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철도원>의 배경이 되는 곳이랬다, 내가 가는 리조트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역이. 눈을 많이 보겠구나 생각은 했다만 그렇게나 많고 또 많을 줄이야.

정물화의 사과나 꽃병 마냥 얌전하게 땅 위에 섰는 집들은 언제까지고 잠만 잘 것 같고 심지어 그 안에 사람들이 있나 싶다. 길 가의 가게들이나 벤딩 머신조차도 언제 저 가게에 누가 들어가기나 할런지, 누가 코인을 넣고 음료수 하나 뽑기나 할런지 의심스러울만큼 조용하다. 길 거리에는 드문드문 너무 빠르지는 않지만 제법 유연하게 오가는 차들이 있어 사람이 살고 있음은 알겠다만, 도통 걸어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이 고요함은 마음을 한없이 정화 시킨다.

그러다 산 위로 올라간 밴은 눈보라를 만난다. 정신없이 후려치는 바람과 눈발들로 와이퍼를 가동해도 시야는 너무 뿌옇다. 운전수는 긴장하는 것 같고 우리도 마치 영화에서처럼 갑자기 저 아래 산구릉으로 눈길에 미끄러진 차가 나동그라질 것 같은 불안감에 짓눌린다. 나무들은 큰 키와 마른 몸으로 휘영청 휘영청 바람에 휩싸여 어쩌면 부러질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잠시 차 문을 열고 짐을 싣는 사람들이나 그 때 마침 눈을 쓸려고 삽을 들고 나와 있는 사람들은 조금만 더 심하게 바람이 불면 휙 하고 저기 먼 데로 날아가 버릴 것 같다. 그런 시간이 한 십오분. 갑자기 회색 구름들 사이로 태양이 온유한 빛을 내뿜는다 싶더니, 바람은 소리없이 잦아들고 세상은 환해지며 모든 것은 예의 정물화가 된다.

이 격정 뒤의 고요함은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살 수 있다면 살아도 좋다고 생각하다가, 매일 아침 집 앞 눈을 쓸지 않으면 다음날 아침에는 내 집 앞 문도 못열고 바깥 출입 못하겠다 생각하니 게으름 때문에 자신이 안 선다.

하지만 매일 별로 할 일도 없는 이런 세상에서야, 아침 비질 정도가 좋은 운동 거리일 뿐 짜증 거리가 아닐 지도 모른다.

일년의 한 계절, 겨울에만 눈을 매일 본다면, 그것은 거의 축복이지 귀찮음이나 지겨움이 아닐 거다 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간다.

마음이 컴컴하고 질척거리고 미워질 때, 홋카이도를 방문하시라. 온통 희고 희고 또 희고, 녹을 새도 없어 지저분해지지도 않는 그 눈을 마음껏 보고 오시라. 우리는 많이 착해지고, 그래서 한국도 착해지고, 그래서 세계도 착해질 것이다. 

까불거리면서 눈발 위에서 맛있는 쿠우만 사먹으면 행복한 - 그런 착한 사람들이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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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2 0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22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haire 2008-02-22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컴컴하고 질척거리고 미워질 때, 인가 봐요, 저.
홋카이도가 너무너무 가보고 싶어지네요. 아, 안락할 것 같은 따뜻할 것 같은 눈이에요.
싱그럽기도 하고.
그러구 보니 올겨울 전 눈을 별로 못 본 것 같아요. 한번쯤은 쏟아져주면 좋을 텐데.
아들내미 사진, 재밌어요 :)

치니 2008-02-22 14:17   좋아요 0 | URL
chaire님의 홍콩 여행기를 읽다가, 전 홍콩의 습한 공기를 싫어했었음에도 다시 가보고 싶어졌던 기억이 나요.
언제 어떤 맘으로 여행 가냐에 따라 느낌이 참 달라지나봐요.
홋카이도는 이제 딱 한번 가봤지만, 왠지 다른 계절에도 좋을 거 같은 포스가 느껴져요.
chaire님도 꼭 가보세요 ~

Fox in the snow 2008-02-22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흑, 저도 눈쌓인 홋카이도 정말 가보고 싶은데.. 아드님 표정이 쿠우랑 똑 같네요

치니 2008-02-23 13:04   좋아요 0 | URL
Fox in the snow님, 닉네임에도 스노우가 들어가 있어서인지 눈이랑 되게 잘 어울리시는 거 같아요. :)
여전히 동명의 노래 가끔 듣고 지낸답니다.
쿠우 표정 따라한다고 한건데, 제법 비슷하죠? ㅎㅎ 그나저나 쿠우, 정말 맛나요!

