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lf Hall (Paperback) - 2009년 Man Booker Prize
Mantel, Hilary 지음 / Picador USA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들을 못낳았다는 이유로 아라곤의 캐서린과 이혼을 한 헨리 8세는 1533년 캐서린의 시녀였던 앤볼린과 비밀결혼식을 올린다.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면서 영국교황청에 반기를 든 헨리 8세,그가 이혼 선언을 할때마다 의회 통과를 주도 하며 막후 협상을 이끌어냈던  토마스 크롬웰(Thomas Cromwell).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서 별다른 교육을 받지 못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토마스 크롬웰은  네덜란드 무역상인들의 허드렛일을 거들다가 피렌체 출신의 부자 상인에게 정식으로 고용되어서 이탈리아로 건너가게된다. 크롬웰은 주인을 따라서 교회에 열심히 다니던중 바티칸에서 온 추기경의 눈에 들고 그의 밑에서 몇년간 영국 교회 사무일을 도맡아하며 성실함을 인정받는다.

잉글랜드로 발령받은 추기경의 개인 비서로 고국 잉글랜드로 돌아온 크롬웰은 능숙하게 라틴어와 프랑스어,이탈리어를 구사하며 교회의 신임을 받는다. 법학 공부를 하던중 추기경이 사망하자 왕궁은 그를 불러들여 의회의 일원으로 채용한다.

캐서린과의 이혼을 성사 시킨 주역이였던 토마스 크롬웰,1531년 왕의 수석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교황청의 수입원을 차단시키기 시작한다. 이혼에 목숨을 건 왕에게 영국국교회의 법률제정을 양도해버리고 영국종교개혁의 새로운 헌법을 의회에 상정시킨다. 교황청의 손발을 묶어버린 크롬웰은 1534년 의회에서 '수장법'을 통과시켜서 헨리 8세를 잉글랜드 교회의 우두머리로 만들어버린다. 1534년 드디어 영국국교회는 로마교회에서 분리되면서 종교개혁의 탄력을 받기 시작한다.

앤불린이 딸을 낳고 이듬해 아들을 사산하자 크롬웰은 성급히 앤의 시녀였던 제인 시모어를 왕비로 추대한다. 그녀는 헨리 8세가 고대하고 고대했던 아들을 낳지만 몇개월뒤 산후 휴우증으로 세상을 떠난다.

종교개혁의 단행으로 일사불란하게 토지와 국유재산을 좀먹고 있던 수도원들을 해산 시키고 재산을 몰수해서 왕권강화의 힘을 보태어주었던 토마스 크롬웰은 독일 뒤셀도르프 건너가서 왕의 새로운 여자가 될 클레브스 앤을 데리고 온다.

클레브스 앤은 온건한 종교개혁파인 클레브스 공국의 통치자의 둘째딸로 잉글랜드가 어떤 나라인지 전혀 모른체 헨리 8세의 왕비가 된다.  왕의 말을 못알아듣고(영어를 전혀 못함) 초상화의 모습과 판이하게 다른 외모에 실망한 헨리 8세는 결혼한지 6개월만에 또다시 이혼을 선언한다.

이때를 놓치지 않았던 크롬웰의 적들은 왕의 이혼의 책임을 추궁하며 구속해버리자고 외친다. 1540년 의회 회의에서 크롬웰은 사형을 선고받고 런던탑에 갖혀버린다. 크롬웰은 모든 지위를 박탈당하고 왕의 이혼수속기간 동안 사형집행일이 미뤄진다. 클레브스 앤과 깨끗히 정리한 헨리 8세는 사형을 명령하고 1540년 8월, 도끼로 세번 내려쳐진후 그의 머리는 런던 브리지에 걸린다.

한때는 왕에게 가장 신임받으며 종교개혁을 추진했던 토마스 크롬웰, 미천한 출신으로 귀족의 피가 흐르지 않으면 출입할수 없던 의회에 들어간 인생역정의 남자,왕의 최측근으로 궁정 곳곳을 누볐던 그가 단한번도 들어가보지 못했던 곳은wolf hall(스코틀랜드 왕실 출신의 남자 귀족들의 모임장소)이였다.

wolf hall에서 시녀출신 왕비가 낳은 아들(후에 에드워드6세가 됨)을 왕으로 추대하고 있었는지 왕의 남자였던 크롬웰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