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앗 품은
꼬마 눈사람
꼬마 눈사람을 만들었다. 하얀 눈이 복스럽게 내려앉은 날 주차장에서 눈을 굴려가며 눈사람을 만들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웃으며 지나친다.
하얀 눈이 아까워서... 하얗고 깨끗한 눈. 내일이 되면 녹아 얼음이 되고 때가 묻어 튀튀해지겠지.
점심 쉬는 시간 30분동안 만들려니 마음이 급했다. 손가락이 얼어 입김을 호호 불어 눈을 뭉쳤다.
내 손의 온기에 뽀송한 눈송이들이 녹아 뭉쳐졌고 그렇게 점점 커져가는 눈덩이를 토닥토닥 다져가며 눈을 덧붙여갔다. 눈덩이가 커질수록 손이 아파왔다. 손가락 끝이 떨렸다. 눈을 다져 붙이느라 언 내 손을 녹이려고 손바닥을 비비고 입김을 불어넣었다. 뜨거운 입김에 손에 묻은 눈이 녹아내렸다.
눈 녹은 물은 마치 아픈 손바닥이 흘리는 눈물 같았다.
눈사람이 만들어졌다. 보기에 좋았다. 눈 내린 세상에 새하얗고 울퉁불퉁한 꼬마 눈사람. 손이 아팠던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호호 손을 녹여가며 토닥토닥 눈을 다져가며...
그렇게 두 개의 꼬마 눈사람을 만들었다. 하얀 눈이 가득 내린 날.
점심시간이 지나가는 것도 잊고 나는 내가 만든 꼬마 눈사람을 지켜봤다. 온몸을 움츠리고 바삐 오가는 사람들이 꼬마 눈사람을 보고는 웃으며 지나간다. 이제 나는 일터로 돌아가야 했다.내가 없으면 나쁜(?) 사람이 눈사람을 때리고 갈 것 같았다. 울퉁불퉁 못 생긴 꼬마 눈사람이 걱정이 되었다. 내 손의 온기를 나눠 만든 꼬마 눈사람. 하지만 나는 돌아가야만 했다. 내가 있을 곳은 눈밭이 아니니까...
씨앗이 생각났다. 이름 모르는 씨앗이 잠바 속에 있었다. 올 겨울 처음 꺼내 입은 잠바 주머니에 씨앗이 있었다. 출근길 손을 감추기 위해 넣은 주머니 속에서 동글한 씨앗이 만져졌을 때 나는 아이들 간식으로 먹는 조그만 캔디류라 생각했다. 빨갛고 파란 '짝꿍'이라는 새콤달콤한 아주 작은 캔디겠지.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다 꺼내보니 어떤 곡식류의 알맹이들이었다. '씨앗?' 푸르름해서 녹두가 아닐까, 생각을 했다. 녹두 씨앗이라니... 이런 게 내 주머니에 들어 있을 리가 없잖아? 이상해 신기해 하며 출근을 했었다.
그 씨앗이 든 잠바를 입고 눈사람에게 다시 갔다.
다행히 아무도 눈사람을 때리거나 부수지 않았다. 눈사람은 둘이 사이좋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녹색 씨앗으로 단추를 만들어 줄까, 눈으로 붙여줄까... 하지만 씨앗은 너무 작았다.
안 보이면 어때?, 나는 씨앗을 눈사람 몸 속에 한 알씩 넣었다. 손가락으로 살짝 가슴을 파서 씨앗을 넣고 눈으로 꼭꼭 눌러 덮었다. 씨앗을 품은 눈사람이 되었다. 들고 온 카메라로 눈사람을 찍었다. 씨앗이 들어있는 꼬마 눈사람.
씨앗을 품은 눈사람을 보고는 지나는 사람들이 추운 걸 잊은 듯 눈, 코를 붙여주었다. 아저씨는 아직 장초인 담배를 물려준다. 휴지를 꺼내 목도리를 둘러주는 사람도 있었다. 멀리서 눈사람이 사람들의 이쁨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다시 일자리로 돌아갔다.
씨앗을 넣어줘서 오래 자리를 지키는 걸까? 지난주 눈이 많이 온 날이었으니까 일주일은 지난 것 같은데... 올 겨울 내내 그 자리를 지켜줄 수 있을까?
씨앗이 남아 있다. 무슨 씨앗일까? 어째서 내 주머니에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