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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가공선 ㅣ 손안의 클래식 3
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전설 옮김 / 잇북(Itbook) / 2018년 1월
평점 :
2000년 대 미국 닷컴 버블이 붕괴 된 후 2002년까지 금융호황을 누렸던 일본은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큰 타격을 받는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위기로 엔화 강세가 지속 되자 해외 에너지·원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일본의 무역수지가 악화되면서, 수출주도형 일본 경제가 침몰하기 시작 했다.
일본 대 기업들은 유동성 자산을 유지 하기 위해 예비 취업자들 고용을 취소 해 버렸고 파견 근로자들을 대량 해고 하면서 수 많은 노동자들과 취업자들이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되었다.
고용 환경이 가장 취약한 계층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나자 대기업들은 대규모 감원 칼을 빼 들었다.
1941년 이래로 단 한 번도 불황을 겪어 본 적 없었던 도요타 자동차와 소니가 만 명 이상의 근로자들을 해고 하자 정부의 눈치를 보던 소규모 기업들이 해고 도미노 현상이 일기 시작했다.
2008년 한 해 동안 정규직과 비 정규직 노동자들이 6만 명 이상 해고가 되는 동안 공공장소와 학교, 병원, 놀이 시설 등지에서 묻지마 칼부림과 살인 사건으로 일본 국민의 불안감이 최고조로 달했다.
2008년에 일본에서 화학과 물리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어 세계적 이슈가 되었지만 일본 각지의 서점에서 분 단위로 팔려나간 책은 노벨상 수상자들에 대한 책이 아닌 80년 전에 출간 된 소설 작품이였다.
붉은 배 (腹)를 널찍하니 내밀고 떠 있는 기선과, 한창 짐을 싣고 있는지 바닷속에서 한쪽 소매를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양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있는 배, 누렇고 굵은 굴뚝, 커다란 방울 같은 붉은 부표, 빈대처럼 배와 배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작은 증기선, 으스스하게 떠도는 검은 연기, 빵 부스러기와 썩은 과일 따위가 떠 있어 무슨 특별한 직물처럼 보이는 파도…… 연기는 바람을 타고 파도와 스칠 듯 나부끼며 후텁지근한 석탄 냄새를 풍겼다. 드르륵드르륵하는 윈치 소리가 때때로 파도를 타고 바로 발밑에서 울려왔다.
이 게 가공선 핫꼬오마루 바로 앞에서, 칠이 벗겨진 범선이 이물의 소코뚜레 같은 곳으로부터 닻줄을 내리고 있었다. 갑판에서는 마도로스파이프를 문 외국인 두 사람이 기계로 된 인형인 양, 같은 곳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러시아 배 같았다. 일본의 ‘게 가공선’을 감시하는 배가 틀림없을 것이다.
“우린 이미 한푼도 없어. 제기랄.”
어부는 그렇게 말하며 다가오더니 옆 어부의 손을 잡아다가 자신의 허리께로 가져갔다. 작업복 아래 코르덴 바지 호주머니에 대고 눌렀다. 뭔가 작은 상자 같았다.
그 사람은 말없이 어부를 바라보았다.
“히히히……” 하고 웃고는 “화투야” 하고 말했다.
갑판에서 ‘장군’ 같은 차림을 한 선장이 어슬렁거리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내뱉은 연기는 코끝에 닿자마자 수직으로 꺾여 흩날렸다. 나무밑창을 덧댄 짚신을 신고 음식물 양동이를 든 선원이 바쁘게 바깥쪽 선실을 들락날락했다. —준비가 다 끝났으니 이제 나가기만 하면 된다.
잡부들이 있는 배 밑바닥 방의 해치를 위에서 들여다보면 어두침침한 널판에서 잡부들이 둥우리에서 얼굴만 삐죽삐죽 내미는 새들처럼 부산스레 움직이는 게 보였다. 모두 열네댓살 소년들이었다.
“너는 어디야?”
“××마을.” 모두 같았다. 하꼬다떼 빈민굴의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은 거기에만 이미 한 떼거리였다.
“저쪽 널판은?”
“남부.”
“거기는?”
“아끼따.”
그들은 서로 마주 보는 널판이었다.
“아끼따 어디?”
고름 같은 콧물을 매달고 눈꺼풀이 뒤집힌 듯이 빨갛게 짓무른 아이가,
“키따아끼따여” 했다.
“농사꾼이야?”
“그려.”
퀴퀴한 것이 과일이라도 썩은 것처럼 시큼한 냄새가 났다. 절인 장아찌를 몇십 통이나 재어놓은 방이 바로 옆이라서 ‘똥’ 냄새 같은 것도 섞여 있었다.
