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kfkxntmxmfk는 이렇게 말했다>를 다시 집은 날. 가만 세아려보니 한 오년 지났지 싶다. 
'언제고 다시 읽으리라.' 다짐하는 책은 두 부류인데 '너무 좋아서'와 '이해 못해서'
<Wkfkxntmxmfk는 이렇게 말했다>는 전적으로 후자의 경우였다. 이해 못해서 너무 싫었는데 책이 싫은건지, 니체가 싫은건지, 내가 싫은건지....  맛도 모르고 체하기만 꼴이었지만 억지로라도 씹어 삼킨 니체의 생각은 내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원래 그랬다고 믿고 있지만) 
나는 사실에 집착하고, 허무주의 경향이 있으며, 운명론도 설득력 있다고 믿으나 운명에 예속된 인간의 자기구원도 가능하다고 보지만 그 자기구원이라는게 결국엔 자기합리화라고 생각하고 있다. (엉망이구나)   자기 합리화하니까 조르바가 생각난다.

아! 그러니까 이 책을 다시 읽은 계기는 돌고래가 읽고 있길래... 동기는 항상 그렇듯 사소하다.
 

다 읽고 나서 하는 말인데
조르바는 슬펐고 '난 조르바를 이해할 수있을 거 같애...'라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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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 술자리를 만든 건 기대했던 블라에 꺼리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조르바로 인해 왠지 자유로워진 이 기분을 그냥 흘려 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네 친구들. 같은 초등학교를 나와서 같은 중학교를 가고 나 빼곤 다 같은 고등학교까지 간 묵은 친구들인데 일요일 저녁 호출에 하나, 둘 슬금슬금 기어나온 종식,재홍,용렬. 

용렬의 퇴사 소식은 즐거우려했던 술자리를 급 냉랭하게 만들었고 종식은 결혼을 앞두고 스트레스에 나름의 고충을 털어 놓는다.
재홍은 중소기업 사장인데 CEO 답게 용렬의 무모한 사표제출에 "조금 더 참았어야 했다."는 말로 시작하는 교훈성 위로를 위로랍시고 한다.(아~ 물론 바로 욕 쳐먹었다)

맥주 소주 농도를 화학실험하듯 이래보도 저래보고 실패를 거듭하다 먼저 취해버린 나는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해 신이났다.(헤헤~~) 실패한 폭탄주를 혼자 다 마시고 먼저 자리를 일어나 아가들이 보고 싶어 택시를 타고 집으로......
택시에서, '종식이 결혼식 사회를 어떻게 봐야 재밌을까?' 생각하다가 답답했던 아까의 분위기가 다시 생각했다.

세 놈이 공통적으로 한 말이 "니가 제일 부럽다." 였는데, 사실 잘 모르겠고 난 니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은 건 사실이었기에 가만이 수긍을 했었다. 그리고 '부럽다.'라는 말이 진심 같지도 않았고..  
결혼할 기약이 없다는 용렬은 퇴직까지 했으니 좌절이 이만 저만이 아닌데 나의 안정이 부럽다하고 한다. 이제 결혼하는 종식은 나의 빠른 속도가(애 둘), 그리고 사장 재홍은 나의 여유로운(?) 삶이 부럽단다(부러워 말고 너도 차마시고 태권도 다니면 될거아니야~  골프치는 자식이...)
사실이기는 한데  (결혼 잘 했고 애들 잘 크고 시간 많아 여유있고..)
엄살 배틀은 남자친구들 술자리의 특징이기도 한데 조르바를 읽고 있는 오늘은 배틀에 끼고 싶은 생각이 없어 '맞아','그래' 하며 여유를 부렸다.
피곤해서 금방 잠에 들었지만 자리에 누워 생각해보니 "......산다는 게 곧 말썽이오."라던 조르바의 말이 생각났다. 

오늘 화나는 건 결국 맛있는 폭탄주를 한 잔도 못 마셨다는 거였다. 럼주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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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10-1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남녀가 크게 다르지 않는군요..
저희도 만나면 그래요 --;;

차좋아 2009-10-19 15:51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그렇겠죠?^^
하지만 남자는 유난해요!라고 우기고 싶습니다 ㅋㅋ
 

'극찬' 친구들의 소개로 읽은 책이 실망인 적은 없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읽다 말았다. 그러니까 조르바가 소개 받아 읽은 책 중 유일한 예외인 게다.

