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 - 황혼이 깃든 예술가의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분투기
윌리엄 E. 월리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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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 같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 등 만능 엔터테이먼트의 대명사가 바로 미켈란젤로다. 한 분야에서 정상에 오르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는 그야말로 팔망미인이라는 말이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다방면에서 조예가 깊었던 것 같다. 더구나 전 생애를 걸쳐 한 우물을 파듯 신명을 다해 자신이 해온 과업들에 집중하며 생애를 마감한 이가 미켈란젤로말로 또 있을까 싶다. 90세 가까운 나이에 고요히 잠들기까지 그는 한시도 쉬지 않고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예술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은 미켈란젤로의 생애 후반기를 실재감있게 다룬 책이다. 허구의 이야기를 실제 있는 것처럼 기록한 책이 아니라 실제 일어난 이야기들을 사실적 근거에 비추어 한 인물에 집중해서 쓴 역사서이기도 하다. 사실적으로 기록할 수 있었던 근간에는 미켈란젤로와 그의 조카 리오나르도와 주고 받았던 200여통의 편지가 이를 증명한다.

 

서로 간의 의사소통의 수단이 발달되지 않았던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서신만큼 확실한 도구가 또 있었을까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인물을 조명할 때 사용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서신이다. 유배지에 있던 다산 정약용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는 유배 중에 다산의 생활 상을 고스란히 파악할 수 있는 자료다. 조선 후기 정조 임금이 신하들과 주고 받았던 편지 또한 당시 복잡 미묘한 정치 상황의 실타래를 풀어낼 수 있었던 단서가 되었다. 이처럼 편지에는 사람의 속내가 진솔하게 담겨 있기에 인물을 평가하고 시대적 상황을 진단하는데 약방에 감초같은 역할을 한다. <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에서도 미켈란젤로가 다양한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는 그의 생애를 조명하는데 아주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다.

 

"건축물의 각 부분은 인간 내부의 각 장기와 비슷합니다. 인간의 신체, 특히 해부학에 통달하지 못한 사람은 이러한 진리를 깨우치지 못할 것입니다" (320쪽)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 모형을 만들라고 촉구하는 로돌포 피오 다 카르피 추기경에게 미켈란젤로가 보낸 편지의 일부분이다. 미켈란젤로의 건축가로써의 가지고 있는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대목이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미켈란젤로가 주로 사용했던 건축의 재료는 돌이었다. 커다란 양질의 돌을 찾아내는 일, 설령 돌을 찾아냈더라도 그것을 작업 장소로 운반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혼자서 하는 작업이 아니라 작업반장, 석공들과 함께 팀을 이루어 몇 년 아니 몇 십년을 동고동락하며 건축해야 했던 대공사였기에 건축을 지휘하는 미켈란젤로의 입장에서는 중심을 잡아주는 '철학'을 놓치질 수 없었다.

 

최종적인 건축 지시는 교황에 의해 움직여졌지만 실제적으로 예산을 집행하고 건축가를 좌지우지 할 수 있었던 세력은 교황청 내의 파브리카라는 임원조직이었다. 그들에게 밋보였을 경우 여차하면 건축의 전 과정을 수정해야 하는 일도 있었기에 미켈란젤로는 정치적 감각도 늘 긴장감을 가지고 있어야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 같은 경우는 전임자가 이미 모형으로 건축의 전반적인 과정을 확정해 놓았던 것이라 더더욱 힘든 작업 중의 하나였다. 당시 건축 기술을 총동원하더라도 돔 형태의 웅장한 건축물을 도심지 한 가운데 세우는 일은 논란의 소지가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켈란젤로는 그를 필요로 하고 오라고 하던 곳을 다 뿌리치고 소명의식 하나로 죽음의 직전까지 공사장을 둘러보며 애정을 놓지 않았다.

 

"조각은 기도의 한 형태요, 예술가를 하느님 가까이에 다가가게 하는 수단이었다. 그것은 창작을 통해 구원을 추구하는 행위였다" (384쪽)

 

