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 예리한 시각과 탄탄한 짜임새로 원작을 유려하게 풀어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조종상 옮김 / 도서출판소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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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읽기는 언제나 후회되지 않는 선택이다. 단지 고전 읽기를 주저할 뿐이다. 고전은 깊은 우물과도 같다. 한 번 길어 마시기가 어렵지 갈증을 해갈하기에 이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살다보면 어려움에 직면하곤 한다. 승승장구하다보면 나 잘난 맛에 취해 자칫 교만하기 쉬워진다. 교만함은 다른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집을 굽히지 않고 자기만 옳은 줄 알고 설쳐대는 모습이 아닌가 싶다. 교만의 늪을 빠져 나오는 방법 중에 하나는 고난을 만나는 것이다. 아니 고난을 맞이할 수만 있다면 당장은 속이 쓰리고 힘에 겨워 지쳐 지낼 수 밖에 없지만 나중을 돌아보면 차라리 고난을 만난 것이 복이다.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고 겸손하게 만드니까 말이다. 

 

<노인과 바다>는 젊은이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다. 청년들이 읽어야 하고 자신의 인생 속에서 정상에 올라간 이들이 필히 읽어야 하는 책이다. 이 책의 표지에 적혀 있는 '85' 라는 숫자는 괜히 써 있는 숫자가 아니다. 한 때는 팔씨름 대회에서 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팔 힘을 가졌던 청년이었지만 지금은 조금만 무리하더라도 손에 쥐가 날 정도의 노약한 노인이 그가 85일간 아무런 소득 없이 바다에 나갔다가 힘없이 돌아온 날을 말한다. 만선을 꿈꾸며 나갔지만 85일 동안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돌아왔을 때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젊었을 때는 원양 어선을 타기도 했고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고기도 많이 잡아본 경험이 많은 그였지만 세월은 속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보다 멀리 나간 그날 바로 기적이 찾아온다. 생각지도 못한 덩치 큰 물고기를 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뿐.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피 냄새를 맡은 상어떼의 공격으로 앙상한 물고기 뼈만 매단 체 항구로 돌아온다. 우리의 삶과 비슷한 부분이 있지 않은가!

 

3월 새학기를 맞이하는 어느 날 나도 만선을 꿈꾸며 돛을 띄울 계획이었다. 작년에 한 해 정도 살아봤으니 올 해에는 비교적 축적된 경험으로 자신감 있게 헤쳐 나갈 꿈을 간직했다. 차곡차곡 계획한 일들이 진행되고 왠지 술술 잘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을 때까지는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만큼은 가벼웠다. 하지만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오류를 발견하고 어찌 돌이킬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그야말로 마음 속에 무거운 돌덩어리가 쿵 내려 앉는 기분이었다. 나 혼자만으로는 도저히 치울 수 없을 만큼의 근심의 돌덩어리는 좀처럼 움직일 기미가 안 보인다. 결국 실수가 만회되도록, 만에 하나의 극단의 결과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할 뿐이다. 사람은 늘 실수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완벽한 것 같지만 늘 허술한 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물고기 뼈만 앙상하게 매달고 돌아온 노인의 심정도 이와같이 않았을까? 마을 사람들에게 뭐라고 얘기할꺼며 사흘간 사투를 벌인 결과가 고작 상처난 자신의 몸뚱아리 뿐이니. 그러나 유일하게 노인을 알아주고 위로해 주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청년 마놀린이다. 내가 꼬인 일때문에 혼자 동굴 속으로 빠져 들어갈 때 낚시 줄을 던져 건져내주는 이가 있으니 바로 아내다.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켜 준다. 소심한 나를 다시 일으켜 준다. 결과와는 상관없이 상어와 사투를 벌인 노인을 걱정하고 일으켜세워주는 청년 마놀린처럼 말이다. 

