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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타이거
페넬로피 라이블리 지음, 김선형 옮김 / 솔출판사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이런 제목으로 글을 쓰려니 이상하지만, 워낙 신간평가단의 평가가 좋지 않은 편이라서 말이다. 아니, 뻔뻔스럽게도 기한을 한참 넘겨 리뷰를 쓰고 있는 내게는 다른 분들의 호의적이지 않은 평가가 오히려 책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결과적으로 만족도를 높이는 결과를 낳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좋았다.
"세계의 역사를 쓰고 있어요." p.7
라는 첫문장 역시, 다른 분들의 리뷰를 미리 조금씩 읽어보았던 영향으로 다소 거만하고 젠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인상을 줬다. 실제로 책의 꽤 많은 부분이 그렇게 대놓고 잘난 체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와 자기가 쓰려는 세계의 역사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나의 맥락 속에서 스스로를 명상해보자. 모든 것과 아무것도 아닌 일까지." p.8
"내러티브는 생략할 거야. 대신 살을 붙일 거다." p.9
"그가 풍기는 향은 그 사람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 있는 거고, 우리는 잠자는 세계사들인 거야." p.122
"언젠가 나는 엄청난 허세를 부리는 현학적인 책을 쓸 거야. 세계의 역사를 쓸 거거든." p.123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오히려 이 말은 "내 개인의 역사를 쓰고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라고 여겨졌다. 위의 문장에서도 그녀는 은근히 이렇게 힌트를 줬다. '세계의 역사'를 쓴다고 이야기는 했지만, 그녀가 쓰는 '세계의 역사'라는 것은 철저히 그녀의 '맥락 속에서', 심지어는 '아무것도 아닌 일까지', '내러티브는 생략'하고 '살을 붙'여 쓰여질 것이라고 말이다.
자존심 강하고 꼿꼿한 젊은 여성이었던 그녀가 늙고 병들었다고 해서, 그리고 그렇게 세계 역사의 중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그녀가 한 남자를 열렬히 사랑했고 그 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해서, 갑자기 자존심 버리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던 게 아닐까. 그러니까 "세계의 역사를 쓰고 있어요."는 죽음을 목전에 둔 늙은 여자의 헛소리쯤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것이 철저히 개인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될 거라는 걸 숨기기 위한 일종의 트릭 같은 것인 게다. 물론, 모든 개인의 역사는 '세계의 역사'와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는 측면에서는 진실이 될 수도 있지만.
"희한하게도, 집단의 과거라는 게 죄다 이런 식이야. 공공의 자산이지만 또한 심오하게 사적이기도 하거든. 우리는 모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니까. 내가 보는 빅토리아 사람들은 당신이 보는 빅토리아 사람들이 아니야. 나의 7세기는 당신의 7세기가 아니야. 존 오브리, 다윈, 아니 누구든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내게 이런 음조로 속삭이면, 또 당신에게는 다른 음조로 속삭이기 마련이지. 내 과거의 신호들은 내가 수용한 과거에서 나오는 거야. 타인들의 삶은 내 삶의 틈새에 끼워져서 철해지기 마련이라고. 나, 나, 바로 클라우디아 H." p.10
"시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사적이거나 의미적이었고(차 마실 시간, 저녁식사 시간, 시간 낭비......)." p.12
항상 이단적인 시각을 제공하며 이견이 있는 집단과는 싸움도 마다 않는, 오히려 즐기는 클라우디아 햄프턴이었기에, 이렇게 자신 있게, 자신이 '수용한 과거에서 나오는' 역사를 '세계의 역사'라고 지르고 볼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따라갈수록 딸에 대한 죄책감과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조금씩 조금씩 더 드러난다. '나도 알고보면 연약한 여자랍니다'까지는 아니라도, 그리고 의도한 게 아니었을지 몰라도.
"하지만 진실은 말에, 활자에, 책장의 증언에 묶여 있는 거잖아. 순간순간은 소나기처럼 떨어져 사라져버려. 우리 삶의 나날들은 철저히 휘발되어버리니, 오히려 꾸며낸 삶보다 더 허망하고, 픽션이 현실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것 같기도 하지." p.16
"옛날에는 용이 살았던 적이 있나요?"
그래서 모든 증거들로 볼 때 그렇지 않을 거라고 했지.
"하지만 용이라는 말이 있다는 건 한때 틀림없이 용이 있었다는 거죠."
바로 그거다. 언어의 힘. 덧없는 것들을 보존하고, 꿈에 형태를 부여하고, 햇살의 반짝임에 영속성을 주는 그것. p.22
그러니까 그녀는 자신이 '잘나고 독한 여자'로 실제로 살아온 삶을, 이렇게 글(언어)로 씀으로써 그녀가 원하는 대로 새로 정리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저 다른 역사가에 의해 이단아나 독설가로, 자신의 딸에게는 엄마 같지 않은 엄마로 기억되기 싫어서 말이다.
