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작고 까만 당나귀 한 마리가 있었어. 그 당나귀가 실제로 작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뭏든 어린 시절에 내가 앉던 작은 의자에 앉기도 하고 내 작은 침대에서 함께 잠을 자기도 했어. 그러니까 작다고 할 수 있겠지. 그리고 말을 잘 들었고 잘 따랐기 때문에 사람들은 당나귀에게 뭔가를 부탁할 수가 있었고 그때마다 당나귀는 대채로 잘 도와 주었어. 그런데 나중에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당나귀는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았지. 나로부터 영원히 멀어져 버리고 만 거야."
-루이제 린저의 <검은 당나귀> 중에서
2차 대전의 상흔이 사라져 버린 1970년 어느 해 여름의 끝자락에 '나'는 누군가가 보낸 부고장을 들고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어린 시절에 잠시 살았던 마을을 찾아 간다.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잠시 살았던 그 마을엔 그 시절의 친구들이 살고 있었고 부고장을 들고 찾아간 '나'는 50여년 만에 옛 친구들과 만나 기억의 저편 너머로 사라졌던 지난 시절의 모습들이 하나 둘씩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계산된 행동이라고? 그건 당치도 않아. 플렉만은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 그는 분명 나치였어. 하지만 그가 나치가 된 것은 완전한 오해, 아니 어쩌면 의식적인 오해에서 비롯된 거야.
지난 30여년 전의 그 집에서 살고 있는 옛 친구 클라라의 집에 며칠 신세를 지게 된 '나'는 그 시절 함께 살았던 친구들의 소식을 수소문 하기 시작하면서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된다.
나치에게 협력한 자들과 협력하지 않은 자들 ,마을 주민들을 밀고 하고 그들이 수용소로 끌려간 사이에 몰래 집안으로 침입해서 재산을 강탈하고 해외로 도주해 버린 이들
그리고 수용소로 끌려가게 될 유대인들에게 은신처를 마련 해주었던 목사는 미군의 폭격으로 기도실에서 즉사한다.
'당나귀'가 있다.
'당나귀'에는 '검은 당나귀'가 있다.
'검은 당나귀'가 있으면?
그렇다. '흰 당나귀'가 있다.
루이제 린저의 <검은 당나귀>에는 단 한 마리의 흰 당나귀가 나오지 않는다.
나치의 검은 손길이 마을 깊숙이 뻗어있던 시기에 살아 남기 위해서 누군가를 밀고 했던 이들, 숨겨 준 이들, 도망쳐 버린 이들 그리고 누군가의 생명을 살려냈음에도 결국엔 전쟁의 포화 속에 잿가루가 되어 버린 이들 모두 검은색 당나귀였을까? 아니면 흰색 당나귀 였을까?
"진실이라? 완전한 진실이라? 그런 건 아마 검은 당나귀만이 알고 있겠지. ... 검은 당나귀가 내게 그를 보낸거야...."
전쟁의 화마의 검은 불길에 그을린 이들의 영혼은 무한의 시간이 지나도 치유 되지 않는다.

2026년 노벨 평화상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법률가이자 전 유엔(UN) 인권고등판무관인 나바네템 나비 필라이(Navanethem Navi Pillay, 85)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 재판관에게 돌아갔다.
노벨위원회는 "힘이 정의를 앞지를 때마다 평화적 공존은 훼손됐다”고 비판하며 나바네템 나비 필라이(Navanethem Navi Pillay, 85)에게 평화상을 수여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비 필라이는 국제법과 질서 체계 발전에 있어 중요한 원동력이었으며, 그녀의 엄격한 사법관, 청렴한 성품, 그리고 상당한 용기를 보여주었다.
전쟁과 분쟁이 증가하고, 국제법 관련 사법 기관과 단체들이 정치적 공격을 받는 이 시기에 노벨 위원회는 무력이나 폭력 없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국제법의 지배에 달려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자 한다”며 “전쟁 범죄자들이 책임을 지고, 학대 피해자들이 정의를 실현받는 국제법 체계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라고 강조했다.
1941년 남아공 더반에서 태어난 필라이는 인도계로 법학을 전공한 후 곧바로 인종차별 정책에 맞서 싸운 활동가들을 변호 해왔다.
1995년 남아프리카공화국 고등법원 판사로 임명된 이후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의 재판관 겸 재판소장이 됐고 성폭력과 강간, 그리고 선전 활동이 반인도적 범죄 및 집단학살로 이어질 수 있음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국제 법질서 발전에 앞장서 온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2003년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으로 임명된 필라이는 2012년까지 재임 하는 동안 아프리카 내전에서 자행 되었던 전쟁 성범죄와 집단 학살 사건을 담당 했고 2008년부터 2014년까지는 유엔 인권최고대표(OHCHR)를 역임했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유엔 팔레스타인 점령지 독립국제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팔라니는 2019년에는 미얀마의 집단학살 혐의 사건을 담당하는 국제사법재판소(ICJ) 특별재판관으로 임명돼 현재 사건이 진행 중이다.
팔라니는 현재 진행 되고 있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전쟁에서 자행 된 전쟁 수행 방식과 미국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 역시 국제인도법 위반, 나아가 전쟁범죄 가능성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중동 전쟁 초기 이란의 한 초등학교가 미군의 공습으로 어린이를 포함한 170명의 민간인이 숨진 사건을 비롯해 중남미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을 선포한 트럼프 대통령이 마약 운반 의심 선박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도 전쟁 범죄일 수 있다는 지적 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ICC(국제형사재판소)로부터 전쟁 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것을 시발점으로 지난달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형사재판소(ICC)의 금융 거래를 사실상 차단하는 고강도 제재를 준비 중이 였다.
오바마도 받은 노벨평화상을 자신도 받아야 한다고 주장 하고 있는 트럼프는 남북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며 당연히 받아야 할 상을 받지 못했다고 분통을 터트리더니 ICC의 달러화 거래를 금지 시켜서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 배제돼 재판소 운영에 심각한 지장을 겪게 만들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역사적으로 힘이 정의 앞지를 때마다 평화적 공존은 훼손되어왔다.
폭력 없이 분쟁 해결할 국제법의 존재 이유를 2026년 노벨 위원회에서 다시 한번 상기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