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이 그린 라 퐁텐 우화
장 드 라 퐁텐 지음, 최인경 옮김, 마르크 샤갈 그림 / 지엔씨미디어(GNCmedia)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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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책을 받자마자 죽 훑어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샤갈 그림이 듬뿍 들어있다. 어릴 적 보았던 성서 그림이 모두 흑백이었는데, 이건 모두 칼라 그림이다.

그림도 모르면서 대학 시절 난 유난히 샤갈과 고야를 좋아했다. 종교가 없던 내게 샤갈이 굵은 선으로 그린 성서화들은 모두 신비롭고 유연한 그림들이었다. 고야의 그림은 반대로 하나 같이 어둡고 가난한 그림들이었다. 세상의 아픔을 그림으로 그대로 표현했던 고야의 그림은 그래서 아프게 내 마음에 박히던 때였다. 물론 고흐나 모네 등 인상파 화가들도 좋아하고 피카소도 무지 좋아하지만 샤갈은 여전히 어릴 적 내 마음을 흔들던 신비 그 자체였다.

또한 라 퐁텐 우화는 내가 가끔 세상일이 잘 안 풀릴 때, 가끔 너무 힘들고 외롭다고 느낄 때 꺼내 아무데나 펼쳐보는 책 가운데 하나이다. 그만큼 쉽고 간단하게 세상 이치를 설명해주고 있으니까. 그런 우화를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세상을 좀 더 넓은 시선으로 이해할 아량이 생긴다.

이 책은 작고 예쁜 책이다. 이런 라 퐁텐 우화와 칼라풀한 샤갈의 그림이 함께한 즐거운 책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고 유쾌하게 읽고 볼 수 있는 책이다. 늘 곁에 두고 언제나 기분이 꿀꿀할 때, 또는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 또는 잠자기 직전에 하루를 마무리하며 아무데나 펴서 그날의 교훈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의 상태나 내 상황에 따라 라 퐁텐의 우화는 매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글과 그림 모두 정말 마음에 드는 책이다.

화해를 하자며 수탉을 꼬시는 여우에게 수탉은 이렇게 대답한다.

“오, 이런! 여우님, 이보다 더 기쁘고 좋은 소식은 없을 거예요. 더구나 그 소식을 여우님한테 직접 들으니 두 배로 기쁘네요. 저기 보이는 사냥개 두 마리도 이 기쁜 소식을 축하해주러 오는가 보네요? 사냥개는 워낙 빠르니 금방 도착하겠어요. 내가 내려갈 테니 어서 화해의 입맞춤을 나눠요.”

나이 든 수탉은 계략을 부린 여우가 꽁무니를 빼고 달아나는 걸 보고 둑어라고 웃는다. 사기꾼을 속일 수 있는 현명함을 언제나 습득할 수 있을 것인가.

양치기가 된 늑대에서의 교훈은 ‘속임수를 쓰는 자는 꼬리가 잡히는 법이다. 늑대가 늑대처럼 행동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내게 잘해주는 늑대라도 늑대는 늑대다. 언젠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사랑에 대한 명언 한마디는 앵무새의 입에서 나온다. “왕이시여, 소용없는 일이니 그만 돌아가세요! 내게 돌아가자는 얘기는 더 이상 하지 말고…. 서로 안 보는 것은 사랑을 치유하는 데도 명약이지만, 미워하는 마음을 없애는 최선의 약이 되기도 한답니다.” 아무리 한쪽에서 설득을 한다 하더라도 아닌 건 아니라는 것이다.    

곰과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는 노인에서는 곰과 노인이 친구가 되었다가 벌어지는 얘기가 있다. 둘은 서로 외로워 좋은 친구가 되었지만 잠자는 노인의 얼굴 위에 있던 파리를 쫓으려고 곰이 돌로 내려치는 바람에 노인은 즉사한다. 즉, ‘무지한 친구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 차라리 현명한 적이 그보다는 낫지 않을까?’ 곰은 역시 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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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8-02-26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샤갈이 그린 우화집의 삽화, 호기심 끄네요.^^

진달래 2008-02-27 09:21   좋아요 0 | URL
샤갈 좋아하시면 맘에 드실 거예요.
단순하면서도 좀 거친 것 같은 선...
또 강렬한 색채도요.

전 라퐁텐 우화도 좋아하고
샤갈의 그림도 무지 좋아해요.

