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시간이 어떻게 가는줄도 모르겠고, 감정기복은 바닥을 쳤다가 하늘을 쳤다가 왔다갔다 하고, 생각할 시간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그것보다 많아서 정신없고, 그러는 와중에 책보따리 선물이 와서 마음은 포근하다.
내가 친구에게 부탁했던 책은 기시 유스케의 [도깨비불의 집],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 E.M포스터의 [하워즈 엔드], 다카노 가즈야키의 [13계단],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 5권이었는데, 무척 감동적이게도 여러 종류의 차와 텐도 아리타의 [영원의 아이]와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 그리고 문동전집의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템페스트]가 추가로 들어있었다. 손편지와 차도 들어 있었다.
이 친구가 내게 무척 잘해주는 것에 비해 나는 그닥 잘해주지 못한다. 본디 나는 마음에 있는 말은 하고 말아버리고, 남에게 다정하기에는 나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인데다가, 감정 기복이 큰 나머지 우울의 나락에 빠져 있을 땐 친구에게 연락은 커녕 나를 추스리기에 힘이 겹고, 아낀다는 표현이 쑥쓰러워서 그 감정을 묻어두고 마는 사람이다. 이 친구와 함께 수다떨며 놀 땐 즐겁지만 난 잘해주는 것이 익숙치가 않아서, 어쩌면 이 친구는 내 마음이 그게 다일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럼에도 이번에 이렇게 책을 많이도 보내주었다. 다정한 말도 함께.
친구가 보내준 책들은 그 책 이상이다. 덕분에 난 집에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날씨 좋은 주말에 텀블러를 들고 집 앞의 스타벅스에 가서 얼그레이 라테를 시켜 마시며 사전 없이도 읽을 책이 아주 많이 생겼고, 일이 끝나고 바로 집에 들어와도 좋을 이유가 생겼다. 이 고마운 마음을 근데 나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소포박스를 열 때의 두근거림과 아직도 몇번씩이나 읽어보는 편지의 예쁜 글씨를 보는 흐뭇함과 책을 이리 눕혔다 저리 세웠다 하며 뭘 읽을까 하는 설레임을 다 소소하게 말하기엔 난 좀 무뚝뚝하고 표현력도 없다. 그 친구는 무척 감성적인 친구라 나 역시 감성적으로 섬세하게 내 마음 속속들이 이야기해야 내 마음이 다 전해질 것만 같아서 이리 저리 고민해보지만 종국에는 그저 고맙다는 말만 할 수밖에 없다.
내가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이 친구 생각을 한다는 걸,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때마다 그 친구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는 걸, 여력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서도 그 친구의 홈페이지에는 꼬박꼬박 들어가 본다는 걸, 그 친구가 가진 모든 걸 내가 질투하고 있다는 걸,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보다도 그 친구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바란다는 걸 그 친구는 아마 모를 거다. 왜냐면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
언제나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내가 줄 건 당신이 좋아하는 내 사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