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나뭇잎과 잔가지들이 발밑에서 으스러진다. 버스럭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되돌릴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손상을 받았을 때에나 나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마치 이곳을 지나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냉엄한 사실을 나의 뇌리에 각인하려는 듯한 느낌이다. - P251
과거로 도망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난 미래를 향해 살아갈 거야. 여기서도 기필코 살아남고야 말겠어. 하지만 어떻게? 카터는 무자비하며 매수도 불가능해 보이므로 힘으로 제압하는 수밖에 없다. - P258
‘환생‘은 존재하지 않아. 다시 태어날 영혼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언젠가는 순전한 우연으로 인해서 지금의 너를 정의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 누군가가 태어날 수는 있어. - P263
네 육체가 살아온 인생을 한 사람의 인생으로 보는 행위야말로 환상이야. ‘너‘라는 존재가 너 자신이 태어난 이래 일어난 모든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은 편리한 픽션에 불과해. 그런 건 사람이 아니라 합성물, 모자이크라고. - P265
혼자서 영원히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 P277
나의 진짜 고민은 유아론이 제기하는 본질적인 의문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처음 그런 고민을 했을 때부터, 나를 둘러싼 외부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방법 따위는 없단 사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 P277
만약 타인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들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어떤 식으로 인식할까? 어떻게 경험할까? 다른 인간이 경험하는 의식이 어떤 것인지 타인인 내가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 P277
샤안은 통신 엔지니어였다. 나는 홀로비전 뉴스 에디터였다. 우리는 금성에 테라포밍 나노머신이 파종되는 과정을 생중계했을 때 처음 만났다. - P280
육체 교환 테크놀로지가 실용화되어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이런저런 방식을 모조리 시험해 보자고 제안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샤안이었다. - P285
내가 지금 여기서 존재하는 것은 샤안을 위해 신기함을 만끽하고, 마이클을 위해 의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다. 때가 오면 기꺼이 두 갈래로 나뉘어서 내가 기억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두 삶을 다시 살아갈 것이다. - P300
우리가 서로를 용서할 수 없었던 이유는 용서할 일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녀도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행동을 단 하나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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