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accustomed Earth (Paperback)
줌파 라히리 지음 / Random House Inc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제약회사를 퇴직한 그는 몇 년 째 유럽 곳곳을 여행중이다. 프라하로 여행을 떠나기 전 시애틀로 이사간 딸네 집에 일주일간 머물 예정이다. 그의 딸 루마는 새로 이사간 시애틀이 낯설기만 해서 적응하는데 무척 힘겨워하고 있었다. 남편은 자주 출장을 떠났고 세살밖이 아이와 곧 태어날 뱃속의 아이를 임신중인 그녀는 아는 사람이 없는 이곳이 낯설게 느껴질 뿐이다. 이 책 첫장을 장식하고 있는 단편의 대략적 줄거리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한부분을 포착하며 잔잔하게 시작된다.  작가는 카메라의 초점을 당기듯 능숙한 솜씨로 작중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이리저리 오가면서 생생하게 보여준다. 루마의 아버지는 인도출신 유학생으로 미국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의 인도인 아내는 낯선 미국땅에서 자식들에게  모국어인 벵갈어를 가리키고 인도음식을 요리하며  가족들을 헌식적으로 보살폈다. 그런 그녀에게도 모처럼 생긴 삶의 여유를 누리고 싶어서 딸 루마와 파리로 여행가는 멋진 계획을 세우지만 간단한 결석 수술중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사망하고 만다. 아내와 딸이 미쳐 가지 못한 파리여행을 루마의 아버지가 대신 떠나면서 그의 단조롭기만 하던 삶에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마중 나가겠다는 딸에게 공항에서 부터 렌터카로 직접 몰고 오신 아버지의 모습이 딸의 눈에는 주변에서 흔히 볼수있는 70대 미국인 할아버지처럼 느껴지면서 현재 자신이 밟고 서있는 땅이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진다. 단한번도 아버지와 따뜻한 공감을 나눈 적이 없는 30대 중반의 딸과 아버지 그리고 손주 아카쉬가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서먹서먹한 순간부터 눈물지으면서 헤어지는 순간까지 너무나도 섬세하게 그려져서 책장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루마는 어머니가 돌아가신뒤 홀로 남겨진 아버지를 모셔야하는 문제로 무척 고민하고 있었다. 남편 아담은 그런 아내의 고민을 걱정해주는 듯하며 위로해주지만 정작 아버지가 방문하신후 결려온 전화에서는 "너의 아버지잖아 "라며 냉정하게 선을 그어버린다. 루마는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미국인 남자와 결혼한 후 더 이상 집안에서 실내화를 신지 않고 신발을 신고 다니고 아들 아카쉬에게도 벵갈어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새로 마련한 시애틀 집구석구석을 구경시켜 주면서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듯 우쭐되며 아버지를 대한다. 그런 아버지는 집구경보다 집밖 정원에 눈길을 준다. 남편인 아담이 단 한번도 가꾸지 않았던 버려진 정원을 루마의 아버지는 큰 주전자로 물을 주기 시작하면서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되살리신다. 이 책장 맨 앞 페이지에 호손의 The custom-house라는 인용구절에서 인간의 본성을 황무지에서 뿌리내려서 자라는 감자재배에 비유한 글이 적혀 있다. unaccustomed earth 즉 익숙지 않고 길들여지지 않은 낯선 땅에서 자신의 자손인 딸과 손주 그리고 태어날 또 한명의 아기를 위해서 아버지는 손수 모종을 심어 가시면서 정원을 가꿔주신다.  루마는 혹시 아버지가 같이 살고 싶다고 하시면 어떻게 거절해야할지  전전긍긍했던 자신을 책망하며 눈물로 떠나시는 아버지를 붙잡으며  영원히 같이 살고 싶다고 한다. 줌파는 정원의 나무들이 뿌리 깊숙한 곳으로부터 물을 빨아드리며 싱그러운 초록빛을 뿜어내는 풍경과 주방 뒤편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눈 덮인 올림픽산 봉우리를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루마의 아버지에게 비쳐진 눈 쌓인 봉우리는 하늘위로 평온하게 떠다니는 구름들이  무언가 방심한 듯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모른 채  떠다니다가 봉우리에  걸쳐져있는 듯 느껴진다. 그 풍경은 이 대륙 저 대륙을 넘나들면서 힘겹게 적응하면서 살아갔던 자신의 모습과 겹쳐진다. 줌파는 56페이지 속에서 이방인들의 1세대 2세대 그리고 3세대의 삶이 낯선 땅에서 어떻게 뿌리내리고 살아가는지 유려한 필체로 읽는 사람의  가슴 이곳 저곳을 촉촉히 적셔 준다. bookforum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 책이 단순히 인도인 이민자들의 삶을 대변하는게 아니라고 했다. 자신의 글에서 이민자나 이방인이라는 단어는 어느 특정집단이나 세대를 설명해주는 단어가 아니라 현대인들의 복잡 미묘한  삶의 조각 조각들을 예민한 필체로 보여 줄 뿐이라고 했다. 그 이외의 해석은 아마도 읽는 독자들에게 맡기고 싶다고 했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이민자 또는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인도인들의 모습보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게 된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헤쳐나가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대답은 이 책 안에 있다. 딸 루마가 직장도 갖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는 삶에 만족해 한다는 말에 아버지는 단호하게 직장을 갖으라고 말하며  “자신감을 가져라. 삶은 놀라움으로 가득차 있단다”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놀라움으로 가득찬 5편의 단편과 hema와kaushik의 이야기를 담고있는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퓰리쳐 상을 받았던 단편집 interpreter of maladies보다 그리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장편 the namaesake보다도 더욱 더 감동적인 책이다. 아직 번역본은 나오지 않았지만 줌파의 영어는 난해하지 않고 간결하게 쓰여져서 읽는데 부담이 없다. 루마의 세살 짜리 아들 아카쉬가 물에 뜨는 튜부를 어깨에 묶고 수영장 물살을 가르며 힘차게 뻗어가는 모습처럼 주저하지말고 반드시 반드시 그녀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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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0-06-15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진짜 좋았어요. 저도 이 책을 읽고 줌파 라히리의 책을 연달아 구입해서 읽을 정도였으니깐요. 특히나 길들여지지 않는 땅, 너무 좋지요. 그리고 아버지의 캐릭터가 맘에 든 작품이었어요.

2010-06-15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