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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평점 :
책이든 영화이든, 사전정보를 극히 제한적으로 접하고, 나만의 느낌을 갖는 것을 선호하는 나인 지라,
알라딘에서 숱하게 스쳐온 제목인데도 불구하고,
이 책이 '추리소설'의 장르에 속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냥 다른 것도 아니고,
눈에 대한 감각이 있는 거라니,
그게 좋았다.
어려서부터 눈을 좋아했다.
조금 커서는 눈이 더러워진다는 사실이나 눈이 오면 차가 막힌다는 사실, 혹은 눈을 치워야 하는 수고스러움 때문에 , 눈을 미워하고 귀찮아하는 사람들을 경멸하기도 했다.
그런데 , 이젠, 눈을 좋아하는 나를 좋아한다.
아직도 눈을 보고 감동하고 아이처럼 두근댈 수 있는 내 가슴이 게속 살아있기를 바란다.
어쩌면 한 5년 뒤에는, 눈에 대한 아무런 감흥이 없는 내가 좋아질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스밀라는,
말하자면 그런 여자다.
초감각적으로 눈을 이해하고 좋아하면서도, 눈처럼 차갑고, 눈처럼 부드러우며, 아이같은 저돌성을 지닌데다가 할머니처럼 지혜롭고 현명하다.
마치, 나 같은 사람이 눈을 어려서 좋아하는 것과 지금 좋아하는 것과 나중에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유나 심경이 시간이나 외부 사정에 따라 나도 모르게 변화하는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녀는 좋아함의 다양한 변화, 자신을 가꿔내는 특질의 변화, 인생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시공간적 개념에서 이해되기 어려운, 자신만의 페이스에서 진행해버린다.
순전히 그게 부러웠다.
다른 매력은 두고도, 그게 부러웠다.
시공간을 초월해서, 자신만의 무엇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그런 반면에 절대 흔들리지 않는 그 무엇을 지니고 산다는 것.
어려운 수학이나 지질 이야기는 다 패스했다.
나는 어떤 것을 대하든, 내가 취하고 싶은 것만 취해버리는 습관이 있다.
복잡한 추리의 미로도 별로 개념치 않았다.
그냥 내가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했다.
그래서 어이없게도 누가 이 책의 말미에서 나온 결론이 무어냐고 물어도, 아마 대답 못할 지경이다.
다만, 이렇게 생각해가며 읽었다.
나를 가꾸어야지,
스밀라처럼, 아니 스밀라의 방법을 체득해야지, 아니 스밀라로 대표되는, 자기를 제대로 가꾸는 사람이 되어야지.
어떻게든 그 방법을 많이 알아내야지.
그렇지 않으면 자멸이야...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