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국밥의 아쉬움 뒤로하고  새벽 지하철을 이용해 목적지인 모 절에 갔다.(절이름 기억안남)
ㅎㅊ스님은 새벽예불 마치시고 아침공양중이었고 마침한 타이밍에 도착한 나도 절밥으로 아침 해결. 간만의 절밥을 모델로 찰칵! 부산행의 또 다른 목적인 사진찍기의 시작은 절밥.
차계의 동향과 옛 차친구들의 소식과 근황을 나누며 차마시기를 네 시간. 처음 만날 때 청년 스님이셨던 **스님은 이제 주지스님이 되었고 학생이었던 나는 애 아빠가 되었다. 아는 스님이 주지스님이라니 쫌 뿌듯한 기분^^ 개척 절(교회식 표현)은 아닌 거 같고 큰 스님의 뒤를 이어....(절 시스템을 잘 모르는 나)  

부산은 남포동이 차의 메카. 부산의 인사동. 우리는 택시를 타고 남포동 중앙로로 향했고 어느 다장茶場에 들어가 이런 저런 차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보이차는 생차 시장이 질적 양적으로 급 성장을 하여 생차 가격이 기십만원씩한다는 소리를 듣고 기함하였다. 몇 년 간 혼자 차를 마신 나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들이 오고 감에 눈만 꿈뻑거리다가 꾸벅꾸벅 졸다가 또 듣다가... 점심 먹으러 가자는 소리에 기분이 좋아졌으나 메뉴가 짜장면이라는 말에 급 실망...
'스님... 부산까지 와서 짜장면 먹어야겠어요, 네??' 하지만 스님은 간만의 외식이라며 짜장면을 먹자 하셨고 발언권 없는 나는 그냥 쭐레쭐레...
부산 롯데 백화점 10층. 스님은 짜장면(행복해 하시는 스님), 나는 잡탕밥(아...돼지국밥), 다장 사장님은 유산슬 밥.
다행이도 롯데 백화점 10층의 중식당에서 나는 부산의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친구의 촬영지였던 영도. 영도다리를 내려다 보면서 바닷가에 온 기분 실감. 작은 배들이 물살을 가르며 신 영도 다리 아래를 지나는 모습에 가슴이 트이는 기분이 좋아 나도 모르게 아!, 하고 탄성을 지르자 함께 자리한 두 분이 재밌다는 듯이 웃으셨다. 서울 촌놈 기뻐하는 모습이 귀여웠나 보다.  

밥을 먹은 후에는 다시 다장으로 돌아가 차를 두 시간 더 마셨다. (바다가 더 보고 싶다) 
절에 돌아간 건 세 시쯤, 스님과 나는 또 차를 마셨다. 자꾸 목욕탕에 가자는 스님.....
'스님... 부산까지 와서 목욕탕에 가고 싶겠어요, 네?'


저녁에는 책 부족 동우님과의 만남. 서울에서의 만남 이후로 두 번째 만남이다. 
부산 광안리의 칠성횟집에서 우리는 세꼬시에 시원소주를 마셨는데 세꼬시 맛이 정말 좋았다.
매운탕도 좋았고, 반찬으로 나온 멸치젓은 정말 최고! 세 마리를 혼자 다 먹은 나는 돌아오는 기차에서 칠성횟집의 멸치젓 생각에 침을 삼키기도 ㅎㅎㅎ
나는 동우님 페이퍼에서 언급 된 <레디메이드 인생>을 들고 부산에 내려갔는데 동우님은 내가 언급한 페이퍼를 보고 천명관의 소설을 읽고 계시는 중이라 하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나는 동우님이 어제 이야기한 작가들의 책을 찬찬히 시간을 두고 읽어볼 계획이다. 특히 우치무라 간조의 [기독교 문답].
  

부산여행은 만남의 여행이었다. 스님덕에 스카이라운지(?)에서 바다를 보고 동우님 덕분에 회도 맛 볼수 있었다. 하지만  바다 구경, 싱싱한 회 보다도 나는 그립고 반가운 만남이 더 즐거웠다.
스님과 방안에서 종일 차를 마시고 (목욕탕을 가더라도) 스님과 함께 함이 즐거운 것이고, 동우님과 얼굴 마주하고 신나게 떠들고 웃었던 그 순간이 기뻤던 만남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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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11-01-10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까지 가서 백화점 짜장면이라니요. ㅋㅋ
즐거우셨겠어요. 좋은 사람, 바다,회(중요!),차...
저도 부산 가보고 싶네요.