 

우리의 인생이 바다라면 우리는 '노인'과도 같다. 바다는 고요한 것 같지만 잔인한 상어가 늘 존재한다. 노인처럼 백전노장이라도 어찌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다. 자책하지 않기를. 실수가 실패가 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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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유
이향규 지음 / 창비교육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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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우리 학교에 신규 선생님 다섯 분이 발령 받아 왔다. 12학급에 신규 교사 5명은 상당이 높은 비율에 속한다. 신규 선생님 면면을 보면 놀라운 사실이 있다. 춘천, 서울, 전주, 인천, 진주교대 등 전국 각지에서 이곳 삼척까지 왔다.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에 오다보니 숙소 잡을 걱정이 큰가 보다. 새학기를 준비하는 사흘동안 거의 모두 원룸이든 투룸이든 보증금에 월세든 전세든 뚝딱 숙소를 정했다고 한다. 신속한 결정에 또 놀랐다. 만약 나라면 어리벙벙해서 누군가에게 부탁을 했을터인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쉽게 정보를 찾아내고 정확하게 결정을 내린다. 그러면에서는 나이 오십줄에 들어선 나보다도 지혜롭고 어른스럽다.

 

후아유? 아마도 신규 선생님들이 가장 많이 들었거나 눈짓으로 무언의 질문을 받았던 것 중에 하나가 이 질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신규 선생님들이라 딸랑 교육지원청으로부터 받은 정보는 핸드폰 번호가 전부였다. 발령이 터졌을 당시 출장이었던 나를 대신해서 교장님께서 직접 손수 한 명 한 명 전화를 걸어 친절하게 다음 주에 있을 일정에 대해 안내해 주었을뿐만 아니라 각각의 특징과 신상을 대충 파악해서 나에게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당장 어떤 학년을 맡겨야 할 지, 무슨 역할을 맡겨야 할 지 고민이 되었다. 첫 대면하는 당일 날 나뿐만 아니라 기존에 있던 교직원 모두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직접 꼬치꼬치 물어보는 것도 실례인지라 차차 알아가면 되겠지라고 생각을 하면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프로그램 중에 다행히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 이 있어 이번에는 커다란 이미지 카드를 펼쳐 놓고 자신과 연관된 사진 2~3장을 골라 설명하게끔 했다. 물론 참석한 모든 교직원들에게. 그래도 가장 집중이 되었던 시간은 신규 선생님들이 나와서 직접 소개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연스럽게 자신이 잘 하는 것, 가정 환경, 취미와 기호 등이 술술 터져 나왔다. 5분 내외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표정과 말투, 소개하는 내용에서 꽤 많은 정보를 취득할 수 있었다.

 

신규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생소하고 어색했었을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학생이었고 또래들과 함께 지냈던 시간이 많았는데 갑자기 교장선생님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근무하게 될 학교에서 어색한 만남을 가지니 뭐라고 얘기는 못하더라도 긴장감과 함께 온 몸의 근육이 경직되지 않았을까 싶다. 자리가 바뀌면 아무리 경험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어색해 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 같다. 사실 나도 작년에 이곳에 처음 와서 새로운 분들을 만나면서 무척 긴장했던 기억이 있다. 20년 이상 학교 현장에서 근무했는데도 불구하고 근무 장소가 바뀔 때는 뭔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렇다면 신규 선생님들은 더 이상 말해서 무엇하랴. 사흘 간 진행된 새학기 준비는 그야말로 문화 충격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이 만나게 될 학생들을 상상하며 학교에 놓인 환경과 실정에 맞게 교육과정을 준비하기 위한 사흘 간의 모임이 몸은 와 있으나 아마도 정신은 혼돈 속에 머물지 않았나 싶다.

 

신규 선생님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다시 고민하게 된다. 작년에도 이런 경험을 해 봤고 제작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해 봤지만 매년마다 새롭다. 아니 작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과거의 경험만으로만 충분치 않다. 나는 이미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 익숙해 진 사람이고 새로 부임 받아 온 신규 선생님들은 모든 것이 새로운 사람이다. 그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단지 곁에서 지켜보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친절하되 적당히 거리를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과도한 친절은 거부감이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뭔가 벽에 부딪쳐 도움을 요청해 올 때 그만큼만 가까이 다가가야지 무턱대고 다가가면 독이 될 수 있다.

