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시는지요.

이렇게 한 줄 적고 나니, 잘 지내냐고 묻는 말 한 마디가, 그 어투가 다정하냐 건성이냐에 따라서 울고 웃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이 인사는 아무에게나 건넬 수 있어서 몹시 시시하다가도, 상대방이 정말 나를 궁금해하는구나 라고 느끼기만 하면 오랜 세월 묵어온 모든 질문을 하나로 명쾌하게 정리해주는 인사라서, 그랬던 거 같아요.

지금 저는 잘, 지내시냐고, 못내 목이 메어 어렵사리 온 마음을 담아 물어보고 싶지만, 솔직히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편지를 쓰고 있으니, 예의 궁금함을 가득 담은 다정함과는 좀 거리가 있지 싶습니다.

그저, 오늘 따라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져서 말이에요.

어제는 하루종일 천둥과 번개와 벼락이 오락가락하는 날씨였어요. 마음도 역시 좀 그랬던가봅니다. 한달에 한두번 겨우 집에 와 자고 가는 아들 녀석이 낮잠을 자고 일어나더니 '속이 몹시 찌뿌등해'라며 인상을 찌푸리는 걸 보면, 내 마음이 그래서 그녀석에게까지 전달이 되었던가봐요.

시름이 있어도 훌훌 털어내는 것이 쿨하게 보이는 세상이라 그런지, 조금만 회색 마음이 오래 가도 안절부절인 건, 예전보다 더해지는 것 같아요.

자꾸만 지금 내 나이, 지금 내 상황, 즐기기보다는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살지? 라는 식의 생각만 하는 저를 보면서, 아마도 매우 태평스럽게 살아갈 당신을 부러워만 합니다.

돌아보지도 말고 내다보지도 말고 살아야할텐데, 라는 생각이 요즘 부쩍 자주 들어서 그런가봅니다.

오늘은 점심 시간에 우연히 들어간 넷 뉴스에서 클릭 클릭 파도를 타고 들어가다가, 노간지라는 이름의 동영상들을 보고 있자니, 다른 사람들처럼 '감동'스러운 것이 아니라 마음이 어째 씁쓸해집니다. 그야말로 왜 있을 때 잘하지 못하고, 이제 와서 그립다 그립다 하는 건가 싶어서요. 쉽게 욕하고 쉽게 추앙하고, 몰이해 속에서 이해하는 척 하는, 이런 세태에 저 역시 일조를 하고 있구나 싶어서요.

그리고, 제가 마구 사랑하는 시간, 누군가에 대한 행복감을 누리기 무섭게 곧장 '이것이 만일 깨어지는 날엔 어쩔까'라는 무용한 근심거리로 몰아가는 악습도 버리지 못해서요.

지나간 것도 앞으로의 일들도 그 때가 아니면 생각지 않고, 그저 지금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힘을 쏟고 지금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잘하고 보듬으면 되겠는데, 왜 자꾸 그게 마음 먹은대로 안되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제가 우둔한 탓이겠죠.

오늘도 이곳의 날씨는 흐립니다. 어제만큼은 아니어도 또 비가 올 모양이에요. 날씨 따라 변덕이 잦은 제 마음은, 이미 몽롱해요. 어제만큼 부잡스럽지는 않아도 축 가라앉은게, 아무도 없는 수면 밑에서 혼자 심심하게 노는 물고기 같아집니다. 이 유영이 조금은 재미나고 행복한 유영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예요. 그리고 그 방법도 간절히 찾고 있기는 하죠.

아, 오늘은 오래간만에 집에서 밥을 해먹어야겠어요. 몽유병자처럼 세상에 발을 못딛고 돌아다니는 저의 초라한 단발성 허허로움은 어쩌면 근 십일 넘게 패스트푸드와 식당 밥, 술 안주 등만을 섭취하고 다녀서 빚어진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도무지 내용이라고는 없는 횡설수설인데다 푸념이 길었습니다. 그러나 이해해주시길. 어차피 보내지지 않는 편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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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다예요 2008-05-19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잘 있어요. ㅋㅋ
무용한지, 유용한지도 모를 그럴 근심거리들이 하루 건너, 혹은 한 다리 건너, 심심찮게 찾아오네요. 시간이 지나면 그래도 아, 그럭저럭 견뎌왔구나, 할텐데 이럴땐 시간조차 천근만근으로 무겁군요. 그렇다고 누가 죽기야 했겠냐 마는, 푸념도 근심도 늘어만 가는 푸른 5월 중순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편지를 읽는 걸 보니, 여유 따위를 아주 잃진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저는 잘 있나 봅니다. ㅋㅋ 정말로. ^^

