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 (40페이지 읽었는데) 자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불멸은 이렇게 시작한다. 

-불멸- 
 

1부 ,1장

그 부인은 예순이나 예순 다섯 살쯤으로 보였다. 나는 어느 현대식 건물 맨 꼭대기 층 헬스클럽의 실내 수영장 맞은편에 놓인 길쭉한 의자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파리 시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나는 아베나리우스 교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와는 종종 이곳에서 만나 이런저런 세상사를 토론하는 사이었다. 하지만 아베나리우스 교수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 부인을 관찰했다. 그녀는 혼자 풀 안에서 허리까지 물에 담근 채, 자기 앞에 꼿꼿이 서서 수영을 가르치는, 선수용 웃옷까지 걸친 강사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지시에 따라 그녀는 풀 가장자리 난간에 매달려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가 내쉬기를 반복했다. 그녀는 진지하고 열성적으로 이 심호흡을 반복했는데, 마치 물 저 밑바닥에서 어떤 낡은 증기기관차 소리 (오늘날에는 잊혀 버린 이 목가적인 소리를, 이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다만 그것을 풀 가장자리에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한 노부인의 숨결과 비교하는 것뿐이다.)가 솟아올라오는 것 같았다. 나는 매혹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내가 어쩐지 가슴 찡한 그녀의 코믹한 면모에 사로잡혀 있을 때 (수영 강사의 입꼬리가 시종 떨리는 걸 보면, 그도 그런 코믹한 점을 간파한 모양이었다.) 누군가 말을 걸어 나의 주의력을 흩뜨려 놓았다. 잠시 후 내가 다시 그녀를 관찰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강습이 끝나 있었다. 그녀는 수영복 차림으로 풀 가장자리를 따라 수영 강사를 지나쳐 사오 미터쯤 갔을 때 문득 그에게로 고개를 돌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 나의 심장이 졸아들었다. 그 미소, 그 손짓, 바로 스무살 아가씨 같지 않은가! 그녀의 손은 눈부시도록 가볍게 날아올랐다. 마치 그녀는 장난하듯 울긋불긋한 풍선 하나를 연인에게 날려 보낸 것 같았다. 비록 얼굴과 육신은 이미 매력을 상실했다지만, 그 미소와 손짓에는 매력이 가득했다. 그것은 매력 잃은 육신 속에 가라앉아 있던 한 몸짓의 매력이었다. 그 부인이라고 해서 자신이 이제 더는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테지만, 그녀는 그 순간만은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일부를 통해서 시간을 초월하여 살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나이 없이 살면서, 어떤 이례적인 순간들에만 나이를 의식하는 것이리라. 어쨌든 몸을 돌려 미소 띤 얼굴로 손짓을 보낸 그 순간 (수영 강사는 더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자신의 나이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몸짓 덕택에, 시간에 구애되지 않는 그녀 매력의 정수가, 그 촌각의 공간에 나의 마음을 사로 잡아 버렸다. 나는 이상하리만치 감동했다. 그때 나의 뇌리에 아녜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녜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이름의 여자를 만난 적이 없다.    
                                                                                          -페이지9,10,11-

 

감동적이었다. 

어느 구절 밑줄을 긋고 말았는데 그건 자연스러운 행동이 아니었다. 밑줄을 긋기 위해 책 읽기를 멈춰야 했고 가방을 열고 필통을 꺼내 색이 제일 화려한 형광펜을 꺼내야했기 때문이다. 주황색 형광펜을 준비한 나는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그리고 좀전에 독서를 멈추었던 그 부분에 이르러 밑줄을 그었다. 책 읽기보다는 밑줄이 너무 긋고 싶었었다. 달리는 지하철이라 밑줄이 생각만치 잘 그어지지는 않았지만 밑줄을 긋고 나는 책을 덮었다.

옮겨 놓은 본문에서 밑줄 그은 부분을 찾아 보세요, 아 이벤트 입니다. 정확히 밑줄을 그어 주시는 분께 직접 볶은 커피 와 제가 만든 녹차를 보내 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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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4-19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부인이라고 해서 자신이 이제 더는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몰를리 없을 테지만, 그녀는 그 순간만은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일부를 통해서 시간을 초월하여 살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나이 없이 살면서, 어떤 이례적인 순간들에만 나이를 의식하는 것이리라.

아닐까요?

