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었는지 아침 잠이 더 이상 안온다. 물론 더 이상 안 온다는 시각이 11시이긴 하지만, 일요일이면 누가 전화라도 하기 전까지는 몇시가 되던 계속 딩굴딩굴 자다말다를 해왔는데, 11시에 더 이상 눠 있을 수 없는 기분이 되니, 착잡하다.
일어나자마자 어젯밤 자다가 쉬야를 하러 가면서 편의점 생각이 났던게 떠올랐다.
우리 동네 편의점은 자다가 쉬야를 하러 갈 때 강력히 자신의 존재를 내세우기때문에 그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자연 떠올리게 한다.
위치 자체가 그렇다.
화장실 창문을 열어두고 있는데, 그 창문과 편의점 정문은 길 하나를 사이에 놓고 맞닿아 있고, 편의점 정문 근처에는 커다란 티비 모니터를 걸어둔 채 24시간 방송을 틀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몽롱하게 자다가 일어나서 화장실 의자에 앉아 "텔레반 인질..."어쩌구 새벽녘의 피곤한 아나운서 목소리를 듣거나, 축구 경기를 해설하는 소리를 듣거나, 심지어 드라마 소리를 듣고 있자면, 소란스러움에 신경질이 솟다가도 혼자가 아니구나 라는 어이없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화장실에서만 들리는 수위를 넘어 방까지 목소리 뿐 아니라 숨소리까지 들리는데다가 그 티비를 보고 앉았으면서 여름밤 맥주잔 기울이는 부엉이들 때문에 숙면에 차질이 생긴 날이 한 두날이 아니다. 몇번을 신고까지 하려다가 참고, 편의점 주인아저씨에게 볼륨을 줄여달라는 부탁만 해온 상태인데, 이제 여름이 다갔네 하는 생각에 지난 해에 이어 또 포기상태.
이 주인아저씨로 말할것 같으면, 한마디로 나로서는 정이 안가는 사람이다.
갈 때마다 두번에 한번씩은 예전에 읽은 "달려라 아비"라는 소설이 생각나는데, 김애란에게 감사하다. 내가 가진 모든 편의점에 대한 기준과 애증을 그 소설의 한 단편에서 너무 잘 표현해주고 있었던 기억이 생생해서이다. 이렇게 마뜩치 않은 주인아저씨 같은 타입을 표현하자면, 그 소설 읽어본 사람에게는 더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될만큼 세세하고 예리하게 표현한 단편이 하나 있었다.
아무튼 이 아저씨, 보통 알바를 주로 쓰는데 자기가 24시간을 거의 죽치고 있는 자체가 맘에 안든다.
밖에 티비 모니터를 걸어서 24시간 방송을 할 뿐 아니라, 정문 앞에는 채소를 화분에 넣어 키우고 있는데, 그것이 정겹다기보다는 한참 지저분하고, 이 채소들을 걷어먹기 위해 똑같이 푼수 없어 뵈는 동생으로 뵈는 남자분과 한 명 정도의 여자를 때마다 초청하여 그 앞에서 삼겹을 구워드신다.
삼겹만 구워 드시냐, 아니다. 손님이 조금만 없다치면, 서서 컵라면이나 다른 먹거리를 해 드시고 있는 광경도 너무 자주 본다.
티비 모니터만 걸어놓으시냐, 아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엄청나게 큰 볼륨으로 소위 흘러간 뽕짝을 고속도로용으로 만든 노래들이 흘러 나온다. 뭘 천천히 사려다가도 황급히 뛰쳐나오게 만든다는 걸 모르는지 아는지, 노래를 따라 부르느라 신난 주인 아저씨. 참 개념 없어보인다.
친절과 사생활 개입에 대한 기준도 애매한건 이런 아저씨에게는 너무 잘 어울리는거라, 되도록 사생활 이야기를 슬쩍 물어오지 않게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며 2년여를 살아왔지만,
가끔이나마 하린군을 데리고 가면, 유효기간이 딱 당일로서 끝나는 우유를 쥐어주면서 한마디씩 안하고는 못배기시니.
결국에는 조금 멀더라도 다른 편의점을 가는 - 동네가 동네인지라 이런 편의점보다는 십대 알바들이 돌아가면서 뛰는 아주 냉정하고 사무적인 편의점도 많다 - 방법이 최선이겠는데, 게으른 내 육신이 그걸 자꾸 포기하게 한다.
오늘은 일요일. 갑자기 자신이 처량하다. 오늘은 물도 있고 담배도 있고 해먹을 거리도 있으니 그넘의 편의점에 안가도 되겠네, 라며 좋아하는 꼬락서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