“인자는 아부지가 안고 자줄겨.” —어부가 히죽히죽 웃었다.
어두컴컴한 구석 쪽에서 작업복 윗도리에 잠방이를 입고 보자기를 삼각형으로 쓴 날품팔이 같아 보이는 아이 엄마가 사과를 깎아서 널판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 먹이고 있었다. 아이가 먹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둘둘 말려 있는 껍질을 먹고 있었다. 뭔가 중얼거리며 아이 옆에 있는 작은 보따리를 몇번이나 풀었다가 다시 쌌다가 했다. 그런 사람이 일고여덟이나 있었다. 배웅해주러 온 사람 없이 홀로 내지 內地2에서 온 아이들은 가끔씩 그쪽을 훔쳐보곤 했다.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 가공선> 중에서

고바야시 다키지의 < 게 가공선>은 1929년 일본이 대동아 전선에서 아시아 국가를 잔혹하게 착취하며 전쟁의 화마 속으로 수 많은 인명들을 밀어 넣었을 때 전일본무산자예술연맹의 기관지였던 잡지 <센키(戦旗)>에 5월부터 6월까지 연재 된 소설이다.
1929년은 세계 대 공황으로 인해 수입선이 차단되어 식량과 물자 조달의 경로가 막혀 버리자 일본의 해운업계는 소비에트령 캄차카 영해를 침범해 게를 잡고 배 위에서 가공해 통조림으로 만들었다.
이 시기에 게를 잡는데 동원된 이들은 조선과 타이완에서 강제로 일본군에 의해 잡혀 온 남자들로 10대 부터 40대까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러 가는지 모른 채 일본군에게 끌려가서 게 가공선에서 혹사당하고 학대당했다.
또렷한 개성이 드러나는 주인공이 없는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 가공선>에는 악덕한 감독관 아사가와가 게 가공선에서 임금을 거의 주지 않고 노동자들을 죽음에 이를 정도로 혹사 시킨다.
가혹한 노동으로 노동자들이 죽기 시작하자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 겨우 생명 부지를 했던 노동자들이 서로 연대 해서 투쟁하기 시작한다.
1929년 이 작품이 일본 사회에 출간 되자 마자 고용인에게 저임금에 착취 당했던 노동자들이 교과서처럼 읽기 시작하고 노동 연맹단체에서는 성경책 처럼 이 책의 내용을 투쟁 현장에서 인용하자 일본 정부는 암암리에 작가를 납치할 계획을 세운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작가는 지하로 숨어 버렸지만 동료의 밀고로 1933년 경찰에 체포되어 취조 당하던 중에 모진 고문으로 숨을 거둔다.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

ⓒ 시라카바문학관 다키지 라이브러리 고바야시 다키지의 시체를 둘러싸고 앉은 동지들
2008년 5월에서 7월까지 50만부를 돌파한 <게 가공선>의 독자층은 10대 부터 40대들로 기업들의 대규모 구조 조정이 시작되었던 시기와 맞물리고 동시에 묻지마 살인마들이 도심 곳곳에서 출몰 했다.
출판 대국 일본에서 단 몇 달 만에 오래전에 출간된 작품이 몇 십만부를 판매했던 적이 없었다.
<게 가공선>의 판매 열기가 활활 타오르자 일본 언론에서 '격차사회', '노동빈곤층(working poor)', '취업빙하기 세대'라는 신조어를 쏟아 냈다.
하지만 정작 일본 사회에서는 무고한 어린이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범죄가 잇따라 일어나면서 온 나라가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범죄 현장에서 붙잡힌 범죄자들의 입에서 모두 입을 맞춘 듯 거의 비슷한 자백이 쏟아져 나왔다.
“이유 없이 누군가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인근 마트에서 부엌칼을 구입했다. 처음엔 초등학교 수위를 죽이려고 따라갔는데,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쳐서 포기하고 근처를 지나던 여교사 뒤를 쫓아 갔다. 강하게 저항 하며 소리를 쳐서 도망치는 여자 아이를 발견했다. 우발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2008년 부터 일본에서 발생한 묻지마 범죄의 가해자들은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이거나 학교 교사. 학원 강사들이였다.
어린 시절 이지메와 가족 불화, 학교 폭력 그리고 고용 노동 시장의 불안이 가중 되자 이에 따른 분노와 울분이 나와 전혀 무관한 이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헤치는 사건으로 이어졌다.
무차별 살상 범죄를 일본에서는 도리마(通り魔·거리의 악마) 범죄라 부른다.
