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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한세상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2년 8월
평점 :
공선옥이라는 작가를 여태 몰랐다.
이번에 새로운 작품집인 <명랑한 밤길>이 나오면서 여기저기 눈에 띠던 차에,
예전 작품부터 읽어보자 싶어 읽게 된 책이 이 책 <멋진 한세상>이다.
솔직히 첫 작품인 <그것은 인생>을 읽고 김이 좀 새는 기분이었다.
내용도 문체도 그닥 산뜻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남매의 가난 때문에 벌어지는 불행, 그 불행을 나 몰라라 하고 살아가는 우리들, 티비에서 한번 소개라도 해주면 1000원 정도의 성금을 ARS로 넣어버리고 곧 잊어버리는 이런 막돼먹은 세상...
익히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버려두고 있던 세상의 서러운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못내 아쉬운 점을 뒤로 하고 하나 하나 다른 작품들을 읽어가면서 차츰차츰,
아직 잘 살지도 못하면서 이미 잘 사는 티를 내는, 23평 아파트 하나 겨우 장만하고 남편이 구조조정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마지못해 회사에서 차를 사서 몰고 다니는 여자의 눈으로 이 사람의 글을 읽었던 오류를 범했다는 걸 깨달았다.
온통 칙칙하고 답답하고 때로는 비현실적인 것 같은 이 모습들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인 것을,
따갑게 느끼며 재미보다는 서러움을 곱씹어야 했다.
굳이 예로 들자면, <달콤한 나의 도시> 같은 책에서 나오는 우리 시대의 멋진 독신녀는 이 책 어디에서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죽어라고 돈을 벌고 아껴 써야만 하는 처지인데도 애써 장만한 아파트에선 답답한 사육장 같은 분위기와 소음 때문에 도저히 살 수 없는 문학 소녀 취향의 아줌마가 등장하며,
세상의 모든 잣대가 돈이 되어야 하는 안타까움을 몰래 감추며 겨우 장만한 자연 속의 시골집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무대뽀적인 사생활 침해에 치를 떨어 다시 도시의 집을 구하러 다니는 중이다.
그리고 이런 세상에서 악착스럽고 그악스럽다한들 그나마 어떻게든 자식을 돌보고 생활 전선에서 살아내는 사람들은 모두 여성들이다.
남성들은 공선옥의 작품 모두에서,
한량이거나 배신자이거나 무책임하고 무능력하며 자신의 배를 갈라 애를 낳지 못하기 때문에 생명의 귀함도 모르는 바보 들이다.
아니, 그보다 더하게, 여성들의 안온한 삶에 방해를 일으키기만 하는 족속들이다. 그리고 막상 그 남성이 된 입장에서의 심리는 여성의 그것에 비해 거의 단 한번도 제대로 묘사되지 않는다.
문장 곳곳에 포진하고 있는 이러한 남성에 대한 느낌들은 적대적이지는 않지만, 막연한 포기와 무시를 담고 있어서, 때때로 꽤 뜨악해지고 반감이 들기도 한다.
모든 여성들이 꼭 이렇게 씩씩하고 억척스럽고 홀로 여야만 하는가 , 하는 의문도 자꾸 든다.
이러한 공선옥의 시각은 내가 지적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논란거리가 된 듯 하니 이쯤에서 그만하기로 하고, 다음 작품인 <명랑한 밤길>에선 이런 부분이 많이 성숙해져 있기를 , 아니 좀 더 설득력이 있어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