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없는 일주일 창비청소년문학 67
정은숙 지음 / 창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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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을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흔히들 말한다. 특히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은 더더욱 이해불가라고 한다. <용기 없는 일주일>에서는 이해불가하다고 하는 중2 학생들의 심리와 고민, 학교생활을 풀어냈다. 특히 학교폭력이라는 얽히고 설힌 복잡미묘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청소년들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어른들이 노력하고 있다. 그들과 함께 직접 생활하거나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다면 조금 이해하기가 쉽겠지만 그런 기회는 좀 처럼 찾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소설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도구가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가상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실제 학교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을 다루고 있고 중2 학생들이 고민하는 부분들을 이야기의 형식을 가지고 와서 묘사했기에 충분히 청소년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중2 학생들이 생활하는 학급 안에서 생기는 학교폭력의 유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소설에서 사건의 중심을 이루는 '왕따' 가 아닐까 생각한다. 왕따란 집단적 따돌림을 말한다. 멀쩡하게 생활하는 친구를 집단적으로 은근히 따돌리는 행위는 장난스러운 행동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결과도 너무 참혹스러울 있다는 점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달려오는 트럭에 돌진한 소설 속 학교폭력 피해자(한 때는 그도 학교폭력 가해자였다!) 박용기의 교통사고를 접하면서 단순한 사고가 아닌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학교폭력의 결과임을 담임선생님 '하지영' 교사는 밝혀낸다. 그리고 지혜롭게 학급 안에 만행되어 왔던 집단적 따돌림을 해결하기 위해 묘수를 생각해 낸다. 

 

박용기가 없는 일주일 안에 세 명의 학교폭력 가해자가 자수하기를 기다린다!

 

집단적으로 친구 박용기를 따돌렸던 친구들 중에서도 핵심 가해자 세 명이 자수한다면 학교폭력자치위원회로 넘기는 것을 고려하겠다는 담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7일 동안 물고 물리는 탐색전이 펼쳐지는 내면의 풍경을 저자는 각각의 인물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 고민되는 지점들을 독자들에게 속시원하게 풀어주고 있다. 

 

학교폭력이 학급 안에서 생기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 

 

"지금 학교는 계급 사회였다. 공부 잘 하는 아이, 돈 있는 아이, 유머러스한 아이, 주먹이 센 아이, 운동을 잘 하는 아이. 그 조건 중에 여러 가지를 갖춘 아이들이 계급 사회의 상층을 차지했다." _128쪽

 

학교가 계급사회라니? 인도의 카스트 제도라고 생긴 것인가?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냐고 의아해 할 수 도 있겠다. 극단적 표현이긴 하지만 학교가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가정한다면 분명히 양극화 현상이 학교 안에 깊숙히 침투되어 있고 청소년들은 격차의 차이를 이용하여 학교폭력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피해자로 불리는 학생들은 마치 숙제를 해결하듯이 힘 있는 학생들의 요구에 반응한다. 못다한 숙제로 인해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하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의 눈치를 보며 학교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청소년 시기에는 외모에 무척 관심이 많다고 한다. 어른들의 시각에서는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가 더 아름다운데 왜 이렇게 치장하고 꾸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청소년들 자신의 입장에서는 그냥 예쁘게 보이고 싶은 나이이며 외모는 아주 중요한 관심분야임을 어필한다.

 

그리고 청소년 시기에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음' 을 어른들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지금도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학교폭력 사건은 당시 철없던 행동이었다라고 무마하려고 하지만 결국 사건의 원인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마음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속 담임 선생님인 '하지영' 교사의 학교폭력에 따른 대처 방법은 지혜를 넘어 신의 한 수 였던 것 같다. 

