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자나무 열매는 벌써 익었습니다.

꽃밭에 시들어가는 과꽃이 여린 숨을 내쉽니다.
지금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여름이 지나가고 있기에,
언제고 기다릴 뿐 아무것도 손에 놓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의 어둠 속에서 일어서기 위해
내면의 밤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는
숱한 환상들이 있음을 스스로 믿기에
지금도 눈을 감을 수 없는 사람은
노인처럼 세월만 흘리고 말 것입니다.
그는 이제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 어떤 날도 일어나지 않으며,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은 그를 속일 뿐입니다.
나의 신이여,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매일 그를 심연으로 끌고 가는 돌과 같습니다.
-릴케의 기도 시집,순례의 서- '매자나무 열매는 벌써 익었습니다.' 중에서

시어 속에 가을의 향기와 맛, 정취를 즐겨 넣었던 릴케는 태양의 길이가 짧아지는 늦가을 무렵이면 '과일들이 완성을 재촉 하시고 진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며 들게 해달라'라는 기도를 저녁 시간에 올렸다.
그는 1년 동안 포도주를 숙성 시키듯 시어들을 차곡 차곡 담아 익어가는 매자 나무 열매에서 생의 끝자락을 보았다.
그가 이 시를 썼을 무렵엔 극도로 생활고를 겪었던 시기로 1903년 조각가 로댕의 작업실에서 숙식을 해결 하면서 낮에는 로댕의 작업 일지를 독일어로 번역하는 일을 했고 밤이면 시를 썼다.
'들판을 가로질러 먼 길을 달려온 듯 이내 피곤해질'만큼 하루를 보내며 시를 쓴 릴케는 로댕의 파리 뒷골목 작업실 안으로 가득 찬 진료서 약품 냄새와 골목마다 자리한 식당에서 조리 한 음식 냄새로 뒤섞이는 고통의 나날을 보내던 중 인간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요오드포름 냄새와 식욕을 채우려는 음식 냄새에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1904년 <말테의 수기>를 쓰기 시작한다.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젊어서 시를 쓰게 되면, 훌륭한 시를 쓸 수 없다며 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한평생,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의미와 감미를 모아야 한다.는 조언을 했다.
글쓰기는 항아리 속에 담근 술이 익어가는 동안 발효 과정에서 내뿜는 기포 같은 번민과 상념, 후회와 상실, 기쁨과 행복 같은 감정을 서서히 가라 앉혔다가 떠오르는 순간을 포착하듯 써야 한다.
운명은 여러 무늬와 형상을 고안해 내기를 좋아하기에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닌 살아 온 시간이 응축 된 언어다.
봄과 여름의 시간을 지나 마침내 가을의 태양 아래서 익어가는 과일들은 저마다 다른 색과 향 그리고 각기 다른 크기의 씨를 품고 있다.
그 씨들은 다음 생명을 위한 씨가 되어 가을의 시간이 지나가도 생명의 빛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제8 비가
모든 눈으로 생물들은
열린 세계를 보고 있다. 우리들 인간의 눈만이
반대 방향을 보는 듯,
그들의 자유로운 출구를, 덫이 되어 둘러막고 있다.
출구 밖에 <있는> 것, 그것을 우리는
동물의 표정에서 읽을 뿐이다. 어린아이 때부터 우린 이미
아이의 등을 돌려놓고 형상의 세계를 뒤쪽으로 보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동물의 얼굴에 깊이 깃들어 있는 열린 세계를 보지 못하게
한다,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그 세계를.
죽음을 보는 것은 우리들뿐이다. 자유로운 존재인 동물은
언제나 몰락을 뒤에 두고
앞에는 신을 보고 있다. 걸을 때에는 영원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마치 샘물이 흘러가듯이.
<우리는> 단 한 번도, 단 하루의 날도
꽃들이 끊임없이 피어 들어가는 그 순수 공간을
만나는 적이 없다. 우리가 만나는 것은 언제나 세계이다,
결코 <부정이 없는 어디도 아닌 곳>,
공기처럼 숨쉬고, 무한정이라고 <알기에> 탐내지 않는
순수한 것,
감시받지 않는 것이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어릴 때에는
아무도 모르게 거기 몰입했다가 누군가에게 흔들려
깨어난다. 혹은
죽을 때 그것이 되는 사람도 있다.
왜냐하면 죽음에 이른 사람이 보는 건 이미 죽음이 아니라
<먼 곳>이기 때문이다
-『두이노의 비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