차좋아 2011-01-10 12:09   좋아요 0 | URL
부산은 좀 괜찮은 동네 같아요 ㅎㅎ
회(중요)ㅋㅋㅋㅋ 맞아요맞아 회 중요합니다.^^

저는 부산과 인연이 많은 거 같아요. 다음엔 사직구장에 가볼까 해요~ ㅎㅎ
의외로 백회점 짜장면 맛있었어요. 경치도 좋고요. 백화점 창을 통해 바라보는 부산 영도의 풍경이 정말 이번여행 최고의 장면이었습니다. ㅎㅎ

토깽이민정 2011-01-10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부산에서 바람 제대로 쐬고 왔구나~
부럽다.
나도 회 먹고 싶다아아아~~ ㅎㅎ
멸치젓이 그렇게 맛있단 말야? 궁금한데?

동우님께서 둘의 데이트를 미리 알려주셔서
언제 글 올라오려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지~
재미있었겠다 ^^

차좋아 2011-01-10 12:19   좋아요 0 | URL
부산 바람 따뜻하더라~ㅎㅎ 회가 먹고 싶구나? 미국에는 회 없는거야?
잡아서 떠 먹으면 안 되려나?ㅎㅎ (나는 그럴 사람ㅋㅋ)

재밌었어. 시간을 꽉 채워서 이야기했지.ㅎㅎ

동우 2011-01-11 0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부산 밤바닷가에서 향편님과의 해후.
나 역시 참 좋은 시간들이었지요.
그래서 그날 좀 느긋하게 취하였다오.

그런데 자고 일어난 일요일 느닷없이 엄습한 요통. ㅎㅎㅎ
꼼짝 못하고 누워있었답니다. 흐이구.
그덕에 '고래'진도가 확 나갔지만. ㅎㅎㅎ

차좋아 2011-01-11 12:27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구나, 지금은 괜찮으신거죠? 좀 많이 먹긴 했던 것 같아요. 저도 좀 취해서 야간 기차에서 거지꼴로 쿨쿨 자고 올라온 거 같아요.ㅎ

광안의 대교를 사진으로 남겨왔어야 하는데..아쉬움이 남습니다 ㅎ

저는 깊은 강 읽고 있어요 오늘 다 읽을 것 같은데 참 좋은 소설이에요.제게는요,
엔도 슈샤쿠가 더 궁금해집니다.

후애(厚愛) 2011-01-11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에 저도 부산으로 고고씽~ ㅎㅎ
즐거운 하루 되세요~ ^^

차좋아 2011-01-11 12:28   좋아요 0 | URL
부산 좀 좋은 동네 ㅋㅋ 추천합니다. 가보셨을 거 같지만 제 마음이 추천이라고 말하네요.ㅋㅋㅋ
 

1227이 무어냐 하면 서울발 부산행 야간기차의 이름이다. 나는 무궁화호 1227호를 타고 지금 부산에 도착해 피씨방에서 몸을 녹이고 있다.
따듯한 남쪽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느낀 건 '따뜻하다' 였으나, 목도리를 잊어버리고 온 걸 깨닫는 순간 추워지기 시작했다. 스님은 여섯시에 만나기로 했고 나는 춥고 배고프고...해서 밥을 먹으면 되겠구나, 생각을 하고 부산역 근처 밥집을 찾았는데 찾는 밥집은 안보이고 유흥가의 삐끼 할머니가 쫓아온다.
은밀한 목소리.
러시아 아가씨랑 놀고가~, 싫어요~ ,솰라솰라~~~, 싫어요......., 그러지 말고~~,싫어요.
한 블럭을 내 팔을 잡고 늘어지던 할머니 대뜸 소리를 지르신다.
"그럼 뭐할라꼬!"
"밥 먹게요!!"
"..........골목으로 가봐라, 밥 먹고 오래이."
"네, 고맙습니다."  

그렇게 찾은 돼지국밥이었지만 발길을 돌렸다. 할머니 마주치면 안되니까 돌아서.. 다시 부산역 앞. 햄버거같은 거는 먹기 싫고 국밥은 냄새나고... 그래서 피씨방에 있는 지금.