 

"누군가를 몰아붙여야만 나에게 손가락질이 돌아오지 않을 거란 이기심 때문은 아니었을까? " _217쪽

 

학교폭력 사건을 다루면서 가해자 뿐만 아니라 그 주위의 방관자들의 책임도 동일하다고 이야기한다. 집단에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함께 손가락질을 해야한다는 것을 묵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이기심'의 발로임을 발견할 수 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학교 안에서 우리의 이기심을 순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마음의 깊이를 공부시킬 수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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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크발 - 한 어린이 활동가가 품었던 꿈
키아라 로사니 지음, 빔바 란트만 그림, 김경희 옮김 / 아롬주니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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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노동은 가장 뿌리 뽑기 어려운 악행 중 하나입니다" _106쪽

 

UN에서 제정한 아동권리협약 네 가지 원칙 중 첫째는 모든 어린이는 동등한 권리와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누릴 수 있는 권리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담고 있다.

 

둘째는 모든 어린이는 기본적 삶을 누리는 데 필요한 것을 충족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기본적인 삶은 놀 권리, 공부할 권리, 자유를 누릴 권리, 충분히 쉼을 가져야 할 권리, 잠잘 권리 등 무수히 많은 권리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에서는 어린이들이 노동의 현장에 투입되고 심지어 노예처럼 취급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셋째, 모든 어린이는 착취와 학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강조한다. 즉 어린이는 착취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어린이의 학대는 곧 범죄 행위임을 암시하고 있다. 어린이는 보호받아 마땅해야 할 존재이며 어른들의 역할은 어린이들이 노동의 착취와 학대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함을 말해준다.

 

넷째, 모든 어린이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파키스탄 소년 이크발 마시는 부모가 진 빚을 갚기 위해 강제 노동을 당해야 했다.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지만 지금 살아가는 지구촌 곳곳에서는 이크발처럼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고 산업 현장에 노예처럼 끌려가 꿈을 송두리째 빼앗긴채 살아가는 수 많은 아동들이 많다는 점을 알아야한다. 이크발은 자신처럼 말도 안돼는 사유로 족쇄가 채워진 채로 하루에 12시간 이상 중노동에 처한 어린이들을 대변하기 위해 변호사를 꿈꿨다. 그러나 아쉽게도 괴한의 총격으로 꿈을 펴지도 못한 채 죽음을 당해야했다. 다행이도 이크발의 노력은 또 다른 운동의 씨앗이 되었다. 이크발의 쏘아올린 아동 노예 해방 선언은 모든 이들의 공감대를 얻어 지구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되었고 드디어 매년 6월 12일은 세계 아동 노동 반대의 날로 제정되기까지 했다.

 

이크발의 아동 노동 반대 운동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신는 운동화, 운동할 때 사용하는 축구공, 동호회에서 애용하는 테니스 라켓, 실내 내부를 장식하는 양탄자들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아동 노동에 의해 생산된 말도 안 되는 상품임을 깨닫게 해 준다. 자본이 사람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는 오늘날이지만 가장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바뀐 것은 아니다. 

 

모든 어린이들이 착취당하지 않도록 감시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법이 철저히 집행되도록 세계 시민들이 촉구해야 한다.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이자 결국 우리 자신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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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스쿨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92
이진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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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마이너스 스쿨' 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름지기 학교란 학생이 즐겁게 다니는 곳, 친구들과 함께 작은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곳, 성장과 배움이 있는 곳이어야 하는데 마이너스 학교라니...

자동차를 타고 도심지를 지나갈 때  힐끔 쳐다보는 곳이 있다. 학교 건물이다. 초등학교인지 중학교인지 학교 명패나 푯말을 본다든지 또는 학교 건물에 커다랗게 붙어있는 학교 비전 글귀를 본다.

 

'행복한 학교....', '꿈이 자라나는 학교...' 주로 희망적인 메세지가 담겨 있다. 그 글귀대로라면 대한민국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행복해야 되고, 자신의 꿈을 성장시킬 수 있어야 한다. 모두 다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대체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런데 가끔 언론에 나오는 학교 소식은 그렇지 않다.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학교는 말한다. 우리 사회에 폭력이 만연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끔찍한 소식들 때문에 이제는 왠만한 폭력이 아니면 눈깜짝하지도 않을 정도다. 문제는 학교 안에서도 보이지 않게 폭력이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이너스 스쿨>은 학교 안팎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중고등학생들이 같은 친구들을 괴롭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가상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마냥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느껴지는 것은 책을 읽는 독자라면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 싶다. 장애를 가진 친구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친구들의 집단 폭력을 다룬 이야기가 과연 있을법한 이야기일까 생각하다가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과거에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힌다. 과연 학교는 어떤 역할을 해야 될까?