얼마 전 우리나라와 만든 책 모임.
예수전, 파우스트에 이어 그리스인 조르바. "오호~ 잘 만났다 조르바!" 이번엔 잘 읽어보마.ㅋㅋ 

오늘 부터 읽기 시작,,,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시는 것 아니오?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 보는 버릇 말이오.  자, 젊은 양반, 결정해 버리쇼. 눈 꽉 감고 해버리는 거요."
17페이지  초반부터 조르바의 말이 눈에 확 들어온다.
그러니까 자기랑 놀지 안놀지 확 결정을 해버리란다. 음 맘에 드는 걸~
"차 한 잔 합시다! 조르바."   

산투르를 배우기 위해 터키인에게 엎드려 사정한 조르바. -20페이지-
군대를 졸업하고 다기를 한 벌 사서 싸구려 차를 우려 마시며 진로를 고민하던 22살 향편은 어린시절 꿈을 이루고자 청담동 큰 청요리집 주방에 들어가 일시켜 달라고 빌었었다.
조르바의 사부인 터키인 처럼 시원했던 나의 화교 쓰푸(사부)는 요즘 세상에 흔치 않은 경우라며 내심 반기는 주방장의 배려로 거기서 면을 뽑았다. 요리학과를 졸업한 동기들이 식당일에 회의를 품고 하나 둘 떠날 때 중식당의 화려한 불놀이와 칼 솜씨 구경에 반해 고된 줄도 모르고 2년을 버텼고 2년후 호텔 식당으로 진출했던 시절이 생각난다. (온더락 떠날 때 쓰푸가 배은 망덕하다며 쪼인트 깠다~) 
  

"시장하지 않으시다......하지만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드시지 앉았어요? 육체에는 영혼이란게 있습니다. 그걸 가엽게 여겨야지요. 두목, 육체에 먹을 걸 좀 줘요. 뭘 좀 먹이셔야지. 아시겠어요? 육체란 짐을 진 짐승과 같아요. 육체를 먹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길바닥에자 영혼을 팽개치고 말 거라고요." -52페이지-  
맞는 말이지.. 조금 읽어보니 조르바가 하는 말은 다 옳다는 걸 알 수 있겠어. 반대의 경우인데 육체에 과도한 음식을 쑤셔 넣는 것 만큼이나 무모한 짓은 없다고 생각해... 소중한 건 식은 밥 한 숟가락, 먹다 남은 피자 한 조각이 아니라는 거지~ 맛있게 먹고 남았으면 버리라고...  (뱃속에 버리는게 미덕이 아니야~)

럼,물담배,파이프,와인... 
럼주 마시고 싶잖아~ 그래서 덕구누나한테 럼 부탁했다. 안 사오기만 해봐라......(무슨 맛일까?)

"두목, 화내지 마쇼.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소. 내가 사람을 믿는다면, 하느님도 믿고 악마도 믿을 거요. 그거나 그거나 마찬가지니까. 두목,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되고 나는 혼란에 빠지고 말아요." -81페이지-
"안 믿지요. 아무것도 안 믿어요. 몇 번이나 얘기해야 알아듣겠소?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오직 조르바만 믿지. 조르바가 딴 것들보다 나아서가 아니오. 나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요. 조르바 역시 딴 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그러나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내가 아는 중에서 아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조르바뿐이기 때문이오. 나머지는 모조리 허깨비들이오. 나는 이 눈으로 보고 이 귀로 듣고  이 내장으로 삭여 내어요. 나머지는 몽땅 허깨비지. 내가 죽으면 만사가 죽는 거요.조르바가  죽으면 세계 전부가 나락으로 떨어질 게요"
"저런 이기주의!"
"어쩔 수 없어요, 두목, 사실이 그러니까. 내가 콩을 먹으면 콩을 말해요. 내가 조르바니까 조르바 같이 말하는 거요" -82페이지-
아~ 나 오늘 밤 잘 수 있을까? 
"오늘 밤은 졸리지 않은데요, 조르바 혼자 주무셔야겠네요?"-83페이지-
두목은 조르바가 81,82,83페이지에서 말한 이날 잠을 못 잤다.  
일단 조르바가 혼자 주무시는 이 페이지에서 나도 책은 덮으려한다. 잠은 언제들지 몰라도...
두목과 차 한잔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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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소망 자끄 엘륄 총서 4
자크 엘륄 지음, 이상민 옮김 / 대장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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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이 잊혀졌다구?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지만 사랑에 버금가는 가치이기에 성서에는 믿음, 사랑과 함께 배치하며 일상적으로 외는 그리스도인 최고의 덕목이 소망 아니었던가?

