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확인 홀
김유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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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상처가 도드라지게 나타는 경우도 있지만 오랜 세월동안 숨어 있는 상태로 존재한다.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상태로 한 사람의 일생 가운데 지배적 위치에 서 있기도 하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다만 상처를 극복하고 일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느냐의 여부는 개인의 선택 또는 그 개인을 둘러싼 환경에 달려 있다고 본다. 

 

『미확인 홀』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도 상처 가득한 일생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이다. 한적한 시골 마을인 은수리에 주민들이라고 해 봤자 얼마되지 않은 마을에 상처를 간직하고 평생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속된 말로 바람 피운 아빠와 엄마를 직접 목격한 자녀들의 삶은 참 비참하다. 책 제목처럼 미확인 홀이라고 하는 폭포 언저리에 뚤려진 홀로 사라져 버렸다고 확신되는 필희의 삶이 대표적이다. 필희의 잘못이라고는 전혀 없다. 단지 엄마의 순간적인 판단으로 인해 필희의 가정은 깨어진 가정이 되고 둘도 없이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의 관계도 어색한 관계로 변하고 만다. 

 

저자는 책 끝부분에서도 여전히 미확인 홀의 정체를 확실하게 설명해 주고 있지 않다. 필희가 과연 정말 미확인 홀로 사라져버렸는지 아니면 또 다른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얘기해 주고 있지 않다. 다만 미확인 홀을 통해 상처가 치유되고 상처로 얼룩진 개인의 일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삶은 아름다움으로 끝맺음 될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미확인 홀로 사라졌다고 생각되는 필희 말고 소설 속 이야기의 두 번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희영이의 삶은 독자들도 한 번쯤은 특이한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해 봄직 할 것 같다. 희영이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의사 부인인데다가 똑똑한 자녀 둘을 키우고 있는 부유한 사모님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희영이는 일명 정신병을 앓고 있다. 밤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망원경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훔쳐 보는 병을 가지고 있다. 눈에 초점이 없고 뭔가 홀린 듯한 삶을 살아간다. 급기야 자녀들의 귀가 시간까지 집요하게 챙기는 신경질적인 삶을 살아간다. 지켜보는 가족들도 한계에 다다른다.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는 가정도 가족 구성원 중에 한 명이 말못할 정신적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 살아갈 희망도 꿈도 잃게 된다. 

 

희영이의 고쳐지지 않을 것 같은 정신적 질병도 그녀가 태어나 자라났던 은수리에 오면서 극적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그녀가 지닌 질병의 단초도 은수리에서 목격했던 미확인 홀 사건이었다. 해결은 상처를 주었던 그 사건에 직면했을 때 일어나는 것 같다. 피할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부딪쳐야 해결 할 수 있는 것 같다. 희영이의 치료를 알리는 서막이 열리자 책을 읽는 나 조차도 마음의 부담이 덜어지는 느낌이다.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는 이들이 주변에 많다. 고통을 안겨준 직접적인 원인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마주할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안내해 주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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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 - 언어치료사가 쓴 말하기와 마음 쌓기의 기록
김지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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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의사는 눈빛, 표정, 특유의 몸짓 등을 통해 전달되고 어른이 이를 자연스레 반영하면서 아이의 욕구가 해결된다" _39쪽

 

언어치료사인 저자는 발화를 힘들어 하는아이, 중증 장애를 통해 기초적인 언어 습득이 어려운 아이, 지적 장애로 한계를 지닌 아이 등을 가정으로 찾아가 언어 치료를 하는 교사다. 가정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보통 주 양육자의 요청으로 시작된다. 최근 바우처 제도가 활성화 되면서 경제적 부담이 적은 탓도 있지만 또래 아이들과 비교하면서 느리게 진행되는 언어 능력에 걱정이 되어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1회 수업 시간이 40분이라고 하지만 40분 내내 집중적인 치료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아이가 좋아하는 지점을 포착하여 아이의 마음을 사는 일이 우선이라고 한다. 간혹 자신의 수업 스타일이 맞이 않아 일방적으로 언어 치료를 중단시키거나 교사 교체를 요구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교사와 아이의 문제를 넘어 보호자가 개입되면 어떤 치료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말은 강물과도 같다. 아이들의 말은 어른들에 의해 받아들여져야 한다. 미숙하다는 이유로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그래야 막히지 않고 유유히 흐를 수 있다." _111쪽

 

아이들의 말이 수업이 진행되면서도 유창해 지지 않는다고 해서 조급해 하면 결국 중증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분위기를 감지하고 치료를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행동을 보인다고 한다. 언어치료사에게 오랫동안 꾸준히 일관되게 치료를 맡기는 양육자도 있지만 바우처 지원 기간 종료 또는 가정의 여러 가지 이유로 중단에 멈추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때 가장 아쉬워하는 사람은 바로 언어치료사라고 한다. 