차좋아 2011-04-19 09:3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일단 틀렸어요 ㅋㅋ 다시 다시^^

Forgettable. 2011-04-19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심장이 졸아들었다. 그 미소, 그 손짓, 바로 스무살 아가씨 같지 않은가! 그녀의 손은 눈부시도록 가볍게 날아올랐다. 마치 그녀는 장난하듯 울긋불긋한 풍선 하나를 연인에게 날려 보낸 것 같았다. 비록 얼굴과 육신은 이미 매력을 상실했다지만, 그 미소와 손짓에는 매력이 가득했다. 그것은 매력 잃은 육신 속에 가라앉아 있던 한 몸짓의 매력이었다.

전 이부분!

차좋아 2011-04-19 10:40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ㅎㅎㅎ 뽀님이 그은 부분도 참 좋았었어요. 하지만 제가 그은 건 다른 줄. 참, 단 한 문장이에요^^

Forgettable. 2011-04-19 14:36   좋아요 0 | URL
오늘날에는 잊혀 버린 이 목가적인 소리를, 이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다만 그것을 풀 가장자리에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한 노부인의 숨결과 비교하는 것뿐이다.

커피와 녹차가 욕심나는 건 아니에요!
전 사실 이 부분에서 처음 멈췄었거든요. 그리고 2번 읽고 내려갔어요. ^^

차좋아 2011-04-20 00:12   좋아요 0 | URL
오늘날에는 잊혀 버린 이 목가적인 소리를, 이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다만 그것을 풀 가장자리에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한 노부인의 숨결과 비교하는 것뿐이다

전 이 부분은 다시 읽으면서 정말 재밌는 표현이라고 생각했어요. ^^

욕심을 내셔야지 왜 욕심을 안내세요^^ㅋㅋ

동참해 주셔서 기뻐요. 감사해요^^

루쉰P 2011-04-19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일부를 통해서 시간을 초월하여 살기도 한다.

여기가 아닐까요? ㅋㅋ

차좋아 2011-04-20 00:13   좋아요 0 | URL
땡!!! ㅋㅋ 아니에요~~ 한 줄만 더 내려 오시지~~ㅎ

루쉰P 2011-04-20 00:27   좋아요 0 | URL
아뿔싸!!! 다락방님이 맞추셨네요.

차좋아 2011-04-20 00:32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다락방님은 거의 맞추신거고, 치니님이 맞추셨어요.ㅋㅋ
루신님 좋은 하루 보내셨어요? 나는 놀고놀고논 날이에요^^

루쉰P 2011-04-21 22:27   좋아요 0 | URL
아! 놀고놀고 논 날이라! 정말 봄 같은 따뜻한 단어군요. 부럽습니다. 크흑!

차좋아 2011-04-22 10:39   좋아요 0 | URL
어 지금 또 놀러 나가요 ㅋㅋㅋㅋ 하지만 오늘이 휴가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슬픔이...ㅜㅜ 내일 토요일 일요일은 원래 공휴일이니까 오늘이 마지가 휴갓날이거든요.

다락방 2011-04-19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심장이 졸아들었다.

여기요.

다락방 2011-04-19 11:30   좋아요 0 | URL
아 다른 줄이라고 했으니 여긴 아니겠구나. 다시, 여기요.

그 몸짓 덕택에, 시간에 구애되지 않는 그녀 매력의 정수가, 그 촌각의 공간에 나의 마음을 사로 잡아 버렸다.

차좋아 2011-04-20 00:1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처음에 맞추신거나 다름없는데 너무 아쉬웠어요. 사실 다락방님은 120% 맞추신거에요. 지하철에서 밑줄 긋기가 힘들어서 좀 줄였거든요 ㅎㅎ
다락방님도 거기가 좋으셨던거죠? ㅎㅎ 기뻤어요
하지만 땡!ㅋㅋㅋ (너무 단호해...)

치니 2011-04-19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나이 없이 살면서, 어떤 이례적인 순간들에만 나이를 의식하는 것이리라.