치니 2008-05-20 08:50   좋아요 0 | URL
아 다예요님, 안그래도 궁금했는데, 잘 있으시다니 정말로 ^-^ 기쁩니다.
근심이면 근심이지, 무용이냐 유용이냐 따지고 있는 것도 참 그래요.
여유 그대로 가지시고, 앞으로도 죽 잘 지내시길 바래요.

mooni 2008-05-19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잘 못지내고 있어요...ㅜ.ㅜ
욕실 수도관 파이프가 고장나 때아닌 물난리에 공사아닌 공사에.. 흑흑
어제 그제 오늘로 이어지는데다 아직 안 끝났어요...
(그래도 그 와중에도 치니님보다 밥은 잘 챙겨먹고 있군요.
오늘은 상추겉저리와 해물탕먹었어요...해물탕 먹다가 생선뼈가 목에 걸리긴 했지만요.)
푸념성 포스팅에 한술더 뜨는 댓글. ㅋ 그러나 이해해주시길.
어차피 딱히 받지 않은 편지 답장이니까요.

치니 2008-05-20 08:52   좋아요 0 | URL
어엇, 이런 이런. 대공사였군요.
그것도 욕실 -_- 가장 난감하죠.
지금쯤엔 얼추 해결이 되었기를.
그 참에 욕실 대청소 하셨겠네요? ㅋ (제 경우에는 늘 이런 식으로 위안을)
생선뼈 조심하셔야 합니당, 제 어머닌 예전에 그 때문에 복강 수술까지 하셨어요.
제대로 되지 않은 편지에 주신 답장 고이 받겠습니다. ^-^

누에 2008-05-19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추웠다 더웠다 비와 햇살이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정신이 오락가락하며 지하실 같은 방안에 쳐박혀 둥둥거리며 부유하고 있어요. 행복과 불행이 함께 녹아든 우물을 바람따라 이리저리 둥가둥~ 떠다녀요. 짧은 발가락같은 뿌리 한켠에 행복이 닿으면 실실거리고 불행이 닿으면 움찔거리며 작은 우물을 망망대해라 여기는 쪼매난 개구리밥이죠. 어쩌다가 물에 떠내려온 병속에 담긴 편지를 건져낸 것 같네요. 풋. 생선뼈를 목에걸고 수도관과 씨름하는 어떤 분을 생각하니 발가락이 간질거리는군요.

치니 2008-05-20 08:54   좋아요 0 | URL
둥가둥 ~ 요 말이 재미나네요. ^-^ 저절로 그림이 그려져요.
그쪽 날씨는 정말 제정신 놓게 만드는데 선수죠? ㅎㅎ
그런데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이제 한국도 만만치 않아요.
그래도 어렴풋이 누에님이 잘 지내고 계시다는 인상을 받았다면, 틀린걸까?

rainer 2008-05-19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지 잘 받았습니다.
아주 슬픈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또 자주 웃습니다. ^^
뭐든 지나가니까요.

치니 2008-05-20 09:00   좋아요 0 | URL
음음, 님의 휑 해진 서재를 둘러보고 휴 한번 하고 나오곤 합니다.
슬픈 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한 줄에 핑 ,
그래서 또 자주 웃습니다 에 마음이 덜컹,
예 뭐든 지나가기는 해요.
그래도 무사하게 지나갔으면 합니다, 모쪼록.

2008-05-20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0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rainy 2008-05-20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 해 먹었어?

치니 2008-05-20 09:07   좋아요 0 | URL
응! ^---^

2008-05-20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0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0 1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1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2 0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2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3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3 1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3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5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I got everything, a beautiful, a good, a working woman ... it is my wife. She i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my life."

토요일 오전, 티비를 켜는 일은 거의 없는데 오늘은 저 노인의 저 세 마디를 듣기 위해 하나님이 나를 깨웠나보다.

채널을 무심코 돌리다가 김장훈씨가 단독 엠씨로 나섰기에 흥미를 느껴 바라본 <무한리플60억의지혜>라는 프로그램.

우리 남편이 변했어요,라는 시청자 사연을 재연으로 꾸미고, 소위 지구촌 re: 를 받아본다는 것이 방송 컨셉인가보다.

