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23구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헌책방이 밀집된 '진보초' 거리는 야스쿠니[靖國]대로를 따라 좌우로 위치한 157개의 고서점들이 즐비한 책의 거리로 항상 책을 사고, 읽는 이들로 붐비는 곳이다.

근대 일본의 독서 문화 시대를 열은 메이지 시대(1868~1912)에 진보초 거리에 도쿄대학, 센슈대학, 메이지대학, 주오대학 등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170여개 서점과 240여개 출판사·잡지사·인쇄소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교차로를 중심으로 신간서적이나 전문성을 띈 책들만 팔거나 희귀한 서적만 취급하는 책방 부터 철학, 인문학,군사학,만화,철도 역사, 고미술,건축,공학,스포츠, 각종 잡지 분야까지 촘촘하면서 방대한 그물망처럼 퍼져 있는 진보초 거리는 대 도시 도쿄에서 이 정도 규모의 책방들이 즐비한 거리가 지금까지 이어왔다는 것 만으로도 놀라울 정도다.
진보초 거리를 걷다보면 다양한 물건과 음식점만 마주치는 것이 아니라 각자만의 목적을 갖고 거리를 산책하고 있는 특유의 복장을 하고 있는 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큰 사각 배낭을 어깨에 짊어지고 한 손에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 양 손 가득 종이 봉투 속에 자그만한 문고본 책을 한 가득 집어 넣고 다니는 사람들, 마스크와 모자로 무장하고 한쪽 겨드랑이에 책을 낀채 서점 앞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까지 일본 제일의 독서가들의 모습은 진보초 거리에서 낯선 모습이 아니다.

일본 도쿄 고서점의 거리 진보초가 배경인 야기사와 사토시의 소설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은
성실하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던 다카코는 사내 연애중인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랑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큰 충격을 받고 회사를 그만둔다.
집 밖을 나가지 않은 채 세상과 단절 하며 살고 있는 동안 외삼촌으로 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 온다.
도쿄 진보초에서 모리사키 서점을 경영 하고 있는 외삼촌은 조카 다카코에게 서점 일을 도와 달라는 부탁을 한다.
외삼촌의 부탁을 받고 찾아간 다카코는 삼촌의 서점 2층에 얹혀 살게 되면서 인생이 변화하는 과정을 잔잔하게 펼쳐 나간다.
두편의 연작 단편을 담은 200여페이지 남짓한 이 작품은 2009년 ‘제3회 치요다 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다음 해 영화로 제작되었을 만큼 특별하지 않지만 책을 사랑하고 진보초 거리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23년 이 책이 영어로 번역 되었을 때 일본어판은 문고본까지 절판 되었을 정도로 잊혀졌지만 호주의 독서 인플러서의 2023년 베스트 북 10권에 소개 되면서 영미권에서 돌풍에 가까운 인기를 얻게 된다.
이 책을 읽고 영화까지 찾아 본 영미권 독자들은 비행기 티켓을 끊고 직접 작품 속 배경인 도쿄 진보초 거리를 걸으면서 영화 속 그 장소에서 카레를 먹고 커피를 마시고 문구 용품을 사며 책의 감동을 체험의 추억으로 이어가고 있다.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을 영어로 번역한 번역가 에릭 오자와는 이 책을 처음 구매한 곳이 진보초 거리의 어느 서점으로 표지가 인상 깊어서 집어 들었다가 잔잔한 내용에 흠뻑 빠져 버려서 작품에 등장한 장소와 가게를 거닐어 보고 여주인공이 읽었던 책을 찾아 읽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만든 책이여서 번역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에 등장하는 책은 다자이 오사무의 '여학생',나츠메 소세키의 '마음'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들이 등장한다.
영미권에 일찌감치 번역 소개된 일본의 근 현대 문학 작가들의 작품은 미국 대학가에서 필독 해야할 20세기 고전에 선정된지 오래 되었다.
이 책을 읽고 흠뻑 빠진 영미권 독자들은 책에 등장하는 일본 근 현대 문학 작가들 작품까지 찾아 읽고 일본 도쿄 진보초 거리를 순례 하는 진귀한 경험까지 하게 만드는 기적 같은 책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일부 열정의 독서가들이 SNS의 밈현상처럼 체험 형 책 읽기를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 하는 재미로 시작 한 것이라 생각 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스치듯 본 영화의 한 장면에서 그 음식, 그 책, 그 장소를 먹어보고 싶고 읽어 보고 싶고 가보고 싶어지는 건 그다지 특별한 일이 없이 쳇 바퀴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도시인들에 재밌고 짜릿한 경험을 주기도 한다.