 

소설 속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은 대부분 잘 사는 집 아이들이다. 부모들은 소위 사회의 권력을 대표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그 자녀들은 공부 머리도 좋고 잔머리도 뛰어난 아이들이다.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은 가난한 집 아이들, 다문화 아이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다.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들이 왜 힘 없고 가난한 아이들을 집단으로 괴롭힐까? 

 

힘으로, 돈으로 뭐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학교 안에서도 나름 힘을 발휘하려고 한다. 자신의 자녀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 있으면 참지 않고 학교로 쫓아온다. 교장을 만나고 담임을 만나 자신의 힘으로 자녀를 보호하려고 한다. 잘못했으면 그에 응당하는 반성과 성찰을 할 수 있도록 해야됨에도 불구하고 다짜고짜 일단 자신의 선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과연 그게 진정한 부모 노릇일까?

 

시회가 존재하는 한 폭력이 사라지지 않듯이 학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학교는 마지막 보루다. 힘과 권력이 작용하지 못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교육적인 방법으로 변화가 생각하도록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학교폭력의 이야기가 이제는 소설 속 이야기로만 머물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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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 운명조차 빼앗아가지 못한 '영혼의 기록'
위지안 지음, 이현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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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아무 생각 없이 보내는 하루는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하루만 더 살았으면 하는 그 '하루' 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다. 질병만큼 불청객이 또 어디에 있겠느냐마는 우리의 삶 속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불치병이 아닐까 싶다. 원망도 해 보고 속절없이 울어도 보지만 자신에게 불쑥 나타난 불치병을 어찌할 수 없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된다.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유방암이 온 몸에 전이되어 수 차례의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병원에서 조차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집으로 돌려보내 졌을 때 그녀의 심정은 어땠을까?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소중한 남편, 늘 나를 사랑해 준 부모를 남겨두고 이 세상을 떠나야 할 줄 모르는 상황을 기다리며 그녀는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를 통해 날마다 하루 하루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글을 남기기 시작한다.  

 

그녀에게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가 된 인생의 의미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돈과 명예와 성공이 아니라 그동안 가족들과 함께 만들어온 추억을 상기해 보는 일이며 그동안 치열하게 앞만 보고 살아오면서 놓친 값진 관계들을 다시 돌아보는 일이었다. 건강할 때에는 몰랐던 작고 작은 일들이 아파서 침대에 누워보니 세상에서 가장 큰 일들이었음을 발견한다. 

 

'집 사람이 유난히 추위를 타기 때문에 내 체온으로 미리 덥혀 놓아야 한다' _25쪽

 

남들보다 추위를 많이 탔던 아내를 위해 늘 침대 이불 속을 따뜻하게 데펴 놓는 남편의 기이한 행동을 아파서 누워보니 그제서야 깨닫게 되는 것처럼 평소에는 깨닫지 못했던 수 많은 사랑들을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며 후회 아닌 후회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아들과 더 많이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된다고 하는 그녀의 글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항암 치료로 머리 숱이 다 빠져 비구니처럼 보이는 자기를 위해 남편과 아들이 함께 머리를 깍고 기념 사진을 찍으러 갔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하루의 삶이 무엇인지 다시 다짐해 본다. 

 

'내 곁에만 있어주면 돼' _85쪽

 

서로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 가장 아름다운 말이 이 말이 아닐까 한다.

'내 곁에만 있어주면 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존재해 주는 것으로 힘이 되어주는 관계

그런 관계가 부부 관계여야 함을. 소중한 진리를 다시 깨닫는다. 

 

'죽음이 두렵다는 것은 이 세상에 미련이 많다는 의미' _143쪽. 

 

이 책을 읽으며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고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이 죽음이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의 하루와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하루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죽음이 성큼 성큼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늘 내가 이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명확해 진다. 사랑하며 살기에도 부족한 하루를 미워하고, 질투하고, 시기하고, 판단하며 산다면 얼마나 후회되는 일일까!

