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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한 V양 사건 ㅣ 버지니아 울프 전집 10
버지니아 울프 지음, 한국버지니아울프학회 옮김 / 솔출판사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라뺑과 라삐노바
과부와 앵무새: 한 편의 실화
아무에게도 이롭지 않은 바람은 불지 않는다
공작부인과 보석상
길고 뾰족한 코로 반쯤은 킁킁 냄새를 맡고 반쯤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그 일을 위해 워털루로 갔다-햄프튼 코트에 가기 위해서- 혼자였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러나 어리석게 그녀가 바라지도 않은 동정심을 가졌다.
밖에서 본 여자대학
필리스와 로자먼드
그런데 우리 손에 들어오는 초상화들의 대부분이 무대를 뽐내며 활보하는 남자들의 것이니만큼 그늘에 다닥다닥 모여있는 여자들 중의 하나를 모델 삼아 그린 초상화도 값어치가 없지 않으리라고 본다.
그 집은 딸이 다섯이다. 모두 딸이라고, 그들은 서글프게 말할 것이다. 그들은 일생 동안 이 근원적 과오 때문에 부모를 매우 안쓰러워했다.
그들은 응접실에서 살도록 태어난 사람들같이 보였다.
밤이 깊었고, 두 자매는 얼굴의 혈색을 위해서 촛불을 끄고 잠을 자야 한다고 사무적으로 결정했다.
그녀는 자기가 생각해낸 이론에 견주어 그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를 검증했다.
아주 예리하고 유능한 두뇌를 가진 로자먼드는 인간성을 관찰하는 것밖에는 자신의 지성을 단련할 방편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을 꿰뚫어보는데 능했고, 그 관찰은 사심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판단은 신뢰할 만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가장 예리한 통찰도 더 깊은 탐색을 위한 출발점이 될 뿐이고 결론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웠다.
필리스는, 트리스트람 자매가 기독교를 야유한 가벼운 농담을 하고 마치 종교라는 것이 사소한 문제인 것 같이 재미있어 한 것을 본능적으로 비난하고 나서 다음 순간 자신의 뺨이라도 때리고 싶었다.
사랑이란 필리스와 로자먼드에게는 정해진 타산적인 언행의 결과로 생성되는 것이었고, 그것은 무도회장이나 꽃 향기 가득한 온실이나, 의미심장한 눈길이나 부채의 펄럭임이나, 더듬거리는 암시적인 말 속에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방 안에서는 사랑이라는 것이 대낮의 햇빛에 노출된 건장하고 꾸밈없는 것으로서 누구나 마음대로 한 조각 떼어내서 면밀히 관찰할 수 있는 벌거벗은 견고한 실체였다. 필리스와 로자먼드는 만약에 그들에게 마음대로 사랑할 자유가 주어진다 해도 이런 식의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젊은이다운 조급한 충동으로 그들은 스스로를 가망 없는 인간들로 규정했고,
그러나 트리스트람 자매는 두 사람이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꼈고, 그래서 동생인 실비아 트리스트람 양은 언니가 귓속말로 뭐라 이르자 필리스와 둘만의 대화를 시도했다. 필리스는 마치 뼈다귀를 받아먹는 개처럼 황송해서 실비아와 대화를 했다.
필리스는 대화를 나누기 위해 앞으로 몸을 굽히면서, 마치 자기가 열병에 걸린 손으로 인위적인 잡동사니의 더미를 헤치고 그 아래 존재하리라고 믿는 순수한 자아의 견고한 몸체를 만지려고 휘젓고 있는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불가사의한 V양 사건
지금 당장 의자를 넘어뜨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아래층 사람이 최소한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은 알게 되겠지.
V양 자매는 한 십오년 동안 런던 거리를 소리없이 돌아다녔는데, 어떤 집들이 응접실에서나 미술관 같은 곳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에게 마치 매일 만나는 사람에게 하듯이 "안녕하세요, V양'하고 인사를 하면 그녀는 "날씨 참 좋지요?"라든가 "날씨가 너무 궂네요."라고 대답했으며, 이쪽에서 먼저 걸음을 옮기면 그녀는 안락의자나 서랍장속으로 스며들어버린 듯이 더 이상 눈에 띄지 않았다. 어쨌든 그러고 나서 한 일년쯤 후에 그 가구들에서 분리되어 나왔는지 그녀가 다시 나타났고, 다시 같은 인사가 반복되었다.
