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이스라엘의 소식을 들었다. 나쁜 소식이라 걱정이 앞선다. 

 처음에는 방콕에서 치앙마이로 가는 심야버스에서의 10시간 내내 술을 처 마셔대고 남들 다 자는데도 불구하고, 심지어 대놓고 짜증을 내는 사람이 있어도 아랑곳 않고 시끌시끌 소리 지르고 떠들어대는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을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었다. 

 어린 나이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군대로 착출되어 진짜 전쟁의 공포 속에 있다가 방금 풀려난 터라 저럴 수밖에 없다는 주위 사람의 말에도 난 이스라엘이 싫었다. 술 취한 망나니들이 보태지 않아도 이스라엘은 가해자라는 편견이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그 편견이 깨졌던 건 인크레더블 인디아에서 만났던 친구들 때문이었다. 

 이들은 그 젊은이들보다 더 나이가 있어서였는지, 내가 운이 좋아서 사람복이 있어서였는진 잘 모르겠지만 영어도 잘하고 쏭앤칭~ 이라고 하며 나와 내친구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우리와 매우 잘 맞았다. 

 


 

 그들이 히브리어로 노래를 부를 때면 특히나 열광했지만, 무엇보다 그들이 하는 얘기는 내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단번에 깼다. 

 Shai는 자기는 물론이고, 자기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한국도 자기네처럼 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에 있다고 생각해서(아마 한국인이 전 세계인중에서 가장 전쟁불감증일 것이라 정정해주긴 했다만) 뭐 엄청 안쓰럽게 생각한다고 하더만. 

 그러면서 자기네가 겪었던 전쟁터의 극한의 공포와 사라져가는 사해(없어지기 전에 꼭 보러 오라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자기네들의 감정의 연대기를 old monk를 마시면서 조근조근 다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역시나 취했고ㅡ 다음날 되니 내가 이스라엘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보기 시작했다는 사실만 기억이 난다. ㅎㅎ  

 안타깝다. 그 때 술만 마시지 않았어도 다 기억해서 이스라엘을 욕하는 사람들한테 그들의 입장을 설명해줄 수 있는건데. 내가 뉴스나 신문을 주의 깊게 보지 않기에 논쟁이 시작되면 난 또 금방 기죽겠지만- 팔레스타인이 무조건 죄없는 양민들이라고 편들고 이스라엘을 욕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심지어 일제시대 운운하는 사람들은 정말 없어보인다.

 그들도 같은 시대의 희생양인데말이다. 

 [나의 미카엘]에서도 미카엘은 부인과 아들을 두고 전쟁터로 떠난다.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히스테리적인 주인공의 우울병이 나를 덮쳐서 끝까지 읽어내진 못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고통받고 전쟁을 혐오하는 것을 왜 모를까. 

 함께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노래를 다같이 불러대던 Shai와 Odi 말고도 또 다른 도시에서 만난 친구들도 다른 어느 외국인들보다 젠틀하고 친절해서 난 아예 이스라엘리들을 싸잡아서 사랑하게 되었다. ㅎㅎ 

 우리의 친구들에게 평화가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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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3 09: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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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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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글과 책이 많이 담긴 블로그가 있는데, 이 책을 산 연유는 순전히 그의 리뷰를 보고 선뜻 폴오스터에게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사실 서점에 가서 책 구경을 할 때 열린책들에서 나온 폴오스터의 책들을 볼 때면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었다. 다작한 현대작가에 무슨 깊이가 있을 것이며, 왠지 멋부린 듯한 제목, 미국작가란 것도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난 당시 [반미교과서]따위의 책을 한참 읽고 있었기에) 

 그렇지만 그의 블로그에 담긴 리뷰는 상당이 예뻤고, 헤세와 몽환, 꿈 들을 들먹이는 통에 그저 지나칠 수가 없었다. [공중곡예사]와 [달의궁전] 중에서 뭘 볼까 고민하다가 [달의 궁전]이 조금 무난하다기에 골라보았다.  

 첫 느낌은 역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캐릭터'와 '익숙한 분위기'였다.  

 책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신선한 느낌이 아닐까 싶다. 내용이 아무리 지루하고 문체가 읽히지 않아도 새로운 것이라면 '최악이야!'싶다가도 그 신선함에 빠져서 다 읽어내고야 마는 데, 이렇게 처음부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라니 김이 빠졌다. 셰익스피어가 시대를 뛰어넘어 존경받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던 캐릭터를 창조해냈기 때문이고 나도 철저하게 이에 공감하기에, 이 책을 읽어 나가는데 더욱 더 힘이 빠졌다. 

 게다가 그 기막힌 우연들이라니!

