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이들에게 배웁니다 - 여전히 교실에서 희망을 찾는 15년 차 초등교사의 교단 일지
손지은 지음 / (주)학교도서관저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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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무엇일까? 

 

학교 안에서 관계를 힘들어한다.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학생과의 관계도 힘들어한다. 교사라는 직업은 학생과의 관계가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학생과의 관계를 무척 어려워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학생과의 관계는 학부모와의 관계와 자동적으로 연결된다. 특히 학생의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학생과의 관계는 백발백중 학부모와의 관계다.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일수록 관계의 문제가 직업 만족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힘들게 교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직을 주저하지 않고 결심하는 이유도 관계 때문이다. 아니 학부모와의 관계 때문이다. 왜 학부모와의 관계를 어려워할까? 

 

학부모와의 연락은 좋은 일 때문에는 거의 하지 않는다. 대부분 다치거나 싸우거나 상처가 났거나 피해를 입었거나 등등의 안 좋은 일 때문에 하게 된다. 불편한 감정의 대립이 이루어진다. 상식이 통하는 대화가 된다면 크게 상처를 받지 않지만 일방적인 요구와 다를 바 없는 대화는 선생님들의 마음을 닫히게 하고 트라우마로 연결된다. 학생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각양각색의 특성이 있는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특성의 스펙트럼도 광범위해졌다.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난처하다. 웬만히 노련하지 않으면 대처하기 힘든 상황도 교실 속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학부모의 개입이 없다면 좋건만 자칫 잘못하면 신고의 대상이 되고 말기에 선생님들은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다. 

 

"오늘도 아이들에게 배웁니다"  

 

도발적인 문장이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것 자체가 힘든 선생님들에게는 아니 어떻게 아이들에게 배운다는 말이지?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싶다. 선생님의 시각 자체가 아이들 중심으로 바뀌지 않으면 도저히 흉내 낼 수조차 없는 문장이다. 교사인 나에게는 잘못이 없다, 문제는 아이들 탓이다, 그리고 학부모의 지나친 개입 탓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아이들은 단지 어른인 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할 대상이지 내가 배워야 할 대상이 결코 될 수 없다.  

 

저자의 교직관을 엿볼 수 있는 문장이 있다. 157쪽에 나와 있는 문장이다.  

 

"선생님이라는 이름에는 아이들의 삶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도 좋다는 허락이 담긴 것 같아서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사람의 세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응원을 보낼 수도, 잘못된 방향을 바로잡아 줄 수도 있는 귀한 자리이니까요"  

 

아이들의 삶에 집중하는 교사에게는 같은 문젯거리라도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 골칫거리가 아니라 관심거리이며 부담거리가 아니라 사랑거리가 된다. 문제 학생이 아니라 관심 학생이 되며 민원 학부모가 아니라 상담 학부모가 된다. 떠나야 할 교직이 아니라 해볼 만한 교직이 되며 일찍 퇴근하고 싶은 학교가 아니라 머무르고 싶은 학교가 된다. 교사는 실력보다 사랑이 먼저다. 똑똑한 교사보다 우직한 교사가 필요한 시대다. 영리한 교사보다 가슴이 뜨거운 교사가 소중한 시대다. 아이들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교사라면 학부모와의 관계도 진솔하게 대할 것이며 진솔한 마음과 생각을 엿본 학부모라면 무례하게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교감을 바라보는 교사의 생각도 이와 같지 않을까. 진정성 있는 말과 행동을 보이는 교감이라면 교사들은 함부로 하지 않는다.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보인다. 학부모도 마찬가지다. 교감의 태도를 보고 학부모는 행동을 한다.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며 정확한 답은 내밀지 못하지만 공감하는 진솔한 마음을 보면 한 발자국을 자신의 요구와 생각을 내려놓는다.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모두 상처 입은 사람들이다. 상처는 피해의 흔적이다. 피해를 입은 사람을 앞에 두고 잔뜩 옳은 소리를 한다고 들을쏘냐. 그저 어루만지고 보듬어 주는 것이 먼저다. 관심을 먼저 가져주는 것이다. 말하기 보다 듣기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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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선교사를 위하여 IVP 소책자 시리즈 9
데이빗 애드니 지음 / IVP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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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교회 청년부에서 책 읽고 나누는 시간을 일정한 기간을 두고 정기적으로 가졌다. 대략 한 달에 한 번 정도 책을 읽고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공부하고 선교단체에서 훈련받는 친구들이라 별도의 시간을 내어 책을 읽는 것이 쉬은 일은 아니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시간 범위 내에서 최대한 책 모임을 할 수 있는 분량의 책을 선택한 것이 IVP 소책자 시리즈다.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꽤 두꺼운 책을 압축해서 정리해 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전체적인 맥락과 상황은 다 살피수는 없더라도 그 책이 지니고 있는 주요한 부분은 요점 정리되듯이 기술되어 있어 시간적으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책을 충분히 읽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유용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올해의 마지막 책 모임으로 청년들이 선택한 책자는 '예비 선교사를 위하여' (IVP 소책자 시리즈 9)이다. 표지부터 심상치 않다. 비행기 꼬리에 달려 있는 흰색 바탕의 쪽지에는 자신이 가야 할 선교지를 적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든다. 이 책자의 핵심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떠나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하여 낯선 곳을 향해 과감히 떠나라!" 