혈연이-V양의 혈관에 흐르는 액체가 피라면-
어느 이른 아침, 새벽에 잠에서 깨어서, 나는 "메리 V! 메리V!" 하고 외쳤다. 그것은 내게 처음 있는 일이었고 아마도 어느 누구도 그녀의 이름을 그렇게 확실하게 불러본 일이 없으리라고 확신한다. 그녀의 이름은 다만 막연한 기호로서 긴 문장을 채우기 위해서 삽입되었을 뿐이지 않을까 싶다.
세 개의 그림
탐조등
어떤 모임
지성을 계발하기 시작하기 전이 사내아이보다 매력적인 게 어디 있겠니. 보기에 아름답고, 잘난 체하지도 않고, 미술과 문학의 의미를 본능적으로 이해하지.
현악 4중주
무엇에 관해서지? 이제는 무엇인지 말할 수도 없고, 심지어는 그런 일이 있었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할 수도 없다고 믿으면서,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 왜 앉아 있는지 말하는 것이 매 순간 더 어려워진다.
제가 잘못 알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기억하고, 무언가를 은밀하게 찾고 있다는 징조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춤추고, 웃고, 핑크색 케이크, 노란색 케이크를 먹고, 약하고 짜릿한 와인을 마시고 싶어요.
어느 소설가의 전기
‘사망이 집안에 드리웠고, 지옥이 그 앞에서 하품하도다"라고 그녀는 기록했다. 그러나 그녀가 기록한 감정들이 전적으로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진지한 태도는 단지 부분적으로 그녀의 바람막이가 되었을 뿐, 무한한 고통의 여지를 남겨놓았다. 1841년 5월에 그녀는 "내가 자연의 얼굴 위에 남겨진 유일한 오점인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예견되었듯이, 친구 윌랏 양보다 세상을 향한 혐오감을 덜 가지고 있었고, 자기 자신의 짐을 인류의 어깨 위에 전이시킬 수 있었던 엘렌 버클은 자신의 회의를 완전히 잠재워준 어느 엔지니어와 결혼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시간의 그녀의 편지들은 지독하게 지루하다. 그 부분적인 이유는 사랑이란 단어와 그 말로 인해 오염된 전체 구절이 생략 부호인 별표로 축소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런 고백을 하면서 여러 가지 미덕이 부족하다고 인정했다. 그래서 적어도 다른 미덕을 소유하고 있음을 자기 자신에게 입증하는 일이 꼭 필요했다.
괘종시계의 째깍째깍하는 초침 소리와 더불어 그 소재들이 축적된다는 비밀을 그들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예의 그 자의식이 그녀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아랍인이나 그의 신부로 상상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녀의 글 중에 백미는 그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씌어졌다.
윌랏 양은 너무나 영리하여 누군가가 어떤 문제에 대해 해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잡종견 집시
남녀가 사랑에 빠지게 된 경위를 설명하기도 어려운 일인데, 테리어 잡종과의 사랑에 빠진 얘길 꺼내는 것은 더욱 어려워 보였다.
본드 가의 댈러웨이 부인
아마 우리들 중 누군가가 (한심해라!) 말을 못 탔었지. 그러니 어떻게 여자들이 국회에 앉아 있을 수 있겠어? 어떻게 남자들과 일을 할 수가 있느냐고.
그녀가 원치 않는 사람들이 올 거야. 오길 바라는 사람들은 오지 않을 테고.
단단한 물체들
새 옷
그녀는 계속 거울 속을 들여다 보았고, 고약스럽게 정체를 폭로하는 그 파란 물웅덩이 안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그녀가 노란 드레스를 입은 것은, 그녀가 받아 마땅한 속죄행위처럼 보였다.
그들 모두에게는 로맨스도, 어떤 극단적인 일도 없었다. 그들은 바닷가의 휴양지로 그저 그만하게 하나씩 흩어져 소멸되어갔다. 물놀이 행락지 어디에나 그녀이 이모 하나쯤은 지금도 앞 창문이 완전히 바다를 향하지는 않은 어떤 하숙집에서 자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주 그들다웠다.
동감
내가 상상을 해볼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다른 사람의 삶에는 항상 우리를 제외시키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드러난 표시만을 보고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것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소음 가운데서도 나는 생각할 것이다. 그녀는 더 많이 들을 거라고. 그녀의 공허에는 공허의 유령이 따를 것이기에 이 모든 것 때문에 나는 그녀를 부러워할 것이다. 나는 그녀를 부러워할 것이다.
나는 내 의도와는 다르게, 급하게 충동적으로 대답한다.
그는 그의 삶을 우리가 밟고 지나가도록 외투처럼 깔아놓았다.
외마디 외침이 내 왼쪽에서 시작되고 또 하나, 급작스럽고 토막 난 외침이 오른쪽에서 들린다.
