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로윈 주말을 좀 심하게 재미있게 보내고 돌아왔는데, 오랜만에 많은 애들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경험을 했다. 대학교 축제 이후로 이렇게 재미있게 많은 사람과 함께 놀았던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실제로 술에 쩔어서 죽어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던 건 평생 들을 예쁘단 말을 그 날 다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술에 취해 꿈에 취해 선택한 영화는 [The Fall]이었다. 친구와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이 작품이 [어둠 속의 댄서]와 비슷한 느낌이라면서 강추해줘서 친구에게 DVD를 빌렸다. 처음에 보자마자 달리의 [Mae West]를 떠올렸는데 다시 찾아보니 역시 맞았다. The Fall은 떨어진다는 의미로 영화의 중요한 의미를 많이 내포하고 있는데 한국에는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따위로 번역되어 들어왔다. [어둠 속의 댄서]는 굉장히 힘들어서 이 영화를 보기까지 오랜 망설임의 시간이 있었는데 그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코믹한 요소도 있어서 재미있게 봤다.
스턴트맨인 로이가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어 병원에 입원하는데, 병원에서 만난 꼬마 친구 알렉산드리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액자구조로 되어있는데, 이렇게 쓰다 보니 달리의 그림을 포스터에 차용한 이유가 설명이 된다. 그건 그렇고 알렉산드리아가 로이에게 성체(빵)를 나눠주는 장면에서 로이가 Are you trying to save my soul? 이라고 묻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일도, 사랑도 모두 잃고 자살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젊은 청년은 알렉산드리아에게서 이미 희망을 발견하고 있었던 것일까.
내게 해피엔딩은 없다며 울부짖는 로이가 알렉산드리아 때문에 억지로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끝내야 하는 걸 지켜보는 건 무척 괴로웠다. 로이가 알렉산드리아의 침대에 얼굴을 파묻으며 울 때 나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났고, 나의 꿈도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남은 우리의 삶은 계속되어야 했다. 손에 쥔 게 슬픔과 좌절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멋지게 코스튬을 차려입고 예쁜 공주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꾸며내는 로이와 그 이야기에 빠져사는 나와 다를게 있을까.
영화를 보면서 하고 싶은 말이 무지 많았는데 정리가 안되서 그냥 여기까지만 한다.
친구가 주최한 할로윈 파티는 정말 대단했다. 친구와 진저음료와 50도짜리 와일드 터키를 사가서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의 주인공들처럼 마구 마셔댔다. 한복은 인기가 많아서 예쁘단 말을 정말 많이 들었는데 그 중에서 다정하고 귀여웠던 남자들은 모두 게이였다. 동생은 차선책으로 잘생긴 게이 친구를 두라고 했지만, 그들과 직접 대면해본 결과 난 그것은 고문일 뿐이라는 걸 다시금 확인했다.
한국에서는 게이를 만난 적이 없다. 아무래도 문화 때문에 커밍아웃을 안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괜찮은 사람을 만나면서 단 한번도 이 사람이 게이가 아닐까? 란 의심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선 괜찮다 싶으면 일단 게이가 아닐까? 란 의심부터 하고 본다. 이 경쟁이 안되는 구조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하지만 다행히도(?) 멋진 레즈비언도 많다. 기억 나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파티에서 만난 줄리아는 엘튼 존 코스튬을 했는데 다정하고 멋진 레즈비언이었다.
신기했던 건 그 많은 아시아인을 파티에서는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시아인들은 파티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 [통역사]에서 읽었던 너무 문학적이라고만 생각했던 쩜오세대의 절망스러운 고독과 단절감이 어쩌면 가까운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오랜만에 취해서 기억안나는 밤을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기억을 상기하며 하루를 보냈다. 이러니까 한국 친구들이 너무 보고싶더라. 항상 하던 일이 술마신 다음날 어제 얘기하면서 낄낄거리는 거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