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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칠 수 있겠니
김인숙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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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겪은 사랑과 이별, 배신과 또다른 사랑은 어찌 보면 이 소설의 뒤를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쓰나미에 비해 정말 별 것 아닌 일이다. 하지만 자연재해로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최후의 시간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해 사랑한다거나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데 쓰는 걸 보면, 사랑이란 감정과 경험은 쓰나미만큼이나 거대한 사건이고 사고이기도 하다. 

"진은 그를 만나기 전에 몇 번의 사소한 연애를 거쳤다. 사소한 연애였으나 이별까지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이별은 슬픔과 남겨진 고독 때문에 매번 통렬했고, 환멸과 후회가 비 그친 후에도 벗지 못한 비옷처럼 질척했다." p.13  

그래서 이별이란, 아무리 겪고 또 겪어도 언제나 '통렬'하고 '질척'한 것.  

최근 SBS '짝'이란 프로그램의 일명 '돌싱특집'을 보면서 한 가지 느껴지고, 또 궁금한 게 있었는데 그건 바로 '연애하다 헤어지는 것'과 '결혼해서 살다 헤어지는 것'이 분명히 다르다는 새삼스런 깨달음과 그 두가지가 왜 그렇게 다른 것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진'은 '유진'을 만나기 전에도 이미 '몇 번의 사소한 연애를 거쳤다.' 그 몇 번의 사소한 연애와 유진과의 연애가 다른 점은 유진과의 연애는 결혼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변화와 결심과 또 배신이 진에게는 더 통렬하고 질척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애인의 배신과 남편의 배신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말이나 눈빛으로 한 약속과 서류상 약속의 차이인가, 애인과 헤어지면 쉽게 또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지만 남편과 헤어지면 다른 사람 만나기가 힘들어서인가, 애인과 헤어졌다고 다른 눈으로 보는 사람은 없지만 남편과 헤어지면 사람들이 다른 눈으로 보기 때문인가. 헤어질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헤어지는 것과 이제 헤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헤어지는 일의 차이인가. 

잘 모르겠다. 겪어보지 않았고 겪어보고 싶지 않고 설사 겪어본다 하더라도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결혼하고도 먼 나라로 떠나 따로 살고 있는 남편의 배신은 한 평범한 여자를 살인자로 만들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것. 

7년이 흐르고, 여자는 매년 찾아간 그 섬을 다시 찾는다. 그리고 결혼을 목전에 두고 사랑을 잃은 또다른 한 남자, 드라이버 이야나를 만난다. 

"여자는 아마도 그 손의 주인이 걸어오는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마도 파묻어버리고 싶었던 것은 정작 그 기다림이었을 것이다. 던져버리지 못하고 기껏해야 파묻었다가 다시 파내는 기다림이라니......" p. 65  

진은 유진을 기다리고, 이야나는 수니를 기다린다. 그러면서도 둘은 서로에게 끌린다.

"취하고 싶은 욕구와 취하고 싶지 않은 욕구가 동시에 여자의 붉은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p.74  

취하고 싶은 욕구와 취하고 싶지 않은 욕구, 되찾고 싶은 욕구와 벗어나고 싶은 욕구, 죽고 싶은 욕구와 살고 싶은 욕구, 삶은 이렇게 동시에 미칠 수 없는 두가지 혹은 그 이상의 욕구를 동시에 욕망하며 허비하기 쉽고 그래서 비극이다. 진과 이야나도 유진과 이야나, 수니와 진 사이에서 흔들리고 비틀댄다. 그러다 결국 서로를 통해서 과거를 극복하고 다음 단계의 삶을 준비하고 받아들이지만 나는 계속 그게 슬펐다.  

결국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어도 옛날로 되돌아갈 수는 절대로 없다는 것. 아름다운 섬을 덮친 쓰나미 피해를 복구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희망할 순 있어도 쓰나미가 덮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그 때의 죽은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없다. 진과 유진이 어느 평범한 날 벤치에 앉아 옛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흘러도 그 흐르는 시간은 내일을 향한 것이지 결코 어제를 향한 것은 아니다.  

"당신 나이 알아요. 그런데 왜 늙지도 못했어요?" 

"칭찬 아닌 거죠, 지금?" 

이야나가 다시 웃음소리를 내고, 어깨에 얹힌 진의 머리에 비로소 살짝 버티는 듯하던 힘이 느슨해진다. 

"봄이 오지 않아서요...... 늘 겨울이었거든요." 

"난 늘 여름이고요." p.208
 

진이 이렇게까지 늙지도 못한 채 어울리지 않는 젊은 얼굴을 하고 있었던 이유도 아직 아무것도 용서하거나 용서받거나 받아들이지도 못한채 그저 시간이 그만큼 흘렀다는 이유로 그만큼 변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른 모두에게는 7년이라는 시간이 저마다 흘렀지만 진에게는 멈추어있는 시간이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그 벤치에서의 만남이 너무 슬펐고, 더 슬펐고,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다. 

"검색어에 지진을 입력하면, 수없이 많은 동영상들의 제목이 떴다. 진은 그 제목들을 클릭하지는 않았다. 제목만 봐도 마음속의 바닥이 흔들렸다." p.292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다. 사랑도, 쓰나미도, 지진도, 그저 검색창에 입력하면 뜨는 몇 글자에 지나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진은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을 거다.

"내가 가장 예뻤던 시절에 널 사랑했다는 거, 그걸 너는 알고 있는 거지?" p.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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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걸 너는 알고 있는 거지?"
    from 야구가 끝나는 그때부터가 진짜 겨울 2011-07-21 23:51 
    한 사람이 겪은 사랑과 이별, 배신과 또다른 사랑은 어찌 보면 이 소설의 뒤를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쓰나미에 비해 정말 별 것 아닌 일이다. 하지만 자연재해로 죽음을 목전에 둔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최후의 시간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해 사랑한다거나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데 쓰는 걸 보면, 사랑이란 감정과 경험은 쓰나미만큼이나 거대한 사건이고 사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