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민주시민교육을 만나다! - 어떻게 제대로 된 민주시민교육을 할 것인가?
김성천 외 지음 / 맘에드림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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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시민을 경험하는 장소여야 한다!


학교는 입시를 준비하는 기관이 아닌 학생의 삶 속에서 시민성을 기를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결핍을 참아내는 삶이 아니라 현재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시민으로 존중되어야 할 대상이 학생이라고 본다. 지금까지 학생들을 한 사람의 시민으로 인정하기보다 수동적 존재로 인식한 점이 많다. 학생은 통제해야 되고 순치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교육기본법의 정신을 살려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이 '민주시민'을 위해 정부차원에서 팔을 걷어 부치고 강조하고 있다. '민주시민' 육성은 문재인 대통령의 교육공약사항이기도 하다. 교육부, 도교육청 차원에서는 '민주시민교육과'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교원들을 대상으로 민주시민연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민주시민교육은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민성은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되어야 한다!


민주시민을 위한 교육도 중요하지만 모든 과정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에서 만들어지는 교육과정과 학교문화, 학생 자치, 지역사회, 교육정책 등 모든 과정이 민주적 절차대로 경험되어야 한다. 독일은 시민교육 대신 '정치교육'이 정식 교과로 다루어지며 '보이텔스바흐' 원칙에 입각한 실제 토론수업이 민주적 과정에 의하여 실습되어 진다. 프랑스, 영국도 민주시민교육이 정식 교과로 들어와 초등학교 때부터 정치와 같은 민감한 사항부터 학생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부분까지 다뤄지고 있다. 반면, 우리는 교과 외에 창의적체험활동 범주 안에서 자율적으로 다루게 되어 있다보니 관심 밖의 사항으로 밀려나 있는 상황이다.


학생 자치회가 구성되어 운영되고 있으나 입시에 도움이 되는 스펙 쌓기로 변질되거나 소수의 몇 몇 학생들이 주도하는 무늬만 학생 자치회의 성격을 띤 경우가 많다. 교과 내의 연구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민주시민교육'까지 하라는 교육청의 권고사항은 교원들에게 이중부담으로 여겨져 실효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학생들을 시민으로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지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사람이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민주시민교육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 교사들부터가 시민성을 함양하고 있어서 학생들과 함께 시민성을 추구할 수 있다. 교사는 지식 전달자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과정적 지식이다. 지식이 아니라 경험으로 배운다. 탁월한 소수의 교사 혼자 힘으로 민주주의를 가르칠 수 없다. 학생들이 서로 배려하고 인정하는 활동을 경험하면서 시민성을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 학생과 교사, 학생과 학생이 연결되어 있을 때 가능하다. 수업은 지식과 문제해결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삶을 중심으로 서로 함께 협력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평가 주제와 평가 기준도 교사와 함게 학생들이 만들어가는 것을 실험해 볼 수 있다. 과정평가의 기준도 학생의 의견을 반영하여 유연한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겠다.


민주주의는 소수의 탁월함에 대한 저항이다!


학교 현장에서는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여 전교생과의 소통의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교장도 교사도 학생들 속에 1/n 로 소속되어 활동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수평적 관계 속에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다. 결코 교장 또는 교사에게 부여된 권위가 손상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학생들이 참여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도록 솔선수범할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갈등 상황을 합의하고 협력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시민으로 갖추어야 하는 내용을 아는 것과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은 다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으로서의 참여 경험이다.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마을과 지역사회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여 공익을 위한 다양한 부분에 참여할 수 있도록 권장해야 한다. 공간과 사람이 바뀌어도 시민성의 비전과 가치는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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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라면 놓쳐서는 안 될 유대인 교육법 - 평범한 아이도 미래 인재로 키우는 유대인 자녀교육 6가지 키워드
임지은 지음 / 미디어숲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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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토 면적의 5분의 1, 전체 인구 천만명이 되지 않는 이스라엘이 전 세계 부의 30%를 거머쥐고 경제, 정치, 문화 등 전 영역에 걸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에 대해 오래전부터 세간의 관심이 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스라엘 민족을 유대인이라고 부른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해서 '히브리' 민족이라고도 한다. 유대인을 지칭하는 '히브리'라는 말은 '혼자서 다른 쪽에 선다'라는 어원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말 뜻에서 유대인의 남다른 교육법을 찾을 수 있다.