차좋아 2011-04-20 00:19   좋아요 0 | URL
정답!! 축하해요 치니님^^ 선물 보내드릴께요^^

치니 2011-04-20 00:50   좋아요 0 | URL
악! 설마 제가, 오오, 이것이 정말 제가 이루어 낸 일이랍니까?!
역대 학교생활이나 직장생활에서도 퀴즈 한번 제대로 응모해보지 않은 제가 말입니다요.
음하하하하, 보람차군요. 게다가 '직접' 볶은 커피에 녹차라니요.
저도 커피 볶는 거 딱 한번 해봤는데 팔 아파 죽는 줄 알았거든요. 게다가 매캐한 연기랑 뜨거운 열기...다시는 안 하고 싶다 생각했는데, 차좋아 님은 하시는군요. 대단합니다. 존경합니다.

2011-04-21 0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쉰P 2011-04-19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답 너무 기대되용~~

차좋아 2011-04-20 00:19   좋아요 0 | URL
다음에 또 할께요 또 참여해 주세용~~

루쉰P 2011-04-21 22:26   좋아요 0 | URL
완전 집중하고 참여할 거에요! 전 집념의 사나이!

차좋아 2011-04-22 10:40   좋아요 0 | URL
ㅎㅎ 네 꼭 참여해 주세요, 하지만 언제라고 기약은 못해요 ㅋ

블리 2011-04-19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는 이상하리만치 감동했다.
자네는 '나는'으로 시작하는 말에 밑줄을 긋는 경향이 있는거 같아.
상품과 상관없이 재미로...
내 밑줄은
그것은 매력 잃은 육신 속에 가라앉아 있던 한 몸짓의 매력이었다.

차좋아 2011-04-20 00:24   좋아요 0 | URL
맞어 나는 그런 경향이 있지 ㅋㅋㅋ
(상품타면 더 재밌어~ㅋㅋ)

네 밑줄도 좋아. 몸짓이라니 몸짓에 감동했다는 말, 너무 좋아. 그치.

양철나무꾼 2011-04-20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저도 정답 맞추고 싶었는데 너무 늦게 봤네요.
다음에 꼭 또 하셔요~^^

차좋아 2011-04-21 06:58   좋아요 0 | URL
다음에 또 할께요^^ ㅎ

동우 2011-04-20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향편님.
추장님도 밀란 쿤데라의 '불멸'의 구절구절들.
잔득 베껴 써 놓았어요.

책부족의 이번 텍스트는 예사롭지 않은 읽기는 소설인듯.
나는 1/3쯤 읽고 있습니다.

차좋아 2011-04-21 07:00   좋아요 0 | URL
저는 1/4 읽고 있는데 잠시 멈추었어요. 놀다보니 그만 ㅎㅎ
하지만 책은 재밌어요. 천천히 읽기에 좋은 책이더라고요.ㅎ

후니마미 2011-04-20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저 부분에서 밑줄 그었는데요 ^^

밑줄 그을 데가 많아요.
그리고 음미할 데가 많아서 독후감 쓰기 어려울 것 같아요

저는 이제 다시 읽어 보렵니다

차좋아 2011-04-21 07:03   좋아요 0 | URL
와와!! 후니마미님도 그었구나^^ 기쁜마음이 ㅋ 우린 멀리 있어도 통하는 무언가가 있는거에요 그쵸?ㅋㅋ
그런데 다시 읽는다니,,, 벌써 다 읽으셨다는 말이네요? 와~~ 저 분발해야겠는데요^^

2011-04-21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1 0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1 0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1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1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pjy 2011-04-21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 멈췄던 곳이군요^^ 밑줄이 있어서 멈춘건 아니예요~~
'어쩌면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나이 없이 살면서, 어떤 이례적인 순간들에만 나이를 의식하는 것이리라'

두번재로 멈췄던 곳은
'그 몸짓 덕택에, 시간에 구애되지 않는 그녀 매력의 정수가, 그 촌각의 공간에 나의 마음을 사로 잡아 버렸다'

근데 자꾸 여러번 읽으니깐 아무래도 전 쉬운 말이 좋아요!ㅋㅋ
"그 미소, 그 손짓, 바로 스무살 아가씨 같지 않은가! 그녀의 손은 눈부시도록 가볍게 날아올랐다"

차좋아 2011-04-22 10:43   좋아요 0 | URL
pjy님 여행 다녀 오셨군요^^ 즐거우셨어요?ㅎ

닝미 옮겨놓은 세 구절 모두 좋아요. 저 자꾸 보다보니 제가 옮긴 페이퍼 전체가 좋아져 버렸어요. ㅎㅎㅎ

2011-04-21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2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