 

다른 별에서 살다가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다. 그들이 향유해온 문화와 내가 살아온 문화는 현격히 차이가 난다.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그들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좀 더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의 입장에서는 다 아는 내용일지라도 그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으므로 안내를 할 때에는 최대한 자세하게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상대는 내가 자란 문화에서 자연스럽게 여기는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후아유>는 결혼 이주민이 된 한국 여성의 자서전적 이야기다. 본인이 이주민이 되어보니 다문화 가족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우리 삶 속에 뿌리내리고 있었는지 실감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서로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처럼 서로 자리를 바꾸어보는 삶의 계기가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백날 존중과 배려를 한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들 실효성은 떨어진다. 신규 선생님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더라도 금방 잊혀질게 뻔하다. 만약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발령이 나서 타시도에 가게 되어 근무하게 된다면 분명 그분들의 심정을 즉각 공감하게 될 터인데.... 결혼 이주민 여성에 관한 이야기인데 책을 읽으며 신규 선생님들, 멀리서 전입해 오신 선생님 생각이 났다. 교감으로써 그분들과 어떻게 생활해야 할 지 고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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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살아보자 - 풀꽃 시인 나태주의 작고 소중한 발견들
나태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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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도 봄 맞이 한창이다. 오미크론에 대비하여 등교 상황도 준비하고 있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교직원 확진에 대비하여 업무가 끊기지 않도록 다양한 대안들을 마련 중에 있다. 지난 한 주간에는 사흘간 꼬박 교육과정을 톺아보고 새롭게 맡게 될 학년 담임도 정했다. 모두를 만족시키기가 어렵기에 최대한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며 새학년살림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할 지 그림을 그렸다. 현재까지는 스케치만 한 정도다. 앞으로 색을 입히고 보완하고 그림을 완성하기까지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하되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균형있게 작품이 완성해 가도록 지원하고 조율하는 역할이 각 학교의 교감이 해야 할 역할이 아닌가 싶다. 

 

<봄이다, 살아보자>의 저자 나태주 시인도 한 때는 학교의 교감으로 살았을 것이다. 교장으로 퇴직했으니 말이다. 그가 한 때 전문직으로 교육청 장학사로 복무할 때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며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학교로 복귀했다는 이야기 글을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순간 머릿 속에 스쳐 지나갔다. '나에게 교감이라는 옷이 어울리나?', '나는 교감이라는 역할을 즐기며 신명나게 일할 자신이 있는가?'. 누구든 자신이 하는 일이 즐거워야한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억지로 하거나 스트레스만 받으며 일한다면 얼마나 불행하나! 나태주 시인도 당시 장학사로 일하면서 그토록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짓는 일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일이 가장 큰 불만이었을것 같다. 남들이 보기에는 좋아 보이는 자리도 시인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나보다. 감정을 시로 담아 표현하고 시로 타인을 위로하는 삶을 여든이 되도록 즐겨 하고 있는 시인은 20대에 시작한 시에 대한 애착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 그 자체인 것 같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자신의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 그러면에서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무엇에 열정을 쏟고 있는지, 가장 즐겨하는 일은 무엇인지,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봄이다, 살아보자>에서 나태주 시인은 모두가 사회적 상황과 이념에 관한 시를 쓸 대 본인만 유일하게 개인적인 시를, 감정을 다루고 표현하는 시를 창작했다고 한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주류에서 벗어난 비주류의 시인으로 살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퇴직 후부터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시를 알아주는 독자들이 생기면서 뒤늦게 성공한 시인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시 나이 즉 시 인생이 50이라고 하니 50년 동안 무명 작가의 삶을 살아온 거다. 우직하게 한 우물만 파며 살아온 삶의 결과가 인생 후기에 펼쳐진 셈이다. 

