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들었던 말 중에 헤어진 연인을 잊기 위해선 만났던 기간의 3배가 지나야 그 사람을 완전히 잊을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 처음에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이 말이 맞는 경우가 많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잊는다는 말의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다르겠지만 난 잊는다는 건 마음 속에서 매듭을 짓는거라고 생각하는데, 이 매듭을 짓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
관계와 시간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오랜 시간동안 함께한 사람을 정리하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입던 옷, 지갑, 가방, 팔찌, 귀걸이, 장갑, 모자, 화장품, 외국 화폐, 사진, 편지 등 소유하고 있는 모든 물건에 추억이 스며 있다.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그저 생활에 녹아있던 모든 물건에서 발견하는 뜻밖의 추억에 놀랄 따름이었다. 뿐만 아니라 함께 하던 장소, 함께 하던 행동, 함께 하던 말장난까지 고스란히 기억에 남아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더라도 예전 사람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지금 내가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 가끔 헛갈릴 때도 있다.
더 이상 그 사람 때문에 울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을 잊은게 아니더라. 새로운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고 해서 그 사람을 잊은게 아니더라. 새로운 사랑이 끝났을 때 느껴지는 슬픔과 허전함이 단지 새로운 사람 때문만이 아님을 적어도 나는 안다. 한 달만 지나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만 같은 따뜻했던 입술의 감촉은 잊혀지겠지만 내 손짓 하나, 말 끝머리 하나, 뼛속까지 물들어 있는 그 사람은 언제쯤 그 선명한 색이 바랠까.
평소 후회하지 않고 살자는 신념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편이고, 실제로 살아오면서 그닥 후회할 만한 일은 없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조차 해본 적 없다. 돌아가도 난 같은 선택을 할 것이고, 같은 아픔을 겪을 자신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번 만큼은 너무 후회된다. 사람이 사람을 잊게 하는게 아니라 시간인가보다. 적어도 내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