이게다예요 2008-02-23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엄마랑 가는 일본 여행에서 온천만 실컷하다온 기분이었는데, 얼마 전에 읽은 <설국>의 뒷끝일까요, 저 눈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네요. 올 겨울 눈 한번 구경 못했지만.
좋으셨겠어요, 아드님의 표정처럼 저렇게.

치니 2008-02-23 13:05   좋아요 0 | URL
아, 서울에 살지 않으시나보구나...눈구경을 못하셨다니, 안타깝습니다.
눈이 오면 모든게 참 조용해지는 그 기분, 좋은데.
온천만 실컷, 이것도 좋죠. :)

누에 2008-02-24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너무 멀어져서 가기 힘든 곳이네요. 흑. 올 겨울엔 눈구경도 못했답니다. 눈이랑 온천이랑 부럽다~

치니 2008-02-24 10:36   좋아요 0 | URL
아, 계시는 그곳엔 눈이 흔하진 않죠?
비가 흔했던 기억. 지금도 그렇겠죠? 배고프고 추울 때 비가 추적추적 오면, 참 을씨년스러웠던 기억이 나는데...
하지만 그런 날 카페에 가서 따스한 핫쵸코 마시면 그것도 좋았던 거 같아요.
누에님, 잘 지내시죠? ^-^
 
Essential Grammar in Use with Answers and CD-ROM Pack : A Self-Study Reference and Practice Book for Elementary Students of English (Package, 3 Rev ed) Essential Grammar in Use 2
Raymond Murphy. Helen Naylor 지음 / Cambridge University Press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영어로 문법 용어들을 정확히 알고 시작한다면 일석이조. 필수 문법은 이걸로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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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를 추억하며 그르니에 선집 2
장 그르니에 지음 / 민음사 / 199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그는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행복에 포함되어 있는 행운의 몫을 헤아려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만한 사람>도 아니었다. 다른 이들에게 신세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자신감에 넘친 사람>도 아니었다. 농부가 자신의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산출하지 않는 토지의 결실에 애착을 느끼듯이, 자신의 생각을 중시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에서 무엇이 확고할 수 있는가 하고 늘 자문했기 때문이었다. "

위 문장으로부터 시작해 몇 쪽만 건너가면 계속 책장을 접어둘 수 밖에 없는 이 책은, 카뮈에 대한 글이기도 하고 장 그르니에 자신의 사상집인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책은 기쁜 짜증이 난다. 한 줄 한 줄 신경을 써서 읽지 않으면 그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지나칠까봐 조바심이 나며, 나름 열심히 읽어도 자꾸만 되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자꾸 뒤로 돌아가 뒤적거리느라 진도가 잘 나가지도 않기 때문이다.

카뮈를 좋아한다. 이유는 몰랐었다. 이 책이 그 이유를 모두 대변해준다. 내 대신에...

장 그르니에를 좋아한다. <섬> 이후, 이유는 조금 알고 있었다. 이 책이 도달할 수 없는 내 한계를 더 명확히 해준다. 머리를 어디다 찧고 싶어진다. 나도 아래와 같은 카뮈의 덕목을 따라하고 싶지만 도저히 안된다는 생각에...

"절도, 그러나 지나침을 경험한 뒤의 절도, 힘의 균형, 그러나 늘 활력 넘치는 균형, 비장감을 이겨낸 뒤의 차분함, 극단적인 것의 적절한 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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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다예요 2008-02-23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침을 경험한 뒤엔, 늘 絶倒(까무라쳐 넘어짐) 하기 쉽상이던걸요... 흠.
그와 나는 이렇게 다르다니... ;;

치니 2008-02-23 13:08   좋아요 0 | URL
하핫, 역시 이게다예요님은 비유가 정말 압권입니다.
저 역시 그래요, 지나침 까지만 가지, 절도는 못 갖추고, 이 모양이죠.
그래서 저 글을 베껴놓고 열심히 연습하려구요.
비장감을 이겨낸 뒤의 차분함도 배워야 하고, 극단적인 것의 적절한 완화도 정말 제겐 필요한 덕목. 까뮈도 까뮈지만 까뮈를 이렇게 절묘하게 표현한 쟝 그르니에가 무척 멋지다고 생각되는 책이에요.
 

(사진 출처: 네이버)

김창완씨의 편지

창익아, 내동생 창익아 창익아

이제 저희 막내 김창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 무력감은 저를 더욱 슬프게 합니다.

