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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1세기 교회 - 오늘의 그리스도인을 위한 사회사적 성경 읽기
박영호 지음 / IVP / 2021년 8월
평점 :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었고, 믿는대로 예배했다. 그것이 초대 교회의 힘이었고, 그들 예배의 매력이었다!" (218쪽)
현재 우리의 예배는 군더더기가 너무 많다. 예배의 대상이 누구인지, 왜 예배하려고 오는지, 예배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교회로 오는지 등등 이 책을 통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성경은 덮어놓고 무작정 믿는 것이 아니라 펼쳐 놓고 꼼꼼히 읽어보고 되새김하며 의미가 무엇인지 묵상하며 깊게 살펴봐야 하는 것이 성경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다양한 저자들을 통해 하나님을 알리고자 우리에게 보낸 선물과도 같다. 성경이 없다면 당연히 하나님을 깊게 알아갈 수가 없다. 성경이 없다면 과연 인간의 몸을 입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죄를 지고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에 분명한 근거 자료가 된 것이다. 성경을 읽지 않으면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없고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이 씌여진 시기가 2천년 전이라는 사실이다. 100년 전의 자료도 읽기가 부담스러운 판에 2천년 전의 기록물을 읽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대학을 다니고 있던 시절 신문 인쇄가 세로로 되어 있었고, 중간 중간 국한문 혼용으로 씌여져 있어 읽기가 지금보다 더 어려웠던 것 사실이다. 하물며 성경 기록은 다른 나라말로 씌어져 있던 것은 번역하고 개정하여 우리 손에 들려져 있으니 읽기가 쉬울 턱이 없다. 더구나 2천년 전의 이스라엘, 터키, 그리스, 로마 지역의 문화와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문맥을 이해하고 알아가기가 정확하지 않는게 당연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읽는 독자들이 해석을 잘못하거나 자기 중심적인 뜻으로 이해하여 다른 뜻으로 전달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수 있다.
저자 박영호는 『우리가 몰랐던 1세기 교회』를 당시 1세기 사회사적인 측면에서 신약 성경을 바라보았다. 1세기 사람들이 생각하는 교회는 어땠는지, 1세기 사람들의 경제적 상황, 문화적 상황, 계급적 상황이 오늘날과 어떻게 달랐는지를 문헌을 통해 정확히 밝히고자 노력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서 나온 사회적 측면을 보여 주는 공간, 인구, 경제 등의 문제에 관한 자료들을 역사적 연구의 일부로서 다루는 것이다" 라고 책의 말미(부록 249쪽)에 저자의 연구한 분야에 대해 독자들에게 재차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총 12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장마다 함께 생각해 볼 질문들을 실어 놓았다. 이 질문들만 잘 보아도 저자가 성경을 사회사적으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219쪽
1. 초대 교회의 예배가 어떤 형식도 없이 중산층의 저택에서 모이는 소그룹 모임처럼 진행되었을 것이라는 시각은 어떤 면에서 교정되어야 하는가? 왜 로마 교회보다 고린도 교회가 예배의 중요한 자료가 되는가?
저자가 사회사적으로 바라본 1세기 예배의 모습은 기존 우리가 생각했던 예배의 모습을 뒤집고 있다. 고린도 교회만 하더라도 40~50명 규모의 인원이 모인 교회였다고 한다. 그나마 부유한 사람들이 있었던 고린도 교회라 할지라도 40~50명을 모두 수용할 만한 공간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분석한다. 성경에 나온 유두고라는 인물이 난간에 졸다가 떨어진 사건만 보더라도 모임 공간은 협소했을 것이고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노동과 같은 육체적인 일들을 하고 밤 늦게 모인 시각에 자발적으로 모임을 가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위험한 난간에 걸쳐서도 졸았을까 싶다. 고린도 교회를 제외한 나머지 교회들은 모이는 구성원들의 특성상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했을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십시일반 나눔의 정신으로 이스라엘 교회를 돕기 위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는 모습을 보며 교회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1세기 당시 교회가 처한 여러 가지 상황들을 사회사적으로 깊게 바라본다면 바울서신을 비롯한 복음서를 읽어갈 때 좀 더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깊이 있는 성경 읽기가 될 것 같다. 오늘날의 상황에 비춰 성경을 읽다보면 자칫 잘못 성경을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저자가 그동안 잘못 오해하고 있었던 상황 개념을 바로 잡았던 것 중에 하나가 카타콤의 역할이다. 지금까지는 박해를 피해 지하교회로 알고 있었던 카타콤이 실상 그리스도인들의 장례 문화에서 사용되었던 무덤이었던 사실을 사회사적으로 정정하고 있다. 기독교 박해 또한 오랜 시간을 걸쳐 진행된 것이 아니라 기독교 공인 전까지 위로부터의 박해보다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박해(저자는 옆으로부터의 박해라는 표현을 씀)가 먼저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분명한 것 중에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위치에 있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각종 소외받는 상황에서도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예배했던 그 모습은 당시 다신교 사회였던 로마인들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은 분명했고 이것이 오히려 큰 매력으로 비춰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어떤가? 초대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라고 외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1세기 교회의 모습을 읽으면서 참 많이 달랐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2천년 동안 여러 다양한 모습으로 예배의 모양이 달라졌지만 그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변하지 않고 굳건히 지켜져 왔구나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저자가 쓴 다른 책 <쾌청 신약>
https://blog.naver.com/bookwoods/222841869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