 

사실 솔직한 마음으로 유대인들이 부럽다. 흔히들 부러워하면 지는 거라고 말하는데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이스라엘의 모든 정책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의 소프트파워격인 '교육법'이 부러운 것이고 잠재되어 있고 드러나 있는 그들의 영향력이 소름끼칠 만큼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주변 강국들로 포위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위치로 보건대 '교육'의 중요성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은 AI 즉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강타할 미래 사회에 과연 우리 교육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때가 있다. 우리나라만큼 녹록한 형편에 놓여 있지 않은 이스라엘은 '교육'을 통해 지나온 과거의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수 천년간의 교육의 힘으로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 내놓으라고 하는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했고 IT 영역을 장악하여 보이지 않는 영역마저도 움직이려는 거대한 야심을 품고 있다. 그들의 교육법을 배우려는 자세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배울 것은 배우되 그것을 발판으로 '티쿤올람' 즉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고 본다.

 

저자는 브라질에 거주하는 유대인 사회의 집요한 교육 열정을 보면서 평소에도 부러워했던 그들의 교육법을 수만리 떨어진 타향에서 직접 목격한 바에 도전을 받아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부모라면 놓쳐서는 안 될 유대인 교육법』을 조심스럽게 내 놓았다. 사실 유대인 교육법과 관련된 내용의 책들이 없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다양한 관점으로 연구의 결과들이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자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교육'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대인의 교육법을 정리한 저자의 글에 의하면, 유대인들에게 자신들만의 특이한 공부 자세가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여러 책을 봐서 알겠지만 말하는 공부법 '하브루타'는 그들의 경전인 '토라', '탈무드'를 익히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책의 민족이라고 부르는 유대인들은 언제 어디서든 책을 가까이 한다. 단지 읽는 것만이 아니라 함께 토론을 즐긴다. 수평적인 문화에서 발전할 수 있는 토론은 가정에서도 활발히 이루어 진다. 정답을 얻는 데 집중하기 보다 남과 다른 자신만의 해답을 찾는다.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아이는 잘 배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항상 의구심을 가지고 질문하도록 교육시킨다. 밥 처럼 먹는 독서 습관에서도 토론은 치열하다. 생각을 증발시키고 유튜브로 대표되는 미디어는 생각을 구조화시키는데 큰 장애물이 된다. 유대인들은 텍스트로 훈련되지 않은 사고는 생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생각을 글쓰기로 표현하도록 훈련한다. 글은 생각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창의성은 독서에서 시작해 글쓰기로 완결된다.

 

AI 시대, 우리 자녀들이 갖춰야 할 소양으로 창의성과 상상력을 이야기한다. 유대인과 우리와의 다른 점은 이 모든 것을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 시작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을 외부로 끌어내어 주입하려는 우리의 교육법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부모와 함께 여행을 즐긴다. 여행은 경험을 사도록 하는 공부다. 여행은 교육이 일부다. 체험이 중요한 이유는 몸으로 하는 공부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글자와 숫자를 가르치지 않는다. 놀이가 곧 공부다. 놀이의 어원은 갈증이라는 뜻으로 물을 안 마시면 목이 마른 것처럼 찾게 되는 행동이다.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 그들의 외국어 조기 교육열이다. 외국어를 단순히 익히게 하는 점을 넘어 언어를 통해 낯선 문화를 습득하게 하는 데 진짜 이유가 있다고 한다. 언어 번역기가 발달되어 외국어 습득의 필요성이 줄어들고 있는 시대의 흐름과 반대로 유대인들은 한 곳에 정주하기 보다 세계를 안방처럼 여기며 살아야 한다는 세계관에 근거하여 자녀들에게 일찍 외국어를 익히도록 한다. 경제 교육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가정에서부터 부모가 직접 시킨다는 점을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한참 산업이 발달하는 시기였던 20세기에는 주입식 교육으로도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산업 일꾼을 기계 찍어내듯 배출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 동안 불모의 황무지에서 세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말그대로 '기적'이었다. 21세기를 재도약의 시기로 삼을 것인지 아니면 날개가 꺽여 한 없이 추락할 것인지 '교육'에 달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해야 할 몫이다.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는 저자의 『부모라면 놓쳐서는 안 될 유대인 교육법』은 소위 교육법이라고 해서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명쾌한 논리로 내용을 정리해 놓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재미와 함께 강한 동기부여로 유대인 자녀 교육법을 소개하고 있다. 부모도 배워야 한다. 교사도 부모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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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 햇빛출판사 / 199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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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의 계절은 사계절이 아니라고 합니다. 겨울과 여름만 있다고 합니다. 한기를 온 몸으로 버텨야 하는 겨울, 함께 있는 동료가 증오스러운 여름. 두 계절만이 수인들에게 있다고 합니다. 1970년대의 감옥은 지금의 현대식 감옥과 시설면에서 큰 차이가 있겠죠? 무기수로 복역 중인 필자는 1년보다도 더 긴 하루를 노동과 사색으로 보낸 듯 합니다. 계수씨에게, 형수님에게, 할머니할아버지가 된 어머님과 아버님께 간간히 보낼 수 있는 서신 규정에 따라 엽서를 보냈습니다. 엽서라해봐야 면적이 얼마나 하겠습니까마는 아마 깨알같은 글씨로 마음을 전달하지 않았을까싶습니다.