1. 리사
"하지만 자식의 불만은 묘하게 마음이 편치 않더군. 책상에서 고개를 들어보면 리사가 커튼에 매달려 손톱을 자근자근 씹으며,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곤 했어." p.100
이 얼마나 가슴아프고 섬뜩한 장면인가. 하지만 클라우디아는 그저 '묘하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는 정도로만 쓰고 만다. 그래놓고는 계속해서 중간중간 리사를 등장시켜 그녀의 생각을 독자에게 들려주는데, 그게 실제 리사의 생각인지, 리사가 그렇게 생각할 게 분명하다는 그녀의 자격지심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2. 재스퍼
"운명은 확실히 재스퍼의 전문 분야야. 아주 딱 들어맞아. 운명을 지배하는 인간으로 말이지." p.75
이 말은 클라우디아의 영혼의 동반자인 친오빠 고든의 입을 통해서 나오긴 했지만, 클라우디아 역시 재스퍼에 대해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클라우디아의 인생이 조금은 덜 다사다난했을 거라고 말하는 고든에게 동의를 표하는 걸로 봐서는 말이다. 그녀의 자존심이, 모두를 사로잡는 능력자, 심지어는 '운명'까지도 자신의 전문 분야로 삼을 수 있는 범상치 않은 이 남자를 단순히 섹스파트너이자, 그런 관계에서 어쩔 수 없이 우연히 비롯된 임신을 통해 태어난 딸의 아버지 정도로만 두려고 하는 것도 실제로는 자기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받은 상처가 크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자존심은 불안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p.124
재스퍼 앞에서는 이렇게 자신의 불안을 감당하면서까지 자존심을 내세우는데, 이건 적어도 그녀가 '글로 쓰고 있는' 그에 대한 감정의 양과 깊이가 실제로 더 크고 깊다는 걸로 받아들여진다.
3. 톰 서던
"당신을 만난 건 다 히틀러 덕분이에요." p.144
의식 있는 그녀가 이런 말을 내뱉을 정도로 진짜 사랑한 남자는 소설의 중반이 가까워와서야 등장한다.
"감정은 조용히 도사리고 있으면서 때를 기다린다. 그러다 아주 가끔 뭔가가 그 감정을 건드리면 포효하고 뛰쳐나오며, 그녀는 10년 전으로 고스란히 되돌아간다." p.278
톰 서던은, 아무리 머릿속에서 혼자 쓰는 세계사라도 쉽사리 꺼낼 수 없는 이름과 추억(인 동시에 상처)이었을 거다.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해 세계의 역사를, 그리고 전쟁의 기록을 남기게 된다. '문타이거'라는 제목 역시, 그녀의 다사다난했던 긴 인생 가운데, 톰 서던을 만났던 이집트에서, 그 여름에, 함께 피웠던 모기향을 추억하기 때문에, 제목의 자리를 당당히 차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이 결국은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는 역자의 해석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부정할 수도 없는 이유가 바로 이 제목 때문이다.
어쨌든 위에서 언급한 이 세사람 외에도 친오빠 고든이나, 그와 결혼하고도 늘 고든과 클라우디아 사이의 아슬아슬한 감정 때문에 외로울 수 밖에 없었던 실비아, 리사에 대한 죄책감을 그에 대한 무한한 이해와 지원으로 투영했던 라슬로, 자신의 어머니, 재스퍼의 부모님 등이 그녀가 쓰는 세계사 속에 시시각각 끼여든다. 그녀는 '고든'과 '톰 서던'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데, 이것 역시 실제로 그러했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냉정하게 사실에 가깝게 그림으로써 일종의 '반성문'이다. 병들고 늙은, 죽음을 앞둔 사람치고, 이렇게 자책하고 후회하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지만, 이번 5월 신간도서 두 권은 모두 전쟁, 1차 대전 및 2차 대전의 크나큰 영향력 아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직간접적으로 '숨 쉬러 나가다'의 '조지'와 '문타이거'의 '클라우디아'는 이 전쟁이라는 소용돌이의 영향권 안에 있으며, 이러한 경험이 그들의 인생을 크게 바꿔놓는다.
"'최전선'이란 장소라기보다 하나의 관념이다." p.172
"전쟁을 치르는 건 아이들이야. 미친 악마 같은 어른 머리에서 나온 전쟁을 소년들이 싸워내지. 이건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그때 사람들이 얼마나 젊었는지 새삼 화들짝 놀라서," p.195
그리고 물론 이 두 사람의, 전쟁에 대한 생각은, 부정적이다. 클라우디아의 경우, 한 남자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들을 만나게 해준 '히틀러 덕'을 칭송하는 망언을 내뱉고 말지만, 결국 그를 잃게 한 것도 그의 탓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결론은, 이집트의 그 여름, 전쟁 속에서도 모기향 피워놓고 평화롭게 사랑을 탐했던 그 두 사람을 갈라놓은 전쟁, 미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