 

저자는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를 통해 그동안 자신이 가정으로 찾아가 치료를 했던 아이들을 잊지 못해 편지를 쓴 부분들이 실려 있다. 수신자들이 읽을 수 없는 편지지만 저자의 애틋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보호자의 심정 못지 않게 애정과 사랑이 듬뿍 담긴 편지글이다. 뇌 병변과 같은 중증 장애로 태어난 아이들은 마치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를 살고 있다. 자신의 의사 표현을 눈빛이나 표정, 몸짓 아니면 짧은 소리로 겨우 나타내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에게는 언어가 숨어 있는 듯해 보이지만 언어치료사들은 꼭꼭 숨어 있는 언어들을 캐내 아이들의 삶과 연결시키려 애쓰고 노력한다. 

 

언어치료사가 하는 일은 다양하다. 섭식도 언어치료사가 하는 일 중 하나라고 한다. 작고 미묘한 변화를 위해 아이의 특성에 맞는 방법들을 개별 맞춤식으로 찾아낸다. 아이가 좋아하는 물건을 찾아내 주고 받는 일부터 시작한다. 이것은 언어치료사와 아이와의 대화다.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주 양육자와의 상담도 언어치료사가 하는 일이다. 수업만큼이나 중요하다. 가정과 연계한 수업을 기획한다. 그렇다보니 수업이 끝나면 마라톤이라도 하고 난 것처럼 온몸에 힘이 빠진다고 한다.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수고하고 애쓰는 이들이 참 많다. 다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한 아이의 언어 향상을 위해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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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오늘을 위한 것 믿음의 글들 270
대천덕 지음 / 홍성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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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에 발간된 책이지만 오늘 지금 이 시점에 읽어도 여전히 독자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남다른 의미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부터 기독교는 세상이 걱정하는 종교로 자리잡게 되었고 누구에게도 어떤 감동도 주지 못하는 박제화된 종교가 되어 버린 것이 현실이다. 젊은 세대들은 기존의 부모 세대처럼 기독교를 맹목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 팬데믹 이후 기성 세대들도 기독교에 대해 기존에 생각해 왔던 틀을 과감히 던져 버리는 모양새다. 형식적으로 교회에 다니는 것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가지며 탈교회가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이제 교회에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젊은 층들이 교회에 유입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른들만이 자리를 지키는 노쇠한 교회가 되어버렸다. 한국 교회의 장래를 걱정하는 많은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걱정하는 소리를 내지만 진작 해결책 앞에서는 침묵 중이다. 

 

『기독교는 오늘을 위한 것』에서 현재 당면한 기독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1. 기독교의 남다른 매력은 섬김에 있다!

 

"섬김(serve)이란 단어는 매우 인기 없는 말입니다. 우리는 유교적 어휘인 봉사란 말을 더 좋아하는데, 봉사는 좀더 우월한 사람이 하급자에게 허리를 굽혀 돕는다는 뜻입니다. 한편 '섬긴다'는 말은 마치 종이 그의 상전에게 시중을 드는 것처럼 하급자가 상급자를 받들면서 돕는 것을 의미합니다" (214쪽)

 

기독교는 섬김의 종교다. 기독교인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나 기회가 되면 봉사를 한다. 봉사와 섬김의 큰 차이점은 마음가짐이다. 섬김은 받드는 것이다. 종이 상전을 시중드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처럼. 기독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냉정하다. 사람들은 기독교의 봉사 활동에 감동 받는 것이 아니라 섬김에 도전받는다. 기독교는 믿는 사람들은 일상의 삶에서 섬김을 실천해야 한다. 직장인이라면 일하는 직장이 섬김을 실천하는 장소가 된다.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섬김의 대상이 된다. 남녀노소 구분없이, 직급에 구애받지 않고 받드는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섬김이다. 기독교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섬김'으로 나아가야 한다. 세상을 섬기는 기독교 말이다.

