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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도시 - 대규모 전염병의 도전과 도시 문명의 미래
스티븐 존슨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20년 4월
평점 :
인구밀집도가 높은 지역이 전염병에 취약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현실이다. 1850년대 영국 런던의 인구가 200만명이었다고 한다. 당시 통계상 세계 최고의 밀집 도시였다고 한다. 산업혁명과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특수한 환경 속에서 한 도시에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밀집하리라 예상 못했던 것 같다. 귀족층과 극빈층이 사는 지역이 저절로 구분되어 있었고, 200만 인구가 쏟아내는 쓰레기양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지금이야 상하수도처리, 쓰레기 처리 시설, 분뇨 처리 시설이 현대화되어 있어 체계적으로 처리하고 있지만 150년 전 영국 런던에는 그런 시설이 전무한 상태였다.
거대한 도시에서 나오는 쓰레기 처리는 의외로 체계적으로 처리되었다. 쓰레기 처리 전담반이 자생적으로 구성되어 빈틈없이(?) 재활용되었다. 하수관에서 쓸만한 것을 줍는 사람들, 강 개펄에서 고철을 줍는 넝마꾼들, 동물의 사체에서 뼈만 수거하는 이들, 귀족층들이 쓰다 버린 천 조각이나 조금이라도 쓸만한 것들은 죄다 주워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바꿔 생계를 꾸려 가는 이들 덕분에 200만 거대 도시 런던은 자생적으로 버티어 나갈 수 있었다.
의료 시설 및 위생 관념은 어땠을까? 과학의 발달과 의학 기술의 점진적 향상으로 전염병의 원인을 파악하여 치료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나아지고 있었으나 고정관념을 바꾸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감염도시』에서 다루는 '콜레라'에 접근하는 의학적 관점이 상식 밖이었다는 점을 고발하고 있다. 전염론 대신 독기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독기 이론은 공기 중의 악취가 질병을 유발한다는 관점이다. 콜레라로 단기간에 수 많은 사람이 죽어간 것이 공기 중 악취때문이라고 단정지었다. 악취를 유발하는 저소득층, 극빈층 사람들이 문제라는 발상을 은근히 언론에 흘렸다. 계층을 구분하겠다는 발상이며 분명 차별적인 시각이었다. 악취를 발생시키는 그들은 선척적으로 게으르고 도덕적으로 해이하며 위생 관념이 없다고 인식했다.
이때 의사로써 소신을 굽히지 않고 콜레라의 원인은 마시는 물 때문이라고 주장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존 스노'라는 의사다. 당시 런던 주택가에서는 분뇨 처리 시설이 없어 대부분의 분뇨를 쌓아두거나 별도의 지하 저장소에 보관하는 방식으로 지냈다. 그러다가 분뇨에서 발생한 오수들이 식수원인 템즈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오염된 물들이 다시 식수로 사용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1854년에 런던 브로드 가에 콜레라가 집단적으로 발생한 원인이 여기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인식은 불쾌한 악취에 있고, 오염된 공기에 있었다고 여겼다. '존 스노'는 직접 현장 조사와 탐문을 통해 콜레라의 원인이 되는 오염된 식수원을 밝혀냈고 콜레라를 해결하는 단초를 마련해냈다. 그는 "직업적 성공이나 왕족의 비호 같은 안전한 세상을 뒤로하고 대담무쌍하게 거리로" 나갔다고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감염도시』에는 콜레라 환자가 죽어가는 모습이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19세기 영국 런던의 상하수도 시설의 상태와 도시 환경이 어땠는지 독자들에게 낱낱히 안내해주고 있다. 불과 150년 전 얘기다. 위대한 전투나 혁명 같은 세계사적인 사건만이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존 본능인 마시는 물과 관련된 콜레라 전염병이 어떻게 한 도시의 삶을 바꿔갔는지 친절하게 말해 주고 있다.
당시 주류 집단의 사고 방식이 얼마나 독선적이고 한 치의 양보도 없었는지 보여 준다. 지식의 세계를 점령한 일부 주류 집단의 지식인들은 콜레라보다도 더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지식인들 대부분이 감염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사람들의 체질 허약을 사회적 실패로 간주하고 가난한 이유, 알코올을 남용하는 이유, 불결한 삶을 감염의 원인으로 고정화시켰다.
참고로 산업혁명 이후 도시로 이주한 많은 이들이 식수가 오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근근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차'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차를 우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닌산'이 끓는 물에서도 살아남은 '박테리아'를 죽이는 효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 대신 알코올, 맥주를 마시는 이유도 식수가 오염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국 런던은 흑사병(1664년~1665년), 대화재(1666년 9월), 콜레라(1854년)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자그마한 세균이 질병을 퍼뜨린다는 개념을 믿지 않았던 시대에 수 많은 사람들이 이유를 모르고 죽어갔다.
하버드 대학의 생물학자 E.O. 윌슨 덕분에 널리 알려진 '통섭'이라는 용어가 영국 런던 케임브리지 철학자 윌리엄 휴얼(1794~1866)이 1840년대에 처음 창안한 용어라고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박사가 널리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