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경제학자들의 대담한 제안 - 사상 최악의 불황을 극복하는 12가지 경제 이론
린다 유 지음, 안세민 옮김 / 청림출판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8~19세기 시대를 풍미했던 경제학자 12명을 소환하다!

 

산업혁명, 세계대전(1,2차), 경제대공항,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어지는 세계 경제의 흐름을 뒤바뀌어 놓은 굵직한 사건 속에 해법을 찾아내기 위해 12명의 경제학자들을 불러내어 당면한 문제를 해결받고자 한다.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라인업으로 구성했고, 드림팀을 발족시킨 저자는 국가별로 상황별로 각기 다른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경제의 문제 고리를 하나하나 실마리를 풀어헤친다. 우리에게 익숙한 경제학자들도 있지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실력파 경제학자들도 소개하면서 각각의 문제들을 다양한 관점으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독자들이 경제를 바라보는 시야가 한층 넓어지리라 여겨진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전 세계적인 팬데믹 현상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공통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를 일례로 든다면 최근 전반에 정부지출을 늘려서라도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들의 무거운 어깨를 덜어주고자 전국적으로 전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정책적으로 실시한 바가 있다. 소비진작과 내수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한 특단이 아니었나 싶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경제학자들이라면 어떤 대책을 제시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대담한 제안』을 통해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팬데믹 현상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 가야 할 지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883년에 태어나 1920년대와 1930년대 정부 지출을 주장하면서 당시 경제계의 이단이었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정책 담당자들이 높은 수준에 도달한 공공 부문의 부채와 씨름하는 상황에서 정부 지출의 역할을 제기했다. 일명 케인스 혁명이다. 케인스가 정부 정책에만 관여한 것이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 동안에 케인스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돌보아주는 종합적인 사회 보험 제도를 도입할 것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면서 소비가 위축된 것이 사실이다. 수요가 감소하여 생산된 것이 모두 판매되지 않을 때는 케인스가 말한듯이 정부 지출이 경제를 바로잡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케인스가 태어난 나라 '영국' 도 1976년 IMF에 구제 금융을 한 이력이 있다.

 

현 문재인정부가 재벌에 대한 상속세를 무겁게 잡아가는 이유도 노력 없이 얻은 부를 저축보다는 소비하려는 성향이 더 강한 사람들에게 재분배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경제가 만사라고 한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듯이 경제적 해법 또한 절대적 진리가 없다. 상황에 따라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적법하게 적용하는 것은 오로지 해당 국가의 '리더의 몫'이다. 다양한 목소리를 낸 경제학자들을 자주 소환해 내어 폭넓은 경제적 식견을 갖춘 리더가 필요한 시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가 내 모습을 훔쳤을까 아름다운 청소년 23
타니아 로이드 치 지음, 이계순 옮김 / 별숲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캐나다 작가 타니아 로이드 치의 장편소설, 『ME AND BANKSY 』.『누가 내 모습을 훔쳤을까』로 변역되어 출간!


학교 내 학생 사생활 보호와 학생 안전 중 어느 것인 우선이 되어야 할까?

 

 학생 사생활 보호는 인권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교복, 머리 염색, 화장 등 학생 입장이 아닌 측면에서 규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최대한 금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대한 학생의 의견을 존중하고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한다고 하지만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한계가 있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요즘 시대에는 학생 안전을 위해서라고 하면 반대측 의견을 쉽게 제압할 수 있다. 학생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분위기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학교 내에서 학생 안전을 위해 시설물을 정기적으로 점검한다거나 위해 물질을 사전에 파악하여 학생 공간에게서 격리시킨다. 학교 내 구석구석을 고화질 감시카메라(CCTV)로 물샐 틈 없이 감시하고 있다. 최대한 학생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수업 하는 교실 공간은 감시카메라를 설치하지 않는다. 최근 어린이집에 원아의 안전을 위해 원아를 돌보는 공간을 공개해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교사의 개인 사생활도 보호 받아야 한다는 측면이 간과될 수 없어 입법화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아마 초중고등학교 교실 내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일부 학부모들의 의견도 반영되지 않았다. 교사의 개인 사생활 뿐만 아니라 수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누가 내 모습을 훔쳤을까』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렇다. 학교 내 감시카메라(CCTV)로 촬영한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유포된다. 일종의 사이버폭력이다. 주인공 도미니카에게 일어난다. 도미니카는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서 앞뒤가 바뀐 셔츠를 고쳐 입는다. 분명히 아무도 없었다. 다만 도서관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말고. 도미니카의 노출된 신체 동영상은 누군가에 의해 고의적으로 편집되어 소셜 미디어에 공유된다. 