일본은 1980년대 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도리마 범죄 사건에 대한 통계를 내고 백서를 통해 이 범죄를 새롭게 정의 한다.
도리마 범죄는 가장 먼저 사람이 많은 공공장소에서 범행이 일어나고 범행 동기가 모호하다.
피해자와 어떤 연관이 없는 불특정인이고 흉기를 사용 해서 위해를 가한다.
한국의 묻지마 범죄는 2000년 부터 시작 되었지만 정신 병력과 초범이라는 이유로 심신미약 판정을 받아 10년이 채 안되는 형벌이 내려 졌다. 2004년 연쇄 살인을 저지른 유영철 살인마를 계기로 이런 유형의 범죄에 대해서 '묻지마 범죄'라 명명했다.
우울증 병력을 가진 교사에 의해 대전의 한 초등학교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조현병 증세로 평소에도 칼을 품고 학교에 출근 했던 여 교사는 병가 휴직서를 냈지만 20일만에 복직했고 잘 지냈느냐는 동료 교사 말에 팔을 꺾고 헤드락을 하며 위협을 가했다.
동료 교사들이 교육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교육청에서는 학교 측이 알아서 하라고 지시만 했고 학교측은 그 교사에게 담임 자리 대신 돌봄 업무를 주었다.
아이를 살해한 여교사는 범행 후 아이를 애타게 찾아 헤매는 가족을 한 차례 맞닥뜨렸지만 아이 행방을 모른다고 거짓말을 하고 선 범행 장소에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출입문을 잠구었다.
그리고 자해를 가해서 병실에 입원 한 상태에서 경찰에게 이렇게 진술했다.
“돌봄 교실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갈 때 어떤 아이든 상관없었다. 같이 죽을 생각으로 맨 마지막에 가는 아이에게 책을 준다고 시청각실로 들어오게 해 살해했다”
범죄자의 얼굴과 신상은 공개 되지 않았고 교사 단체들과 교육청은 애도만 할 뿐 현황 조사를 하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교사 신규 채용 시 신체검사에서 정신질환 검사 결과를 제출하는 절차가 없는 교육 제도 아래서 학교 교육 현장에서는 정신질환자를 거를 시스템도 없다.
질병휴직은 청원휴직으로, 휴직 사유가 소멸하면 30일 이내 즉시 복직하게 돼 있고 매번 심의 위원회를 열어 다툰다면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말 같지 않은 변명을 읊어 대고 있다.
범죄자의 신상 조차 제대로 공개 하지 않고 범죄자 인권을 우대 하고 있는 한국 형벌 제도에서 흉기 휴대 처벌 조항조차도 미비하다.
현재 경범죄처벌법 3조 2항에 이렇게 규정 되어 있다.
‘칼·쇠몽둥이·쇠톱 등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끼치거나 집이나 그 밖의 건조물에 침입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는 연장이나 기구를 정당한 이유 없이 숨겨서 지니고 다니는 사람은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科料)의 형으로 처벌한다’
이와 달리 한국 보다 더 끔찍한 사회 범죄를 먼저 경험한 일본은 범죄 유형을 세분화 시켜 놓고 총포도검법을 개정해서 2009년부터 칼날 길이가 5.5cm 이상인 나이프 등의 양날형 검 소지를 금지하고 차량 침입 방지 매뉴얼까지 만들었다.
대규모 행사가 열릴 때는 행사장 주위에 차벽을 쌓도록 했고 칼을 소지 한 자들은 어린이와 유아들이 집단으로 모여 있는 장소에 출입 할 수 없다.
대검찰청에서 2006년 발간한 <범죄분석>이라는 통계집에 따르면 1997년 부터 2007년 까지 무고한 시민을 대상으로 우발적ㆍ현실불만 살인사건이 매년 10퍼센트씩 상승해서 약 십 년 동안 발생한 묻지마 살인 사건이 전체 범죄에서 50퍼센트를 차지 했다.
이 시기에 검거되어 형벌을 받은 살인마 998명 중에서 20년 이상 형기를 채운 범좌자들은 열 명이 채 안된다.
대부분 술에 만취해서 기억이 나지 않음/ 조현병을 앓았음/정신병력으로 사회 생활을 하지 못함 이라는 이유로 감형을 받아 현재 우리 주변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현재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여러 경제적 사회적 이유 등으로 불만을 품고 그 불만을 자신과 무관한 ‘불특정인’에게 터트리며 범죄를 통해 자신의 억울함이나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소중한 생명을 잃은 피해자의 얼굴은 공개 되고 가해자에게 얼굴과 신상 공개 여부를 친절하게 묻는 대한민국의 법과 정의는 세계 최빈국과 동등한 지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