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의 친구들은 눈치를 챘을지 모르겠는데, 요즘 나는 무척 우울했다. 뭐, 몇 가지 일이 겹쳐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우울함이란 두통 같은 것이니까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고 언제 그랬는지 모르게 사라질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믿고 당분간 이 마음을 모른척하지 않기로 했다. 이랬다가 또 금방 뛰어다닐 만큼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겠지. 어디 잠깐 여행이라도 다녀오거나, 짧은 스커트를 사거나, 음, 고기라도 구워 먹거나 그러면 될 거야.
그런 의미에서 마음 편하게 여기 친구들에게 털어놓자면, 요즘 내 마음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은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걱정이다. 가족 속의 나, 회사라는 조직에서의 나, 일에서의 나, 그냥 나. 별 생각없이 살아왔는데(이게 문제) 돌아보니 어? 너무 생각 없었나? 하고 화들짝 놀라버렸다. 우울함은 두통처럼 왔다가 또 가는 것이지만, 한가지 더 나쁜 점이 있다면 그건 고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통보다 머무는 시기가 좀 길다.)
그건 그렇고 제목을 이렇게 썼으니 그와 관련한 이야기도 해야겠지. 나는 원래 아주 구체적인 꿈을 많이 꾸는데, 요즘 특히 그렇다. 요 며칠은 꿈에 자꾸 동물들이 나온다. 처음엔 원숭이가 나왔는데, 그저께는 달팽이가 나왔다. 정확히 말하면 달팽이를 애완동물로 키우는 다섯 살쯤 된 남자애가 나오는 꿈이었다. 그 애는 유치원이 끝나면 달팽이와 함께 집에 돌아갔는데, 달팽이를 손가락이나 나뭇잎에 올려놓고 들고 가는 게 아니라 산책을 시키는 것이었다. 유치원에서 집까지 가는데 매일매일 백년이 걸려서 선생님과 엄마가 속터져했다. 그 다음에 이어진 얘기는 이보다 더 말이 안 되는 황당한 것이라서 적을 수 없다. 그래도 꿈에 달팽이가 나오는 건 그리 흔치 않은 경험이니 자랑해도 되겠지? 요즘 나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로 제일 빠를 때일까?' 하는 어두운 질문을 떠올리곤 하는데, 어쩌면 '아니어도 할 수 없으니 닥치고 출발해'라는 뜻으로 그 달팽이가 나왔는지도 모르겠다...고 꿈보다 해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