혼자 버는데도 남성의 가사 노동시간은 1시간 59분, 여성은 2시간 36분으로 여전히 여성이 1.3배 더 많은 시간을 집안일에 썼다. 

국내에서 비혼 여성에 대한 인공수정 시술을 가로막는 것은 법이 아니라 대한산부인과학회의 지침에 불과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2년 7월 비혼 여성도 인공수정 시술을 받을 수 있도록 지침을 개정하라고 대한산부인과학회에 권고했으나, 학회 측은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사회적 합의’라는 용어가 변화의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기득권의 핑곗거리가 되었다 

어떤 학자들은 전통적인 가족 단위가 가족 구성원에게만 지지와 관심을 쏟는 데 집중한 나머지 가족 외부 세상과 멀어지는 현상을 일컬어 ‘탐욕스러운 결혼’이라고 표현한다.

병원이 보호자로 법적 가족을 당연하다는 듯이 요구해서 법적 근거가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의료법에는 병원에서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수술 동의서나 입원 동의서에 관한 세부 규정이 없다. 응급 상황에도 항상 법정대리인이나 보호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입원할 때 연대보증인을 요구하는 병원의 관행도 법적 효력이 없다.

수술할 때 보호자의 동의서를 받는 관행에 대해서도 보건복지부는 이미 2007년 대한병원협회에 공문을 보내 보호자의 수술 동의서가 없다고 환자의 수술을 지연시키거나 거부하면 의료법의 진료 거부 행위에 해당해 처벌이나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런데도 직계가족인 보호자를 찾고 동의서를 요구하는 관행은 여전하다 

건강 두레는 돌봄이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고, 월차나 주말을 두레 구성원을 돌보는 데 사용하는 일종의 상호부조 모임이다. 1인 가구 여성이라는 공통점만으로 모인 관계 안에서 돈을 매개로 하지 않고 서로에게 ‘열려 있는 돌봄’을 시도해 보겠다는 구상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갑자기 난감해졌다. 딱 떠오르는 얼굴이 없었다. ‘가장’이라는 최상급을 떼면 떠오르는 몇몇 얼굴들이 있다. 그런데 그냥 ‘사랑’ 말고 ‘가장 사랑’이라잖아. 가장 사랑하는 단 한 사람? 나의 온리 원Only One? 생각해 봐. 그게 누구냐고. 근데 이렇게 애써 생각해야 하는 사람이 ‘온리 원’이겠어?….


  복잡해지는 머릿속을 따라 점점 굳어가는 얼굴 근육을 풀려고 과장되게 아·에·이·오·우 발성을 하며 온리 원, 빨리 나와. 너 누구야? 마음속으로 다그치던 도중 앞에 있던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아, 맞다. 엄마네, 엄마. 내가 가장 아끼고 염려하는 사람이고, 나에게 유일무이한 존재니까. 이제 됐다.


  그런데 카메라 앞에 앉아 자세를 잡아보려 애쓰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머니가 기억할 나의 마지막 얼굴이라니. 이건 다른 상상을 할 여지도 없이 너무 슬픈 상황이 아닌가. 결국 이날 촬영한 사진은 눈물이 가득 고였는데 입은 웃고 있는 묘한 표정으로 남았다. 

 영혼이 이어진 사람이란 “좋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 대화를 나누고 나면 나의 의식이 고양되었다고 느낄 만한 사람”이다. 

거리는 중요하다. 사회적 네트워크에 관한 연구에는 ‘30분 법칙Thirty-Minute Rule’이라는 암묵적인 법칙이 있다. 영국의 진화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의 설명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당신이 사는 곳에서 30분 이내 거리에 산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중요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30분이 도보인지, 자전거나 차로 가는 시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그곳에 도착하는 데 얼마나 걸리느냐에 관한 심리적 거리감이 더 중요하다”라는 것이다.

한때는 친구라 부를 만한 사람이 줄어든다는 걸 느끼면서 쓸쓸해지기도 했으나, 어쩌면 친구가 줄어드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고 우정을 오래 유지하는 것이 예외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네덜란드의 사회학자 헤랄트 몰렌호르스트Gerald Mollenhorst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7년마다 사회적 네트워크의 절반을 바꾼다. 친구의 반을 잃고, 다시 새로운 친구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회생활의 반경이 좁아지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기준이 까다로워지니 친구의 수는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 

좋은 연인이 그렇듯 좋은 친구도 ‘최상의 나’가 진짜 나인 것처럼 느끼게 해준다.  