전 세계에서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책의 거리 진보초 거리에 들어서면 다양한 장르와 전문 서적을 판매하고 있는 고서점과 신간 책을 파는 서점들 사이 사이에 도쿄 제일의 맛을 자랑하는 카레와 라면, 돈카츠 ,킷삿텐(다방),중화 요리점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책을 사기 위해 진보초에 갔다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먹은 카레 맛에 반해 버리게 되고 몇 시간씩 책방을 순례하다 피곤이 내려 앉을 무렵에 들어간 킷삿텐에서 마신 수제 커피 맛에 홀딱 빠져 버릴 정도로 이 책방의 거리는 한 번 발을 들여 놓는 순간 도저히 헤어 나오기 힘든 개미 지옥 같은 곳이다.
매년 '간다 카레 그랑프리'가 열리는 진보초는 카레의 성지로도 매우 유명하다.
1973년에 문을 연 '본디' 카레 가게가 카레 붐을 일으키는 불쏘시개 역할을 해서 현재 400채 이상의 카레가게가 진보초 거리에 모여 있다.
본디 카레 전문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 비프 카레를 주문하면 뜨거운 카레 소스에 치즈가 올라간 소스 포트와 버터 라이스 그리고 삶은 감자 두 개와 수제 버터 덩어리가 나온다.
취향에 따라 밥에 카레를 부어 먹어도 되고 감자를 버터에 으깨고 나서 카레를 부어 먹을 수 있는 본디 카레는 밥 위에 카레를 조금씩 뿌려 가면서 한 스푼 입에 넣는 순간 고소하면서 찌릿한 매운맛이 입 속에서 쫙 퍼지고 틈틈이 삶은 감자를 버터에 발라 먹는 재미까지 맛 보게 된다.
1600엔의 든든한 식사를 하는 동안 여유롭게 책을 봐도 되고 윗층에 올라가면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진보초에는 영업을 시작한지 60년 이상 넘은 노포들이 많다.
1968년 부터 영업을 시작한 치킨 전문 카레집은 영업을 시작한 이래로 가격을 단 한 번도 올린 적이 없고 양도 줄인 적이 없어서 학생 시절에 이 가게에서 카레를 먹었던 사람들이 대를 이어서 단골인 고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1924년에 영업을 시작한 수마트라 카레 전문점은 양이 푸짐한 비프,치킨, 새우 카레 메뉴 모두 천 엔 가격을 유지 하고 있다.
맛과 가격에 있어서 도쿄 제일의 카레점이 즐비한 진보초는 책 구경하러 갔다가 식후경 삼매경에 빠져서 카레 맛에 눈을 뜨고 나면 커피 맛 그리고 그 다음으로 한 접시 가득 나오는 바싹한 튀김 맛에 반하게 된다.

걷다 보면 마주치는 다양한 볼거리가 넘쳐나는 도쿄에서 골목마다 다양하게 즐기고 맛볼 수 있는 곳은 진보초 만큼 흥미로운 곳은 없다.
진보쵸에서 매년 10월 말부터 11월 초에 걸쳐 간다고서축제가 열린다.
2026년에는 10월 23일(금)부터 시작해서 11월 1일(일)까지 10일간 개최되는데 이 기간 동안 도쿄 진보초의 메인 거리인 야스쿠니도리를 따라 대규모 노천 책 시장이 열리는데 다채로운 이벤트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이벤트는 '칸다 카레 그랑프리(神田カレーグランプリ) 2026' 결승전이다.
진보초 고서 축제가 열리는 메인 거리(야스쿠니도리)에서 도보로 약 5~7분 거리에 있는 오가와 히로바(오가와 광장)에서 열리는 카레 그랑프리 결승전(결정전)에 예선을 거쳐 선발된 최종 20개 카레 전문점이 광장에 부스를 차려 놓고 방문객들은 현장에서 다양한 카레를 소량씩 저렴하게 맛보고 투표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카레 맛을 즐길 수 있다.
카레도 맛보고 결승점에 참가한 카레 전문점이 찍어주는 맛보기 스탬프 랠리도 찍는 이벤트가 12월 까지 이어지니 책에 관심이 없어도 거리 탐험하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