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의 친구들은 눈치를 챘을지 모르겠는데, 요즘 나는 무척 우울했다. 뭐, 몇 가지 일이 겹쳐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우울함이란 두통 같은 것이니까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고 언제 그랬는지 모르게 사라질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믿고 당분간 이 마음을 모른척하지 않기로 했다. 이랬다가 또 금방 뛰어다닐 만큼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겠지. 어디 잠깐 여행이라도 다녀오거나, 짧은 스커트를 사거나, 음, 고기라도 구워 먹거나 그러면 될 거야.  

그런 의미에서 마음 편하게 여기 친구들에게 털어놓자면, 요즘 내 마음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은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걱정이다. 가족 속의 나, 회사라는 조직에서의 나, 일에서의 나, 그냥 나. 별 생각없이 살아왔는데(이게 문제) 돌아보니 어? 너무 생각 없었나? 하고 화들짝 놀라버렸다. 우울함은 두통처럼 왔다가 또 가는 것이지만, 한가지 더 나쁜 점이 있다면 그건 고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통보다 머무는 시기가 좀 길다.)  

그건 그렇고 제목을 이렇게 썼으니 그와 관련한 이야기도 해야겠지. 나는 원래 아주 구체적인 꿈을 많이 꾸는데, 요즘 특히 그렇다. 요 며칠은 꿈에 자꾸 동물들이 나온다. 처음엔 원숭이가 나왔는데, 그저께는 달팽이가 나왔다. 정확히 말하면 달팽이를 애완동물로 키우는 다섯 살쯤 된 남자애가 나오는 꿈이었다. 그 애는 유치원이 끝나면 달팽이와 함께 집에 돌아갔는데, 달팽이를 손가락이나 나뭇잎에 올려놓고 들고 가는 게 아니라 산책을 시키는 것이었다. 유치원에서 집까지 가는데 매일매일 백년이 걸려서 선생님과 엄마가 속터져했다. 그 다음에 이어진 얘기는 이보다 더 말이 안 되는 황당한 것이라서 적을 수 없다. 그래도 꿈에 달팽이가 나오는 건 그리 흔치 않은 경험이니 자랑해도 되겠지? 요즘 나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로 제일 빠를 때일까?' 하는 어두운 질문을 떠올리곤 하는데, 어쩌면 '아니어도 할 수 없으니 닥치고 출발해'라는 뜻으로 그 달팽이가 나왔는지도 모르겠다...고 꿈보다 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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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9-03-02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에 대한 경과를 상세히 기억하시는 것을 보니 개꿈은 아닌 듯 합니다.
꿈이야 어떻든 간에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고 좋게 생각하면 길몽이 아닐까요. ㅎㅎ

네꼬 2009-03-03 09:48   좋아요 0 | URL
네 전호인님, 저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달팽이가 일부러 나왔을 땐 다 좋은 뜻이 있었을 거라고 위로를 삼고 있어요. (^^) 고맙습니다.

치니 2009-03-02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꺅, 네꼬님. 우울함을 적은 페이퍼에 어울리지 않는 괴성이지만, 그래도 반가워서...^-^
봄이라서 그렇다 생각해요. 무언가를 꼭 시작해야 할 것 같이, 묵은 것을 새로운 것으로 갈아야 할 것 같이 구는 이 봄의 분위기가 사람을 종종 우울하게 하더라구요.
꿈은, 천천히 가고 싶은데 옆에서 재촉을 받으니 그게 싫어서 꾸신 꿈 같은데요? ㅎㅎ

네꼬 2009-03-03 09:49   좋아요 0 | URL
꺅! 우울하다고 울어놓고 참 어울리지 않는 비명(!)이죠, 저야말로! 치니님, 잘 계셨어요? 안그래도 묵은 것들이 너무 많은데, 마음이 제일 그런 것 같아요. 근데 오늘 제가 있는 곳에는 눈이 막 오네요. 벌써 봄이야? 어어, 하고 있었는데 느긋하게 가라는 하늘의 계시가.... (얼씨구 이젠 그냥 막 갖다 대는구나.)

2009-03-02 1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03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웽스북스 2009-03-02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은 치마. 짧은 치마. 짧은 치마. 좋아요.
짧은 치마를 입고 살랑살랑 오는 네꼬님을 보고 싶은데? 흐흐.

그런데, 네꼬님이 '어? 너무 생각 없었나?' 하면 저는 너무 슬퍼질 것 같은데요.
네꼬님은 그렇지 않아요. 네꼬님이 생각이 없는 거면, 저는 어쩌라고요 네?
그냥 우리, 한껏 예쁘게 차려입고, 삼겹살집이나 갈까요? ㅋㅋ

네꼬 2009-03-03 09:55   좋아요 0 | URL
음, 짧은 치마 찬성? 물론 웬디님처럼 쭉쭉 긴 다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전환 삼아서 입어볼까 싶어요. 이 봄이 지나면 또 언제 입겠어요. (더 무너지기 전에.) 웬디님 잘 있었어요? 나는 비록 생각이 모자란 고양이지만, 한껏 예쁘게 차려입고(뾰족구두 필수) 꽃향기 나는 향수도 뿌리고 삼겹살집 갑시다. 요 밑에 우리 고기 멤버 있네!

다락방 2009-03-02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저는 정말 생각없어요. 엊그제도 생각이 없어서 식당에서 한 손님에게 호되게 혼나기도 했어요.(이건 말하기 싫어요. 정말 당황했었거든요. 얼굴도 시뻘개지고!)
그런데 생각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제가 앞으로는 뭔가 다르게 살것 같은가 하면 또 별로 그렇지도 않아요. 그리고 이렇게 적고나니 갑자기 한없이 우울해지려고만 해요.