 

제가 이번에 읽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쫌 특별합니다. '통혁당 사건 무기수 신영복 편지'라는 부제가 씌여진 필자의 초판본입니다. 1988년 9월 1일에 인쇄된 책이지요. 종이가 누렇게 빛바랜 책입니다. 30년도 지난 책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폐지 버리는 곳에서 건진 노획물품입니다. 누군가 이사가거나 집안 대청소 때 내다 버린  '폐지'였던 것을 고이 주워왔습니다. 때마침 도서관에서 최근에 나온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었더터라 책의 가치를 단박에 알고 얼른 주웠습니다. 마치 도둑질하는 모양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냉큼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책의 가치를 모르는 아내는 또 주워 가지고 왔냐며 또 한 소리합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다음에는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작년에 주워왔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초판본으로 읽으니 왠지 느낌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초판본이 인터넷 상에서 현재 30,000원 내외에서 거래되는 듯 싶습니다. 처음 인쇄되어 시중에 나왔을때는 3,500원인데 말입니다. 보통 다른 책 같으면 중고 책값은 없는데 보통 귀한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만 책 자랑하다가 책 읽고 난 뒤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네요. 그럼. 지금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하루하루가 고통의 나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감옥 안에서 자신을 다스려갔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보내오시는 화선지에 먹을 갈아 붓글씨를 쓰면서, 때때마다 읽고 싶은 책 목록을 보내면 받을 수 있는 책을 읽으며 여분의 시간을 사색과 함께 보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감옥 안에서 정해진 일과 시간을 준수하면서 보내겠지요.

 

일단 감옥 안에 들어오면 그가 무슨 일을 했고 지위가 어땠으며 재산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지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특히나 무기수일 경우에는. 필자는 당시 보낸 엽서글에 의하면 20년 가까이 복역 중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돌아오는 공간인 1.86평 감옥이 세상의 전부였을테고 몸을 부대끼며 지내고 있는 동료 수인들이 가족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잊고 있는 것은 아무리 담장을 높이더라도 사람들은 결국 서로가 서로의 일부가 되어 함께 햇빛을 나누며,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54)

 

필자는 '함께'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돕는다'는 표현을 할 때, 비 올때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걷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감옥에 오랫동안 생활하고 있는 이들은 냉정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꾸민 표정, 걸친 의상은 물론, 지위, 재산, 학벌, 경력 등 소위 알몸이 아닌 모든 겉치레에 대하여" 외식을 구별하는 냉정한 시선을 습득하고 있다고 합니다. 긴 복역 중 엿새간의 외박을 허락받은 필자가 바깥 공기를 쇠고 들어오면서 외히려 힘에 부쳤던 느낌을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기보다는 사랑받으려 하고 이해하기보다는 이해받으려 하는 마음의 가난에 연유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81)

 

필자의 가족들에게는 엿새간의 귀휴가 얼마나 소중했을까요? 하지만 필자는 감옥으로 다시 돌아온 뒤 조급했던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감옥 안에서는 노동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사회(?)에 있을 때 일하는 습관이 되어 있지 않았던 필자는 노동에서 큰 삶의 공부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대의 젊은이들은 노동을 '소비'라고 생각하며 하챦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어르신들은 노동을 '생산'으로 생각하며 긴 호흡으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세대 간 노동에 관한 인식의 차이입니다.

 

독서에 대한 남다른 필자의 생각을 엿보게 하는 글귀가 있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잔업으로 피곤도 하고 시간도 없어 볼 책이 많이 밀려 있습니만 저로서는 책 속에는 없는, 이를테면 세상의 뼈대를 접해보는 경험을 하는 느낌입니다"(102)

 

책 안에만 갇힌 사고가 아닌 세상과 연결된 사고를 뻗쳐 가려는 필자의 노력이 보입니다. 끝으로 '관계'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옮겨 봅니다.

