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들었던 말 중에 헤어진 연인을 잊기 위해선 만났던 기간의 3배가 지나야 그 사람을 완전히 잊을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 처음에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이 말이 맞는 경우가 많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잊는다는 말의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다르겠지만 난 잊는다는 건 마음 속에서 매듭을 짓는거라고 생각하는데, 이 매듭을 짓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 

관계와 시간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오랜 시간동안 함께한 사람을 정리하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입던 옷, 지갑, 가방, 팔찌, 귀걸이, 장갑, 모자, 화장품, 외국 화폐, 사진, 편지 등 소유하고 있는 모든 물건에 추억이 스며 있다.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그저 생활에 녹아있던 모든 물건에서 발견하는 뜻밖의 추억에 놀랄 따름이었다. 뿐만 아니라 함께 하던 장소, 함께 하던 행동, 함께 하던 말장난까지 고스란히 기억에 남아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더라도 예전 사람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지금 내가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 가끔 헛갈릴 때도 있다. 

더 이상 그 사람 때문에 울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을 잊은게 아니더라. 새로운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고 해서 그 사람을 잊은게 아니더라. 새로운 사랑이 끝났을 때 느껴지는 슬픔과 허전함이 단지 새로운 사람 때문만이 아님을 적어도 나는 안다. 한 달만 지나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만 같은 따뜻했던 입술의 감촉은 잊혀지겠지만 내 손짓 하나, 말 끝머리 하나, 뼛속까지 물들어 있는 그 사람은 언제쯤 그 선명한 색이 바랠까.  

평소 후회하지 않고 살자는 신념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편이고, 실제로 살아오면서 그닥 후회할 만한 일은 없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조차 해본 적 없다. 돌아가도 난 같은 선택을 할 것이고, 같은 아픔을 겪을 자신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번 만큼은 너무 후회된다. 사람이 사람을 잊게 하는게 아니라 시간인가보다. 적어도 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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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10-19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작년 여름이 생각나네요. 재작년 여름, 나는 이제 사랑이 내 인생에서 완전히 끝장났다고 생각했어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더이상 찾을 수 없다고, 그런 사람은 이제 지구상에서 씨가 말라버렸다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자신감 상실속에서 허우적댔죠.

그렇다고 지금 회복됐다는 것도 아니고, 그 뒤로 해피엔딩이란 얘기도 아니에요. 지금도 여전히 나는 나를 사랑해주는 남자는 지구상에서 씨가 말라버린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는데도 그때만큼 죽을것 같은 기분은 아니에요.


열심히 살아봅시다. 울고 싶을 땐 울면서.

Forgettable. 2010-10-20 09:44   좋아요 0 | URL
오늘 보스가 그러더라구요.
guys are all asshole. including me.
ㅋㅋㅋㅋ

캐나다에서 인생 최대의 빡센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 캐나다는 나랑 궁합이 안맞나봐요.
전 이제 연애 안할겁니다. 적어도 캐나다에 있는 동안은요.

머큐리 2010-10-19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누가 뭐래도 아픈만큼 성숙(?)해 지는건 사실인거 같더라구요...^^ 힘내요 뽀님 !

Forgettable. 2010-10-20 09:45   좋아요 0 | URL
저.. 충분히 성숙해서 더 성숙해지지 않아도 될 줄 알았는데 앞길이 먼가봐요. ㅎㅎㅎ
고맙습니다. ㅎㅎ

카스피 2010-10-20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남들이 참견할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힘내요 뽀님 ! (2)

Forgettable. 2010-10-20 09:46   좋아요 0 | URL
흐.. 저도 이런 페이퍼 별로 쓰고 싶지 않았지만 어딘가 말하지 않고서는 못배기겠어서요. ㅠㅠㅠㅠㅠㅠ
화이팅 감사합니다. ^^ 위로가 많이 되요.

양철나무꾼 2010-10-20 0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럴때 곁에 있으면 등 툭 툭 치면서 술 한잔 할 수 있을텐데...
아웅,너무 멀어요,그곳은~
그러니 제 위로도 나중으로 저금해 놓자구요~ㅠ.ㅠ

Forgettable. 2010-10-20 09:47   좋아요 0 | URL
아 양철나무꾼님도 술 좋아하시나요?? 저도 완전 좋아해요. ㅋㅋㅋ
하지만 너무 힘들 때 술은 독이라 요즘은 완전히 자제하고 있어요.
나중에 함께 술 마실 때 되면 지금 일은 웃을 수............ 그 때도 없을 것 같아요. ㅠㅠㅠㅠㅠㅠ

위로 저금해두겠습니다. ^^

2010-10-24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랑 비슷한 것도 해 보지 못한 어른아이는 웁니다 ㅠ
친구들끼리 모여도, 이별 가사에 눈물지을 줄 아는 성인팀과, 순수한-_- 마법사팀으로 나뉘는 경향이 있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 사려깊은 것? 아무튼 무언가 깊이가 다르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어요.
아님 그런 거 없고 그냥 성인팀이 마법사팀을, 어린 것들... 하면서 비웃는 거에 불과한 건지도-_-;

그나저나 보스의 위엄이 느껴지네요 ㅋㅋ
암튼 무슨 일이시기에 빡센 날들을 보내고 계신가요;
전 어릴 때부터 가보고 싶은 나라 하면 캐나다나 프랑스를 골랐던 기억이 나요.
둘의 공통점이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무지 가고 싶은 나라였다능;

Forgettable. 2010-10-25 17:06   좋아요 0 | URL
순수한 마법사팀. ^^^^^ ㅋㅋㅋ
아무래도 친구의 관계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다른거니까, 무언가 깊이가 다르긴 할까요? 가장 친한 친구도 사랑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친구가 뭔가 나와 다른 것 같지는 않아요. 단지 사랑을 사랑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이지 사람을 대할 때 그 친구의 진정성이 보이니까요. 아, 이건 너무 복잡한 문제에요. 정말. 인간애와 연애는 다른걸까요?

보스의 위엄. ㅋㅋㅋ 그런 거 없고 맨날 일하는 애들한테 무시당하는 전형적인 사장님. ㅋㅋ 보스랑 사장님의 느낌은 왜 다를까요?

캐나다는 너무 추워요. 겨울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요즘은 마냥 두렵기만 하다능 ㅠㅠ 캐나다 저 있을 때 한번 놀러오세요 ㅋㅋ 록키 갑시다! ㅋㅋ

걱정 고맙습니다. 한 문장이 되게 따뜻하게 다가오네요. :)

ljh 2010-10-25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노래에서도 겨울이되는 겨울냄세...ㅋㅋ
심지어 지하철 환승하러 가는 길에서도 생각나던데?
처음엔 그 기억에 미칠것같았는데
이제는 뭐 그랬었지 하고 말아.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참...진짜 짱ㅋㅋㅋㅋ

Forgettable. 2010-10-26 13:55   좋아요 0 | URL
지하철 환승하러 가는길 ㅋㅋㅋ 나 한국 어떻게 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아지겠지. 하지만 어떻게든 스트레스의 질량은 비슷한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