'자끄 엘륄'이 '잊혀졌다.'라고 단언하는 '소망'.
그리스도인이기에 앞서 인간이기에 성취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고 소망하는 것이 있기에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무언가 바라고 희구하는 마음이야 말로 인간의 본능이다.
학생들이 좋은 상급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이고, 청년들이 대기업에 취업하여 이 사회의 인정 받는 일원이 되고자 노력하고,  어른들은 사회적 존경을 받기 위해 더 많이 벌고 그 번것을 자선 사업에 쓰기도하며 자식들에게 물려주기도한다. 그런데 소망이 잊혀졌다고?

'소망와 희망'
'자끄 엘륄'의 말대로라면 윗 단락에서 내가 소망하고 있는 인간의 예는 말의 가치 변화로 생긴 오해였던 것이다. 소망과 희망 언 듯 같아 보이는 이 두 단어는 (특히)그리스도인에겐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더 많은 물질을 가지고 편히 살려는 욕구는 희망의 범주에 든다. '희망'은 "그것은 잘 될 것이다."라는 믿음을 전제로 하는 단어이고, '소망'은 그것이 이루어지든 안 이루어지든 바라는 마음이 '소망'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취 가능한 범위 안에서 목표를 정하고 그것의 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기도하는데 그것이 '희망'이라는 것이다. '희망'은 지극히 인간적인 욕구의 표현인 반면 소망은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 때, 성취 여부와는 상관없이 더 이상 의지 할 곳이 없어 간절한 마음으로 믿고 의지할 때 생기는 마음이 소망이라고한다.

스스로 물어 본다,
"나는 교회에 나가며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무엇을 소망하고 있나?"
요즘에는 기도도 안 하지만 생각을 해 보면, 나와 가족의 건강을 부탁했었고, 성적향상을 바랐고, 막연하지만 구원도 바랐다. 목사님과 함께 중보기도도 했는데 북한 사람들의 기아를 면케 해달라고 했고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달라고만 한것은 아니었다. 교회에 빠지지 않겠다고 헛된 약속도 진심으로 했었고 십일조도 하겠다며 거짓말했고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답게(?) 착하게 살아보겠다고 했었던 것 같다. 그 정도 조건이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뤄주시리라 나는 믿었고 목사님은 '믿으라!'했었다.
나와 우리 가족은 아직 건강하다. 성적은 신통치 않았지만 결과에 만족 못한 경우는 없었다. 뉴스를 보면 우리교회 중보기도의 효험인지 가끔 희망적인 뉴스가 나오기도 했고 간절한 중보 기도에도 불구하고 자연재해, 전쟁 등의 비극적인 뉴스가 나오면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더 빡.시.게. 기도를 하기도 했다. 우리의 죄인 양 함께 회개를 했고 불신자들을 위해 중보했다.

자크엘륄은 이런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 침묵'을 이야기한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침묵하고 있고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침묵하는 이상 어떤 인간적 희망도 하나님께 전달될 수 없다고 ... 이미 세상은 인간들과 과학의 지배하에 놓여 있고 여기에 하나님이 개입할 요소는 없는 것이라고... 지금은 '하나님과의 단절시대'라고 말이다. (독실한 자들이여 무섭지 않은가?)