 

나는 성미가 급한 편이다. 무슨 일이든 빨리 해 치워야 속이 편하다. 눈 앞에 할 일들이 쌓여 있으면 왠지 불안감을 느끼기에 일단 제출 기한 전에 일치감치 작업을 대충 해 놓는 편이다. 결과에 쫓기는 삶을 살다보니 여유가 없다. 사물을 고요하게 바라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냥 일 중심의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에서 나태주 시인이 말하는 인생론은 나의 삶의 결과 다르기에 왠지 비교가 된다. 누구에게는 잡초에 불과하지만 그에게는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풀꽃이다. 화려해 보이지 않지만 풀꽃 하나하나에 고유한 생명이 있고 특징이 있다. 그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부럽다. 올 한 해 뭔가 성과를 낼라고 조급해하기보다 그냥 1년을 살아 버터내면서 지나온 삶을 복기해 보는 삶도 참 좋을 것 같다. 작년까지 책도 무진장 많이 읽으려고 욕심을 과하게 냈다. 독서량에 치중한 나머지 한 권 한 권을 깊게 음미하며 읽지 못했다.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좀처럼 그게 잘 안 된다. 왠지 뒤쳐질 것 같고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연세가 지긋히 든 나태주 시인의 생각을 읽어보노라면 인생을 좀 더 긴 호흡으로 살아가보면 어떨까 생각이 든다. 

 

지난 주 사흘간 새로 전입해 온 선생님들과 휘몰아치듯 회의하고 연수를 진행했다. 그렇게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그런데 뒤돌아보니 이것조차도 나의 욕심인 듯 싶다. 한 템포 쉬엄 쉬엄 살아가는 인생 이야기를 읽으니 좀 천천히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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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대 트로이 재미만만 그리스 로마 신화 6
최은영 지음, 이경석 그림, 김길수 감수 / 웅진주니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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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이야기는 무한한 상상력을 키운다!

 

그리스로마 신화 안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고 그 이야기들은 무궁무진한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들어 준다. 특히 <그리스 대 트로이> 이야기는 한시라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박진감 넘치는 서사가 펼쳐진다. 신들의 전쟁을 대신 수행하는 인간들이 펼치는 용맹무쌍한 모습과 지략 대결의 모습은 마치 읽는 어린 독자들 뿐만 아니라 성인들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처해 있는 지금의 상황 속에서 지혜와 교훈을 얻게 만든다. 

 

어린 독자들이라면 아마도 이런 생각들을 하지 않을까? 

 

왜 아킬레우스의 몸을 불사의 몸으로 만들어 주는 스틱스 강에 담글 때 발뒤꿈치를 잡았을까? 잠깐이라도 온 몸을 풍덩 담근 체 금방 끄집어 내면 될 것을.. 하며 아쉬움을 크게 자아낼 것이다.  그러다가도 번쩍 번쩍 거리는 아킬레우스의 갑옷과 투구를 보며 부러움이 마음 한 가운데 일어나며 친한 동료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과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을 한 번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만들어 줄 것이다. 

 

반면 성인들이라면 <그리스 대 트로이>의 속의 명장면을 읽으며 조심해야할 것과 앞으로 살아갈 지략들을 한 수 배우지 않을까 싶다. 특히 10년 전쟁의 원인이 되는 '여자'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임을 누구나 다 알아차린다. 아름다운 여인을 찾기 위한 결과가 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급기야 국가가 멸망당하는 일로 번지는 사건을 보면서 지나친 욕심은 삼가해야 할 덕목임을 깨닫게 된다. 그 뿐인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한 성도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이야기 속 한 장면에서 역력히 보게 된다. 목마를 만들어 그 속에 병사들을 잠입시킬 것이라는 것쯤은 예상해야 하지 않았을까? 주변에서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잘 귀 기울여 들었다면 뼈아픈 순간을 맞이하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그리스로마신화의 이야기는 단순히 흥미거리로 읽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이야기 속에서는 사람들이 살아갈 지혜가 담겨 있다. 꾸며낸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없을법한 이야기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 존재했던 국가들과 역사적 배경이 탄탄히 뒷받침하고 있으며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후대의 역사 속에서 비슷하게 전개되었으니 신화를 한낱 시간 죽이기용으로 여길 필요가 없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그리스 대 트로이>의 명승부전을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으며 도란도란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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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교육과정 중심에 서다
추광재.최민지.김은영 지음 / 피와이메이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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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2월은 교사의 시간이다!