 

어떤 사람과의 관계가 얼마나 진솔한지는 장례식장에 가 봐야 안다고 흔히들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그 사람의 명성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도 있고, 뭔가의 유익을 바라고 친구 관계를 맺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람 관계는 이해관계를 떠나 아플 때 먼 거리라도 달려와 주는 관계가 진솔한 관계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부모나 가족은 같은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이니 그렇다고 치고 나와 피 한 방울 안 썩힌 사람들이 아픔의 소식을 듣고 찾아와 주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아끼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진솔하다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삶의 끝자락에서 어떤 기교와 가식을 꾸미지 않고 쓴 이 글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오늘 살아갈 이유를 찾게 해 주는 것은 영혼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뼈를 깍는 고통 속에서도 하루를 더 살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인생의 깊은 의미를 찾아간 글에는 우리의 존재 이유를 깨닫게 해 준다.

 

소종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가 보아야겠다. 더 늦기 전에.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후회하지 않을 사랑을 해야겠다. 더 후회하기 전에.

직장에서 만나는 교직원들에게 따뜻함으로 먼저 손을 내밀어야겠다. 더 갈등이 깊어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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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성의 1만 킬로미터 - 그들은 왜 목숨을 건 여정을 떠나는가?
이지성 지음 / 차이정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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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코로나가 전 세계 인류에게 가져다 준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AC-After Covid19, 세상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눠질 정도로 사회적 파급력이 강했다. 그런데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 있었다. 

바로 탈북민에 관한 문제였다. 

 

코로나 이전에도 탈북민에 관한 문제는 국제적 이슈로 등장하기도 했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국가들, 소위 공산당 1당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나타나는 빈번한 인권 유린 사례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권고와 촉구를 거듭 반복해 왔다. 탈북민이 처한 현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인권 유린 그 자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노예보다 못한 짐승 취급을 당할 뿐만 아니라 공안 당국에 의해 체포되고 다시 북한으로 송환되었을 경우에는 처형까지 당하는 그야말로 생명 경시 현상이 탈북민에게는 보편화 되어 있었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과 라오스, 몽골과 캄보디아, 태국 경지를 돌아 한국으로까지 자유 행진을 탈북민들이 감행하는 이유는 잡혀서 북한 내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굶어죽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심지어 중국 인신매매단에 팔려가 짐승 취급을 당하면서까지도 자유로운 삶을 갈망하며 목숨을 건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아직도 수 천명의 탈북민들이 중국 내 숨어서 자유를 찾아 한국으로 들어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지성의 1만킬로미터를 통해 탈북민들이 북한을 탈출하여 어렵게 어렵게 여러 경로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코로나를 통해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이 탈북민들이었다고 한다. 국경 지대의 삼엄한 경비를 통해 사람들의 왕래를 차단했던 지난 3년간의 시절은 탈북민들에게는 고통보다도 더한 기간이었다고 한다. 

 

탈북민들을 말없이 뒤에서 묵묵하게 도와주는 큰 손이 현재 목숨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사명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점점 갈수록 탈북민들을 구출하는 일이 어려워지는 이유는 중간에 브로커들이 제시하는 금액들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탈북민 1명을 빼내기 위해 금액이 높아질수록 후원금들을 더 많이 모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된다. 

 

이지성 작가는 책에서 말했듯이 자신도 왜 이런 위험한 일에 마음이 가고 실질적으로 도와주는 후원자의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할 따름이라고 한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수 많은 탈북민들이 대한민국 내에 정착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이 일은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탈북민이 당하는 고통을 생각하면 바로 정답이 나온다. 

 

참 어려운 결정을 했고 이지성 작가 본인도 경제적 어려움에 놓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한 명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발벗고 나서는 모습에 참 많은 도전을 받는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과 고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이 자유를 북한에 있는 수 많은 동포들 그리고 탈북하여 중국 내에서 노예처럼 짐승처럼 취급당하는 탈북민들에게 선물해 주어야 할 일말의 책임이 우리에게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끝으로 탈북민에 대해 이토록 사실적으로 기록한 책을 기회가 닿는다면 한 번 쯤 일독해 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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