술을 즐겨 마시고 노는 거 좋아하는 남편이 미워죽겠는 새댁에게 지구촌 갖가지 커플들이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리플을 달았다는데...

딱 보기에도 포스 작렬이신 미국 호호 할머니 100세 생일 기념파티가 눈에 쏙 들어온다.

이 할머니 시의원까지 출마하신 경력 답게 당당하고 멋지고 그야말로 짱짱하다.

생일파티에서 마음껏 자신의 건강을 즐기던 할머니가 파티가 끝나기무섭게 달려가는 실버타운엔 할아버지가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1925년 결혼하여 결혼 80주년에는 교황의 축하 카드까지 받은 그야말로 백년해로 잉꼬 커플.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달리 말조차 할 수 없을만큼 노쇠하여 겨우 할머니가 떠주는 음식을 받아 잡숫고 겨우 할머니의 손을 맞잡고 앉아 계시더니...

다시 태어나도 할머니와 살 거냐는 피디의 질문에 기적처럼 입을 떼어 위와 같이 말하고 할머니랑 다정한 키스를 하셨다.

아이 갓 에브리씽... 그가 애써 뗀 입으로 처음 하는 말, 아이 러브 유보다 훨씬 강하고 믿음이 가는 말. 쭈글쭈글 숨은 제대로 쉬어질까 싶은 얼굴로 하는 말. 그가 방송 중 갑자기 하늘나라로 간다 해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으로 기억되리라는 마음이 들만큼 부럽던 얼굴.

핵심은 사랑, 김장훈씨의 마지막 멘트였다. 첫 방이라 조금은 어색해보이던 그의 진행이 갑자기 돋보이던 순간이었다.

봐라, 이러쿵 저러쿵 할 것 없다.  러브 이즈 올 유 니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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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8-06-02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 님 그동안 페이퍼 몇 올리셨군요.
제가 방송 프로그램이라면 빠삭한데 저런 프로그램이 있는 걸 몰랐네요.
그 전, 인간극장에서 닷새간 방영하는 김장훈을 보고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그의 역동적인 모습이 좋으면서도 한편 의아하게 느껴지고,
뭔가 파고들고 싶은 어떤 부분도 슬쩍 보이고.
아무튼, 이러쿵저러쿵 할 것 없다는 마지막 말이 참 상쾌합니다.
전 최근 허튼 말이라고 생각되는 말을 안해 버릇하니
도대체 할 말이 없는 겁니다.

허튼 말이냐 허튼 짓이냐 속으로 따지는 버릇을 내팽개칠까 봐요.
그래야 언젠가 저도 저 할아버지처럼 근사한 말을 기다렸다는 듯 할 수 있겠지요.^^




치니 2008-06-02 14:40   좋아요 0 | URL
로드무비님, 반갑습니다.:)
토요일 오전 프로그램이라 - 11시였던가 10시였던가 그래요 - 저도 그날 이후 못 봤습니다. 에헤 항상 자는 시간이죠.
김장훈씨는 아주 오래전부터 팬을 자처해왔어요.
사람은 어차피 변하지 않아, 라는 저의 고집을 꺾지 않게 해주는 사람이랄까...
저야말로 허튼 말을 안해 버릇 해야겠어요.
로드무비님은 겸손하셔 그렇지 글에서 허튼 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없어보입니다. 그동안 너무 뜸하셨어서 궁금했답니다. :)
 

소심함에 대해서...

뭐랄까 늘상 할 말이 있기는 한데, 딱 부러지게 정의하기는 그렇고.

누가 본인에게 소심한 성격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할 것 같고, 소심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겠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할 것 같고, 또 누가 본인에게 그럼 소심해지고 싶으냐 하면 그렇지는 않으나 본인의 경험상 소심한 사람이 대찬 사람보다 호감이 가더라는 말은 하게 될 것 같으며, 기어이 괜한 확대해석을 해서는 소심한 사람이 좀 더 많아야 이 세상은 평화로울 거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만은...

아무튼 지금 본인이 소심하다고 느끼고 있는 중이라서 이런 허접 글을 시작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본인 역시 정치/사회면의 불한당들이 뻔뻔하게 흘리는 구린내에 분노할 줄 알고, 본인 역시 돈을 벌기 위해 기계처럼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고 있다 라는 생각이 들 때 마다 씁쓸함과 패배감, 억울함 등에서 뿜어나오는 페이소스가 있으나,

그런 순간에 하는 본인의 저항이라는게, 대체로 이렇게 페이퍼에 끄적이거나 울적함이나 분노를 달래줄 음악이나 책을 찾아 나서고, 그래서 에라 카드 한장을 꺼내어 알라딘에서 적립해온 알뜰한 마일리지를 사용한 뒤 결제를 마치고 뭔가를 질렀다는 호기로움과 뭔가를 내 손에 얻게 된다는 기대감으로 다시 심기일전하는 소심함으로 일관된 삶이라는 거다.