 난 '우연히'라는 것 굉장히 좋아한다. 그리고 '환상적'이라는 것도 너무너무 좋아한다. 우연을 빙자한 그 연계성을 발견해내는 환상적인 신비로움은 언제나 날 자극하기에, 환상이나 우연이라는 문학적코드를 싫어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연히 알고 일하게 된 사람의 아들이 알고 보니 자기 아빠이고, 뭐 이런 설정은 정말 반전이랄 수도 없고, 딱히 흥미로운 것도 아니고, 좀 너무하다. 난 별로였다. 또한 붕 뜬 단어와 분위기는 환상적이긴 하지만 실 끊어진 연 같아서 방황하다가 어느 집 나무에 초라하게 낚여버린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읽고나서 좋았던 리뷰에는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 있는 문체-라는 문구가 굉장히 강조되어 있었다. 글쎄, 난 잘 모르겠다. 단어들의 향연이랄까, 화려한 무도회장에 와있다는 느낌이 계속해서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너무 과한데..과해.'라며 중얼중얼댔던 기억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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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정말 최악은 아니었으니 리뷰를 남겨 놓겠다고 생각을 하긴 했다만, 쓰면서 보니 칭찬할 거리가 하나도 생각이 나질 않아서 즐겁게 읽은 분들께 미안하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책을 비난하는 리뷰를 읽으면 화가 나서 이런 리뷰는 잘 쓰지 않는 편인데, 요새 왜이렇게 삐딱선을 타는지 모르겠다. 정서가 불안정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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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고, 뭐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쌍화점'이라는 매력적인 고려시조때문이었다. ㅅㅂ  왜 제목에 꽂힌거야.

 알고보니 별로 재밌게 보지도 않았던 영화들의 감독(유하_ 결혼은 미친짓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등 : 진짜 별론데 세개 다봤네-_- )의 영화에다가,, (감독보고 영화 선택하는거 나쁜 버릇이지만 그래도 안전빵이다) 송지효는 초딩 얼굴을 갖고 중성적이고 위엄적인 목소리를 내며 육감적인 여인을 연기해서 몰입을 방해하며,, '쌍화점'은 왜 갖다 붙였는지 연계성이 전혀 없고.. 아 미치겠다. 

 공부한 게 이것 뿐이라서 난 고전작품을 현대화하는거 굉장히 좋아한다. 고전작품을 매체로 가져오는 시도를 해서 조금이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가져오고ㅡ 그로 인해 그 매체의 깊이가 깊어져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면 그 이상 좋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건 매혹적인 작품을 이용한 것에 지나지 않아서 배신감이 들었다. 저작권 있으면 소송걸릴걸~

 또한 섹스를 이용하는 것도 굉장히 좋아한다. [숏버스]를 보며 열광했고, 사드의 작품들도 (힘들었지만) 읽어냈다. 여타 예술영화라 칭해지는 작품들의 수위 높은 장면들을 보면서도([루시아]는 정말 섹시했는데,,) 거부감이 들거나 하진 않았다. 이렇게 적나라한 작품들 외에도 소소하게 이용된 것들도 즐겁게 보는 편이다. 그런데 이건 뭔가요. 내가 왜 이걸 보고 여기 앉아 있어야 하나요. 딱히 섹시하지도 않고, 뭐 시도 때도 없고, 흐름이나 깨고, 아 정말 별로다. 게다가 영상은 거의 [색,계]와 판박이. 

 

 게다가 난 이전엔 주진모라는 배우 정말 별로였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하나 건진 것이 있다면 주진모의 재발견이다. 난 영화 시나리오고 뭐고를 다 떠나서 그 마음이 담긴 눈을 보고 살짝 눈물이 났다. 사실 난 매번 버림받는 이들에게 너무 몰입을 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영화가 괜히 '쌍화점'을 들고와서 날 끌어들였다는 배신감에 불만감이 팽배해서 사실 눈물이 나는게 약간 짜증났지만, 그래도 난 주진모에게 백점 주고 내 아까운 눈물을 흩뿌려 주었다. 유치한 대사들을 어찌 그리 슬프게 말하는지 그것도 능력이지, 암. 그 덕분에 돈이 아깝진 않았다. 아직도 그 슬픈 눈이 내 맘을 흔들어댄다.

 시나리오나 연출력, 영상미, 시놉, 캐릭터 의 매력 : 다 빵점- 

 열심히 만들었는데, (특히나 여배우는 더 불쌍. 거의 ㅍㄹㄴ같이 나와서, 상품적 가치는 좀 높아졌을라나 ) 아는 것도 없는 애한테 이렇게 씹혀서 어떡하니.. 사실 왠만하면 즐겁게 보지 않은 작품들의 리뷰는 쓰지 않는 편인데, 주진모에 대한 느낌 남겨 놓으려고 쓰기 시작했다.  