비록 아직 소식을 듣지 못한 이들은 그에게 편지를 보낼 것이다.
사냥꾼 일행
행복
스튜어트 엘톤은 자신이 하나 위에 또 하나 차곡차곡 단단히 놓여진 많은 꽃잎들, 즉 모두가 빨갛게 물이 들고 모두가 온통 따뜻하고 모두가 이 형용하기 어려운 광채를 띤 많은 꽃잎들이 압축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어떤 내과적 병의 확실한 순교자였다.
"정말 혼자서요."
서튼 부인은 반복했다. 그것이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점이라며 검고 윤기 나는 머리칼의 머리를 절망적으로 떨구면서 말했다-행복하다는 것 말입니다. 완전히 혼자서요.
어느 영국 해군 장교의 생활 현장
그의 얼굴은 수세기 동안 많은 질문을 받았지만 아무 대답도 내놓지 않은 우상이 불가해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브레이스 함장의 등은 뱀가죽처럼 몸에 꽉 끼는 양복 안에 들어있었다.
유령의 집
반야 아저씨
청색과 녹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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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여자(남자일 때도 마찬가지이고)일 때, 그 여자 소설가가 쓴 작품에 나오는 모든 여자 주인공을 그 '여자 소설가'라고 생각해버리는 게 나쁜 습관이라는 걸 안다. 무엇보다, 그 소설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자기의 치부를, 가뭄에 바닥이 드러나버린 강바닥처럼 철저하게 바닥까지 드러내는 용기의 불꽃이 사그라지게 하는 일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하지만,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버릇은 고치지 못해서 버릇이라고, 여전히 나는 단편집에 든 수많은 단편을 읽으면서 모든 여자 주인공을 버지니아 울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행복한 결혼이어야 하지만, 정작 그렇지 않은 자신은 환상을 빌어 연기를 하다가 결국 현실에 질식해버리고 마는 아내도, '응접실에서 살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같이 보인다는 부르주아 사교계 속의 젊은 처녀도, 늘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글을 썼다'는 어느 소설가도, '남자들이 좋은 글을 쓰기 전까지는 절대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친구들과 약속하는 소녀도, 모두 그녀다.
모두가 '네'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용기와는 상관없이, 나는 버지니아 울프가 페미니즘 작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록 '여성'의 얘기가 소설의 주를 이루지만, 여류 소설가가 대개 그렇지 않나.
그런데, '버지니아 울프'의 이름은 참 아이러니하다. virgin이아 울프. 어렸을 때는 의붓 오빠들에게 끊임없이 성폭행을 당했고, 커서는 동성애에 끌렸지만 스스로를 강력한 이성으로 억눌렀고, 늘 자신이 '불가사의한 v양' 처럼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두려워했고, 결혼 생활 속에서 질식하고 싶어했다.
버지니아 울프가 우즈 강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 "나는 내가 다시 미쳐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당신은 놀라울 정도로 나를 잘 참아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인생을 더 이상 망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글을 남기긴 했지만, 정말로 강으로 걸어 들어간 이유는 '당신의 인생을 더 이상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였다고 믿는다.
그녀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결혼을 지속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힘은 바로 환상이며, 환상은 저 우주의 행성처럼 분열하고 또 분열하다가 결국은 죽는 법이니까. 그럴 때 용기 있는 사람은 결혼을 끝내지만, 나약한 사람은 환상도 없이 생생한 현실에 주저앉고 만다.
감히 범접할 수 없다고 느끼거나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광경을 '그림'이라고 정의하고는, 한 순간 죽어버리며 한 순간 사그라지는 행복을 '그림'이라고 했던 걸 보면(세 개의 그림), 그녀는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도 모르게 단언하게 된다.
그런 버지니아 울프에게 글 쓰기는 '아래층 사람이 최소한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은 알게' 하려고 '지금 당장 의자를 넘어뜨'리는 행위였을 거다(불가사의한 v양 사건).
그러면서도 여전히 스스로 '늘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글을 써왔다'며 자신의 글쓰기 행위를 비하한다(어느 소설가의 전기).
그래서 그녀는 수면제 백 알을 삼켰고, 집 근처 우즈 강 속으로 들어갔던 것일 거다.
처음부터, 불가사의한 V양이었던 버지니아 울프가 그것 외에 달리 무얼 선택할 수 있었을까. 그토록 치열하게 내면에 수많은 방을 만들고 그 방 안을 또 치열하게 채워나가고 방을 채워놓은 그것들을 치열하게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았던 그녀가 달리 무얼 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