쁑 하고 튀어나가더라도, 또르륵 제 자리로 어김없이 돌아오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복 되새김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하면서, 다시 오지 않을 현재를 그 미래에 저당 잡히는 행위 말고는 다른 무엇도 하지 않는 이 따위 소심함이, 2008년 5월15일에 유난히 못마땅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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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8-05-15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요, 제가 오늘 오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찝찝했던 느낌이
바로 소심함이었어요!!!!저도 오늘 제가 한참이나 못마땅하거든요.
하지만 왜 님의 글이 위로가 될까요?ㅠㅠ

치니 2008-05-16 08:44   좋아요 0 | URL
nabi님, 이벤트도 막막 당첨 되시고, 온라인 오프라인 막막 질르시고, ㅋㅋ 님 서재에서는 활기가 느껴진다 생각했었는데, 어제 오후부턴 아니었군요...
용재 오닐, 아무래도 공연 가봐야겠어요. 모두가 한결같이 좋다고 하니, 점점 궁금해지네요.
아무튼 투덜거리는 글에 위로 받으셨다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

2008-05-16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17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토니 2008-05-21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노 마인드라고 들어보셨나요? 소심소심극소심. 제 친구 민이 별명이에요. 근데 소심한 사람은 기본적으로 남에 대한 배려가 깔려있는 것 같아요.

제 문제는 소심과 대범을 수시로 엉뚱한 상황에서 오고간다는 거죠.
소심해야할 때 대범하고 대범해야할 때 소심하고.

지리산은 혼자는 짐과 장비 때문에 어렵고 정 안되면 인테넷 카페 사람들과라도 가려고요. 호젓하고 여유로움은 기대할 수 없겠지만. 함께 가자는 분이 있어서 좋았는데 의도가 불순해서 그냥 없던 걸로 했어요. (한마디로 나쁜 새끼(!)더라고요.)


치니 2008-05-17 16:08   좋아요 0 | URL
나노 마인드, ㅋㅋ 들어본 거 같아요.
맞아요 소심한 사람이 가끔은 답답해보이기도 하지만 남에 대한 배려도 더 잘하죠. 자기가 작은 걱정들을 수시로 해보았으니 상대방 마음도 더 잘 보인다고 할까, 그런게 있을 거 같아요.
저 역시 토니님처럼 소심과 대범을 좀 왔다갔다 하는데, 상황 판단이 잘 안되는 경우가 허다해요.
지리산, 나쁜새끼, 음, 결론적으로 좋은 여행이 되기만 한다믄야, 해프닝으로 남길 수 있게 되겠죠. 홧팅! ^-^

누에 2008-05-19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자벨 위뻬르 같은 배우는 소심함의 소중함을 보여주잖아요.^^ 조금씩 무언가 내부에서 익어가는 사람들, 그런 소심한 사람들..

치니 2008-05-20 09:11   좋아요 0 | URL
아 , 누에님 표현을 보니, 제가 알게 모르게 느낀 소심한 사람들에 대한 호감의 이유를 알겠어요.
무언가 내부에서 익어가는...그거였어요. ^-^
 

카프카와의 대화
구스타프 야누흐 지음, 편영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대가의 향취를 느끼는 것은 곤혹스럽다.

자못 이해한 척 하면서 행간을 읽어보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이내 눈알만 또르륵 굴리는 내 한심한 모습을 수시로 깨달아야 하고, 그나마 멋지다고 생각하는 글귀들이 나올 때마다 한 페이지가 멀다 하고 접어댄 책갈피가 1시간 이내에 까맣게 기억 저편으로 물러감을 인식할 때마다 역시 마음 한 구석이 찌뿌드하다.

카프카에 대해서,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던가. 책을 읽으며 몇번을 떠올렸던 질문이라고 해봐야 이 정도 초등 수준이다.