미켈란젤로가 일하는 스타일은 파격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의 말로 이야기한다면 과감한 혁신을 추구했다. 설계와 시공의 모든 세부 사항을 직접 챙기는 실무적 건축가였을 뿐만 아니라 놀라운 것 중의 하나는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건축 중에도 계속해서 수정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집스럽게 자신의 것을 고수해갔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을 뒤집는 부분이다. 임기응변 방식의 공사를 진행했으며 설계와 구조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그때그때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역시 건축재료인 '돌' 에 이유가 있었다. 돌덩어리를 깎아내는 작업은 작업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변수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돌덩어리를 깍아들어가면서 흠집이 난 부분들이 발견될 경우 수정이 불가피하고 반대로 애초에 구상했지만 조각하면서 좀 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갈 수 있는 부분이 있기에 '임기응변' 이라는 말이 어떻게 보면 아주 적절한 방법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즉 미켈란젤로가 건축한 건물들의 대부분이 곧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성장 과정이 보인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 연유된 까닭인 것 같다. 우리도 정체되어 있어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성장하는 과정이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꿈틀리는 유기체처럼 보여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임기응변식'의 현장 실무형 감각을 키워가는 일이 필요할 듯 싶다. 80대노구의 몸을 이끌고 60미터 높이의 당대의 최고의 건축물을 만들어갔던 미켈란젤로를 보더라도 우리는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니다.

 

미켈란젤로의 후반기의 삶이 어찌보면 젊었을 때보다 더 조명을 받는 이유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에게 요청하는 작업량이 점점 많아졌다는 점이다. 80대의 노인에게 중요한 작업을 요청하는 이들이 많았다는 점은 지금 생각해보더라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지혜롭게 그 많은 양의 작업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권위를 휘둘렸다는 점이다. 권위를 가지지 못했더라면 부족한 작업 시간을 메울 수 없었을 것이다. 권위는 그냥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미켈란젤로 본인이 스스로 교황과 교황청 임원들로부터 찾아낸 것이다. 권위는 일을 하기 위함이어야 한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실무적인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권위가 필요하다. 권위적인 모습은 지양해야하지만 실질적인 권위를 찾아오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상당히 많은 양의 일들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권위는 선택사항이 아닌 듯 싶다.

https://blog.naver.com/bookwoods/222599016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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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코리아 2022 -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의 2022 전망
김난도 외 지음 / 미래의창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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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소비 트렌드를 미리 예측한 결과보고서를 출간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소비자들의 시시각각 변화는 트렌드를 일목요연하게 분석해 놓았기에 많은 이들이 구독하고 있는 것 같다. 역시나 2022년 소비 트렌드를 분석한 책도 출간 한 달도 채 안 되었는데 벌써 15쇄를 찍었다. 말이 15쇄이지 정말 불황 중인 출판계에 있어서는 드문 케이스다. 나도 얼마 전 (2021.12.15.)에 책 한 권을 냈다. <교사여서 다행이다> 1쇄를 찍고 판매 현황을 살펴보지만 책 한 권 팔려나가는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진다. 아뭏든 <트렌드 코리아 2022>는 제목부터 잘 뽑아낸 것 같다. 최근 교육 출판사인 에듀니티에서도 위와 비슷한 제목으로 책을 뽑아냈다. <대한민국 교육 트렌드 2022>. 이 책도 비선호 부문인 교육 분야에서 제법 히트를 치고 있다.

 

먹고 사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있을까? 사람들의 소비 성향도 생애별로 다르다. 고정적인게 아니라 유동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 변화의 폭이 너무 크다는 점이 주요 포인트다. 최근에는 MZ세대가 주요 소비층으로 성장하고 있으니 기업마다 그들의 욕구를 분석하고 가장 알맞은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사실 실제 돈주머니는 X세대가 쥐고 있다! 2020년부터 팬데믹 현상이 빚어낸 소환된 미래에 기업들이 생존을 걸고있다. 앞으로도 감염병은 언제 어디서든지 나타날 수 있기에 소비의 패턴도 분명히 대전환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는 10개의 트렌드를 제시하고 있다. 그 중에서 내게 와 닿는 트렌드가 몇 가지가 있다. 특히 교육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나는 직접적으로 소비 트렌드의 영향을 받지 않으나 주로 만나는 대상들이 학부모, 학생, 동료 교직원들인지라 전혀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10개의 트랜드 중에서 '나노사회'에 집중하게 된다. 집단보다는 개인을 강조하는 사회, 공동체성보다는 개별성에 주목하는 사회, 개인 중에서도 더 쪼개져 1인 중심, 1인 중에서도 시시각각 변화는 개인의 심리적 변화에 주목한 맞춤형 사회가 나노사회라고 한다.

 

"이해관계자 사이의 합의 없이는 아무리 탁월한 전략이라도 무용지불에 불과하다" (115)

 

개개인별로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는 전제 없이는 조직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나노사회에서는 더 이상 회사나 출신 학교의 인간관계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 모임에서 본인의 취향과 지향하는 바가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서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 (177)

 

앞으로 동문회 중심의 모임들이 약해질 것이다. 당장 MZ세대만 하더라도 출신 학교를 따지는 빈도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혈연과 지연, 학연을 따지기 보다 본인과 취향이 비슷한 사람이 가장 가깝게 지낼 사람이라는 인식이 우세다. 기금을 마련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동문회에서 일괄적으로 걷는 회비에 부정적인 내색을 비추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모임에는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지만 단지 같은 학교 출신이라고 해서 기금을 내는 행위에는 참여도가 급격히 줄어들 것 같다.