 

"현대 교회들 중 많은 교인들이 불의를 당한 자들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고... 교인들은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절대로 교회 다니지 않겠다. 신자들이란 불의와 타협하거나 불의를 묵인하는 악한 무리들이다" (175쪽)

 

2. 기독교는 낮아져야 한다!

 

"우리는 모두 평등하기 때문에 지도자는 가장 천한 작업을 할 수 있는 특권이 있지요" (237쪽)

 

1900년대 초 중국 내륙 지방에 있었던 예수 가정 공동체의 실제 이야기다. 중국이 공산화되었을 때 종교를 아편으로 취급하며 핍박할 때 조차도 예수 가정 공동체는 굳건히 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공산당 간부들이 보기에도 예수 가정 공동체는 자신들이 표방하는 신념 이상으로 실제적으로 실천하는 집단으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지도자일수록 손에 흙을 묻힐 기회가 별로 없다. 지도자가 될수록 노동가 멀어진다. 그런데 예수 가정 공동체는 지도자일수록 가장 천한 직업을 자발적으로 한다고 한다. 인분을 수레에 실어다 밭에 뿌리는 일은 지도자의 몫이라고 한다. 

 

기독교는 외부에서 바라보았을 때 힘이 있어 보이면 안 된다. 세상의 영향력은 돈과 명예와 권력이지만 기독교의 영향력은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다. 가난과 천함 속에서도 자족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나타내야 한다. 기름끼가 번지르한 기독교 지도자들의 모습을 보고 누가 과연 그를 따르며 존경하겠는가. 하나님이 자기의 하인인 것처럼 생각한다. 

 

"만일 교회에서 갖는 직분상의 지위-집사,장로,권사,전도사,신부, 목사- 가 형제적 사랑보다 더 중요시된다면, 그것은 서구의 옷을 입은 유교에 불과한 것입니다" (214쪽)

 

 

3. 기독교는 기도하는 종교다!

 

"해외에 있는 형제들은 우리의 정신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 외국의 교회들은 우리가 의지하는 마지막 수단을 없애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릎을 꿇게 하고 주님 앞에 외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의 재정적인 필요인 것입니다" (240쪽)

 

중국 예수 가정 공동체가 붙들고 있는 원칙 중 하나다. 외국의 원조를 받기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선택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다. 재정적 지원은 무릎을 꿇게 하기보다 돈을 더 의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기독교는 어떤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는가, 재정을 의지하는가. 

 

"기도란 우리의 일을 실행시키는 방법이요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입니다. 기도란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인 것입니다" (200쪽)

 

『기독교는 오늘을 위한 것』에서 저자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재차 강조한다. 특히 희년의 정신을 구현해야 내야 한다고 한다. 희년의 성경적 정신이 오늘 우리의 경제 활동에서 나타나야 한다고 한다. 바로 토지를 바라보는 성경적 관점의 정립이다. 

 

"구속 redeem 이라는 단어는 토지법에서 나온 것입니다. 희년까지 기다리지 않고도 토지의 원래 소유자는 임대료를 모두 돌려주고 토지를 다시 구속(되무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구속(토지 무르기)이라는 단어가 본래 경제적인 개념을 지니고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185쪽)

 

"성경은 경제적 평등과 사회적 정의에 대해 구체적이고도 특수한 처방책을 담고 있습니다." (183쪽)

"모든 가족에게 자기 소유의 땅을 기업으로 가질 수 있게 권리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142쪽)

"토지에 부가되는 가치를 사회 전체를 위해 쓰일 세금으로 거두어 들이는 방법입니다. 토지가치세." (139쪽)

"기업이라고 번역한 헬라어 원뜻은 제비뽑기로 토지를 나눈다는 뜻입니다" (132쪽)

 

4. 기독교는 오늘을 위한 것이다!