무엇을 알겠냐. <변신>이랑 <성> 읽었다. 그나마 <성>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화도 되지 않는 나이에 섣불리 읽었기 때문이라고 위안해보지만 지금 읽는다고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대중'이라는 이름 속에서 태어나고 죽고 소리치고 웃고 울고 한탄하고 휩쓸릴 때에, 고스란히 그것들을 바라보며 따로이 천상의 고독을 뼈저리게 가질 수 밖에 없을만큼 뛰어난 지성과 인품의 소유자들은 얼마나 괴로울 것인가, 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이런 느낌. 역시, 곤혹스럽다.

나같은 인간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여도 현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잊고 살다가, 이런 책을 읽으면서 다시 알아야 한다는 것도 왠지 열패감이 든다.

내가 읽고 마시고 떠들고 향유하는 모든 것들의 진실 , 혹은 그 너머에 대해 가없는 의구심만 쌓여간다.

우울한 책이다.

그러나, 살리에르도 아니 그 살리에르만도 못한 나를 포함한 누군가들도, 모짜르트가 있다는 것이 이 세상의 한 줄기 빛임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카프카는 소중하며 카프카가 말했다고 일컬어진 것들을 한번쯤 주루룩 읽어내려가는 것이,내게는 꽤 의미가 있었다.

이로써, 무지를 자각하고, 위선적이지 않은 겸손함을 비로소 갖추기라도 할 줄 안다면, 그나마 천만다행 아니겠는가.

뱀꼬리: 이런 시큼털털한 리뷰 말고, 리뷰라고 떡 하니 올리는 민폐를 끼치지 않고도 훨씬 농도 깊은 책에 대한 이해력과 재미난 해석을 보여주시는 꽃양배추님의 글을 먼댓글에 붙인다, 그쪽에서 보관함에의 투척을 확실히 정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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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많이 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너무 말을 많이 한다. 그것도 대개 다 쓸데 없는 말들, 중언부언.

어떻게 이 버릇을 고치지 그러다가, 만보기가 떠올랐다.

만보기 [ 萬步機 ] : 걸음 수를 측정하는 기계.

만언기 [ 萬言機 ] : 말 수를 측정하는 기계. 이런 건 이 세상에 아직 발명되지 않았을까? 자려고 누웠을 때 생각이 들었다. 발명 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이 아이디어를 특허로 만들어둘까, 그런 생각도 했다.

나부터도 쓸데없는 말 안하려면 그런 기계로 하루에 얼마나 말 하나 측정해보고 싶은데, 비슷한 사람들 많지 않겠는가, 게다가 말 많은 넘들한테 막 선물도 해주고.

특허를 따면 돈을 많이 벌 거 같다는 생각에 잠시 흥분하다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하면서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런데 오늘도 몇마디 말들을 멍청하게 하고는, 다시 만언기의 꿈에 젖었다.

아이디어를 낸다 쳐도, 누가 기계를 만들어주지? 아 복잡해라. 그렇지만 갖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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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5-08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명된다면 분명 "혀"에다 달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메피스토입니다.^^

치니 2008-05-09 08:59   좋아요 0 | URL
아, 메피스토, 라고 줄여 불러도 되는거였군요. ^-^;; 저는 닉을 볼 때마다 휴 길다 하면서 말도 못 걸었지 뭐에요.
가끔 메피스토님 서재에서 좋은 정보를 얻고 있습니다.
그런데 '혀'에 달면 너무 아플거 같아요. ㅜㅜ

누에 2008-05-08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만들면 저도 하나 주셔요.

치니 2008-05-09 08:59   좋아요 0 | URL
^-^ 오케이! 하지만 누에님은 가끔 너무 오래 입을 다물어 버리셔서...전 그럴 때 심심해지는뎅.

mooni 2008-05-09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많은 넘... ㅋ 저군요. 저한테도 하나 선물해주세요. 그전에 얼른 돈을 버셔서 일단 우수한 발명가를 섭외, 제작을 의뢰하시고요. 아니면, 하린군을 훌륭한 발명가로 키우는 것도 나름 방법일지도 모르죠. 히히.

치니 2008-05-09 09:02   좋아요 0 | URL
마하연님이 말이 많다구요? 에, 아닐 거 같은데...^-^
저는요, 요즘 무슨 말을 하고 뒤돌아서면, 머리를 찧고 입을 때리고 싶어질 때가 있거든요.
신중하지 못하게 아무 말이나 쏟아놓고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몰라요.

하린군, 예전의 과학을 좋아하고 발명가가 되겠다던 그 아이가 아니어요, 요즘. ㅋㅋ 음악에 푹 빠져서...하지만 돈이 될거라고 하면 솔깃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