근데 얇은 책에 비해 가격이 높아서
(어쩔 수 없었겠만요~!)
별 하나 뺐어요. ^^;;
 
간절하게 참 철없이 - 2009 제1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창비시선 283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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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이 시집은 내 침대 맡을 거의 한 달을 지켰다.
어쩌다 보니 매일 잠들기 전에 한, 두 편씩 읽게 되었다.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한 시들을
사실 하룻밤에 한, 두 편 이상씩 읽기는 버거웠으리라.
그래서 한 편 읽고 생각하다 넘기기 어려워,
다른 책을 읽다가 잠들곤 했었다.

그러다 어제는 드디어 시집 3부 가운데 1부를 마치고
2부를 읽기 시작했는데,
웬걸, 너무나 맛있는 시들을 단숨에 먹어버렸다.

그 여세를 몰아 3부도 너무나 즐겁게 다 읽고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게 되었다.

안도현 시인이 그렇게 유명한데도 난 부끄럽게도 <연어>를 읽은 게 다다.
게다가 그 작품, 참 미안한 말이지만 난 큰 감흥이 없었다.
내가 너무 속세에 물이 든 탓일 게다.

난 시를 좀처럼 잘 안 읽는다. 요즘은 즐겨 읽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릴 적엔 김소월부터 김영랑, 윤치환, 윤동주, 황동규 등등
너무나 많은 시들을 외우고 다녔었다.
학교에서 배워서가 아니라 정말 좋아서,
정말 너무나 좋아서 늘 시집을 끼고 다녔었다.

그러다 어느 새 난 시를 멀리 하고 소설만 읽는 독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를 읽는다. 그 소원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은 감성이 무뎌진 내 탓일 수도 있고
복잡다단한 물질만능 세상 탓일 수도 있고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시를 쓰는 시인들의 탓일 수도 있고
쉽고 편안한 시보다 알아먹기 힘든 시들을 전면에 배치한 출판사 편집 탓일 수도 있다.

이 시집, 맛있는 시들로 가득한 2부 너무 좋다.
3부도 내가 생각하던 안도현 시인 이미지가 물씬 풍겨 너무 좋다.

만약 나 같은 독자가 있다면, 2부를 제일 먼저, 그다음에 3부를
그리고 제일 나중에 1부를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그것이 이 맛난 시들을 흠뻑 느낄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
뒷집 조성오 할아버지가 겨울에 돌아가셨다
감나무 두 그루 딸린 빈집만 남겨두고 돌아가셨다

살아서 눈 어두운 동네 노인들 편지 읽어주고 먼저 떠난 이들 묏자리도 더러 봐주고 추석 가까워지면 동네 초입의 풀 환하게 베고 물꼬싸움 나면 양쪽 불러다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심판 봐주던

이 동네의 길이었다, 할아버지는
슬프도록 야문 길이었다
(...)
- 조문 가운데에서

비 온다
찬 없다

온다간다 말없다

처마 끝엔 낙숫물
헛발 짚는 낙숫물

개구리들 밥상가에
왁자하게 울건 말건
밀가루반죽 치대는
조강지처 손바닥
하얗게 쇠든 말든

섰다 패를 돌리는
저녁 빗소리
- 수제비 가운데에서

하늘에 걸린 쇠기러기
벽에는 엮인 시래기

시래기에 묻은
햇볕을 데쳐

처마 낮은 집에서
갱죽을 쑨다

밥알보다 나물이
많아서 슬픈 죽

훌쩍이며 떠먹는
밥상 모서리

쇠기러기 그림자가
간을 치고 간다
- 갱죽 가운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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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다예요 2008-02-26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맛나게 읽으셨다니, 진달래님과 비슷한 시기에 읽은 거 같은데 전 별로 감흥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시 읽는 게 점점 두려워져요. ;;

진달래 2008-02-27 09:20   좋아요 0 | URL
아, 저요... 1부 읽다가 정말 힘들었어요.
어찌나 진도가 안 나가던지요...
간신히 1부 끝나고 2부를 읽는데 넘 맛난 거예요. 시들이...

전 좀 쉽고 편안한 시가 앞에 있었으면 좋겠더라구요.
근데 시인들의 요구인지 출판사 편집인지,
꼭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시가 앞에 있어서
진을 빼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읽기 싫어지거든요.

전 진짜 감상 정도도 아니고 그냥 읽는 거예요.
시 읽는 게 두려워진다는 말씀, 알듯도 해요...
 