 

선교사는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이다. 낯선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현지인 리더를 양육하여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한다. 타문화권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공감 능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비그리스도인들과의 사귐과 교제도 필수다. 언어를 넘어 자신이 부름 받은 곳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상황에 대한 총체적인 시야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타고난 감각을 가지기 위한 공부도 빼놓을 수없는 덕목이다. 무엇보다 선교사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타문화권에 있는 사라들을 돕기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교사로 부름 받기 전에 점검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다. 첫째는 주님과의 관계이며 둘째는 타인과의 관계다. 평소에 날마다 삶 속에서 주님과의 교제를 풍성히 누리고 있어야 하며 독립적으로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능력이 삶을 살고 있어야 한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을 실천해야 하며 성령이 주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타인과의 관계도 풍성해야 한다. 종교를 떠나 모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공감할 수 있는 자세를 체득해야 한다. 일부러 낯선 사람들에게 다가가 친해질 수수 있어야 한다. 훈련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나는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라는 직장이 낯선 타문화권 지역이라고 생각된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나도 종처럼 낮아지면 섬기라고 학교로 부르심을 받았다. 직책과 직위를 떠나 섬기는 역할은 변함없는 불변의 진리다. 책임지는 자리일수록 더 겸손하게 낮아지고 경청하고 구성원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과의 깊은 교제가 내 속에 있어야 한다. 자아가 꿈틀거리고 욕심이 드러나며 고집이 언제든지 머리를 내밀고 밖으로 나오려고 한다.  

 

나는 학교로 부름심을 받은 선교사다. 학교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교사, 행정직원, 공무직원, 회계직원, 봉사자, 학부모, 지역주민, 학교 방문자, 학생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 나의 삶의 방향이 분명해야 한다. 나침반은 흔들릴 수는 있지만 방향은 분명한 것처럼 나의 삶의 방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여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사고하고 살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닮아야 한다. 자존심 상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때로는 모욕을 당해서 좋다. 오히려 그런 자리를 찾아서 가야 한다. 우러러보는 자리, 존경받는 자리, 섬김을 받는 자리는 유혹의 자리다. 교만해지기 쉽다. 고생스럽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조금이라도 드러낼 수 있는 자리가 곧 내가 있어야 하는 자리다.  

 

나, 이창수는 학교로 보냄을 받은 선교사다!

말이 아닌 삶으로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선교사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선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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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을유세계문학전집 105
알베르 카뮈 지음, 김진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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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뫼르소는 끝내 사형 선고를 받는다. 끔찍한 단두대를 연상할 정도로 죽음의 목전에 이른 그는 감옥 안에서 자신의 최후를 머릿속에 그린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습관은 감옥 생활에서 기인한다. 감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하다. 활동 반경도 제한적이다. 자유가 엄격히 제한된 곳에서 그나마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만큼 자유로운 일은 없다. 엎어지면 코 닿은 비좁은 감옥이지만 생각의 나래를 펴면 반나절을 움직일 수 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칠 사소한 사물도 감옥 생활 안에서는 현미경으로 바라보듯 아주 촘촘히 생각해 낼 수 있다. 그래야만 감옥 생활을 버틸 수 있다. 