 

교육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급격한 출생아 감소로 학령 인구가 줄어들고 있으니 더더욱 학생 한 명 한 명이 귀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학생 개인에게 맞춤식 교육을 요구할 것이고 학부모 개인들의 목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교사에게, 학교에게 요구하는 바가 더욱 구체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의 패턴도 나노사회로 나아가지만 교육 분야도 '나노교육'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머니러시'는 돈을 추구하는 사회라는 뜻이다. 졸업을 맞이하여 학생들의 장래 희망을 보면 씁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멀리 내다보는 비전과 가치가 녹아져 있는 장래희망이 아닌 지금 당장 먹고 살 것을 걱정하는 마음이 학생들의 가치관에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밖에 라이크커머스는 SNS 안에서 '좋아요'를 누르는 것이 곧 생산과 소비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개별 생산, 개별 소비의 추세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내러티브 자본은 기업이나 개인이 특별하게 드러낼 자신들만의 서사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학령 인구의 감소로 대학교가 먼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대학교별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대학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어필해야 한다. 대학교 뿐이겠는가. 교원들에게도 적용되지 않을까. 자신만의 노하우를 갈고 닦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시대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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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인디스쿨 - 어쩌다 14만 초등교사 커뮤니티가 되어버린 인디스쿨, 그 20년간의 실험기
인디스쿨 20주년 기념 아카이브 팀 지음 / 진저티프로젝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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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14만 초등교사 커뮤니티가 되어버린 인디스쿨, 그 20년간의 실험기" (책의 부제)

 

회원 모두가 주인공인 커뮤니티에는 특별한 비밀이 있다. 자발성, 소통이 보장되는 광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품어주는 포용성, 그리고 '인디'라는 말로 대표되는 독립적인 개체성. 이것이 14만 초등교사들을 흡입하는 이유다. 광고 수입 없이 회원들의 자발적 회비로 운영되어 왔고, 대표라는 역할도 닉네임에 가려 두드려지지 않고 임기가 끝나면 다시 회원으로 돌아가는 수평적인 구조를 지향하고 서버를 운영하는 난이도 높은 기술도 외부에 의탁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들 중 재능을 기부받아 운영하는 웹싸이트가 바로 인디스쿨이다.

 

교실주의를 타파하고 과감히 교실 문을 열어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우리의 생각을 공유하고 자료들을 조건없이 나누자는 자발적 운동은 20년 간 학교 문화를 바꾸고 교사들을 살리며 결국은 소리 없는 교육운동을 일으켰다. 수 많은 회원들의 목소리를 일일히 듣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황금별로 칭하는 운영진들이 그들의 의견을 패싱하지 않고 경청하는 모습에서 큰 도전을 받는다.

 

단위학교에서 조차도 다양한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는 일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지칠 수 있는데 14만 회원들의 독립적인 개체성을 보장하고 다양한 생각들을 받아내는 일이 과연 쉬운 일인가라는 의문점이 들지만 20년 간 이런 일들을 해 온 커뮤니티의 방향이 결국은 20년 간 장수의 비결이 되었으며 앞으로도 영리적인 단체들보다 더 영향력 있는 커뮤니티 모임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특출한 몇 명의 운영진들이 이끌어가는 모임은 커뮤니티라규 할 수 없다. 모두가 운영진이 될 때 자발성이 나오고 무한 책임감을 갖게 된다. 밤잠을 지새우며 만든 자료를 아무런 보상없이 공유하고 동료 교사들이 남긴 응원과 감사의 댓글에 피곤함을 훌훌 털어버리는 수 많은 회원들이 있기에 지금도 견고하게 인디스쿨 커뮤니티는 경력 교사 뿐만 아니라 새로게 학교로 발을 들여놓는 신규 교사들의 의지처가 되고 있다.