하지만 이 크나큰 상실은 그가 얼마나 사랑스런 사람이었나를 일깨워주었습니다. 장례를 치르러 가는 비행기안의 낯선 이들조차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평소에 늘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사랑 받기 원했던 고인의 향기가 크나큰 슬픔 속에서도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 주었습니다.

고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웃는 드러머 김창익을 사랑한 모든 분들을 위로해야 하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사랑하겠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행복하도록 사랑하겠습니다.

천국에서 웃으며 드럼을 치고 있을 동생을 생각하며, 이렇게 동생이 떠날 줄 몰랐던 형이…

2008년 1월 30일

유난히 개구져 보이고 귀여웠던 김창익, 형들에 비해 대단한 조명을 받은 건 아니지만 막내 특유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을 머금게 했던 기억.

가까운 누군가가 죽는다는 건 어떤 걸까 , 가끔 생각해보지만 슬픔의 수위는 결코 가늠 되지 않는다. 더구나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면, 세상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겠건만, 김창완 형은 그런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떴다고 하고 김창익을 사랑한 모든 분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편지를 쓰고 있다.

사랑하기에만도 벅찬, 이 짧은 생에 미워하고 짓밟고 증오하고 분노하는 일을 많이 줄여야겠다.

사랑하겠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행복하도록 사랑하겠습니다. 저도요, 김창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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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다예요 2008-02-01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김창익씨를 잘 모르지만... 그저 김창완씨 특유의 말투가 베어있는 편지는 찡하네요.. 사랑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지만, 미워하거나 분노하는 일들은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줄여가고 있어요, 저는.

치니 2008-02-01 23:15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김창완씨의 이 편지가 곁에서 말을 하는 것처럼, 그래요.
삼형제가 유독 사이가 좋아보였었죠.
셋이다가 둘이 되었음을 느낄 때마다 앞으로 죽 많이 많이 그리워질테죠.
미움이나 분노가 없는 사람이, 어쩌면 가장 행복한 사람일거에요.

2008-02-01 1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01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da 2008-02-03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내는 영원한 막내죠. 영원히 장난꾸러기고 철부지고 귀여운. 형의 사랑이 담뿍 느껴지는 편지네요..

치니 2008-02-04 10:04   좋아요 0 | URL
저도 막내인데...철부지, 음, 공감합니다.
사실 김창익 개인을 잘 모르지만 산울림의 한 멤버가 이렇게 되었다는게, 무척 안타까워요.
이젠 셋을 결코 함께 볼 수 없다는 것, 산울림은 전설이 되어 버렸다는 것.

토니 2008-02-04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늘이 내린 이 컴맹이 치니님의 서재를 드디어 스스로의 힘으로 찾았습니다.
북마크 없이 전 늘 무기력한 사람인데... 갑자기 사는 게 만만하게 느껴지네요. 서울로 근무지를 옮긴지 오늘로 사흘. 출퇴근 시간이 반으로 줄어 아침 밥도 먹고 머리도 말리고, 눈썹도 정교하게 그리고 나와요. (나오면서 현관 거울을 보며 스스로 흡족한 미소를 지은답니다. "짜식, 멋져!" 뭐 그런 표정... ㅋㅋ )

가까운 사람이 아니더라고 누군가의 사망 소식은 짧게나마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것 같아요. 사랑 그리고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 중요하죠. 근데 왠지 미움과 분노가 없는 사람은 삶에 대한 열정도 미지근할 것은 생각이 드네요.(정신세계 참 독특하죠?) 물론 늘 분노로 가득차 심장이 아프다면 그 또한 문제겠지만.

천개의 찬란한 태양은 원문으로 읽는 것이 백배 나을 듯합니다.
번역하시는 분이 심히 열심히 번역을 해서 원문과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치니 2008-02-04 11:40   좋아요 0 | URL
하늘이 내린 컴맹, ㅋㅋ 저도 뭐 IT랑 그닥 친하진 않아요.
어쩔 수 없는 것들만 하고 사는 중이죠.
도시 생활에서 출퇴근 시간이 차지하는 비율은 그 물리적인 소요시간 뿐 아니라 마음의 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죠.
최소한의 여유를 찾는다는 건 , 분명 아주 아주 중요하니까요.
축하해요!

저는 워낙에도 미지근한 사람인데, 미움과 분노 없애고 더 미지근해지려나, ㅎㅎ 근데 그렇게 자꾸 그렇게 살고 싶어지니 원.

네, 원본으로 읽어보겠습니다. 흐흑.
 