스님네 가면서 고깃내 풍길 수는 없지.... 

목도리는 없지만 비상으로 챙겨 온 핫팩을 하나 뜯어 열렬히 흔들며 피씨방으로 걸어오는데 점점 빈약해 지는가 싶더니 결국 껍데기만 남아버린 핫팩. 너무 흔들었어.... 

기차에서 잘 잤더니 기분은 좋다.^^ 어젯 밤 22시 50분에 출발한 기차에서 채만식의 단편 <레드메이드 인생>을 읽고는 내리 다섯 시간을 꼼작 않고 자리에 있었다.
레드메이드 인생은 지금도 유효한 거 아닌가? 만들어진 인생. 나에 의해 계획되고 선택하는 삶을 는 사람이 얼마나 될런지... 일제시대의 지식인의 비애를 다룬 소설이지만 읽을 때마다 작금의 상황이 떠올려지는 이야기다.   

시간 됐다아~~~ 이제 나가야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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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8 1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9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1-01-08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부산가셨군요.
음,음,음...전 부산 남포동 양파 간장에 찍어먹는 순대 먹고 싶어요~^^

차좋아님, 그러고보니 맘 먹으면 하고 마시는군여~

차좋아 2011-01-09 21:09   좋아요 0 | URL
저 남포동도 갔었어요^^ 순대는 못 먹었지만요 ㅎㅎㅎ

부산가기 정도야 뭐~~^^ 우리나라는 전국이 일일 생활권이잖아요.(오랫만에 써보는 말이네요ㅋㅋㅋ)
맘 먹으면 하기는 하는데 맘을 잘 안 먹어요 ㅎㅎㅎ 그냥 대충대충 살살 사는게 좋아하거든요. 게으르고 ㅋㅋ
 

부산에 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기차를 타고 바다를 보고... 

사진을 배우고 싶다, 라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해왔다. 문제는 실천.... 
매주 토요일 석달 12주 과정의 카메라 기초반 과정을 들으면 어떨까?? 심히 고민 중인데 아무래도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마음 이야기 하는거 보아하니...
부산에 갈 때 어떤 카메라를 들고 갈까.. 디카? 필카? 핸카!!ㅋㅋㅋ 다 가져가볼까~~ 

스님네 집에서(보통절이라고부르는..) 자고 올까 당일 치기 할까. 충동적 결심이라 아직 세부내용은 미정.  

돼지국밥이 엄청 먹고 싶다. 소주 일병 필수. 

내 손을 거쳐간 디카는 모두 세 개.
니콘 쿨픽스 200(박살)
캐논 익써스 700(실종ㅠㅜ)
지금 가지고 있는 파나소닉 fx 3. (찍지도 않으면서 잘도 사는구나~~)

현재 가지고 있는 필카는 무려 다섯 개.
니콘 f3 (장인어른꺼 접수..)
올림푸스 x.o(동생꺼 접수...) 
야시카 수동카메라(동생 남자친구꺼 임대) 
팬탁스 반자동 카메라(스님이 가지고 놀라며 준 거)
삼성 자동카메라(진정 내꺼..보는 사람마다 버리라고 조언한다.) 

카메라도 있겠다. 의욕도 있겠다. 찍기만하면 되겠는데... 좀 배우고 싶은 욕망 발동. 

동생 남자친구는 카메라를 무척 좋아하는데 본인이 좋아하니까 애인도 좋아한다고 착각을 했는지 내 동생에게 생일선물로 중고 카메라를 선물했었다. 그 카메라가 바로 올림푸스x.o 동생은 집에 와서 카메라 던져버림.ㅋㅋㅋ 어렵게 구한거라며 뿌듯해 하는 남자친구가 아주 멍청해 보였다면서 기쁜 척하느라 고생했다는 사연있는 골동카메라. 지금은 내 손에서 썩고 있다.  

왜 다들 말리는지 나도 잘 아는데, 조금 아쉽고 섭섭하고... 왜 다들 날 안 믿는거야~~~ 사진 잘 배워서 잘 찍고 다닐거라니까 아무도 믿지 않는다. 그 돈으로 고기나 사먹어, 먼저 찍으면 믿어줄께..,  그간의 행적을 보면 못 믿을 만하긴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배워!'라고 말 해주면 배울까 말까 고민하는 내 마음의 갈등도 더 쉽게 정리할 수 있을텐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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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1-05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생 때문에 웃었네요. 아 웃겨. 남자친구는 아무리 힘들게 구해도 동생분이 사진에 관심없으면 주는쪽과 받는쪽의 가치가 다르잖아요. 아 어째요. 안타까운데 또 웃기고.