 

단위 학교가 이런 역할을 하지 못했기에 수 많은 교사가 학교 밖 인디스쿨에서 목마른 갈증들을 해소해 갔다. 씁쓸한 현실이지만 다행히도 인디스쿨이 존재하기에 지금도 고민과 도전과 변화를 쏟아내고 시작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 나이 어리다고 무시하지 않는 곳, 경력이 부족하다고 낮게 보지 않는 곳, 이상한 생각 조차도 끝까지 들어주는 곳,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곳. 그곳이 인디스쿨이기에 입소문을 타고 인디스쿨로 가입하고 꾸준히 방문한다. 학교도 그런 곳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학교란 건물이기도 하지만 교직원 개인 개인이 곧 학교라고 본다. 선생님들이 편하게 물어올 수 있는 대상, 실험적인 시도조차도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는 사람, 고민과 갈등을 들어주는 사람이 된다면 학교는 참 행복한 곳이 될 수 있다. 독립성을 보장해 주는 학교, 그러면서도 함께 하는 공동체성을 꾸준히 유지해 갈 수 있는 학교라면 즐겁고 편하게 출근할 수 있는 학교가 되지 않을까 싶다.

 

2022년 1월 1일, 새해 <오늘도, 인디스쿨>을 읽으며 새로운 마음을 가져 본다. 특히 젊은 선생님들이 학교에 무엇을 바라는지, 고민하는 점 등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창수의 교감일기, 2022-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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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불태우다 - 고대 알렉산드리아부터 디지털 아카이브까지, 지식 보존과 파괴의 역사
리처드 오벤든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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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과거로 그랬지만 앞으로도 지식을 보존하고 전수하는 도구로 흔들림 없는 존재감을 드려낼 것이다. 물론 책이라는 물성은 좀 더 다양화 될 것이다. 종이로 된 책 이전에 진흙 위에, 파피루스 풀 위에, 양피지 위에 문자가 기록되었고 그것을 책이라 불렀다. 앞으로는 디지털화된 기록들도 당연히 (전자)책 등으로 불리워질 것이다. 

 

책이 가지고 있는 권위는 시대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분명한 것은 겉으로 보여지는 지식 창고 이상의 힘과 가치를 나타낸다. 오늘날에도 각 국가들은 자국이 보유한 지식의 양을 뽐내기 위해 저마다 '국가도서관'을 웅장하게 짓고 다양한 형태의 지식들을 보존, 보관, 축적해 가고 있다. 더구나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더욱 돋보이는 희귀한 문서들을 하나라도 더 소장하기 위해 막대한 정보력을 동원하여 수집하거나 찾아내고 있다. 과거의 역사를 보더라도 책은 단순히 종이로 된 물건 그 이상의 가치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책을 불태우다>라는 책 제목처럼 책을 불태우는 행위는 곧 종이를 소각하는 행위가 아닌 책에 깃들어있는 소중한 정신적 자산, 문화적 가치, 국가의 상징, 국민으로 하나로 모으는 자부심 등을 짓밟는 행위라고 저자는 말한다. 

 

헨리8세에 의해 영국의 종교가 가톨릭에서 영국 국교회로 바뀌게 되면서 기존의 수도원 내부에 존재했던 각종 문헌들과 책들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버렸다. "영국에서만도 수만 권의 책이 불타거나 찢어져 파지로 팔렸다" (91) 당시 제본업자들에게는 파지로 팔린 고서들이 새로운 자재가 되었다. 피해를 입는 쪽이 있으면 어느 한 쪽에서는 이익을 본다. 19세기 당시 신생국가였던 미국에게 치명적인 손실을 주었던 영국은 제일 타켓이 바로 '미국의회도서관'이었다. 벨기에의 국가 상징이었던 루뱅대학교 도서관은 독일에게 있어서는 제일 첫번째 공격 목표물이었다. "장서를 잃어버린 것은 대단한 보물을 잃어버린 것보다 더했다" (187쪽) 나치스 정권 치하 유대인 박해는 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책은 유대인들의 종교와 문화에서 언제나 중심"이었기에 나치스는 유대인들의 책들을 모조리 찾아내 분서했다. 

 

이처럼 도서관과 기록물의 파괴는 특정 문화를 파괴하는 일이었다. 우리의 역사를 보더라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벌어졌다. 조선왕조실록과 관련된 이야기다. 임진왜란 당시 흩어져서 보관 중이었던 실록들이 모두 잿더미가 되고 유일한 살아남은 것이 곧 전주사고에 보관했던 실록이었다. 훗날 강화도 정족산성에 보관 중이었던 실록은 병인양요 때 또다시 참화를 겪어야했다. 

 

책은 단순히 책이 아니라 국가의 자존심이며 정신을 담아낸 상징적인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다. 아쉬운 대목 중의 하나는 국가의 경제가 어려워질 때마다 도서관을 지원하는 예산 등이 손쉽게 삭감되는 경우가 빈번하다.단기적으로보면 큰 도움이 되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으니 예산 지원을 주저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세계 역사에서 보다시피 도서관 지원이 활성화되었을 때 국가가 흥왕하고 많은 인재들이 발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적의 사기를 꺾는 최고의 방법이 도서관을 파괴하는 일이며 책을 불태워 버리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한다. 

