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반장 추억 수첩 - (15)
: 푸 하 하 하
99년의 6번째 날 드디어 '아들'을 받았다.
이름은 '김동훈' 취미가 '게임'이란다. 일본어도 쬐금 한다나?
흘흘흘 나랑 취미도 똑같은 것 같다.
범장이, 태길이, 진혁이한테 아들 받았다고 편지로 자랑 해야지 ^^;
/* 장가도 안 갔는데 웬 아들이냐고요? ^^;
여기서 '아들'은 자기 밑으로 12개월(1년) 차이가 나는 후임을 말 합니다.
11개월도, 13개월도 아닙니다.
즉 자기가 11월에 군대에 왔다면 그 다음해 11월에 군대 온 사람이
자기 '아들' 군번이 되는 겁니다.
자기 밑에 1년 후임을 '아들'이라고 하고
자기 위에 1년 고참을 '아버지'
자기 위에 2년 고참을 '할아버지'
자기 밑에 2년 후임을 '손자' 라고 합니다.
보통 자기 '아들'군번한테 좀 더 신경 써주고 좀 더 잘해줍니다.
관심이 더 가죠. 정도 더 많이 가고요.
아들 군번이 없으면 "홀아비", "고X" 라며 놀리기도 하지요. ^^;
자기가 얼마나 짬밥을 먹었냐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에 좀 민감하기도 합니다.
상병 3호봉 쯤 되면 제일 기다려 지는 게 아들 군번이 되는
후임병이 언제 들어오느냐 하는 거고
말년 병장일 때는 언제 손자 군번을 보나 하며 손꼽아 기다리지요.
저 때만 해도 군생활이 26개월이라 손자 군번까지 볼 수 있었는데
이제 군생활이 24개월이라 손자 군번을 못 보겠군요.
신교대 생활을 6주 동안 하기 때문에 2년 밑에 후임을 볼 수가 없거든요.
예비역들은 아마 잘 아실 겁니다.
자기 아들 군번 들어왔을 때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말이죠.
처음 후임병 받을 때만큼이나 기분이 좋을 겁니다.
달마다 꾸준히 후임병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서
아버지가 없는 군번, 아들이 없는 군번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면 좀 서러운 게 있죠.
전 손자도 못보고 제대했습니다. (T^T) */
: 오늘은 99.01.17...
정확하게 1년 뒤 오늘, 그 날이 바로 '그날'
전설 같은 그 "날"이다.
365*24=8760
8760시간만 있으면 8760*60=545600
545600분만 있으면 545600*60=32736000
32736000초만 있으면 전역이다
제 작년 (이라는 표현을 쓰기엔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11월 18일.
착잡한 마음을 가진 부모님을 뒤로하고 306보충대로 향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래~~~
일년만 있으면 된다.
열심히 하자!
일년 뒤의 오늘. 후회와 미련이 없도록.
: 군대 와서 느낀 것 또 하나...
사악한 것.
(즉 쉽게 풀이하면 사람이 아주 못 된 것!)도
아무나 할 수 없는 개개인 고유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포대 고참들 중에서는 정말 '싫은 소리'를 한 마디도 못하는 고참이 몇 있다.
정말 사람이 너무 좋아, 보는 사람이 답답할 정도로...
유격장의 유격 조교들한테서도 그걸 느낄 수 있었다.
PT체조를 가장한 얼차려를 주면서도 고통에 겨워하는
(물론 '오버'를 한 표정도 상당수 비중 있지만)
여러 올빼미들을 보게 되면 이내 요령 피우는 걸 눈감아준다.
남들이 힘들어하는 걸 보고 좋아 할 사람은 정말 흔치 않을 것이다
결론: 사악한 것도 능력이다
/* 적당한 비교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유격 뛸 때 조교들은 전부 사람이 좋았나 봅니다.
제 친구가 유격 뛴 이야기를 들으면
조교들은 정말 '인간'이 아니라며 계속 욕만 하던데.... */
: 주 마다... 많으면 2번, 못해도 꼭 한번은 집에 전화를 한다.
언제나 아들 전화를 반가워하시는 우리 어머니.
매번 전화 할 때마다 매번 똑같은 전화 내용.
엄마 - 아! 양이가!
나 - 예
엄마 - 춥제? (겨울철 일 때)
덥제? (여름철 일 때)
힘들제? (춥지도 덥지도 않을 때)
나 - 아니요 별로 뭐...
엄마 - 아침밥은 먹었나?
나 - 예, 집에는 별일 없죠?
엄마 - 그래.. 다 잘 있다.
요즘 힘 안 드나? 힘들제!
나 - 아니요... 그냥...
뭐 그렇게 힘든 건 없어요.
남들도 다 하는 건데...
엄마 - 돈 안 필요하나? 좀 붙여줄까?
나 - 아니요, 필요 없어요.
나중에 필요하면 전화할게요...
...
....
.....
거의 모든 통화 내용 중에 80%가 위에 쓴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그래도...
매번 같은 내용을 되풀이해도 그 통화가 질리지 않고 반가운 건
그 전화를 받는 사람이 다름 아닌 '어머니'이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