 

뫼르소의 사형 선고는 억울한 면이 많다. 고의적인 살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방인이기에 법정에서의 판정도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가 어울렸던 이들 모두 이방인이다. 실질적인 외국인이다. 프랑스 국적으로 살아가지만 옛 식민지 알제리가 고향이라는 이유만으로 파리지앵이 될 수 없었다. 피부색으로 억양으로 살아가는 방식으로 차별을 받아야 하는 이방인들은 결국 자신의 생사를 결정지을 법정에서도 소외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임을 그는 알았다. 결국 항소를 포기하고 만다. 

 

저자 알베르 카뮈도 알제리 출신의 이방인이었다. 그도 프랑스에서 살면서 뫼르소와 같은 소외를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법정에서 검사는 온갖 이유를 들이대며 뫼르소의 살인을 극악무도한 범죄로 몰아세운다. 심지어 그의 어머니의 죽음까지도 그의 성품과 행동에서 기인했다고 둘러댄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마치 가난한 사람들은 못 배운 사람들이라는 등식으로 연결 지어 그들의 행동마저도 불순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없지 않다. 이방인이라고 모두 범죄 유발자가 아닐진대 본토 프랑스의 가진 자들은 그들을 악의 축이라는 편견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았나 싶다.

 

출신지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나의 행동을 보고 사람 전체를 평가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오늘날 이방인은 소외받는 자들이 아닐까. 가난한 자, 병든 자, 실직자, 외국인 노동자, 독거노인, 힘 약한 어린이와 여자들. 이방인을 품는 사회적 분위기, 법 앞에는 누구나 소명 기회를 평등하게 가질 수 있는 법 체계가 정의가 구현된 사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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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을유세계문학전집 64
샬럿 브론테 지음, 조애리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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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나이로 해봤자 열아홉 아가씨임에도 그녀의 생각과 행동은 참 사려 깊다. 본인도 부모를 잃고 고아와 다름없이 자라 눈칫밥 먹으며 친척집에 전전긍긍하다가 쫓겨나다시피 한 기숙학교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고 수료 후 다시 기숙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청소년 시기를 보낸다. 그뿐인가. 조금 더 대우가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가정집 교사로 자청해서 들어간 뒤 성실성과 선함을 인정받지만 이룰 수 없는 사랑임을 알고 자진해서 포기한다. 그리고 다시 거지와 다를 바 없는 행인으로 돌아다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만난 먼 친척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이어간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그녀의 삶은 기구한 운명일 수밖에 없구나라고 독자들이 생각할 수 있겠다. 반전의 장면이 등장하는 곳은 이야기의 중반 이후부터다. 제인 에어의 먼 친척이 2만 파운드가 되는 거금을 그녀 이름으로 상속하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자 그녀는 졸지에 거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지만 그것마저도 자신이 걸인이었을 때 목숨을 구해 준 사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고 자신은 5천 파운드만 받게 된다. 순탄하게 인생이 진행되겠거니 하지만 사촌 오빠의 끈질긴 구애로 잠시 마음이 흔들리긴 하지만 십 대 후반의 제인 에어는 나이에 맞지 않는 명확한 판단력으로 이 또한 거절하고 정처 없는 곳으로 다시 발길을 옮긴다.  

 

이야기의 결론은 다행스럽게도 해피 엔딩으로 마쳐지기에 한숨을 돌린다. 한때 가정집 교사로 들어간 곳에서 그 집주인과 열애를 했던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며 수소문 끝에 사랑했던 이의 거처를 알게 되고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고 장애를 입은 옛 정인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700여 쪽의 상당한 분량의 스토리에다가 영국을 배경으로 한 19세기의 정서가 묻어 있는 소설임을 감안하고 읽더라도 오늘날 독자들에게 감동과 도전을 주는 지점은 아마도 자본주의와 외모 지상주의를 최고의 우선 가치로 삼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삶을 살아가는 제인 에어의 삶이 양심에 경종을 울려주고 있지 않나 싶다. 십 대 후반의 아가씨가 냉철하게 시대의 흐름을 좇지 않고 자신의 삶의 가치를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이를 떠나 그녀가 고생한 삶의 흔적에서 얻어낸 결과의 반응이라고 본다.  

