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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돌봐줘
J.M. 에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정말 너무나 재밌고 즐거워서 혼자서 낄낄, 깔깔거렸다. 절대로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공공장소에서 읽을 책이 아니다. 오랜만에 정말 이런 프랑스적인 블랙유머에 실컷 뒤집어졌다. 결말쯤에 반전이랍시고 지은 어설픈(!) 마무리(이야기가 워낙 글맛이 좋아 무난한 마무리로도 충분했을 텐데, 물론 복선이 꽤 있긴 했지만 괜한 반전이라고 넣은 것 때문에 오히려 약해진 게 좀 아쉽다~!) 때문에 김이 좀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즐겁게 읽은 작품이다.
정말 절반 정도까지는 인간의 심리, 특히 궁지에 몰리고 한번 편집증에 사로잡히면 나도 모르게 갖게 되는 저속하고 저질스러운 심성이 어찌나 잘 묘사되어 있던지 기가 막힐 정도였다. 게다가 염탐되는 것에 대한 편집증을 가진 두 사람의 일기를 읽는 우리 독자로서는 그들의 서로 어긋나고 서로 의심하는 장면에 참여해, 더할 나위없는 기쁨에 사로잡힌다.
일이 터지거나 의심스러운 일이 생기면 직접 가서 드잡이를 하거나 싸움을 하는 등 적극 대응에 나서서 담판을 짓는 우리에 비해, 겉으로는 예의를 가장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행동하며 소소한 복수를 하는 프랑스적인 사고는 정말 특이하다. 그래서 정말 일이 커진다. 와우~ 물론 그게 다 진실이 아니라는 것은 끝에 밝혀지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모두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믿기 힘든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들은 누구나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언할 수 있다. 하지만 배짱 좋게도 독자에게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소설가를 추종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너무 쉽게 쓴다며, 전혀 사실임직하지 않다며 비난을 퍼부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많은 경우 허구보다 더 황당무계하다.’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들은 굳이 정신병이라고 표현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광기를 안고 산다고 생각한다. 노이로제, 히스테리, 편집증, 대인공포증 등등 모두 심하진 않아도 조금씩은 갖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데 바로 이웃하고 있는 두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정신적인 문제들이 조금쯤은 심하다. 그래서 어떤 일에 대응하는 방식도 조금씩은 심하다. 그런 고로 연계되어 일어나는 결과들은 좀 더 심하다. 그러다 보니 엄청난 비극으로까지 치닫게 되는 것이다.
중간까지는, 이 건물들에 사는 다양한 인물들이 그리고 묘사하는 다른 인물들이나 상황이 무척 유쾌하고 즐겁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지 않다니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치사할 정도로 서로를 괴롭히는 두 인물, 기존에 있는 영화들을 재편집해 말도 안 되는, 기가 막히는 영화를 만드는 영화 아티스트, 기저귀를 차고 다니면서도 여전히 성에 무지막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에로소설가, 학교에서 나오지 말라고 할 정도로 엽기적인 소년 과 숫자 세는 데만 뛰어난 자폐 청년 그리고 두 아파트를 관리하는 두 여자 등 정말 정신병원인지 아파트인지 모를 정도로 기괴한 인물들이 산다.
하지만 새로 이사 온 사람이 계단에서 이삿짐 박스로 개를 치어둑이는 데서부터 시작한 이들의 일탈이 좀 더 심각한 수준으로 드러나기 시작하고 살인이 벌어진다. 심지어는…… 더 끔찍한 일까지. 사실 일기를 쓰던 둘 중의 하나가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자 벌어지는 일들부터는 알 수 없는 슬픔에 빠져들고 깊숙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마음만 먹는다면 한 삶의 흐름을 뒤집어놓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그것을 중단시킬 수도 있다.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찾아온다. 하지만 살인은 최고의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너무 쉽고 진부하다. 소설에 있어서 살인은 일반적으로 상상력이 부족한 작가들이 택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늘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많은 일들이, 그렇게 많은 인물들이 결국은…… 그러한 결론이 정말 아쉽다. 물론 결말까지 그 수많은 복선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돌이켜 보니 복선이었던 것이다. 그게 그러니까 결국 그런 이유 때문에…… 그런 면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고 단순히 정신병자의 무상행위도 아니었기에…… 또한 그 재밌고 유쾌한 이야기가 스릴러가 되어 가고 그런 결말을 가져온 데 대한 독자의 나름대로의 복수는…… 별 하나 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