“규칙이 없어도 네트워크가 돌아가는 이유는 ‘늘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가운데에 있기 때문이고 그게 비비인 거죠. 같이 어울려 살려면 ‘반응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문제를 이야기하고 질문을 하면 어떤 상황이라도 공간비비의 상근자인 우리 셋 중 하나가 그 문제에 대답했고, 작은 이슈도 관리사무소와 조율하면서 전체의 문제로 환원해 해결하는 것을 직접 봤으니까, 모이라고도 하지 않고 돈을 내라고 하지도 않는데 이 네트워크가 작동한다는 걸 느끼는 거죠. 안전하게 같이 살고 있다는 감각을 갖게 되는 거고요 

내가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부탁하는 것을 싫어하는 만큼 다른 사람이 나에게 폐를 입히는 상황이나 부탁해 오는 것,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받는 것조차 꺼린다는 사실을. 이야말로 ‘인색한 사람’의 정의가 아닌가. 

도와달라고 말할 줄 아는 것이 도와줄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거죠. 그런 게 자기 돌봄이라고 생각해요. 

괜찮아, 오지 마”가 “그래, 와줘”로 바뀌었다는 말. 나는 이 말이 묘하게 감동적이었다. 자율과 독립을 가치 선반의 가장 높은 자리에 놓고 살아오던 사람이 굳건하게 믿는 상대에게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순하게 기대는 말, 로맨틱한 관계가 아니어도 가능한 사랑의 고백처럼 들려서였다. 

많은 사람이 기본적인 생리 현상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서 살아가는 상태를 존엄이 훼손된 삶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인간의 존엄이 생리 현상과 위생에 좌우되는, 그렇게 하찮은 가치인가? 주변을 조금만 돌아보면 이미 상당히 많은 중증환자, 노인, 장애인들이 배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삶에서는 존엄이 다 사라지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치매에 대한 공포의 대안으로 안락사를 제시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그런 생각의 배후에는 ‘살아 있을 가치’가 있는 생명과 없는 생명을 구별하는 생각이 깔려 있고” 이것이야말로 “우생 사상 그 자체”라고 비판했다. 

“자아의 일부분을 구성하는 어떤 것들은 치매로 인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이전의 삶의 흔적들을 가진 몸의 사소한 행동들이 사실은 그 사람의 삶을 이어가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대화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의사소통’이 아니라 서로 말을 ‘주고받는’ 제스처라는 것”을 깨닫는다. “누군가를 하나의 인격 혹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인지능력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그 사람에 대해, 그리고 그 사람과 내가 주고받는 제스처들에 대해 내가 기울이는 관심, 무의미해 보이는 그 사람의 몸짓들이 의미를 갖게 하는 관계와 돌봄의 제스처” 

연명의료결정법은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있는 질환을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경화, 만성호흡부전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래야만 하는 별다른 이유는 없어 보인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있는 질환을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경화, 만성호흡부전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래야만 하는 별다른 이유는 없어 보인다. 

이제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이나 조카, 며느리 같은 친족, 장기간 혹은 지속적으로 동거, 부양, 돌봄 관계에 있는 사람도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개선된 방침이 법 개정이 아니라 행정부 지침 변경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다.

임의후견제도를 이용하려면 내가 믿을 수 있고 맡기고 싶은 사람을 임의후견인으로 지정해 계약을 맺은 뒤 공증을 받고 법원에 후견 등기를 신청해야 한다. 이후 내가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어 도움이 필요한 상태가 되면 법원이 임의후견인을 감독할 감독인을 선임한 뒤에야 효력이 발생한다.