하드보일드 에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6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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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너무 가볍고 때론 황당할 정도로 이상하고 때론 이상적일 만큼 순수하고 때론 변태적일 정도로 어둡다고 생각하는 게 원래 일본문학에 대한 대체적인 내 생각이다. 그래서 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굳이 찾아보진 않는 게 단점이다. 가까운 나라면서도 정서상 이해하기 힘든 면도 많은 나라가 내겐 일본이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지하철>이나 <화차>, <흑소소설> 또 최근의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등 재밌으면서도 뛰어난 작품 들도 많이 읽었다. 요즘은 평범한 사람들의 찌질한 심성부터 블랙유머까지 다양한 작품으로 일본문학을 만끽하고 있다. 

이 작품은 그런 작품 중의 하나다.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하고 즐겁다. 나이 서른셋에 정신 못 차리고 탐정을 하겠다고 되는대로 사는 것 같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일에는 최선을 다하는 직업정신도 투철한 모가미와 다이너마이트 보디(!) 꼬부랑 할머니 비서 아야가 펼치는 신나는 탐정 이야기이다. 물론 동물수사 80퍼센트, 불륜 수사 20퍼센트의 탐정 일이라 행방불명된 애완동물을 찾는 게 대부분의 일이지만 그 일에 임하는 둘의 자세가 얼마나 꼼꼼하고 치밀한지 웬만한 탐정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너무 세세해서 앞부분이 조금 지루한 면도 없지는 않았지만 아무 생각 없는 것 같은 모가미의 생각이나 태도, 행동에선 미워할 수 없는 애정이 느껴지고(나 같잖아!) 다이너마이트 보디 아야와의 대화나 생활에선 정말 행복할 정도로 너무나 유쾌하다.(낄낄, 깔깔 보장이다!) 대화마다 어긋나기만 하는 아야가 모가미의 탐정 멘토인 필립 말로와 하드보일드 에그 얘기를 듣고 준비해오는 건 완숙 계란이다. (완숙 계란 아니라니깐요~!)

게다가 함께 등장하는 엄청난 냄새의 겐씨, 등교거부 소년, 술집의 J, 애니멀 홈의 자연인 같은 두 부부 그리고 무시무시한 동네 야꾸자 들까지 모두 이야기의 감초 같은 역할을 한다. 등장인물로 봐서 대충 짐작은 하겠지만 이권이 개입되고 살인이 벌어지고 동물이 사라지는 등 조용했던 모가미 탐정 사무소가 진짜 탐정 일로 바빠진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대가도 없는 수사를 하는 모가미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고 몰랐던 사실들이 하나씩 속속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간다.       

‘인생에 플레이백은 없다.’

인간과 인간 사이, 인간과 동물 사이의 진정한 애정은 무엇일까. 성질은 삐뚤어졌으면서 강아지 한 마리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건 무슨 경우냐는 할머니의 물음에, “하드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어. 부드럽지 않으면 살 자격이 없고.”라고 말하는 모가미의 말은 후에 타인의 행동을 보면서 비교해 볼 수 있다. ‘아마도 이자는 동물과 너무 오래, 지나치게 오래 살았다. 동물의 삶과 죽음을 너무 많이 봐왔다. 동물이 죽는 걸 너무 많이 봐서 사람의 생명과 죽음의 뜻을 잘 모르게 된 것이다.’

모가미와 아야는 시종일관 대화에서 한 박자씩 어긋나긴 하지만, 할머니를 업고 수사를 하는 모가미나 적절한 타임에 할머니만이 할 수 있는 능력으로 모가미를 구하는 절묘한 파트너쉽을 발휘한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둘의 관계다. 할머니의 집에서 발견하는 진정한 할머니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마 모가미도 그랬으리라.    

‘갈 때는 반드시 삶은 계란을 놓아둔다. 특별한 계란은 아니다. 편의점에서 파는 두 개들이 완숙 계란이다. 두 개 중 하나는 내가 먹는다.
두 개 다 놓고 오면 두 개 다 먹으려다 분명 목이 막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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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의 에로틱한 잠재력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김경태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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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이야기는 독특한 남자로 보이는 엑토르의 자살 시도로부터 시작된다. 인상만 영웅감인 어찌 보면 평범한 엑토르는 여자들에겐 환상만 갖고 있다. 어떤 여자도 수집에 미친 독특한 남자와 사귀거나 자지 않기 때문이다. 우표를 비롯해, 선거 캠페인 배지부터 치즈 라벨 등을, 끌리면 어느 순간부터 모으는 수집병이 있는 엑토르는 여자들이 보기엔 이상한 사람일 것이다. 즉 독특하다는 것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며 그 독특함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자는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수집계의 돈 후안이라니 말이다.

