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인간 선언 - 기후위기를 넘는 ‘새로운 우리’의 발명
김한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를 급진적 기후운동가라고 불러야 할까. 그는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탈인간화되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인간성을 말살한 동물과 같은 사람이 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동물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탈인간 선언은 기후와 생태계를 망치는 인간의 노력들을 멈추자는 의미다.  

 

자본과 성장에 집중되어 있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기후 위기만큼 급박한 위기가 없는데 국가와 사람들은 말 뿐인 선언에 그치고 그 선언마저도 휴지 조각처럼 내어 던져버리는 지경까지 돼버린 현실을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그렇다면 왜 기후 위기를 위기로 체감하지 못할까? 

 

당장 성장해야 한다는 논리가 보이지 않게 서서히 죽어가는 지구 환경보다 우세하기 때문이다. 북극에 얼음이 녹는 일이 심각한 상태임에도 피부로 실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와는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은 거짓이다. 과학자들 대부분이 앞으로 기후를 더 위기에 빠뜨리지 않기 위한 데드라인으로 10년을 말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동안 지구의 생태계 시계를 멈추지 않는다면 기후 위기를 넘어 기후 재앙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럼에도 사람들 귀에 들리지 않나 보다.  

 

그럴싸한 말로 포장된 기후 정책도 위기를 실감 나게 하지 못하는 요인 중 하나다. 녹색 성장이라는 말도 친환경 정책처럼 보이지만 빛 좋은 개살구다. 녹색 성장도 성장에 방점을 두고 있는 정책이다. 말이 녹색이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친기업적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해양 생태계는 망가질 대로 망가 친 상태라고 한다. 어종의 다양성은 둘째 치고라도 어종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감소하고 있고 플라스틱 쓰레기로 몸살을 겪고 있다. 탄소 배출권은 허울만 있는 정책이다. 자국의 탄소 배출권을 줄이기 위해 저개발국가에 석탄발전소와 같은 다량의 탄소 배출이 일어나는 시설을 짓는다면 어떻게 탄소를 저감하고 줄일 수 있다는 말인가. 

 

아직 정치인들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이익이 눈앞에 있는데 미래에 다가올 지구 위기는 자신의 문제로 여기지 않고 있다. 단지 소수의 젊은 환경 운동가들만이 전면에 나서서 기후를 걱정하고 환경을 지켜내기 위한 행동을 몸소 실천에 옮기고 있다.  

 

<탈인간 선언>은 다소 불편하게 살더라도 후손들에게 살아갈 터전을 더 이상 파괴하지 말자는 선언이기도 하다. 사실 성장을 멈춘다고 해서 마이너스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아마존의 소수 부족들은 나눔의 미학으로 유명한 삶을 실천하며 살았다고 한다. 생선 10명 마리를 잡으면 세 마리를 이웃에게 건네는 것이 곧 열세 마리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구성원들이 이렇게 나눔의 미학으로 살아간다면 성장이 멈추더라도 모두가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경제는 성장만 한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성장을 멈추는 것이 곧 우리가 사는 길이다. 생태계와 공존하는 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