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여행을 할 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아마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소리일 것이다. 그러면서 자꾸자꾸 사진을 찍어대듯이 사람이 한세상 살고 나서 남길 수 있는 게 사랑밖에 없다면 자꾸자꾸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70년대 산업화 정책과 함께 대규모 공단이 여기저기 생겨나면서 소녀들은 다시는 식모살이도 버스 차장도 안 하게 된 대신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산업의 역군이 되었다. 소녀들이 제공한 양질의 값싼 노동력 없는 7,80년대의 경제성장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나라 속담에 첫딸은 세간 밑천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때 이 나라의 모든 딸들은 아들의 공부 밑천이기도 했다. 이렇듯 딸들은 우리가 극빈했을 때는 한 식구라도 덜어내는 최우선 순위로, 경제성장기에는 밑거름으로 두루 희생양 노릇을 해왔던 것이다. 무엇을 위한 희생이었나. 결국은 남자들 기 살리기 위한 희생이었다.
IMF시대라는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난국을 맞아 우리의 여론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남자들 기를 살려줘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게다가 거의 날마다라고 해도 좋을 만큼 집을 나와 노숙露宿하는 남자들을 TV를 통해 보다 보니, 마치 실직한 남편들이 아내의 눈치를 살피느라 집에 못 들어가고 거리에서 방황하는 것처럼 보인다. 남편 기 살리기와 노숙자가 교묘하게 맞물려 남편들에게는 무책임한 현실도피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대신 아내들에게는 근거 없는 죄의식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도대체 남편들은 얼마나 못났고, 아내들은 얼마나 기가 세고 넘쳐 그렇게 시시때때로 기를 북돋아줘야 하는지. 기도 가까이 있어야 살리지, 기 살리기가 요술이나 도술이 아닌 바에야 행방불명된 사람의 기를 무슨 수로 살린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