하나님이 침묵하고 우리와 단절되었다는 자끄엘륄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힘든 분들도 계시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현실을 명쾌하게 진단해준 엘륄에게 많은 공감을 했다. 내가 엘륄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지금 하나님은(신이 있다는 전제하에) 분명 침묵하고 계시며 하늘나라와 지금 세상과는 어떤 통로도 없어 보인다. 그리스도가 그 통로라고 하지만 그리스도는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우리 마음속에?
소망은 이런 하나님과의 단절 상태에 놓인 인간에게 남겨진 유일한 통로이자 침묵하는 하나님에 대한 도발의 도구라는 게 엘륄의 주장이다.
역설이지만 하나님은 인간에게 순전한 소망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 때에 하나님의 침묵이 인간들이 소망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말 장난 같다고?  그렇다면 엘륄의 생각을 전한 내 전달이 문제일 뿐이다. 말 장난인지 사실인지 자끄엘륄의 <잊혀진 소망>을 보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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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 2009-10-17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 읽었구나~ 빌려줘. 리뷰 읽으니까 읽어보고 싶네.(근데 아직 [1984]도 다 못읽었어;;) 리뷰 제목이 참 향편답게 유머러스(?)하네...
내 생각에 인간에게 하나님이 침묵하는 걸로 비춰지는건 하나님의 사랑때문이 아닐까 싶네.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이라 인간에겐 침묵으로 바춰지는 거 아닐까. (사랑이 무능력으로 보여지는 세상이니까.) 침묵=사랑, 엔도 슈샤쿠 읽을 때도 그리 생각했는데. 그 때문에 또한 인간이 소망을 품게 된다면 이도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게 믿음? 뭐,,,그래. 어쨌든 빌려줘~~^^

차좋아 2009-10-17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서 본건지..(아마도~) 구약의 하나님은 여러 방법으로 인간과 직접 소통을 했다는거야(우리가 성경을 통해 알고있듯이)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 명했고 아브라함에게 모세에게, 가나안에서 사사들에게.
예수 나시기 전 300년이(아마도~) 하나님과 유대인들의 단절의 시기인데 그 시기에 가장 갈절히 소통을 원했다지() 그 시기에 집필된 유디트서 마카베오서가 정경으로 승인을 못 받는 원인도 그 때문인 걸로 읽었어.(이건 보충 설명이 필요함'만나자')
소망에 대한 새로운(웰륄에 따르면 새로운게 아니라 내가 잊은거겠지) 관념이 생겼어. 나 누구말 곧이 듣는 사람은 아니지만 엘륄의 논리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침묵=사랑 맞다고 생각해.엘륄 논리의 귀결도 그리로 갈거야~
인간이 독립적 개체인것을 인정한 하나님이 불개입일 뿐이고 그 인간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인간이 극한의 순간 신께 의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지. 빌려줄게 빨리 읽어~ 빨리 읽어야 이야기해보지^^
1984는 너 읽고 내가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 너는 <잊혀진 소망>읽고 나는<1984>읽고..참 어제그제 카탈로니아 찬가 읽었는데 다시 봐도 좋더라 그것도 빌려줄까?
 

자! 15분~  

여행하면 산이다. 뭐 많은 산을 다닌 것도 아니고 산악을 즐기지도 않지만 그래도 여행하면 산이 그려진다. 거기 산이 있으니까 간다던 무슨무슨 경 이라는 영국인가라고 생각이 드는 외국의 산악가가 말했고 엄홍길이라는 우리 문중의 어른은 '산이 받아 주었기에...'라고 했던 그런 대단한 산 말고 근처에 있는 물과 그늘이 있는 그런 산이 내 마음의 산인거다. 그러니까 산수.. 

여행을 휴식의 개념으로 생각을 한다. 도전이나 모험은 내게 어울리지 않기도 하고.
일상의 권태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주로 술을 마신다. 그리고 특기인 수다로 친구들의 관심을 받아본다. 권태를 잊는 일단의 방법이긴 한데...권태를 즐거움으로 덮어버리고  다시 호로 남아 그 즐거움의 여운을 느껴 보려 다시 권태가 자리했던 즐거움을 돌아보면 즐거움은 어느순간 외로움으로 변해 있는 걸 발견하곤 한다. 

다시 여행
술자리.수다.괘변으로 좌중의 관심읍 받는 것. 으로써 권태를 이겨내지 못하는 반복을 조용한 여행으로 달래곤 했다. 해인사에 가는 이유, 봄 철 차밭을 보러가는 것, 약수터에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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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 2009-09-28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내가 제시한 주제네. 왠지 기쁨! ^^

차좋아 2009-09-28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보니 15분안 지났던것 같아..사실 시간 기억이 안나서 대충 접었는데 조금 짧네..
궤변궤변 궤변...다음엔 안틀리겠지~ㅋㅋㅋ

2009-09-30 2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01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