 

 

 학생들에게 놀림감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교직원들과 어른들에게도 분명히 오해받기 쉽상이다. 참다못한 도미니카는 도미니카와 함께 학교 내 감시카메라 설치가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독선적이고 타협을 모르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교장선생님에게 받아들여지기는 커녕 훈계만 듣는다. 다른 방법은 없다.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밖에. 게릴라 아티스트 BANKSY(뱅크시)처럼

 

 

 참고로 뱅크시의 본명은 폴 윌리엄 호너, 영국 브리스틀 출신이다.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낙서 화가, 정치적 행동주의자, 영화감독으로 오랫동안 뱅크시라는 가명으로 활동해온 인물이다. 주로 스텐실 작업을 선호한다. 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이었다. 그가 익명을 사용하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보다 자유롭게 표현하고 활동하기 위해서다. 책 속 주인공 '도미니카'도 스텐실 기법으로 학교 내 감시카메라 밑에 쥐를 그려 놓기 시작한다. 



사실 도미니카가 다니는 학교 내 감시카메라는 과장된 면이 없지 않아 보이지만 소설 속 학교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충분히 학생들의 불만을 살 만한 환경이다. 수업하는 교실 안에도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복도를 포함하여 총 30개씩인 설치되어 있다. 과거 교도소 안에 죄수를 감시하는 중앙관제탑 같은 느낌이다. 학생들의 안전을 빌미로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교장선생님이 컴퓨터 모니터로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 있다. 교장선생님의 주장은 이렇다. 학생들의 안전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고 학부모회측의 동의를 충분히 구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감시카메라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외부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학부모 위원회를 소집하여 정식으로 업무를 처리했다고 한다. 

 

 

영재예술중학교인 학교 특성상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 예술적 특기를 마음껏 발휘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기에 자녀들의 사생활 보호, 인권 보호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 싶다.  

 

 

 교실 내 감시카메라는 수업 중 자유로운 공개 토론을 방해한다. 교사들의 수업 내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학생의 동의 없이 촬영한 내용들이 소셜미디어에 공유되고 있다는 점은 아주 큰 문제다.

 

 

 좀 과장하여 표현한 소설이기는 하지만 청소년과 어른의 시각 차이를 분명히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염도시 - 대규모 전염병의 도전과 도시 문명의 미래
스티븐 존슨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구밀집도가 높은 지역이 전염병에 취약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현실이다. 1850년대 영국 런던의 인구가 200만명이었다고 한다. 당시 통계상 세계 최고의 밀집 도시였다고 한다. 산업혁명과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특수한 환경 속에서 한 도시에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밀집하리라 예상 못했던 것 같다. 귀족층과 극빈층이 사는 지역이 저절로 구분되어 있었고, 200만 인구가 쏟아내는 쓰레기양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지금이야 상하수도처리, 쓰레기 처리 시설, 분뇨 처리 시설이 현대화되어 있어 체계적으로 처리하고 있지만 150년 전 영국 런던에는 그런 시설이 전무한 상태였다.

 

거대한 도시에서 나오는 쓰레기 처리는 의외로 체계적으로 처리되었다. 쓰레기 처리 전담반이 자생적으로 구성되어 빈틈없이(?) 재활용되었다. 하수관에서 쓸만한 것을 줍는 사람들, 강 개펄에서 고철을 줍는 넝마꾼들, 동물의 사체에서 뼈만 수거하는 이들, 귀족층들이 쓰다 버린 천 조각이나 조금이라도 쓸만한 것들은 죄다 주워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바꿔 생계를 꾸려 가는 이들 덕분에 200만 거대 도시 런던은 자생적으로 버티어 나갈 수 있었다.

 

의료 시설 및 위생 관념은 어땠을까? 과학의 발달과 의학 기술의 점진적 향상으로 전염병의 원인을 파악하여 치료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나아지고 있었으나 고정관념을 바꾸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감염도시』에서 다루는 '콜레라'에 접근하는 의학적 관점이 상식 밖이었다는 점을 고발하고 있다. 전염론 대신 독기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독기 이론은 공기 중의 악취가 질병을 유발한다는 관점이다. 콜레라로 단기간에 수 많은 사람이 죽어간 것이 공기 중 악취때문이라고 단정지었다. 악취를 유발하는 저소득층, 극빈층 사람들이 문제라는 발상을 은근히 언론에 흘렸다. 계층을 구분하겠다는 발상이며 분명 차별적인 시각이었다. 악취를 발생시키는 그들은 선척적으로 게으르고 도덕적으로 해이하며 위생 관념이 없다고 인식했다.