 

"관계를 맺음이 없이 길들이는 것이나 불평등한 관계 밑에서 길들여지는 모든 것은 본질에 있어서 억압입니다" (133)

 

제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라는 기관에는 다양한 직종의 분들이 함께 어울려 지내고 있습니다. 갈등이 없는 것이 더 이상하겠죠? 갈등을 풀어나가는 해법은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라고 생각 듭니다. 누군가가 조금 더 희생하지 않는다면 '관계'는 '억압'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서로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모순된 행동입니다. 학생을 위해 존재하고, 학생의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라는 공동체가 희생과 사랑을 전제로 하지 않는 형식된 관계로 맺어간다면, 추구하는 원대한 교육 방향이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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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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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재의 본질은 무엇인가?

죽음을 넘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방법은 무엇인가?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교사의 존재의 이유를 깨닫는다!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3년 간 강제 수용된 청년 빅터 프랭클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책임감'에서 찾는다.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은 책임감과 함께 사랑과 시련이라고 말한다. 로고테라피라는 정신요법 학파를 만든 것은 책상 앞에서 연구한 이론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가 직접 수용소에서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로고테라피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확률은 증언자들의 고백과 얼마 남지 않은 문헌을 토대로 확인한 결과 20명 꼴로 한 명 정도였다고 한다. 수용소에서는 자신이 그동안 누렸던 지위, 재산, 학력, 경력은 누더기보다도 못한 것이다. 한 줌의 빵을 얻기 위해 가혹한 형벌을 받는 동료들을 무시해야 했으며 시체 더미를 두고서도 썩은 감자를 쥐기 위해 손을 뻗어야 했던 무감각한 존재가 수용소 안의 죄수들이다. 가스실로 가지 않기 위해 말끔한 모습으로 살아 있어야 한다. 생의 의지를 잃어버린 죄수들의 특성은 마지막 남은 담배 한 개피를 피워 버리는 일이다. 담배 한 개피는 멀건 수프지만 굶주린 배를 달랠 수 있는 수단이다.

 

수용소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일은 죽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강제 노동, 학대, 굶주림, 정신적 착락, 전염병, 모멸감 등 수 많은 악조건을 이겨내야 하는 일이다. 수용소에 처음 갖힌 이들은 '충격'에 휩싸인다고한다. 그후 무감각해지고 혹여나 수용소에서 풀려나 자유를 얻더라도 한 동안 몸과 정신이 자유에 익숙해지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삶의 의미를 어떻게 찾아낼 수 있었을까? 아버지, 어머니, 자녀들, 아내 모두 수용소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해냈고 죽었든 살았든 소식을 알 수 없지만 그들을 불러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또 한가지, 시련(고통)을 삶의 의미로 찾아냈다는 일이 놀랍다. 각종 시련 속에서 생명을 확인했고 하루하루 시련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자신이 살아 있음을 의지로 불태웠다고 한다. 가스실로 가지 않았음을, 고열로 시름시름 앓았지만 운 좋게도 지독한 작업반에서 열외된 것을 감사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냈다고 한다. 자살이라는 방법을 선택하는 이유는 불행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로고테라피 정신요법 학파는 환자들을 만나 삶의 의미를 찾게 해 준다. 환자들이 자신의 삶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다. 반대다. 지금까지 살아 온 삶이 자신에게 질문하도록 유도한다. 역질문법이다. 아내를 잃어버린 한 남편이 괴로워하며 상담을 요청해 왔을 때 역으로 질문한다. 만약, 당신이 죽고 아내가 살아 남아 있었다면 아내의 고통을 어떻게 할 거냐면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론을 인정하면서도 근본적인 해결점을 환자의 내면에서 찾게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 스스로 책임감있게 살아갈 질문을 던지면서 삶의 의미를 찾도록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도 간혹 살아가면서 권태를 느끼거나 자유로움 속에서도 힘듦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접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퇴직 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직에 있을 때보다 퇴직 후 금방 늙는다고 한다.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다. 그동안 충실하게 살아온 삶의 기록들을 자부심을 느끼기 보다 지나가버린 젊음을 부러워한다. 부러워하는 것은 지는 거다! 늙어가는 것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주위에서 도와주어야 한다. 로고테라피 정신요법에서 말하는 상담 기법이다. 적절한 긴장은 오히려 삶 속에서 활기가 된다고 한다. 정신적 긴장을 통해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는거다.

 

교사의 존재의 이유는 무엇일까? 두말하면 잔소리다. 학생들이 있기에 교사가 존재한다. 코로나바이러스-19 감염병으로 인해 사상 초유의 4월 개학이 현실화되었다. 학생들과의 만남이 지연되면서 내가 교사가 맞나? 라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이 없으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가르쳐야 한다는 책임감, 미워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학생들, 학생들을 중심에 두고 펼쳐지는 학부모와의 적절한 긴장은 나를 교사로 존재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교사로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찾게 해 준다. 바쁠 때 짬을 내어 쉬는 쉼이 꿀맛같은 쉼이 될 수 있는 것처럼 학생들과 한 교실에서 함께 북작거리면서 살아갈 때 퇴근 뒤의 쉼이 진정한 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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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교사를 꿈꾸다 - 기독교적 수업을 향한 한 교사의 평생 분투기
소종화 지음 / IVP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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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수업에 해당되는 것은?

