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역시, 가을이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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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땀
'따뜻한 유머'라는 표현을 다섯 사람에게만 쓸 수 있다면 나는 절대로 데이비드 스몰을 빠뜨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책"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리디아의 정원』의 그림이, 이토록 삭막한 어린시절을 견딘 사람에게서 나왔다니. 불행을 이겨냈다는 사실만큼 강력한 자부는 없는 것. 좋아했던 이 작가를 이제 존경하게 되었다. 굿바이님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아무래도 싫은 사람
그래요, 저도 이 책을 읽었습니다. 우선 제목만으로도 이 책이 나한테 할 일은 다 했다는 마음으로(ㅠㅠ) 별 기대는 없이 읽었는데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보다 좋았다. 글도 그림도 범범하니 싱겁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거 나만 그런 거 아니지? 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위로가 되냔 말이지. (아우, 나 진짜 그런 사람 있었어요. 나도나도.)
에밀은 사고뭉치
'사고뭉치'라는 고전적인 표현이 딱 맞는 에밀. 읽으면 하여간 세 번 이상 큰 소리로 웃게 된다. 그중 동네 사람들이 돈을 모아 에밀 엄마한테 주면서 애를 미국으로 보내는 게 어떠냐고 진지하게 권하는 대목이 제일 웃겼다. 린드그렌 여사님은 어쩌다 이런 유머 감각을 갖게 됐을까? 개정판이 나왔다니 반갑다. 개정판으로 사야지!
어떤 아이가
읽고 나면 기분이 좀 이상해지는 동화책이다. 웃긴 것도 같고 무서운 것도 같고 절망뿐인 것도 같고 희망이 있는 것도 같고. 그러라고 만들어진 책 같다. 알쏭달쏭하지만 웃기거나 슬픈 것만 이야기가 되는 건 아니니까. 독후감을 쓰려면 더 오래 생각해야 하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이 그랬다.「어떤 아이가」와 「어른 동생」이, 그리고 그림들이 좋았다.
밤이 지나간다
다른 분들의 감상을 보니 작가의 예전 작품에 비해 강렬하지 않다고 서운한 기색들도 있던데, 나는 예전 작품들이 좀 무서워서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책에서 비로소 작가가 하려는 말을 똑바로 듣게 되었다. 세상은 고통스럽다. 그런데 어떤 통증은 살아있다는 것을 자각케 한다. 통증은 비밀스럽고, 비밀은 또 나를 나로 완성시킨다. 그리고 어둠은 '지나간다'. 하지만 긴장해야 한다. 우리 제목은 '밤은 지나간다'가 아니고 '밤이 지나간다'다. 지금 밤인 것이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어휴 나는 이런 소설이 좋다. 빠르고 웃긴 것. 앞뒤가 맞아떨어지는 것. 심각하지 않은 것. 길어도 후딱 읽게 되는 것. 무엇보다 할아버지 나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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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때 메모하지 않았더니 읽은 책 몇 권이 벌써 날아간 것 같다. 반성하고 부지런히 써놔야겠다. 결국 그러지도 못하면서 괜히 잘 쓰고 싶어가지고.. 미루다가 이렇게 되곤 한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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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시집이 많다. 이 책 저 책 사이에 무심히 두었는데 문득 그렇게 두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작고 얇아서 눈에 안 띈다. 잘 읽지도 않는데. 시인들은 열심히 썼을 텐데. 그래서 목장갑을 끼고 먼지를 털어가며 시집들을 한데 모아보았다. 창비시선과 문학과지성 시인선은 많으니까 번호대로 모으고, 오래 간직하고 있는 것이나 헌책방에서 구한 것 등은 따로 모았다. 백석 김수영 김규동(♡) 전집과 진은영 기형도 시집은 명예의 전당에. 그러고 보니 이거 좋잖아! 시를 잘 모르지만, 심지어 요새 너무 안 읽기까지 한 듯해서 최근의 시집들은 거실에 꽂았다. 그리고 뒷번호부터 읽기로 했다. 가장 신선한 언어들과 함께 가을을 맞이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