 

이때 의사로써 소신을 굽히지 않고 콜레라의 원인은 마시는 물 때문이라고 주장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존 스노'라는 의사다. 당시 런던 주택가에서는 분뇨 처리 시설이 없어 대부분의 분뇨를 쌓아두거나 별도의 지하 저장소에 보관하는 방식으로 지냈다. 그러다가 분뇨에서 발생한 오수들이 식수원인 템즈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오염된 물들이 다시 식수로 사용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1854년에 런던 브로드 가에 콜레라가 집단적으로 발생한 원인이 여기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인식은 불쾌한 악취에 있고, 오염된 공기에 있었다고 여겼다. '존 스노'는 직접 현장 조사와 탐문을 통해 콜레라의 원인이 되는 오염된 식수원을 밝혀냈고 콜레라를 해결하는 단초를 마련해냈다. 그는 "직업적 성공이나 왕족의 비호 같은 안전한 세상을 뒤로하고 대담무쌍하게 거리로" 나갔다고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감염도시』에는 콜레라 환자가 죽어가는 모습이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19세기 영국 런던의 상하수도 시설의 상태와 도시 환경이 어땠는지 독자들에게 낱낱히 안내해주고 있다. 불과 150년 전 얘기다. 위대한 전투나 혁명 같은 세계사적인 사건만이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존 본능인 마시는 물과 관련된 콜레라 전염병이 어떻게 한 도시의 삶을 바꿔갔는지 친절하게 말해 주고 있다.

 

당시 주류 집단의 사고 방식이 얼마나 독선적이고 한 치의 양보도 없었는지 보여 준다. 지식의 세계를 점령한 일부 주류 집단의 지식인들은 콜레라보다도 더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지식인들 대부분이 감염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사람들의 체질 허약을 사회적 실패로 간주하고 가난한 이유, 알코올을 남용하는 이유, 불결한 삶을 감염의 원인으로 고정화시켰다.

 

참고로 산업혁명 이후 도시로 이주한 많은 이들이 식수가 오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근근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차'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차를 우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닌산'이 끓는 물에서도 살아남은 '박테리아'를 죽이는 효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 대신 알코올, 맥주를 마시는 이유도 식수가 오염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국 런던은 흑사병(1664년~1665년), 대화재(1666년 9월), 콜레라(1854년)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자그마한 세균이 질병을 퍼뜨린다는 개념을 믿지 않았던 시대에 수 많은 사람들이 이유를 모르고 죽어갔다.

 

하버드 대학의 생물학자 E.O. 윌슨 덕분에 널리 알려진 '통섭'이라는 용어가 영국 런던 케임브리지 철학자 윌리엄 휴얼(1794~1866)이 1840년대에 처음 창안한 용어라고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박사가 널리 알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교개혁의 5가지 원리 - 참된 믿음을 추구하는 프로테스탄트의 외침
제이슨 앨런 외 지음, 조계광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517년 젊은 수도사 마르틴 루터는 종교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당시 로마 카톨릭의 기세는 대단했다. 죽음 이후의 세계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는 조작된 교리로 민중을 현혹했다. 면죄부의 발행은 성당 건축을 위한 재정 마련을 위한 고육책이기도 했지만, 드려지는 헌금 액수에 따라 지옥에 갈 사람도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천국행 면죄부를 사두라고 곳곳을 다니면서 판매했던 행위는 종교의 민낯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마리아를 위시로 한 성인들의 공로가 차고 넘치기 때문에 얼마든지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으로 갈 수 있으니 그 공로를 사두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일반 민중들은 전혀 의심치 않고 자기 주머니를 털어 면죄부를 사 두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면죄부'에 목을 매었을까? 16세기 유럽에는 지독한 전염병 유행으로 사람들 대부분이 죽음을 두려워했다. 가족들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했어야 했다. 막 태어난 어린 아기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안타까운 가족의 죽음 앞에 살아남은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든 '면죄부'를 사서 지옥에 가지 않도록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로마 카톨릭은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히 파악하여 돈장사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마르틴 루터 또한 로마 카톨릭의 수도사로서 이런 일을 모를리가 없었을 것이다. 잘못된 교리로 우둔한 사람들을 현혹하는 로마 카톨릭의 행태를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없었다. 선택은 딱 하나다. 까발리는거다. 면죄부의 거짓됨을 공개하는 것이다. 무명에 불과한 젊은 수도사의 의분에 넘친 성명서(비텐베르크 성당 벽면에 부착한 95개조 반박문)는 나비효과를 일으키게 된다. 루터는 목숨을 건 항명을 한 셈이다.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협박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잘못된 것을 굽히지 않았다. 거대한 성벽에 계란을 던지는 격이었지만 루터는 성서에 입각하여 바로 잡는 일에 소신을 꺽지 않았다.