 

"구약의 모든 사실을 영적으로만 해석하고 상징적으로만 다루어 왔기 때문에 구약이 말하는 현실 세계를 생생하게 보지 못하고 다만 숨겨져 있는 우화적 의미만을 탐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125쪽)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구체적인 자연계의 기초, 사회적 질서의 일차적 완성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118쪽)

 

"우리 시대의 비극은 기독교가 개인의 영혼을 세상으로부터 분리시켜 종교적 수단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114쪽)

 

"그리스도인들은 보다 가치 있고 완성된 희생을 추구하지만 대체로 과학적 인본주의자들은 그들의 후손들을 위하여 자유와 행복과 기회 좀 더 나은 생활방식을 추구합니다." (118쪽)

 

"교회는 나이가 들어 변화를 원치 않았고,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핍박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권세를 잡고 이었습니다" (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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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마음 - 나를 돌보는 반려 물건 이야기
이다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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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신이 돈으로 산 물건들을 '반려 물건'이라고 칭한다. 단지 구매욕심 때문에 산 물건이라고 할지라도 몇날 며칠을 지갑 걱정, 앞으로의 사용 계획 등을 고려하여 구매한 물건이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는 한 자신과 오랫동안 함께 할 물건이기에 반려 물건으로 생각한다.

 

요즘 워낙 많은 신상품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이미 산 물건들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필요해서 산 물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먼지가 뽀얗게 앉을 정도로 뒷구석에 쳐 박아 놓는 경우가 있다. 그 뿐인가. 시대의 유행에 따라 쓸모가 분명히 있음에도 좀 더 나은 디자인을 추구하기 위해 버려지는 물건들도 꽤 많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총망라하여 저자는 자신이 그동안 품고 함께 지냈던 반려 물건들에 대한 소회들을 에세이로 풀어냈다. 물건 하나하나에 사연이 담겨 있다. 아니 저자의 삶이 담겨 있고 인생 그 자체다. 은밀한 사연도 자신의 얼굴을 타인에게 공개하듯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있다.

 

암투병을 경험했고 자신의 주특기라고 할 수 있는 번역가의 길을 걸어가며 틈틈히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라고 하지만 상당한 수준을 겸비한 음악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저자는 반려 물건을 통해 자신을 돌본다. 사람이 물건을 돌본다고 해야 정상인데 저자는 물건이 자신을 돌보고 있다고 얘기한다. 무슨 얘기인 질 궁금하신 분들은 에세이를 찬찬히 읽어보시라.

 

"우리가 그 돈을 쓰는 모습은 우리가 아무리 감추거나 포장해도, 아무리 겸손하고 은근하게 과시해도 세상과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여실히 드러낸다" (149쪽)

 

나도 저자만큼은 아니지만 반려 물건이라고 부를 만한 게 있을까 생각해 보니 문뜩 떠오르지 않는다. 사실 나는 소비 생활을 주체적으로 하지 않는 편이다. 아내가 사주는 옷을 입고 사주는 신발을 신는다. 심지어 자동차를 구매할 때에도 큰 생각을 하지 않고 경제성 하나만 따지보고 덜컥 사는 편이다. 저자처럼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꼼꼼히 여러모로 생각해 보며 사지 않기에 특별히 나를 돌보는 반려 물건들이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본다.

 

이 물건을 보면 마음에 위로를 얻는 물건

왠지 이 물건을 들여다보면 오랫동안 생각에 머무는 물건

오랫동안 버리지 않고 고이고이 간직하고 싶은 물건

애착이 가고 소중히 보관하고 싶은 물건

 

그러고 보니 소소하지만 대충 물건들이 떠오른다. 앨범들, 돈 주고 산 책들, 25년 전 군 제대하며 가지고 나왔던 군화, 군복들, 대학시절 학군단 후보생 때 들고 다녔던 007가방 등

 

앨범에는 인화된 사진들로 차곡차곡 채워져 있다. 애들 어렸을 적 사진들, 결혼 앨범들. 돈 주고 산 책들은 정말 버리기 아깝다. 나의 정신적 가치관의 바탕이 된 책들이다. 군 생활 신고 다녔던 군화는 참 많은 사연이 담겨 있다. 지금도 아파트, 교회 제설 할 때 신는다. 다른 어떤 장화보다도 눈 치울 때에는 최고의 성능을 발휘하는 25년 된 군화 아마도 죽을 때까지 보관하지 않을까 싶다. 아내가 버리지 않는 이상. 학군단 후보생 시절 들고 다녔던 007가방에는 아기자기한 보물들이 빼곡히 들어 있다. 소위 말해서 땅문서라고 하는 아파트 매매 증서부터 시작해서 월급 통장들(지금은 인터넷 뱅킹으로 차츰 사라지고 있는 것이지만). 하나하나 붙잡고 생각에 빠지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것들이다. 과거를 소환하고 애환이 듬뿍 담겨져 있는 것들이다. 눈물이 안구를 정화하듯 이 물건들은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하고 나에게 무언의 메세지를 던져주는 물건들이다. 저자가 말한 '반려 물건' 인 셈이다.