 

1번 교과를 성경과 연결하여 가르치는 수업

2번 교과 시간에 성경을 가르치는 수업

3번 기독교사가 가르치는 수업

4번 기독교사가 삶으로 본을 보이는 수업

 

정답은? 모두 아니다. '기독교적' 수업의 최종 대상은 '학생' 이 아니라 '교사'다. 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바로 물리 교과를 가르치는 소종화 교사다. 그가 '기독교적 수업'이 무엇인지 20년 넘게 교직생활을 해 오면서 고민하고 연구한 결과를 책으로 펴냈다. 주위의 권유로 인해.

 

기독교 학교 뿐만 아니라 공립학교에서 기독교적 수업을 하기란 쉽지 않은 현실이다. 기독교 대안 학교라면 모를까. 기독교적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수업을 재구성한 교사의 기대에 못미치는 경우가 많다. 수업을 기독교적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교과 지식을 성경과 연결시키는 것을 말할까? 성경적 가치관을 드러내는 수업을 말할까?

 

교사는 학생의 변화된 삶을 기대한다. 학생의 전인적인 성장을 바라보며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기독교사도 마찬가지다. 근데 차이점이 있다. 기독교사는 '내'가 학생들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인정한다. '내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변화될 것이라는 자만을 꿈꾸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수업 안에 녹아 있는 지식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의 삶 자체가 온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왜곡된 지식과 죄로 얼룩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교과 연구를 게을리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교사는 지독스러울 정도로 수업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내가 가르치는 교과에 대해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1차적으로 교과 지식을 온전히 깨닫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나서 교과에 내재되어 있는 '지식' 자체가 과연 성경적인가? 를 살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지식' 도 성경적인 것이 있고 비성경적인 것이 있다는 말인가?

 

저자 소중화 교사는 '효'에 관한 지식을 예로 든다. 모든 종교가 '효'를 다루지만 종교마다 내재된 가치관이 다른 것이 사실이다.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든지, 환생을 바라며 효를 다루든지 말이다. '지식'을 성경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비성경적인 것을 구별한다는 말이다. '관용'이라는 예를 보자.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신념은 모든 종교에서 다뤄진다. 하지만, 신념과 신념을 가진 대상을 동일시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크게 다르다. '동성애'를 부정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동성애자'를 안하무인처럼 취급하는 것은 '성경적' 가치관과 배치된다. 기독교적 수업에서 '지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식이 기독교적이면 거기에 가치를 연결해서 가르칠 수 있다.

 

기독교적 수업이라고해서 윤리적 가치를 꼭 제시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적 수업이라고 해서 반드시 '능력' 이 있는 것도 아니다. 기독교적 수업은 가능할 수 있지만 기독교적 삶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교사와 학생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이다. 기독교적이라는 말은 하나의 정답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창조성이 담겨 있다. 따라서 자신이 선택한 관점만 옳다는 배타적인 태도는 금물이다. 과학으로 창조주의 존재를 밝히려는 여러 가지 관점들이 있다. 과학 연구에도 열린 자세를 가져야지 과학을 절대 신뢰해서는 안 된다.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분의 은혜에 속한 영역이기때문이다.

 

물리 교사인 저자는 각각의 이론이 어떤 주장을 하고, 한계가 무엇인지 알고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기독교적 관점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면 하나님은 부족한 가르침을 은혜로 채우실 것이다. 평범한 교사가 아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추구하며 수업을 넘어 삶에서 기독교사의 본을 보이고자 노력하는 그의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아 놓은 『좋은 교사를 꿈꾸다』를 기독교사 뿐만 아니라 교단에 첫 발을 디딘 초임교사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참고로 저자가 학부모 주도의 학교가 지닌 위험성을 말한 부분이 공감이 된다. 교육의 주체가 학부모이기는 하지만 교사의 권위를 인정할 때 좋은 교육이 이루어진다. 대한민국의 학교 현장에는 부모는 없고 학부모만 있다. 무슨 말인가? 학교를 통제하려고만 하는 학부모가 늘어나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원주의'라는 웃픈 이야기가 돌아다닌다. 민원에 힘을 쏟다보니 가르칠 힘이 없다는 이야기가 교사들 사이에서 나온다.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는 교사들에게 특별한 지혜가 필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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