 

https://cafe.daum.net/chang1999/GH9v/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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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마 지음, 양미래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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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팬데믹을 가상하여 쓴 소설이다. 이름하여 '선 열병' 

 

"선이디오이데스라는 균이 선전 지역에서 생겨난 이후 중국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중략) 선 열병은 중국 내 경제특구인 제조업 밀집 지역의 공장에서 우연히 변종을 일으킨 진균 포자가 온갖 화학 물질이 과하게 뒤섞인 혼합물을 통해 증식한 결과였다" (342쪽)

 

소설의 중심 무대는 미국 뉴욕이다. 인구가 대다수 밀집 되어 있는 거대한 도시 뉴욕을 배경 삼아 눈에 보이지 않는 균이 사람들에게 침투하여 이성을 잃게 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 주인공 캔디스 첸은 이민자 2세다. 성경을 판매하는 직업을 가진 그녀는 중국과 홍콩 등지를 오고가며 성경이 잘 인쇄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도 병행한다. 본사는 당연히 미국 뉴욕에 있다. 소설의 스토리 전개는 중첩되어 진행된다. 선 열병에 감염되어 살아남은 소수의 미국인들이 마지막까지 생존하기 위해 이쪽 저쪽을 옮겨다니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그러다가 갑자기 선 열병이 감염되기 전의 장면들을 주인공 캔디스 첸의 발걸음에 따라 이야기가 소개된다. 감염병이 창궐하여 마지막까지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장면과 감염병이 막 시작되었을 때 반신반의하며 일상의 생활을 유지해 가는 장면들이 번갈아 가면서 소개된다. 

 

가상 상황을 전제로 씌여진 소설이긴 하지만 그냥 넘길 수 없는 것은 팬데믹이라는 소용돌이 속에 아직도 우리가 허우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계열의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2년 넘게 아니 앞으로 3~4년 정도까지 거뜬히 지속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비추어 볼 때 감염병은 이제 우리 사람들에게 가장 피부로 와 닿는 관심사가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과거에 있었던 흑사병, 콜레라, 독감, 사스가 옛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이야기며 미래의 이야기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소설 속 가상의 감염병인 '선 열병' 조차도 그저 상상 속의 질병이 아닐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게 된다.

 

독자들이라면 아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렇지도 않게 피난가지 않고 일상의 삶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목숨의 위태로움을 미리 깨닫고 가족들과 함께 일치감치 안전 지대로 옮기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거대한 대도시가 서서히 죽음의 도시로 탈바꿈하고 이성을 잃은 걸어다니는 시체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을 볼 때 섬뜩함을 넘어 인생의 허무함을 생각하게 된다. 좀 전까지만 하더라도 패션의 일번지이라 원활한 경제 중심지였던 뉴욕이 약탈의 중심지가 되고 폐허가 되리라고는 누가 생각할 수 있겠는가. 감염병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그렇게 만들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눈에 보여지는 전쟁보다 보여지지 않는 감염병이 더 무서운 세상이다. 

 

감염병을 이슈로 다른 소설이지만 내게는 또 한 가지 소재가 눈에 들어왔다. 성경을 인쇄하는 과정 속에 불공정한 과정들이 개입되고 있는 상황을 그려낸 부분이다. 

 

"우리가 당신네 나라의 유럽-미국 기독교 이념을 선전하기 위한 상징적인 텍스트를 제작하고 있는데 당신네와 당신네 고객들은 이 일에, 이 중요한 과업에 드는 제조 단가를 한 푼이라도 줄이려고 공격적으로 협상을 하고 있고, 인쇄 건마다 납품은 재촉하면서 인건비는 매년 삭감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140쪽)

 

작가는 어떤 의도에서 이런 부분들을 소재로 가져 왔을까? 공정무역에 관한 부분이다. 성경을 인쇄하는 과정에서 인건비가 제대로 책정되고 있지 않는 부분, 제조 단가를 줄여 이익을 챙기려는 부분, 협상이라는 이름으로 인건비를 삭감하는 부분들이 읽는 내내 불편했다. 물건 값이 무조건 싸다고 해서 좋은 것 아닌 것 같다. 정당한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이유는 물건을 만드는 데 소모된 인건비를 제대로 보상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는 인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마저 선 열병에 감염되었다. 공장을 운영하기 어려워졌고 결국 성경 인쇄도 중단되었다. 이처럼 감염병은 최악의 경우 모든 경제를 올스톱할 수 있음은 엿볼 수 있다.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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