 

"물건을 구매할 때 느끼는 짜릿함보다 물건과 오랜 관계를 지속하면서 더 만족함을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세월이 지날수록 물건이 나의 존재를 반영하기 때문일 것이다" (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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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프레지던트 - 국가 기념식과 대통령 행사 이야기
탁현민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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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없다! _285쪽

 

저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조직인 '행정부'에서 국가 단위 행사의 전체적인 기획과 공연을 실제적으로 운영한 사람이다. 국내 행사 뿐만 아니라 대통령 순방까지 기획하고 운영한 사람이다보니 지나온 일들을 회상해 놓은 이 책이 많은 이들로부터 관심과 호기심을 갖게 하는 것 같다. 나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저자 덕분에 국가 행사가 어떻게 기획되고 진행되는지 대충 알게 되지 않았나 싶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나 행사를 기획할 때 가장 신경써야 할 주안점은 아마도 '의미 부여'가 아닌가 싶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 행사를 준비할 때에도 '의미 부여'에 부쩍 신경쓰는 추세다. 현수막 하나를 교문에 내걸때에도 상투적인 문구보다는 '의미와 가치'를 담은 문구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이렇게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신경을 쓰는 이유는 저자가 말한 것처럼 참석하는 대상자 또는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함이다. 

 

'감동'은 억지로 만들어낸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심'이 전달될 때  '감동'은 덤으로 따라 오는 것이다. 저자가 심혈을 기울여 기획한 애국지사 또는 독립유공자를 예우하기 위한 세밀한 기획들은 당시 영상을 통해 지켜본 국민들이나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가슴뭉클한 진한 감동을 전해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 같았다. 나 또한 출장길에 대중교통 안에서 펼쳐든 이 책을 꼼꼼히 읽어내려가는 데 군데군데 눈시울이 붉어지는 장면들이 많았다. 나이가 들어서 눈물샘이 많아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글 속에서도 진한 감동이 느껴졌기 때문일게다. 

 

 

형식적인 아름다움도 중요한 가치이지만, 내용이 없으면 형식은 공허해 진다. 

형식은 반복되고 유지되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내용은 매번 새롭게 해석되고 변화할 때 의미가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_292쪽

 

관행과 전례는 담당자 입장에서는 시간과 에너지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메세지에 '의미'를 담아내는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새로움을 기획하고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행사의 본질을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다양한 입장의 소리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최고 결정권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다. 이 모든 일들을 기획하는 사람은 행사가 마칠 때까지 밤잠을 못 잘 것 같다. 국가 행사에는 정치적인 입장이 다른 이들의 논평이 이어진다. 칭찬보다 비판이 더 크기에 심리적 부담을 이겨내야 하는 어려움이 더 클 것 같다. 우리나라도 국가 행사만큼은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성숙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음악은 그러한 형식만 남은 행사에 내용을 채워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_292쪽

 

시대에 따라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들이 달라지고 있다. 변화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음악은 메세지를 전달하는 훌륭한 도구다. 전 세계의 열풍을 선도하고 있는 K-POP도 음악이 바탕 되어 있다. 저자는 책 제목처럼 대통령의 입퇴장 곡을 '미스터 프레지던트'로 일관되게 사용했다. 대통령에 따라 입퇴장 곡도 달랐다고 한다. 국가 행사에 의미를 담아낼 때도 저자는 음악 선곡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 같다. 긴 연설보다는 때로는 짧은 음악 한 소절이 감동을 만들어낸다. 형식과 내용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음악을 잘 활용해야 할 것 같다. 지금 시대에는.

 

어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다면,

조금은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면,

자신보다 어린 사람, 예의 없고 삐딱한 사람과 함께 일하길 권한다. 

큰 도움이 될 것이다. _424쪽

 

자신보다 어린 사람, 예의 없고 삐딱한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그러나 새로움과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견고한 방법과 틀을 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저자가 사용한 방법은 간단하면서도 매우 어려운 방법이다. 누군들 삐딱한 사람을 좋아하겠는가.

 

젊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받아 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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