멋진 한세상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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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이라는 작가를 여태 몰랐다.
이번에 새로운 작품집인 <명랑한 밤길>이 나오면서 여기저기 눈에 띠던 차에,
예전 작품부터 읽어보자 싶어 읽게 된 책이 이 책 <멋진 한세상>이다.

솔직히 첫 작품인 <그것은 인생>을 읽고 김이 좀 새는 기분이었다.
내용도 문체도 그닥 산뜻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남매의 가난 때문에 벌어지는 불행, 그 불행을 나 몰라라 하고 살아가는 우리들, 티비에서 한번 소개라도 해주면 1000원 정도의 성금을 ARS로 넣어버리고 곧 잊어버리는 이런 막돼먹은 세상...
익히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버려두고 있던 세상의 서러운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못내 아쉬운 점을 뒤로 하고 하나 하나 다른 작품들을 읽어가면서 차츰차츰,
아직 잘 살지도 못하면서 이미 잘 사는 티를 내는, 23평 아파트 하나 겨우 장만하고 남편이 구조조정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마지못해 회사에서 차를 사서 몰고 다니는 여자의 눈으로 이 사람의 글을 읽었던 오류를 범했다는 걸 깨달았다.
온통 칙칙하고 답답하고 때로는 비현실적인 것 같은 이 모습들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인 것을,
따갑게 느끼며 재미보다는 서러움을 곱씹어야 했다.
굳이 예로 들자면, <달콤한 나의 도시> 같은 책에서 나오는 우리 시대의 멋진 독신녀는 이 책 어디에서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죽어라고 돈을 벌고 아껴 써야만 하는 처지인데도 애써 장만한 아파트에선 답답한 사육장 같은 분위기와 소음 때문에 도저히 살 수 없는 문학 소녀 취향의 아줌마가 등장하며,
세상의 모든 잣대가 돈이 되어야 하는 안타까움을 몰래 감추며 겨우 장만한 자연 속의 시골집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무대뽀적인 사생활 침해에 치를 떨어 다시 도시의 집을 구하러 다니는 중이다.

그리고 이런 세상에서 악착스럽고 그악스럽다한들 그나마 어떻게든 자식을 돌보고 생활 전선에서 살아내는 사람들은 모두 여성들이다.
남성들은 공선옥의 작품 모두에서,
한량이거나 배신자이거나 무책임하고 무능력하며 자신의 배를 갈라 애를 낳지 못하기 때문에 생명의 귀함도 모르는 바보 들이다.
아니, 그보다 더하게, 여성들의 안온한 삶에 방해를 일으키기만 하는 족속들이다. 그리고 막상 그 남성이 된 입장에서의 심리는 여성의 그것에 비해 거의 단 한번도 제대로 묘사되지 않는다.
문장 곳곳에 포진하고 있는 이러한 남성에 대한 느낌들은 적대적이지는 않지만, 막연한 포기와 무시를 담고 있어서, 때때로 꽤 뜨악해지고 반감이 들기도 한다.
모든 여성들이 꼭 이렇게 씩씩하고 억척스럽고 홀로 여야만 하는가 , 하는 의문도 자꾸 든다.
이러한 공선옥의 시각은 내가 지적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논란거리가 된 듯 하니 이쯤에서 그만하기로 하고, 다음 작품인 <명랑한 밤길>에선 이런 부분이 많이 성숙해져 있기를 , 아니 좀 더 설득력이 있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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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 2008-01-27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흠. 몇구절만 읽어주셔요. ^^;

치니 2008-01-28 13:38   좋아요 0 | URL
책이 지금 곁에 없어서(회사에요 히히), 별루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작가의 말을 읽어드려봅니다.
--------------------------------------------------------------
'그것은 인생'의 소년을 만난 적이 있다. 애초에 소설을 쓰기 위해서 누구를 만난 적은 없다. 다만 나는 소설가이고 소설을 써서 벌어먹는 사람이라, 소년의 참혹한 현실을 소설로 쓰는 일 이외의 아무런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소설을 써서 벌어먹고 사는 일에 대해 이따금 회의감이 밀려왔다.

과연 소설이 그 소년이 처한 현실을 바꾸거나 혹은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고민도 하고 괴롭기도 했다. 그러나 나 또한 '가난하고 외롭기'는 소년하고 다를 바 없는, 작고 힘없는 소설가일 뿐이라고 나는 나를 위로했다.
------------------------------------------------------------
위 작가의 말을 읽다가, 참 애매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소설을 소설 그대로 읽지 못하고, 사회의 어떤 부분을 바꿀 수 있는 도구로써 읽어주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랄까, 그런 목적성을 가진 글이라 해도 좀 더 은밀하게 독자들을 설득하는 무기는 없다는 걸까...이런 생각들 때문에 신뢰감이 덜해져버렸다고나 할까요.