으윽, 돼지국밥에 소주 일병이라니. 저 갑자기 낮술하고 싶네요. 하핫

차좋아 2011-01-05 23:2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언제고 문자 넣어줘요 킵 해 논 돼지고기 드셔야죠ㅋㅋ
돼지국밥 못 먹고 올지도 모르는 스케쥴이라 좀 걱정되요 ㅎㅎㅎ

왜 안타까워요?? 덕분에 저 장난감 생겼는데요 ㅋㅋㅋㅋㅋ 사실 저도 좀 웃겼었어요^^ㅋㅋㅋ

토깽이민정 2011-01-05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기들 얼굴은 빨리 자라고 빨리 변하니까,
사진으로 찍어두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

집에 좋은 모델들 있잖아.
매일 애들 얼굴 찍으면서 연습해~~

차좋아 2011-01-05 23:31   좋아요 0 | URL
맞아 그런 거 같아 그러고 보니 다산이는 벌써 7살이다. 사진을 좀 찍어줘야겠어,라고 생각한지 7년됐구나...ㅋㅋ

애기들도 찍고 세상도 찍고 할까 봐~~ㅎ

sslmo 2011-01-05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일 추운 한철만 부산에서 살다왔음 좋겠어요.

한동안 폴라로이드 카메라 참 좋아했었는데...
사진은 잘 못 찍어요, 저도 토욜마다 석달 과정 사진을 배우고 싶어요.
날 따뜻해 지면요, 그래야 출사도 맘껏 다닐 수 있고 할테니까요.
먼저 다녀 보시고, 추천해 주세요~^^

차좋아 2011-01-05 23:40   좋아요 0 | URL
네 먼저 다녀보고 말씀드릴게요. 제가 사진은 잘 안찍어도 출사는 많이 다녀서(따라다녔지요^^;;) 분위기는 좀 알아요. 따라 다니는것도 즐거었는데 연출까지 한다면 더 즐거울거 같아요 하하


동우 2011-01-06 0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부족에게 요즘 사진은 트렌드가 되었나?
추장님이 그러하더니, 좀 전 도치님도 가보니 그러하였고, 향편님까지. ㅎㅎㅎ

토요일의 부산.
향편님 돼지국밥만은 낮에 때워 버리슈.
소주 일병은 미루어 놓고.

우리, 저녁에 씨원소주에 생선회로 일차 합시다. ㅎㅎㅎ



차좋아 2011-01-06 11:57   좋아요 0 | URL
시원소주에 생선회 갑자기 벌써부터 이가 시리는데요 ㅋㅋㅋ

동우님 부산가서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

전호인 2011-01-07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라 조만간 닉넴도 사진좋아로 개명할 수도 있겠군요. ㅋㅋ
새해를 강릉 경포대의 눈보라속에서 시작했습니다. 해맞이는 보지도 못하고 눈보라에 쥐터지고 왔는데......겨울바다! 거칠고 차갑더라구요. ㅋ

차좋아 2011-01-07 12:19   좋아요 0 | URL
저는 해맞이는 관심이 없었는데 전호인님이 보지 못한 해맞이 내가 한번 도전해 볼까?,하고 생각이 퍼특 미치네요 ㅋㅋㅋ
새해 해맞이를 가실정도로 힘찬 새해를 맞이하셨군요... 자극이 되는데요. 저도 좀 각오를 다지는 일월이 되야겠는데 부산가서 해맞이나 해야겠습니다.ㅎㅎ

차가움이 기다리는 부산 아주 기대됩니다 하하
다좋아라고 개명할까 진즉부터 고민하고 있었어요.ㅋㅋㅋㅋ
 



 

 씨앗 품은  

 꼬마 눈사람 


 

