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여행을 할 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아마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소리일 것이다. 그러면서 자꾸자꾸 사진을 찍어대듯이 사람이 한세상 살고   나서 남길 수 있는 게 사랑밖에 없다면 자꾸자꾸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70년대 산업화 정책과 함께 대규모 공단이 여기저기 생겨나면서 소녀들은   다시는 식모살이도 버스 차장도 안 하게 된 대신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산업의 역군이 되었다. 소녀들이 제공한 양질의 값싼 노동력 없는   7,80년대의 경제성장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나라   속담에 첫딸은 세간 밑천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때 이 나라의 모든 딸들은 아들의 공부 밑천이기도 했다. 이렇듯 딸들은 우리가 극빈했을 때는 한   식구라도 덜어내는 최우선 순위로, 경제성장기에는 밑거름으로 두루 희생양 노릇을 해왔던 것이다. 무엇을 위한 희생이었나. 결국은 남자들 기 살리기   위한 희생이었다.

IMF시대라는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난국을 맞아 우리의 여론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남자들 기를 살려줘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게다가 거의 날마다라고 해도 좋을 만큼 집을 나와 노숙露宿하는 남자들을 TV를 통해 보다 보니, 마치 실직한 남편들이 아내의   눈치를 살피느라 집에 못 들어가고 거리에서 방황하는 것처럼 보인다. 남편 기 살리기와   노숙자가 교묘하게 맞물려 남편들에게는 무책임한 현실도피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대신 아내들에게는 근거 없는 죄의식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도대체 남편들은 얼마나 못났고, 아내들은 얼마나 기가 세고 넘쳐 그렇게 시시때때로   기를 북돋아줘야 하는지. 기도 가까이 있어야 살리지, 기 살리기가 요술이나 도술이 아닌 바에야 행방불명된 사람의 기를 무슨 수로 살린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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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설랑 로망 컬렉션 11
윤이형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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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가벼운 로맨스 소설로만 읽히다가도, 가끔 ‘소설가의 각오‘에서와 같은 면모가 삐죽 솟는데 그게 또 나쁘지 않다. 굳이 퀴어 소설이라는 장르적 한계를 둘 필요 없는 연애소설이고 왠지 드라마로 제작하면 재미있겠다 싶게 그려지는 그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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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서영 씨가 내가 되고, 내가 서영 씨가 되고, 우리가 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외롭지도 않고, 서로를 외롭게 하지도 않을 것 같아서. 그런데, 그렇지가 않네요. 내가 곁에 있어도 서영 씨한테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네요. 내가 절대로 알 수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어떤 세상이 있고, 그것 때문에 서영 씨는 외롭네요. 혼자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나는, 서영 씨를 구해줄 수가 없어요.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해줄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작가는 다른 작가를 구해줄 수가 없어요. 그건 혼자 해야 하는 일이에요. 작가는 혼자 싸워요. 글을 쓰면서 싸우고, 쓰고 있지 않을 때도 싸워요. 그리고, 훌륭한 작가는 그 싸움에서 이겨요. 정말로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혼자 싸우는 것만으로 이미 지는 게 아니에요.”

S는 세상의 아픔을 돌아보려고 노력했고, 가까이서 관찰했고, 파악했고,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었다. 일단 쓰기로 정하기만 하면 쓸 수 없는 아픔은 없었다. S는 언제나 그것이 거기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 아픔 자체가 되어버린 적이 없어서였다.

사랑은 권력 다툼이다. 언제나 세상의 눈에 조금 더 나아 보이는 사람과 부족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 세상이 그들을 평가하지 않는다면, 그들 자신이 평가한다. 늘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이끄는 사람이 있고, 따라가는 사람이 있다.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사람이 있고, 무의식중에 희생하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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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는 젊은 시절 내적인 충격과 여러가지 비극적이고 심각하게 체험하는 어리석음의 대부분은 이 유보된 삶의 소산이며, 그런 삶 속에서 우리의 청춘은 흘러가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대해 행하는 복수에 가깝다. 이 지속적인 임시 상태에 대항하여 우리는 가능한 한 충만하고 진실한 삶을 살려고 애를쓴다. 그 때문에 젊은 시절에는 어리석은 소년적 행동과 비극적이며 예기치 못했던 진지함이 뒤섞이고, 때로는 고통스럽게 불거져 나온다. 인생은 아이의 상태에서 서서히, 그리고 눈에 띄지 않게 남자가 되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갑자기 아이에게서 놀랍게도 완성되고 성숙한 인간의 면모가 나타난다. 그러한 면모는 서로 들어맞지도조직적이지도 않으며, 아이의 내면에서 연관성이나 논리성없이 상충되어 거의 광기처럼 나타난다. 다행히도 우리 어른들은 이 상태를 사려 깊게 관조하는 데 익숙하며, 인생을 대단히 심각하게 여기기 시작하는 소년들에게 그 시기는 지나가는 것이라며 위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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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4-07-04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어제 뭘 어쨌는지 모르지만, 자기 블로그 북마크 한 게 사라졌어.ㅠㅠ 다시 주소 알려줄 수 있어?? 나 요즘 왜 이래??ㅠㅠㅠ

치니 2024-07-04 11:20   좋아요 0 | URL
https://medium.com/@chinie.moon
요거에요.:)

저도 그런 적 많아요. 요새는 스맛폰을 쓰다 보니 뭘 자기도 모르게 건드리고 잘 그래지더라고요, 넘 괘념치 말아용, 언니!
 

너무 행복했던 때라 쉽게 겁을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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