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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의 에로틱한 잠재력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김경태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이 이야기는 독특한 남자로 보이는 엑토르의 자살 시도로부터 시작된다. 인상만 영웅감인 어찌 보면 평범한 엑토르는 여자들에겐 환상만 갖고 있다. 어떤 여자도 수집에 미친 독특한 남자와 사귀거나 자지 않기 때문이다. 우표를 비롯해, 선거 캠페인 배지부터 치즈 라벨 등을, 끌리면 어느 순간부터 모으는 수집병이 있는 엑토르는 여자들이 보기엔 이상한 사람일 것이다. 즉 독특하다는 것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며 그 독특함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자는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수집계의 돈 후안이라니 말이다.
‘엑토르는 물건관계가 복잡한 남자라고 할 수 있다. 여자를 물건과 비교하는 건 좀 그렇지만 그래도 명백한 유사성을 고려하자면, 우리의 영웅이 느끼는 불안은 바람둥이의 불안, 여자관계에 굶주린 모든 남자들의 불안과 같은 것이다. 결국 그건 여자들을 좋아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인 것이다……’
말 그대로 물건관계 복잡한 남자, 엑토르…… 그런데 그런 엑토르가 자살 기도 후 몇 달 동안 미국에 갔었다는 거짓말을 하기 위해 관련 책을 찾아보려고 도서관에 들렀다가 브리지트를 만난다. ‘운명적인 여인은 책 앞에서 만나게 된다는’ 크로아티아의 속담처럼 엑토르는 같은 책을 잡으려던 멋진 여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브리지트와 사랑에 빠진 엑토르는 드디어 수집병에서 벗어났다. 아니, 벗어났다고 믿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느 날 유리창을 닦던 브리지트의 모습을 보고 그 모습을 수집하게 된 것이다.
‘알 수 있는 것이라곤, 엑토르의 머리가 오르가슴이 막 시작되는 순간에는 텅 빈 껍데기였다가 절정의 순간에는 여전히 그 장면, 브리지트가 유리창을 닦는 그 장면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이었다.’
엑토르는 브리지트와 행복했다. 수집병도 고쳤고 친구들도 있었고 하는 사업도 꽤 잘 되는 편이었다. 부모와 20살 차이가 나는 형들, 친구들 모두 자잘자잘한 문제들은 있었지만 엑토르는 브리지트의 유리창 닦는 모습을 수집하는 병이 생기기 전까진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또 다시 수집병이 도진 것이다. 그녀가 유리창을 닦겠다고 한 순간에 집을 비워야만 하는 엑토르는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그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카메라에 잡힌 장면은 그가 예상치 못한 장면이었다. 헉!
그래도 엑토르는 수집을 멈출 수 없었고 브리지트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또한 브리지트가 그래도 자신을 조금쯤은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 견딘다. 결국 엑토르의 수집병에 대해 알게 된 브리지트는 엑토르가 카메라에 잡은 장면을 설명하고 함께 수집병을 고치려고 노력한다.
남자나 여자 누구나 에로티시즘에 대한 환상이 있다. 그 양상이야 각자 다르겠지만 말이다. 어떤 남자들은 가슴 빵빵한 간호사가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을 애무하는 환상이 있나 보다. 내 한 친구는 자동차 밖으로 걸쳐져 있는 남자의 팔뚝을 보면 그게 그렇게 멋질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브리지트는 결국 그 모든 것의 원인이 엑토르의 수집병이 아니라, 자신에게 잠재하는 ‘에로틱한 그 무엇’이란 걸 깨닫는다. 엑토르의 친구는 물론 심지어 브리지트의 아버지조차 브리지트에게 유리창을 닦아달라고 하니 말이다~! 결국 엑토르는 정상(!)이었다. 문제는 브리지트의 에로틱한 잠재력이었던 것이다.
에로틱한 환상, 그게 혼자서만 하는 상상일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다 그게 공공에 적발되어, 대중의 이해를 받지 못할 때는 흔히 변태라는 낙인이 찍힌다. 섹스도 당사자들의 문제이다. 그 어떤 행위든 서로 공감을 할 땐 사랑이고 에로티시즘이지만 어느 한쪽 공감하지 못하면 변태가 되기도 하고 강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관능적인 쾌락이라는 건 저마다의 머릿속에 들어앉은 아인슈타인이 꿰뚫고 있는 물리학 같은 것이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소재나 주제도 단순명쾌하다. 냉소적인 논리도 괜찮고 나름 유머도 있다. 세세한 분석도 꽤 괜찮다. 문장 맛도 괜찮다. 그런데 백 퍼센트 완전 공감하진 못한 점이 좀 아쉽다. 그리고 언제부터 ‘클리셰’나 수프 속의 ‘크루통’이란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번역되지 않고 버젓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걸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