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를 추억하며 그르니에 선집 2
장 그르니에 지음 / 민음사 / 199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그는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행복에 포함되어 있는 행운의 몫을 헤아려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만한 사람>도 아니었다. 다른 이들에게 신세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자신감에 넘친 사람>도 아니었다. 농부가 자신의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산출하지 않는 토지의 결실에 애착을 느끼듯이, 자신의 생각을 중시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에서 무엇이 확고할 수 있는가 하고 늘 자문했기 때문이었다. "

위 문장으로부터 시작해 몇 쪽만 건너가면 계속 책장을 접어둘 수 밖에 없는 이 책은, 카뮈에 대한 글이기도 하고 장 그르니에 자신의 사상집인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책은 기쁜 짜증이 난다. 한 줄 한 줄 신경을 써서 읽지 않으면 그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지나칠까봐 조바심이 나며, 나름 열심히 읽어도 자꾸만 되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자꾸 뒤로 돌아가 뒤적거리느라 진도가 잘 나가지도 않기 때문이다.

카뮈를 좋아한다. 이유는 몰랐었다. 이 책이 그 이유를 모두 대변해준다. 내 대신에...

장 그르니에를 좋아한다. <섬> 이후, 이유는 조금 알고 있었다. 이 책이 도달할 수 없는 내 한계를 더 명확히 해준다. 머리를 어디다 찧고 싶어진다. 나도 아래와 같은 카뮈의 덕목을 따라하고 싶지만 도저히 안된다는 생각에...

"절도, 그러나 지나침을 경험한 뒤의 절도, 힘의 균형, 그러나 늘 활력 넘치는 균형, 비장감을 이겨낸 뒤의 차분함, 극단적인 것의 적절한 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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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다예요 2008-02-23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침을 경험한 뒤엔, 늘 絶倒(까무라쳐 넘어짐) 하기 쉽상이던걸요... 흠.
그와 나는 이렇게 다르다니... ;;

치니 2008-02-23 13:08   좋아요 0 | URL
하핫, 역시 이게다예요님은 비유가 정말 압권입니다.
저 역시 그래요, 지나침 까지만 가지, 절도는 못 갖추고, 이 모양이죠.
그래서 저 글을 베껴놓고 열심히 연습하려구요.
비장감을 이겨낸 뒤의 차분함도 배워야 하고, 극단적인 것의 적절한 완화도 정말 제겐 필요한 덕목. 까뮈도 까뮈지만 까뮈를 이렇게 절묘하게 표현한 쟝 그르니에가 무척 멋지다고 생각되는 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