우리 다시 태어나기로 해요, 네꼬님.
제 남동생이 언제나 자기 전에 제게 하는말이 내일부터 다시 태어날거야, 에요. 그러면 저는 어제 그랬던것처럼? 하고 말하지요.

네, 네꼬님.
저는 매일매일 커피를 마시고 매일매일 커피를 끊어요.
확 달라지지는 않더라도 우리, 내일 그리고 또 내일 늘 다시 태어나자구요.
짧은 치마도 좋고 고기도 좋고 따뜻한 캬라멜마끼아또도 내일 다시 태어나기 위해 오늘을 위로하는 아주 좋은 친구가 되겠죠. 아, 수다도!


(이렇게 길게 적고 다시 한번 읽어보니 대체 뭔말인지를 모르겠어요 -_-)

네꼬 2009-03-03 09:58   좋아요 0 | URL
나는 저 두 번째 문장을 몇번이나 읽어보았어요. 다락님이, 생각이 없어서, 식당에서(식당에서!) 한 손님에게(손님에게!) 호되게(호되게!!!!!) 혼나(혼나?????)다니!!!!!!!!!!!! 이게 무슨 소리? 내가 그를 끌어와 볼기짝을 치리다. (그럴 리도 없지만 만에 하나 다락님이 잘못했더라도 상관없음. 진짜.)

고양이는 아홉번 다시 태어난다고 해요. 전 아홉번까진 아니어도 되니까 내일 당장 다시 태어나면 좋겠어요. 그럼 잘해볼 텐데. 어리석게 굴지 않고... 이런 생각 드는 거 보니까 나 나이먹긴 했나봐. ㅠㅠ 다락님의 브라더 말 대로 저도 매일매일 그렇게 생각하면서 지내보겠어요. 그리고, 이 우울한 날들에, 마시멜로 들어간 코코아가 없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사는걸까요?

무스탕 2009-03-02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 휴가 내서 차를 몰고 춘천에 다녀오세요. 아.. 춘천이 아니라도 좋아요. 그냥 피곤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거리로 잠시 일탈을 하세요. 가는 길에 강가를 만나면 무작정 차를 세워서 넋놓고 물구경 하다 와도 좋고 처음보는 박물관이 눈에 띄거든 요건 뭘꺼나 들어가 보는것도 좋겠죠.
그냥 어제까지의 나를 잠깐은 집에 두고 하루쯤 고양이가 아닌 강아지가 되어보는 것도 좋을거에요.

네꼬 2009-03-03 10:03   좋아요 0 | URL
음, 역시 우울함을 달래는 데는 여행이 최고겠죠? 저도 하루쯤 그래볼까 싶었어요. 머물던 데서 떠나보아야 새로운 다짐이 가능한 건 당연한 일일 테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어떤 배우 인터뷰를 보니까 그는 머릿속이 복잡할 땐 서울에서 부산까지 음악도 틀지 않고 운전을 하고 간대요. 전 그 경지는 아니니 어디 가까운 온천이라도...(응? 온천?) 강아지는 너무 귀여우니까 그렇고, 음, 오리쯤 어떨까요? 꽥꽥.

마노아 2009-03-02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리게 느리게 집으로 가는 달팽이라니, 너무 철학적으로 들려요. 혼자만 늦게 가고 있다는 어떤 불안감이 작용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아이가 달팽이와 함께 '산책'하고 있다고 느끼는 게 참 좋아요. 집에 가서 숙제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학원을 가려고 준비를 하는 것도 아니고 달팽이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니, 친자연적이고 낭만적이잖아요. 그 꿈 네꼬님처럼 예뻐요!

네꼬 2009-03-03 10:06   좋아요 0 | URL
철.학.적.이.라.니. 역시 마노아님은 긍정의 여왕! (마마~) 맞아요, 숙제도 아니고 학원도 아니고 산책. 달팽이의 산책. 아무튼 뭔가 긍정적인 것만은 확실해졌네요. 마노아님 덕분에. 이렇게 댓글을 달아 보니까 마음이 점점 밝아지는 것 같아요. 사람은 역시 좋은 사람과 어울려야 돼요. 그건 고양이도 마찬가지.

2009-03-04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은 치마 입고, 내꿈 꿔줘요~~ ㅎㅎㅎㅎ 에이, 그냥 웃고 말아요~ 히힛

네꼬 2009-03-09 17:46   좋아요 0 | URL
왜요? 왜 웃고 말아요? 짧은 치마 입고, 션님 꿈 꿀 건데. 어디 도망만 가 봐라.

2009-03-07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09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9-03-07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우울할 때는 달달한 것을 먹어줘야 하는데~~ 초콜릿이라도...
살랑살랑 봄바람에 짧은 치마 아가씨~ 생각만 해도 좋은 그림이네요.^^
달팽이 이야기 동화로 써 보세요, 정말 좋은 이야기가 될 거 같아요~~~ 강추!!

네꼬 2009-03-09 17:48   좋아요 0 | URL
요즘 아주 달달한 것 입에 물고 살아요. (아이고 충치야~)
그러게요, 나름대로 잡은 컨셉은 "봄바람 살랑살랑 미니스커트 샤방샤방"인데 실제로는.. 털썩.
달팽이 동화를 누가 읽어줄까요? ㅎㅎ 앞뒤 스토리를 붙이려는데 아무래도 말도 안돼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