‘엑토르는 물건관계가 복잡한 남자라고 할 수 있다. 여자를 물건과 비교하는 건 좀 그렇지만 그래도 명백한 유사성을 고려하자면, 우리의 영웅이 느끼는 불안은 바람둥이의 불안, 여자관계에 굶주린 모든 남자들의 불안과 같은 것이다. 결국 그건 여자들을 좋아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인 것이다……’ 

말 그대로 물건관계 복잡한 남자, 엑토르…… 그런데 그런 엑토르가 자살 기도 후 몇 달 동안 미국에 갔었다는 거짓말을 하기 위해 관련 책을 찾아보려고 도서관에 들렀다가 브리지트를 만난다. ‘운명적인 여인은 책 앞에서 만나게 된다는’ 크로아티아의 속담처럼 엑토르는 같은 책을 잡으려던 멋진 여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브리지트와 사랑에 빠진 엑토르는 드디어 수집병에서 벗어났다. 아니, 벗어났다고 믿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느 날 유리창을 닦던 브리지트의 모습을 보고 그 모습을 수집하게 된 것이다.  

‘알 수 있는 것이라곤, 엑토르의 머리가 오르가슴이 막 시작되는 순간에는 텅 빈 껍데기였다가 절정의 순간에는 여전히 그 장면, 브리지트가 유리창을 닦는 그 장면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이었다.’

엑토르는 브리지트와 행복했다. 수집병도 고쳤고 친구들도 있었고 하는 사업도 꽤 잘 되는 편이었다. 부모와 20살 차이가 나는 형들, 친구들 모두 자잘자잘한 문제들은 있었지만 엑토르는 브리지트의 유리창 닦는 모습을 수집하는 병이 생기기 전까진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또 다시 수집병이 도진 것이다. 그녀가 유리창을 닦겠다고 한 순간에 집을 비워야만 하는 엑토르는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그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카메라에 잡힌 장면은 그가 예상치 못한 장면이었다. 헉! 

그래도 엑토르는 수집을 멈출 수 없었고 브리지트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또한 브리지트가 그래도 자신을 조금쯤은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 견딘다. 결국 엑토르의 수집병에 대해 알게 된 브리지트는 엑토르가 카메라에 잡은 장면을 설명하고 함께 수집병을 고치려고 노력한다.

남자나 여자 누구나 에로티시즘에 대한 환상이 있다. 그 양상이야 각자 다르겠지만 말이다. 어떤 남자들은 가슴 빵빵한 간호사가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을 애무하는 환상이 있나 보다. 내 한 친구는 자동차 밖으로 걸쳐져 있는 남자의 팔뚝을 보면 그게 그렇게 멋질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브리지트는 결국 그 모든 것의 원인이 엑토르의 수집병이 아니라, 자신에게 잠재하는 ‘에로틱한 그 무엇’이란 걸 깨닫는다. 엑토르의 친구는 물론 심지어 브리지트의 아버지조차 브리지트에게 유리창을 닦아달라고 하니 말이다~! 결국 엑토르는 정상(!)이었다. 문제는 브리지트의 에로틱한 잠재력이었던 것이다.

에로틱한 환상, 그게 혼자서만 하는 상상일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다 그게 공공에 적발되어, 대중의 이해를 받지 못할 때는 흔히 변태라는 낙인이 찍힌다. 섹스도 당사자들의 문제이다. 그 어떤 행위든 서로 공감을 할 땐 사랑이고 에로티시즘이지만 어느 한쪽 공감하지 못하면 변태가 되기도 하고 강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관능적인 쾌락이라는 건 저마다의 머릿속에 들어앉은 아인슈타인이 꿰뚫고 있는 물리학 같은 것이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소재나 주제도 단순명쾌하다. 냉소적인 논리도 괜찮고 나름 유머도 있다. 세세한 분석도 꽤 괜찮다. 문장 맛도 괜찮다. 그런데 백 퍼센트 완전 공감하진 못한 점이 좀 아쉽다. 그리고 언제부터 ‘클리셰’나 수프 속의 ‘크루통’이란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번역되지 않고 버젓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걸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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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8-02-21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저 단어들 우리말로 어떻게 해요?
읽고 싶긴한데...알지에 서평 도서목록에 있던데 덥썩 물어 오지도 못하겠어요.ㅜ.ㅜ

진달래 2008-02-22 08:44   좋아요 0 | URL
ㅋㅋ 원래 다들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하고 번역 안 하는 거 아닐까요? ^^;;
알지에 있음 얼른 물어오셔야죠~! ^^*
 