 

종교개혁가들이 주창한 것은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었다. 사람의 행위와 공로로 하나님께 갈 수있는 것이 아니다. 죄인에 불과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오직'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이므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깨닫은 사실이다. 이전의 삶에서 돌이켜 새로운 삶으로 시작하기로 결단한 젊은 수도사의 용기 있는 결단으로 유럽은 바뀌기 시작했다. 로마 카톨릭의 억눌림 속에서 해방된 사람들의 삶은 풍요해지기 시작했다. 경제활동도 왕성해 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인 국가(네덜란드)는 신흥 강국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에릭 리델 올림픽 육상 금메달 리스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 대표적인 사람이다. 금메달 수상 후 얼마든지 부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중국 선교사로 헌신한다. 일본의 침략으로 중국이 포위되었을 때 그는 산둥 수용소에 갇힌다. 그곳에서 변함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간다. 수용소에 갇힌 이들을 돌보는 이에 앞장 선다. 질서와 윤리가 깨진 수용소 집단 생활 가운데에서도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그리스도인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갔다. 무명의 그리스도인으로 살다가 뇌종양으로 숨진다. 어떠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은 채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온전히 드린 삶이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말이다.

 

오늘도 종교개혁가들의 정신인 '오직' 성경, 믿음, 그리스도, 은혜, 하나님의 영광은 변함없는 성경적 진리다. 그리스도인들이 끝까지 간직하고 지켜나가야 할 고귀한 가치다. 세상이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나설 때다. 종교개혁가의 정신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의 사계절 (미니북)
폴 투르니에 지음, 박명준 옮김 / 아바서원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의사의 관점이 돋보인다. 폴 투르니에는 스위스 의사다.  상처난 부위에 매스를 대듯 날카롭게 사람의 존재성에 대해 의미를 재조명한다. 그렇다고 상처난 부위를 휘벼파는 치료적 언어가 아닌 환자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공감하는 언어로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글쓰는 전업 작가가 아닌 날마다 새로운 환자를 만나는 의사이기에 인생에 접근하는 관점이 새롭다. 인생은 일직선이 아니라 굴곡이 반복되는 부침이 있어 다소 복잡한 선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성경은 그런 부침의 역사를 온 몸에 받아들인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실패의 주인공을 전면에 드러낸 책이 있을까? 성경은 살인자, 이중인격자, 위선자 등 차마 현대 사회에서 입에 담아 두기 어려운 인물들의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소개한다. 우리의 인생이 바로 그렇다는 얘기다. 성공한 사람만 등장하는 책이라면 자기계발서와 무엇이 다를까?

 

우리의 인생을 사계절로 표현한 폴 투르니에는 사람은 전인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환자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육체를 가진 신체적인 존재이기에 자연과 동떨어져 지낼 수 없고 자연의 일부다. 동시에, 여기에서 폴 투르니에는 '동시성'을 강조한다. 인간은 육체를 가진 존재이며 동시에 영적인 존재, 초월적인 존재임을 알지 못한다면 결국 사람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다고 말한다. 환자를 상담하며 경험한 사례를 소개하며 육체적인 치료가 환자를 살리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를 가진 환자들이 의외의 결과로 병에서 회복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적인 존재, 초월적인 존재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지성으로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전적인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수밖에.

 

어린 아이를 지나 청년 시기와 장년 시기를 거치면 어김 없이 찾아오는 것이 노년이다. 노년은 어느 누구도 회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년을 부끄러워하거나 어떻게든 부정하려고 하는 노력들이 폴 투르니에가 보기에는 불쌍한 모습을 비춰진 것 같다. 차라리 노년의 시기를 인정하며 노년의 시기에만 누릴 수 있는 성숙함으로 인생의 마무리를 지어보는 것이 어떻게냐며 독자들에게 의사로써 권면한다.

 

"노년기의 과제는 과거를 경멸하지 않고 오히려 과거로부터 교훈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사실, 다양성의 대명사는 '하나님' 이시다. 그분은 다양한 동식물을 서로 다양하게 만드셨다. 사람을 만드실 때도 다양성을 적용하셨다. 모든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더없이 소중한 이유다. 개인의 삶을 봐도 그렇다. 개인이 가진 고유한 성격들이 모두 다양하다. 재능도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어쩌려고 하나?

 

일각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자유롭지 못하고 뭔가에 구속당한 사람처럼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리스도안에서 자유를 맘껏 누릴 권한이 있음에도 스스로 구속된 삶을 사는 이유가 무엇일까?

폴 투르니에는 도덕주의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도덕주의는 자기 자신만을 추구하고 자신이 선과 악을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도덕주의는 실수할 만한 모든 상황을 양심의 가책과 자기 억제의 힘을 동원해 피해 보려는 시도입니다."

은혜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도덕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