 

꽁꽁 언 강물 깊은 곳을 살펴보면 겉과는 다르게 여전히 물이 흐름을 따라 지나다닌다. 학생들이 방학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2월, 교사는 새학기로 준비로 마음과 몸이 분주하기 시작한다. 전출이 예정되어 있는 교사나 그렇지 않은 교사나 2월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 보이나 속으로는 미묘한 감정의 소용돌이 몰아친다. 설레임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자신이 맡은 학생들, 학생들 주위의 있는 보호자들, 함께 동료로 지낼 교사들, 직원들과의 관계가 낯설기도 하고 살짝 긴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교사의 한 해 살이의 주축을 이루는 '교육과정과의 만남' 이다.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이 제시되어 있으나 지역마다, 학교마다 만나는 학생들이 다르고 그들이 살아온 삶이 다르기에 촘촘한 교육과정의 재설계가 필요하지 않을 수 없다. <교사, 교육과정 중심에 서다>의 저자들은 촘촘한 교육과정의 재설계를 '교사수준의 교육과정 재구성' 이라고 정의한다. 

 

교육과정이란 무엇인가?

 

교육과정을 한자로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네이버 어학사전에 의하면,

 

교육 과정 (敎育課程)

1. [교육 ] 교육 내용과 관련하여, 교과의 배열과 조직을 체계화한 전체적인 계획.
2. [교육 ] 학교의 지도하에 이루어지는 교과 학습 및 생활 영역의 총체.

 

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부분은 교육과정의 한자어다. <교사, 교육과정 중심에 서다>의 대표저자 추광재는 교육課程 과 교육過程 의 차이점에서 교육과정의 의미를 다시 새겨야 한다고 말한다. 

 

교육과정은 process 일이 되어가는경로, 일련의 과정이 아니라 가르칠 무엇에 관한 내용, 교육하거나 학습해야 할 내용이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새학기를 준비하기 위하여 교사들이 함께 모이는 교육과정 만들기 시간에 다루어야 할 교육과정은 교사가 만나게 될 학생들을 생각하며 교실에서 무엇을, 어떻게 교육활동을 전개해야 할 지에 대한 내용 그 자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교사는 교육과정으로 수업을 한다!

 

일부 교사들이 편리함 때문에 교과서의 내용을 잘 정리해 놓은 지도서 또는 인터넷 자료들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수업은 교과서를 자료 삼아 학생들의 수준과 관심에 맞게 해석하고 재구성하여 진행한다. 따라서 교사는 교육과정 사용자이기도 하지만 교육과정 개발자이다. 교사가 곧 교육과정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교육과정 개발자로의 사회적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교사, 교육과정 중심에 서다>는 교육과정 중심에 교사가 단단히 설 수 있도록 충분한 이론들을 지원하고 있다. 교사에게 영향을 미치는 내적요인과 외적요인 등 무수한 변수들이 교사를 흔드는 경우가 많다. 교육과정에 진력을 다할 수 있도록 교사 개인의 절제와 연단도 필요하겠지만 교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행정적 지원도 아낌없어야 할 것 같다. 교육과정을 연구할 수 있는 절대적 시간을 확보해 주고 심리적 안정감으로 교실 수업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학교 운영자들의 격려와 지지도 무시할 수 없는 조건 중의 하나다. 자고로 교육과정 운영의 성패는 교사에게 달려 있다. 학생의 성장과 변화는 교육과정에 달려 있다. 즉 교사가 교육과정 중심에 설 때 학생의 성장과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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