 

상황에 손바닥 뒤집히듯이 자신의 가치관을 내팽개치는 사람들과 달리 자신이 옳다고 여겨지는 가치를 오랜 시간 동안 숙련의 시간을 통해 단련한 뒤 시험과 유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결단하는 의지를 제인 에어를 통해 보게 된다.  

 

고전은 한 인물을 통해 변하지 않아야 할 가치를 독자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준다. 

고전은 본질을 잃어버린 종교에 대해서도 실날하게 비판하며 종교 본연의 기능을 되돌아보게 해 준다.

고전은 사람 내면의 다양한 감정과 갈등들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을 이해하도록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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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인간 선언 - 기후위기를 넘는 ‘새로운 우리’의 발명
김한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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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급진적 기후운동가라고 불러야 할까. 그는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탈인간화되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인간성을 말살한 동물과 같은 사람이 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동물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탈인간 선언은 기후와 생태계를 망치는 인간의 노력들을 멈추자는 의미다.  

 

자본과 성장에 집중되어 있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기후 위기만큼 급박한 위기가 없는데 국가와 사람들은 말 뿐인 선언에 그치고 그 선언마저도 휴지 조각처럼 내어 던져버리는 지경까지 돼버린 현실을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그렇다면 왜 기후 위기를 위기로 체감하지 못할까? 

 

당장 성장해야 한다는 논리가 보이지 않게 서서히 죽어가는 지구 환경보다 우세하기 때문이다. 북극에 얼음이 녹는 일이 심각한 상태임에도 피부로 실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와는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은 거짓이다. 과학자들 대부분이 앞으로 기후를 더 위기에 빠뜨리지 않기 위한 데드라인으로 10년을 말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동안 지구의 생태계 시계를 멈추지 않는다면 기후 위기를 넘어 기후 재앙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럼에도 사람들 귀에 들리지 않나 보다.  

 

그럴싸한 말로 포장된 기후 정책도 위기를 실감 나게 하지 못하는 요인 중 하나다. 녹색 성장이라는 말도 친환경 정책처럼 보이지만 빛 좋은 개살구다. 녹색 성장도 성장에 방점을 두고 있는 정책이다. 말이 녹색이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친기업적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해양 생태계는 망가질 대로 망가 친 상태라고 한다. 어종의 다양성은 둘째 치고라도 어종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감소하고 있고 플라스틱 쓰레기로 몸살을 겪고 있다. 탄소 배출권은 허울만 있는 정책이다. 자국의 탄소 배출권을 줄이기 위해 저개발국가에 석탄발전소와 같은 다량의 탄소 배출이 일어나는 시설을 짓는다면 어떻게 탄소를 저감하고 줄일 수 있다는 말인가. 

 

아직 정치인들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이익이 눈앞에 있는데 미래에 다가올 지구 위기는 자신의 문제로 여기지 않고 있다. 단지 소수의 젊은 환경 운동가들만이 전면에 나서서 기후를 걱정하고 환경을 지켜내기 위한 행동을 몸소 실천에 옮기고 있다.  

 

<탈인간 선언>은 다소 불편하게 살더라도 후손들에게 살아갈 터전을 더 이상 파괴하지 말자는 선언이기도 하다. 사실 성장을 멈춘다고 해서 마이너스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아마존의 소수 부족들은 나눔의 미학으로 유명한 삶을 실천하며 살았다고 한다. 생선 10명 마리를 잡으면 세 마리를 이웃에게 건네는 것이 곧 열세 마리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구성원들이 이렇게 나눔의 미학으로 살아간다면 성장이 멈추더라도 모두가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경제는 성장만 한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성장을 멈추는 것이 곧 우리가 사는 길이다. 생태계와 공존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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