꼬마 눈사람을 만들었다. 하얀 눈이 복스럽게 내려앉은 날 주차장에서 눈을 굴려가며 눈사람을 만들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웃으며 지나친다.
하얀 눈이 아까워서... 하얗고 깨끗한 눈. 내일이 되면 녹아 얼음이 되고 때가 묻어 튀튀해지겠지.
점심 쉬는 시간 30분동안 만들려니 마음이 급했다. 손가락이 얼어 입김을 호호 불어 눈을 뭉쳤다. 
내 손의 온기에 뽀송한 눈송이들이 녹아 뭉쳐졌고 그렇게 점점 커져가는 눈덩이를 토닥토닥 다져가며 눈을 덧붙여갔다. 눈덩이가 커질수록 손이 아파왔다. 손가락 끝이 떨렸다. 눈을 다져 붙이느라 언 내 손을 녹이려고 손바닥을 비비고 입김을 불어넣었다. 뜨거운 입김에 손에 묻은 눈이 녹아내렸다.  
눈 녹은 물은 마치 아픈 손바닥이 흘리는 눈물 같았다.  

눈사람이 만들어졌다. 보기에 좋았다. 눈 내린 세상에 새하얗고 울퉁불퉁한 꼬마 눈사람. 손이 아팠던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호호 손을 녹여가며 토닥토닥 눈을 다져가며...
그렇게 두 개의 꼬마 눈사람을 만들었다. 하얀 눈이 가득 내린 날.  

점심시간이 지나가는 것도 잊고 나는 내가 만든 꼬마 눈사람을 지켜봤다. 온몸을 움츠리고 바삐 오가는 사람들이 꼬마 눈사람을 보고는 웃으며 지나간다. 이제 나는 일터로 돌아가야 했다.내가 없으면 나쁜(?) 사람이 눈사람을 때리고 갈 것 같았다. 울퉁불퉁 못 생긴 꼬마 눈사람이 걱정이 되었다. 내 손의 온기를 나눠 만든 꼬마 눈사람. 하지만 나는 돌아가야만 했다. 내가 있을 곳은 눈밭이 아니니까...

씨앗이 생각났다. 이름 모르는 씨앗이 잠바 속에 있었다. 올 겨울 처음 꺼내 입은 잠바 주머니에 씨앗이 있었다. 출근길 손을 감추기 위해 넣은 주머니 속에서 동글한 씨앗이 만져졌을 때 나는 아이들 간식으로 먹는 조그만 캔디류라 생각했다. 빨갛고 파란 '짝꿍'이라는 새콤달콤한 아주 작은 캔디겠지.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다 꺼내보니 어떤 곡식류의 알맹이들이었다. '씨앗?' 푸르름해서 녹두가 아닐까, 생각을 했다. 녹두 씨앗이라니... 이런 게 내 주머니에 들어 있을 리가 없잖아? 이상해 신기해 하며 출근을 했었다.
그 씨앗이 든 잠바를 입고 눈사람에게 다시 갔다.

다행히 아무도 눈사람을 때리거나 부수지 않았다. 눈사람은 둘이 사이좋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녹색 씨앗으로 단추를 만들어 줄까, 눈으로 붙여줄까... 하지만 씨앗은 너무 작았다. 
안 보이면 어때?, 나는 씨앗을 눈사람 몸 속에 한 알씩 넣었다. 손가락으로 살짝 가슴을 파서 씨앗을 넣고 눈으로 꼭꼭 눌러 덮었다. 씨앗을 품은 눈사람이 되었다. 들고 온 카메라로 눈사람을 찍었다. 씨앗이 들어있는 꼬마 눈사람.  

씨앗을 품은 눈사람을 보고는 지나는 사람들이 추운 걸 잊은 듯 눈, 코를 붙여주었다. 아저씨는 아직 장초인 담배를 물려준다. 휴지를 꺼내 목도리를 둘러주는 사람도 있었다. 멀리서 눈사람이 사람들의 이쁨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다시 일자리로 돌아갔다.
 
씨앗을 넣어줘서 오래 자리를 지키는 걸까?  지난주 눈이 많이 온 날이었으니까 일주일은 지난 것 같은데... 올 겨울 내내 그 자리를 지켜줄 수 있을까?
씨앗이 남아 있다. 무슨 씨앗일까? 어째서 내 주머니에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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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 2011-01-04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궁금하다, 무슨 씨앗인지?
봄 되면 한 번 심어봐~
눈사람도 궁금해 할거야.
읽고나니 시리고 따뜻한 기분~^^

차좋아 2011-01-05 11:51   좋아요 0 | URL
가지고 다닐 예정이니까 다음에 보여줄께 보고 맞춰봐 ㅎㅎㅎ
밥할 때 넣어 먹을까 생각도 하고 있는데 ㅋㅋ 잡곡이라 부르는 것들 중 하나 같아 ㅋ

토깽이민정 2011-01-06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신기하다~
누가 넣은 씨앗일까?