 그치만 왠지 점점 사람이 편협해지는 기분이랄까.. 예전엔 다 재밌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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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9-01-05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갑니다!!!!
저도 오늘 그 영화 봤는데 보다가 중간에 나와버렸어요~.
이렇게 제 느낌과 비슷한 리뷰를 올려주시다니!!!!ㅎㅎㅎ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앞으로 좋은 글 기대할께요~.^^*

Forgettable. 2009-01-05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중간에 나오셨음 제가 감동한 주진모의 사슴 눈망울은 보시 못하셨겠네요! ㅠㅠ
아 나비님께 공감받으니 참 좋으네요-
저도 나비 좋아해서 옛날에 닉넴으로도 쓰고 그랬었는데 히히

복 많이 받으세요! :)
올핸 우리 좋은 영화만 만나길 바래요- ㅋㅋ
 

까치집처럼 부스스한 머리에 모자를 눌러쓰고 후줄근한 면바지를 입은 사람을 보면 난 아직도 그 사람을 떠올린다. 

그 사람 덕에 난 노래를 들을 때 드럼을 신경써서 듣게 되었고, CCTV에 신경을 쓰며서 잘지내는 척 이쁜척을 하기도 했다. 뻔히 보이는 휴지 마술에 속는 척 입술을 의도하에 빼앗기기도 했고ㅡ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드럼 소리에 마음을 뺏기기도 했다. 

한달여의 짧았던 만남이 5년이 지난 지금, 손에 잡힐 듯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가 아무 이유 없이 연락을 끊었던 이유도 이유겠지만, 뭐랄까 아직도 긴 속눈썹을 내리깐 깊은 눈매와 허허 하고 웃는 모습은 지워내고 싶지가 않다. 

사랑이었을까.  

이틀 연속으로 닮은 사람을 봤다, 딱 이만큼 추운 날씨에 달달 떨며 우리 집 앞 공원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었지(우습게도 난 단칸방에서 시작하는 우리의 결혼생활(마음대로 상상)이 설레기도, 두렵기도 해서 부잣집 도련님이랑 사귀는 동생에게 나중에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했었다,)  

뭐 이럴 때 이런 기억들 남겨두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생각났을 때 적어놔야지, 또 저 심연 속으로 빠뜨리면 언제 건져낼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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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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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오랜만에 책 한권을 한번에 다 읽었다. 

오랜만에 일요일에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지하철 대신 이불 위에 누워서 책을 읽었다는 거, 마침 그 책이 마르케스의 책이었다는 행운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 득템이다. 하하하 

한동안 진빠지는 책을 읽었던 게 사실이다. 요 몇 주동안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문체나 내용 등으로 사람 괴롭히는 책들만 어찌 그리 만났는지- 그런 내게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는 하나의 청량제- 나는 이런 음료 좋아하지 않으니,-가 아닌 뭐랄까.. 더운 여름날 에어컨 빵빵하고 사람 없는 좌석버스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미친 속도가 붙어서 중간중간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의 짜릿함을 느끼면서 책을 읽느라고, 사실 제대로 파악도 못하고 어질어질했다. 그래서 덮자마자 다시 천천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1. 앙헬라 비꼬리오- 라니, 이름이 진짜 아름답지 않은가- 나 나중에 콜롬비아 가서 예명 앙헬라라고 지으면 혼날까? (Angel이란 뜻)

2. 도대체 명예가 뭐라고, 부자의 목숨보다 명예를 지키라고 다들 선동 혹은 관망했던 걸까, 게다가 이 두명의 살인자들은 3년밖에 형을 살지 않는다. 물론 덱스터나 이탈리안잡을 볼 때처럼 범죄자의 편에 서서 제발 잡히지 않길-, 혹은 별 고생 않고 빨리 풀려나길- 이런 요상한 생각들이 자꾸 들더라. 이게 요상한 생각인지 아닌지는 헷갈리지만.  

3. 게다가 쌍둥이 동생은 감옥에서 임질도 고쳐서 나온다. 

4. 우리의 가장 불쌍한 희생자 바야드로 산 로만이 들고온 앙헬라 비까리오가 보낸 수천통의 뜯지 않은 편지묶음. 

5. 다트로 찍혀버린 나비처럼 벽에 박힌 산띠아고 나사르의 이름. 

그의 작품의 읽을 때의 나는 파도에 휩쓸려서 두세바퀴 회전하고, 짠물이 입으로 코로 막 다 들어가서 정신이 없는 상태라고나 할까- 크크 그래서 파도에서 기어나와서 정신을 차리고 다시 들어가야 한다. 그치만 굳이 다시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느낌만 기억하면 되니까 :) 

 

- 하이드님의 리뷰에서 그의 작품이 롤러코스터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 이책 읽고 낮잠 자다가 롤러코스터 타는 꿈꿨다. 어느 건장한 남자의 품에 안겨서 '-')* 그거 타다가 회사에서 짤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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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lei 2008-12-25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의 품에 안겨서 롤러코스터를 타다'
고풍스런 표현이군요.

Forgettable. 2008-12-25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풍스러운 꿈이었죠. 히히 매력적이지 않나요ㅡ 꿈속 그대로의 남자라면 진짜 황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