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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에그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6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때론 너무 가볍고 때론 황당할 정도로 이상하고 때론 이상적일 만큼 순수하고 때론 변태적일 정도로 어둡다고 생각하는 게 원래 일본문학에 대한 대체적인 내 생각이다. 그래서 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굳이 찾아보진 않는 게 단점이다. 가까운 나라면서도 정서상 이해하기 힘든 면도 많은 나라가 내겐 일본이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지하철>이나 <화차>, <흑소소설> 또 최근의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등 재밌으면서도 뛰어난 작품 들도 많이 읽었다. 요즘은 평범한 사람들의 찌질한 심성부터 블랙유머까지 다양한 작품으로 일본문학을 만끽하고 있다.
이 작품은 그런 작품 중의 하나다.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하고 즐겁다. 나이 서른셋에 정신 못 차리고 탐정을 하겠다고 되는대로 사는 것 같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일에는 최선을 다하는 직업정신도 투철한 모가미와 다이너마이트 보디(!) 꼬부랑 할머니 비서 아야가 펼치는 신나는 탐정 이야기이다. 물론 동물수사 80퍼센트, 불륜 수사 20퍼센트의 탐정 일이라 행방불명된 애완동물을 찾는 게 대부분의 일이지만 그 일에 임하는 둘의 자세가 얼마나 꼼꼼하고 치밀한지 웬만한 탐정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너무 세세해서 앞부분이 조금 지루한 면도 없지는 않았지만 아무 생각 없는 것 같은 모가미의 생각이나 태도, 행동에선 미워할 수 없는 애정이 느껴지고(나 같잖아!) 다이너마이트 보디 아야와의 대화나 생활에선 정말 행복할 정도로 너무나 유쾌하다.(낄낄, 깔깔 보장이다!) 대화마다 어긋나기만 하는 아야가 모가미의 탐정 멘토인 필립 말로와 하드보일드 에그 얘기를 듣고 준비해오는 건 완숙 계란이다. (완숙 계란 아니라니깐요~!)
게다가 함께 등장하는 엄청난 냄새의 겐씨, 등교거부 소년, 술집의 J, 애니멀 홈의 자연인 같은 두 부부 그리고 무시무시한 동네 야꾸자 들까지 모두 이야기의 감초 같은 역할을 한다. 등장인물로 봐서 대충 짐작은 하겠지만 이권이 개입되고 살인이 벌어지고 동물이 사라지는 등 조용했던 모가미 탐정 사무소가 진짜 탐정 일로 바빠진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대가도 없는 수사를 하는 모가미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고 몰랐던 사실들이 하나씩 속속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간다.
‘인생에 플레이백은 없다.’
인간과 인간 사이, 인간과 동물 사이의 진정한 애정은 무엇일까. 성질은 삐뚤어졌으면서 강아지 한 마리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건 무슨 경우냐는 할머니의 물음에, “하드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어. 부드럽지 않으면 살 자격이 없고.”라고 말하는 모가미의 말은 후에 타인의 행동을 보면서 비교해 볼 수 있다. ‘아마도 이자는 동물과 너무 오래, 지나치게 오래 살았다. 동물의 삶과 죽음을 너무 많이 봐왔다. 동물이 죽는 걸 너무 많이 봐서 사람의 생명과 죽음의 뜻을 잘 모르게 된 것이다.’
모가미와 아야는 시종일관 대화에서 한 박자씩 어긋나긴 하지만, 할머니를 업고 수사를 하는 모가미나 적절한 타임에 할머니만이 할 수 있는 능력으로 모가미를 구하는 절묘한 파트너쉽을 발휘한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둘의 관계다. 할머니의 집에서 발견하는 진정한 할머니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마 모가미도 그랬으리라.
‘갈 때는 반드시 삶은 계란을 놓아둔다. 특별한 계란은 아니다. 편의점에서 파는 두 개들이 완숙 계란이다. 두 개 중 하나는 내가 먹는다.
두 개 다 놓고 오면 두 개 다 먹으려다 분명 목이 막힐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