개를 돌봐줘
J.M. 에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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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말 너무나 재밌고 즐거워서 혼자서 낄낄, 깔깔거렸다. 절대로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공공장소에서 읽을 책이 아니다. 오랜만에 정말 이런 프랑스적인 블랙유머에 실컷 뒤집어졌다. 결말쯤에 반전이랍시고 지은 어설픈(!) 마무리(이야기가 워낙 글맛이 좋아 무난한 마무리로도 충분했을 텐데, 물론 복선이 꽤 있긴 했지만 괜한 반전이라고 넣은 것 때문에 오히려 약해진 게 좀 아쉽다~!) 때문에 김이 좀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즐겁게 읽은 작품이다.

정말 절반 정도까지는 인간의 심리, 특히 궁지에 몰리고 한번 편집증에 사로잡히면 나도 모르게 갖게 되는 저속하고 저질스러운 심성이 어찌나 잘 묘사되어 있던지 기가 막힐 정도였다. 게다가 염탐되는 것에 대한 편집증을 가진 두 사람의 일기를 읽는 우리 독자로서는 그들의 서로 어긋나고 서로 의심하는 장면에 참여해, 더할 나위없는 기쁨에 사로잡힌다.

일이 터지거나 의심스러운 일이 생기면 직접 가서 드잡이를 하거나 싸움을 하는 등 적극 대응에 나서서 담판을 짓는 우리에 비해, 겉으로는 예의를 가장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행동하며 소소한 복수를 하는 프랑스적인 사고는 정말 특이하다. 그래서 정말 일이 커진다. 와우~ 물론 그게 다 진실이 아니라는 것은 끝에 밝혀지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모두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믿기 힘든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들은 누구나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언할 수 있다. 하지만 배짱 좋게도 독자에게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소설가를 추종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너무 쉽게 쓴다며, 전혀 사실임직하지 않다며 비난을 퍼부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많은 경우 허구보다 더 황당무계하다.’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들은 굳이 정신병이라고 표현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광기를 안고 산다고 생각한다. 노이로제, 히스테리, 편집증, 대인공포증 등등 모두 심하진 않아도 조금씩은 갖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데 바로 이웃하고 있는 두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정신적인 문제들이 조금쯤은 심하다. 그래서 어떤 일에 대응하는 방식도 조금씩은 심하다. 그런 고로 연계되어 일어나는 결과들은 좀 더 심하다. 그러다 보니 엄청난 비극으로까지 치닫게 되는 것이다.

중간까지는, 이 건물들에 사는 다양한 인물들이 그리고 묘사하는 다른 인물들이나 상황이 무척 유쾌하고 즐겁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지 않다니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치사할 정도로 서로를 괴롭히는 두 인물, 기존에 있는 영화들을 재편집해 말도 안 되는, 기가 막히는 영화를 만드는 영화 아티스트, 기저귀를 차고 다니면서도 여전히 성에 무지막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에로소설가, 학교에서 나오지 말라고 할 정도로 엽기적인 소년 과 숫자 세는 데만 뛰어난 자폐 청년 그리고 두 아파트를 관리하는 두 여자 등 정말 정신병원인지 아파트인지 모를 정도로 기괴한 인물들이 산다.

하지만 새로 이사 온 사람이 계단에서 이삿짐 박스로 개를 치어둑이는 데서부터 시작한 이들의 일탈이 좀 더 심각한 수준으로 드러나기 시작하고 살인이 벌어진다. 심지어는…… 더 끔찍한 일까지. 사실 일기를 쓰던 둘 중의 하나가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자 벌어지는 일들부터는 알 수 없는 슬픔에 빠져들고 깊숙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마음만 먹는다면 한 삶의 흐름을 뒤집어놓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그것을 중단시킬 수도 있다.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찾아온다. 하지만 살인은 최고의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너무 쉽고 진부하다. 소설에 있어서 살인은 일반적으로 상상력이 부족한 작가들이 택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늘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많은 일들이, 그렇게 많은 인물들이 결국은…… 그러한 결론이 정말 아쉽다. 물론 결말까지 그 수많은 복선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돌이켜 보니 복선이었던 것이다. 그게 그러니까 결국 그런 이유 때문에…… 그런 면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고 단순히 정신병자의 무상행위도 아니었기에…… 또한 그 재밌고 유쾌한 이야기가 스릴러가 되어 가고 그런 결말을 가져온 데 대한 독자의 나름대로의 복수는…… 별 하나 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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