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ak, Memory: An Autobiography Revisited (Paperback) - An Autobiography Revisited
Nabokov, Vladimir Vladimirovich / Vintage Books / 198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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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의 작가로 유명한 나보코프가 쓴 자서전이다. 기존의 자서전의 형식이 아닌 전혀 새로운 방식의 서술법을 구사 하는데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보코프의 탐미적인 언어는 기억의 편린들을 불러내 정지화면으로 포착하고 그 순간들을 영원한 것으로 만든다. 이 책은 연대기적 서술이 아닌 미국에서 체류당시 여러 문학 잡지에 발표된 글들을 수정 하면서 떠오르는 기억들을   풍부한 보충했다. 그리고 그내용들을 러시아어판으로 번역하는 동안에 수정한 내용을 다시 추가했다고 서문에 밝히고 있다. 나보코프는 러시아의 성 페테르부르크에서 부유한 귀족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영국과 프랑스식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어린 시절부터 나비 채집에 열중하였고 사랑에 빠져 시를 짓는 순수한 청년으로 자랐지만 1919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모든 것을 잃고 가족과 함께 독일로 망명했다.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불문학과 러시아 문학을 공부한 후, 베를린과 파리에서 거주하면서 시린Sirin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극우주의 혁명가들로 부터 피살 당한 아버지와 나치수용소에서 안타깝게 죽어간 막내동생을 비롯해서 그가 사랑했던 가족과 친구 친척들은 혁명과 전쟁의 광풍으로 쓰라린 상처와 기억의 저편으로 휩쓸려 가버린다. 그와중에도 그는 끝임없이 시와 소설을 꾸준히 쓰지만  1940년 나치를 피해 다시 미국으로 이민해야 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시인, 소설가, 비평가, 번역가로서 활동하며 웨슬리, 스탠퍼드, 코넬 그리고 하버드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면서 그야말로 러시아의 위대한 문학들을 미국학계와 문단에 유려한 번역과 평론으로 엄청난 영향을 주면서 왕성한 활동을 한다. 1955년 '롤리타'의 기념비적인 성공으로 교수직을 그만두고 글쓰기에만 전념한다. 20세기에 가장 파격적이고 문제작중 하나로 평가 받는 롤리타 신드롬을 일으킨 나보코프는 이 책에서 롤리타를 쓰게된 경위와 습작글들 스토리 개요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 그내막을 밝힌다. 1940년 뉴욕에 도착했을 당시 그는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었다. 러시아 곳곳의 넓은 영토와 저택들은 사라진 지 이미오래였고  하루아침에 조국을 잃고 갈 곳이 없어진 그가 이도시 저도시들을 떠돌면서  20년의  세월을 버텨 가며 탄생시킨 러시아어로 쓴 소설들마저 아무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 해야 했던 나보코프는 경제적 궁핍때문에 쓴 첫 작품 '세바스찬 나이트의 진짜 인생'에서부터 자서전'말하라, 기억이여'까지 나보코프의 글쓰기는 한결 같았다. 그는 한 사람의 삶을 수기 또는 자서전이라는 형식을 통해 표현 함으로써 예술의 진정성이라는 문제에 깊이 파고 들었다. 잃어버린 어린 시절에 대한 진한 향수를 드러내는'말하라, 기억이여'에서 나보코프는 자신을 주인공 삼아 한 편의 아름다운 소설을 써내려갔다. 롤리타를 영영 잃어버린 험버트가 내뱉는 마지막 독백에서

 '그리고 이것이 너와 내가 죽지 않는 유일한 길이야, 나의 롤리타!'

험버트는 그녀와 영원 속에 남게 될 최후의 방법으로 자서전 집필을 하는 모습에서 나보코프 자신과  험버트 둘 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안에 갇힌 비극적 존재로 잃어버린 과거로 인해 고통받고 신음하며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움켜쥐려고 자신이 보았던 모든 것을 적은것들이  진실인지 확인하며, 그의 가족과 집, 러시아 숲 속의 빛나는 햇살과 그 속에서 그가 쫓아다니던 온갖 나비들, 먼 곳에 남겨두고 온 첫사랑, 20년의 젊은 날을 바쳐 적어 내린 러시아어 소설들과 같은 그 모든 것들 영영 사라져버린 그모든것들을 온전히 담아내고 싶지만  미국땅에서 살고 있는 그에게  사라져가는  기억과 종이, 연필만이 있을뿐이였다. 이 책에' 나비들이' 라는 챕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백하건대, 나는 시간을 믿지 않는다. 나는 내 마법의 융단을 사용한 뒤에, 한 부분과 다른 부분의 무늬가 겹쳐지도록 접어두고 싶다. 방문객들이 시간 여행을 떠날수 있도록.
지상의 풍경을 내키는데로 선택해서 진귀한 나비들과 그들의 먹이 식물들이 있는 곳에 서있게 된다면 그곳에서 영원히 시간이 멈추게 되더라도 최상의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 기쁨은 황홀경으로 설명하기 조차 힘든 그 너머의 존재하는 무아지경 같은 것이다.

그건 마치 내가 사랑했던 모든것들을 순간 이라는 곳에 밀어넣어 버려서 진공상태로  꽉 봉해버린 순간 같은것이다.

그속에 들어가는 순간 빛과 흙으로 합쳐지게 되리라.

인간의 운명을 지키는 수호신 관계자들 또는  운좋게 죄 없는 유령들을 데려왔다고 농담하는 그들에게  황올경 속으로 들어가게 해준 감격의 전율을 고한다.
 
   
순간적인 진공, 그것은 곧 죽음을 향해 가는 자연의 상태를 거부하는 나보코프만의 시공이다. 그만이 가진 기억, 그만이 할 수 있는 상상과 이해만이 이 시공을 존재 할수 있다. 살아남기 위해 나보코프는 새로운 언어 뒤에 숨어야 했다. 러시아어가 아닌 영어였고, 궁극적으로 그것은 흘러 가버린  시간 속에서 영원을 꿈꾸던 그의 기억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빨려 들어가는 진공’ 속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보려 했다. 결국 그의 기억은 살아남았다. 그것은 그가 죽은 뒤에도 다른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살게 되었던 것이다. 이책을 읽기에 망설이는 독자들에게 이 한마디는 하고 싶다. 어떤 페이지 어떤 문장 어떤 구절을 읽더라도 그가 빛어내는 마법과 같은 문장과 낱말에 영원히 사라져 버린 한 사람의 삶을 엿보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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