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정용준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용준 작가의 단편 [떠떠떠, 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편 중 하나다. 그 작품을 통해 정용준 작가를 알게 됐고, 관심을 갖고 이후 발표하는 작품들을 대부분 읽어봤다.

내가 [떠떠떠, 떠]를 좋아한다고 해서 작가가 그런 유의 소설만 써야 하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이번 소설집에서의 작가는 확실히 그 작품을 쓴 작가와는 다르다.

난 처음에 알았던 작가의 모습이 더 좋은데, 그 사이에 작가의 내면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고 짐작해 볼 뿐이다.

이번 단편집은 실린 모든 작품들이 아버지, 혈육, 주어진 관계, 관계를 받아들이는 태도 등 일관된 하나의 문제의식 아래 다양한 서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성취를 이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떠떠떠, 떠>에서 진득하게, 소설의 인물들을 뼛속까지, 혈관 속까지 들어가본 것 같은 인상을 줬다면 이번 소설집의 작품들에서는 그보다는 인물들에 조금 덜 관여하고 조금 덜 애정을 쏟은 것처럼 느껴졌다.

이번 단편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들 조금은 작위적이랄 만큼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설정만으로도 인물들의 고통이랄까, 심경이랄까, 독자들이 저절로 짐작하게끔 되는 부분이 있다. 독자 입장에서 작가만큼 구체적으로 이 인물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서 어떤 것을 생각하게 되고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까지를 상상해내진 못할 지라도, 그들이 그저 평온할 수 없으리란 것, 그들의 삶이 이전과는 다르리란 것은 처음부터 상정하고 읽어나가게 되기 때문에, 작가가 보여주는 그들의 이야기가 오히려 얕게 느껴진다. 등장인물들이 대체로 냉정하고 침착하다는 점도 어쩌면, 작가가 인물들에게 조금 덜 관여했다고 느끼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인 것 같다.

책을 읽기 시작해서 마지막 단편을 읽을 때까지 쉼 없이 읽어나가게 하는 힘은 이전 단편집 <가나>보다 더 강했다.

작가의 다음 책도 나는 아마 사서 볼 것이다. 엄청나게 놀랍고 새로운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주는 ˝이야기꾼˝ 정용준보다는, 차분하고 진지하게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정용준의 모습이 더 기다려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 2015 제1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문예중앙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책의 제목이 된 한강의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때문인지, 각기 다른 작가들의 단편들이 실린 이 책 전체가 모두 겨울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작년 한 해는 특히나, 분명히 존재하는 비극 앞에서 제대로 된 말을 할 수 없는 작가들의 고통이 여러 작품들을 통해서 느껴졌던 해였기 때문에 더 그런 인상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여기 실린 작품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이 누군가에게 굉장히 미안해하고 있다. 그건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미안하고 또 미안할 수밖에 없는 두 해를 우리 같이 보냈으니까.

하지만 눈 한 송이가 녹기 위해선 눈이 내릴 때보다는 조금 더 높은 온도, 눈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함이 필요한 것을 안다는 듯이, 작가들은 뼈저린 아픔과 어찌할 수 없는 반성을 하는 가운데도 끝까지 한 줄기 따뜻함을 남겨줬다. 그것이 눈을 내리게 하는 동시에 또 내린 눈을 녹이는 힘이다.

나에겐 그리 읽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민음사 책포장이 너무 예쁩니다.
버스광고 시리즈랑 마우스패드 시리즈랑 계속 이어지는 건데 전혀 질리지가 않고 참 좋아요. 볼 때마다 좋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두 도시 이야기 펭귄클래식 135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첫 문장을 읽으면서 그 유명한 문장들이 바로 이 작품의 첫 문단이었구나 알았습니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에 나오는 첫 문단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같은 구조를 가진 역설적 표현들은 사방에서 쓰이고 있으니까요. 이 세기의 고전을 드디어 내가 읽는구나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시작은 미스터리입니다. 한 은행원의 은밀한 작전 수행, '되살아났다'라는 알 수 없는 전보. 두께가 만만치 않은 이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궁금했고 재치 있는 문장들은 빛났습니다. 실제로 '되살아났다'는 이후 진행되는 이야기의 중요한 출발점이자 이 이야기속의 모든 사건을 일으키는 모티프가 됩니다.

 

이후 진행되는 이야기들은 흥미진진합니다. 프랑스혁명 당시의 프랑스 모습이 생생히 드러나있고,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등장인물들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끊임없이 궁금증을 자아내는 스릴러의 요소 또한 강하게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서평의 제목에 작가나 작품의 명성에 걸맞지 않은 '막장 드라마'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막장 드라마의 특징은 등장인물 모두가 서로 긴말하게 관련되어 있고 자극적인 설정이 난무하며 이야기는 항상 극적으로 치달아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드라마의 경우 모든 인물이 서로 비밀스럽고 특수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데는 '제작비'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고 합니다. 가능하면 최소한의 등장인물로 드라마를 찍을 수 있어야 제작비를 줄일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출생의 비밀' 혹은 '지나치게 얽히고설킨 가족사'가 등장해 이야기가 오로지 그 비밀이 밝혀지고 화해하는 과정에만 치중되면 사람들은 그런 드라마를 막장 드라마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물론 프랑스혁명은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그 자체로 더할나위 없이 자극적이고 항상 극적인 역사적 사건이었으니까요.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현재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프랑스혁명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막장 드라마 요소를 갖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족의 비밀,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너무 완벽한 여인, 그 여자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절대적인 사랑이야기에 완전히 동의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 모든 이야기를 행복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게 되는 카턴의 숭고한 사랑과 희생이 등장하는 대목에 있어서는 몰입이 완전히 깨지고 말았습니다.

 

프랑스혁명이 디킨스가 묘사한대로 눈먼 폭력성을 띠고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지만 너무 그러한 측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도 불편한 부분이었습니다. [두 도시 이야기]에서의 주인공은 완벽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이상적인 가족입니다. 이들의 사랑과 삶이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끊임없이 위협을 받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독자는 자연스레 프랑스혁명의 폭력성과 무자비함에 집중하게 되죠. 자연스레 대결구도와 선악구도가 형성되고, 주인공의 행복을 바란다면 시민(폭도)들이 패배하기를 바라게 되는 상황에 놓입니다.

 

이야기의 속도감, 해학과 풍자가 가득하면서도 생생한 문장에도 불구하고 편향된 시각, 보수적인 세계관, 모범생으로만 가득한 인물들(주인공들)은 열심히 책장을 넘긴 저에게 일종의 허탈함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렇게 놀랍도록 아름다운 인간성과 숭고한 사랑이 비현실적이라 믿는 제가 문제인 걸까요.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요, 지혜의 시절이자 어리석음의 시절이었으며, 믿음의 세월이자 회의의 세월이요,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으며, 희망의 봄이자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으면서 아무것도 없었고, 우리는 모두 곧장 천국을 향해 가고 있으면서도 곧장 지옥으로 가고 있었다. 요컨대 그 시대가 현재와 어찌나 닮아 있었던지, 당시의 가장 말 많은 권위자들조차 선과 악, 즉 극단적인 대조만이 허락되는 세상이라고 주장할 정도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