'내가 지정한 1인'이란 의료결정권과 연명의료결정권은 물론이고 가족돌봄휴가를 신청할 수 있는 권리, 강제입원 등의 상황에서 법원에 구제를 신청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재난 및 안전 관리 기본법'에 규정된 해외재난 시 안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권리 등에서 법적 가족이나 동거인뿐 아니라 '내가 지정한 1인'을 포함하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캐나다 앨버타주의 '성인상호의존관계법 Adult interdependant Relationship Act'은 결혼하지 않은 개인들이 상호의존 파트너 계약을 맺고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인데, 여기서 상호의존 관계란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감정적으로 서로에게 헌신적이며, 경제 및 가족 단위로 기능하는 혼인 이외의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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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연주는 아무리 현란한 기교로 포장하더라도 그 순간에만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가 될 뿐, 오래 여운을 남기는 연주가 될 수 없다. 사람들의 기억에 오랫동안 흔적을 남기는 연주가 가져야 할 것은 결국 ‘목소리’이다. 연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목소리를 가지느냐이다. 여운을 남기는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그걸 잊지 못하고 계속 그 소리를 찾아다니게 되어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이 유일무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거둘 수 없는 의심이 찾아왔을 때 그 하나의 성이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연주자에겐 자기 것에 대한 고집도 필요하지만 그에 대한 의심도 함께 필요하다. 

생각해 보면, 살아오면서 나에게 실망을 안기는 온갖 것들을 마주해야 했다. 돈도, 사람도, 사랑도, 직장도 모든 것이 결국 끝에 가서는 나의 기대를 실망시켰다. 하지만 삶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끝끝내 나에게 실망을 주지 않은 것은 음악 하나뿐이었다.

글렌 굴드가 “우리 세대에서 가장 위대한 연주자”라고 칭하고 20세기 최고의 거장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러시아의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에게는 가끔씩 공연 후에 행하는 특이한 루틴이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그는 자신이 오늘 연주한 그 연주장 무대의 피아노로 돌아가서 연습을 했다고 한다. 아마도 노년의 거장은 텅 빈 객석 앞의 무대에서 몇 시간이고 궁리했으리라. 오늘 이 연주장에서 내가 못한 것은 무엇인가, 다음 연주에서는 어떻게 하면 나아질까.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 맞는지 불안할 때, 또는 내가 나의 일을 충분히 사랑하는지 혼란스러울 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붙여보아야 한다. 이 일을 해서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세상이 주는 다양하고 황홀한 즐거움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할 것인가. 대답이 예스라면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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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 지음, 라이너 풍크 엮음, 장혜경 옮김 / 김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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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한 문장인데다 원문도 쉬운 내용이 아니라서 서너 번 반복해서 읽어야 소화되는 책이지만 한 번만 읽고도 100자평을 쓴다. 보잘 것 없는 평이지만 이걸 보고 한 명이라도 더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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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의 인류 역사 대부분을 지배한 원칙은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다. 자본주의는 물론이고 소련도 다르지 않다. 이러한 협박은 인간을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강요할 뿐 아니라 아예 달리 행동하고픈 유혹에 빠지지도 않게끔 생각하고 느끼도록 강요한다.

경제적 과잉 시대에 가능해진 기본 소득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을 굶어 죽을 위험에서 자유롭게 하고, 경제적 위험에서 진정으로 해방시키고 독립시킬 수 있다. 그 누구도 굶어 죽는 게 겁나 특정 노동조건을 수락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재능이 뛰어나거나 야망이 넘치는 남녀는 다른 직업을 준비하기 위해 재교육을 받을 수 있다. 아내가 남편을, 자식이 가족을 떠날 수도 있다. 배를 곯을까 염려할 필요가 없으면 인간은 더 이상 불안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물론 이 말은 정치적 협박이 자유로운 사상과 연설, 행동을 방해하지 않을 때만 들어맞는다).

인간이 일하고 노력하는 것이 물질적인 자극 때문만은 아니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두 번째 논리는 인간은 활동하지 않으면 괴롭고 인간의 본성이 게으르지 않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기본 소득의 남용은 아마 얼마 안 가 다시 사라질 것이다. 단것을 공짜로 주면 몇 주 후 아무도 단것을 과식하지 않게 되는 것과 같다.

기본 소득 원칙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최대 소비에서 최적 소비로 방향을 바꾸어야 하며 개인의 욕구에서 공공 욕구에 맞춘 생산으로 극적 전환을 꾀해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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