누에 2008-01-30 05:56   좋아요 0 | URL
우히히 신난다~

치니 2008-01-30 08:38   좋아요 0 | URL
저도 누에님을 자주 뵈니 신나요 ~

깐따삐야 2008-01-27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혹 수상전집 등에 끼어 있을 땐 읽게 되고. 일부러 찾아서 읽지는 않지만 그 촌스러운 뚝심만큼은 참 독보적인 것 같아요.^^

치니 2008-01-28 13:39   좋아요 0 | URL
네, 여타의 다른 여성 작가들과는 다른 점이 매력이기도 하고 촌스러움이기도 하고 그런가봅니다.
딱히 제 취향이라고는 못하겠지만, 뚝심은 인정. ^-^

이게다예요 2008-01-27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아님 의견에 동의 ^^
전 공선옥, 이라는 이름이 한 때 참... 맘에 안 들었더랬습니다. 우히.ㅋ
주말 잘 보내셨죠?

치니 2008-01-28 13:42   좋아요 0 | URL
공선옥, 저는 한 때 공옥진 여사랑 헷갈렸다는...^-^;;
다예요님도 주말 잘 보내셨길.
월요일은 늘 분주하네요.

nada 2008-01-28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촌스럽다는 얘기는 좀 너무하잖아요.. 흙흙.
같은 촌스러운 사람으로서 맘이 아프다구요. 쩝.

치니 2008-01-28 20:46   좋아요 0 | URL
아 이런,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꽃양배추님 글이 공선옥씨 글보다 훨씬 재미있어요.
그런 글을 좋아하는 저는 그럼 역시 촌스러운 사람을 좋아하는 거? ^-^

2008-01-28 1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28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haire 2008-01-29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선옥은, 저한텐 그래요. 그러니까, 좋지는 않지만 싫어하면 왠지 마음에 걸리고 미안한.
읽고 싶지는 않지만, 왠지 읽어야만 할 것 같은.
그러나, 여전히 초기작 몇 편 빼고는 안 읽고 있는 작가.
하지만 앞으로도 영원히, 조금은 응원해주고 싶은 작가.
(써놓고 보니 하나마나 한 얘길 한 것 같아요. ㅎㅎ :)
어찌 됐든, 님의 그 텁텁함은 가히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는..

치니 2008-01-29 16:42   좋아요 0 | URL
chaire님, 맞아요, 바로 그 마음에 걸림, 그거 때문에 왠지 텁텁해요.
소설이나 예술이 사회적으로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 사회적인 영향 때문에 마음껏 쓰지 못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꼭 주제를 한 쪽으로 국한 시킬 필요는 없다는...
공선옥씨가 고민하는 것은 이해 되고도 남음이 있지만, 독자들이 자신의 책을 읽으면서 사회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 있다고 생각할 필요까진 없지 않을까요. 해답은 모두가 같이 고민할 문제인 것이고, 작품은 작품으로써 평가 받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술의 기능과 본질이 뭐냐, 라는 질문에 저로서도 쉬이 대답할 수는 없으니 더이상 토를 달기 힘들지만, 그의 노력을 응원해주되, 작품 자체도 재미있어하면서 응원해주고 싶어서 그래요.

네꼬 2008-01-31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촌스러운 사람으로서 맘이 아프다구요2.

저 까먹었는데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였나? 그런 단편소설이었어요. 맨 처음에 운전수 등장하는 장면 묘사 참 좋아했는데..

절실함도 있고 뻑뻑함도 있고 우직한 진심이 가득한 작가인데요, 가끔은 좀 요리를 해주었으면 싶기도 하죠. 날것 그대로 말고. (퍽! 네꼬 니가 뭘 안다고!!!!!)

치니 2008-01-31 08:39   좋아요 0 | URL
역시 네꼬님이에요.
긍정적으로 그리고 그야말로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마음.
절실함, 우직함 , 동감해요.
전 사람이 얇아가지고 재미난 것만 찾는 경향이 있어서...^-^;;

푸하 2008-02-01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좀 도회풍이에요.

치니 2008-02-01 23:22   좋아요 0 | URL
푸하님, 오랜만이에요.
요즘 일 하시느라 서재 글이 너무 뜸하신 건지, 궁금했어요.
전 좀 도회풍도 아니고 시골풍도 아니고 맹꽁이 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