근데 이번에 눈도 많이 보고 나니까
서울에 있을 때 처럼 적당히 오는 눈이 제일 좋은걸 알겠어.
십몇인치씩 와서 삽으로 눈을 치워야 하는 만큼 눈이 오니까
눈이 하나도 예쁘다는 생각이 안들고,
그냥 노동의 대상이 되어버리더라구. ㅎㅎㅎ

작은 눈사람을 만들 수 있을만큼의 눈이 딱 좋더라~

차좋아 2011-01-06 12:02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엄마가 입었던 거 같아. ㅎㅎ

미국엔 눈이 많이 왔다면서. 눈 치우느라 고생했겠다. 여름이 되고 시간이 또 흐르면 그땐 즐거운 추억이 될 수 있으려나? ㅎㅎ

서울도 요즘 엄청 추워...맨날ㄷㄷㄷ하고 있어ㅋ

후애(厚愛) 2011-01-11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사람 너무 귀여워요~ ^^

차좋아 2011-01-11 12:30   좋아요 0 | URL
저 눈사람 오늘 목이 떨어졌어요 ㅠㅠ 삐쩍 말라도 잘 서있었는데 말이죠. 좀 아쉽넹~~~
그래도 2주일을 서 있었다니 기특하고 사람들이 많이 이뻐해줘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그래요. ㅎ
 
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암살자가 있다. 그리고 설계자가 있었다. 

래생. 수녀원 쓰레기통에서 태어나 설계자의 손에 의해 길러진 암살자. 래생.(늙으면 래옹?) 

김언수의 소설이라 읽었다. 다음 소설이 나오면 또 읽을 것 같다. 기대치가 꽤 높았던 걸 조금 감안해서 만족스러운 소설. 하지만 무언가 아쉬운..... (뭔데??)

사람을 이해하려는 작가라 생각된다. 재밌는 이야기로도 충분하지만 래생과 소설속 인물들의 감수성이 더 기억에 남는다.   

암살자 이야기라는 대강의 설정을 알고 전작[캐비닛]을 통해 작가의 분위기를 느껴봤기에 읽기 전 어느정도 그림을 그려 놓고 읽었는데 이야기가 코리아느와르로 흘러가는 것에는 조금 당황.ㅋㅋ
  
별 세개가 조금 야박한 거 아닌가 싶어서 지금 등록 고민중.. 음~~~~~
올해 별 기준을 [설계자들]로 삼아야겠다. 그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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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 2011-01-04 0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령화가족' 완독하였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아껴 가면 읽었었는데. 다 읽고나니 막장가족의 재미로움보다 어디선가 따사로움 같은 것이 괴어오릅디다.
막장가족의 모습들은 어느 가족이나 한부분쯤 지니고 있음직도..
작가의 후기에 김언수 박민규등에게 감사의 언급이 있던데 같은 기발함장르(?)의 동료인가 보지요.
박민규의 소설은 좀 읽었었는데, 뜻밖의 재미가 있었었지요.
나같은 늙은이의 감성에도 먹힐만한 무언가가있었던가봅니다. 하하
천명관의 '유쾌한 하녀 마리사'도 구해 놓았습니다.

차좋아 2011-01-04 12:42   좋아요 0 | URL
저도 재미나게 큭큭거리기도 하면서 읽었습니다. 오함마의 인생역전극은 빤하면서도 긴장감있었고, 날라리 조카의 의리에 살짝이~ 감동도 ㅋㅋ
가볍게 진지한 소설이라 저도 가볍게 읽고 진지하게 여운을 느꼈습니다.잠깐이지많요 ㅋㅋㅋ

박민규, 천명관, 김언수가 친한줄은 몰랐는데 알고 나니 잘어울리는 조합이더라고요.ㅎㅎ 작가계의 아웃사이더들^^ 좋은 사람들 같아요. 제겐 즐거운 이야기 들려주는 고마운 사람들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