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NHK 일일 아침드라마 1920년대 일본 사회가 배경인 ‘호랑이에게 날개(虎に翼)’의 87화 에피소드에 조선인 남성이 피고인이 된 방화 사건 재판이야기가 등장한다.
간토 대지진 발생 당시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가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일본인들은 손에 총과 칼을 들고 조선인들이 눈에 보이는 데로 잔혹하게 찔러 죽였던 시기에 방화 혐의를 받은 조선인을 재판장에 세운 검사는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며 판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불이 나지 않으면 연기가 올라오지 않는다”
검사의 말을 들은 판사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 때문에 무고한 조선인이 학살 당했던 일을 재판장에서 언급 하고 다음과 같은 사항을 지적한다.
'차별이 생기는 이유는 다양하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는다고 끝내버릴 건가, 연기를 피운 사람이 누구인지를 찾아낼 것인가? 헛소문을 믿고 무고한 사람을 잡으면 안 된다.'
일본 방송 텔레비전 역사상 자신들의 손으로 조선인을 잔혹하게 죽인 '1924년 간토 대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 2024년에 방영된 아침드라마 ‘호랑이에게 날개(虎に翼)’가 최초다.
2024년 드라마 방영 당시 방송 게시판은 두 개의 의견으로 강하게 충돌하고 있다.
“조선인 학살을 부정하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이 드라마를 보라”며 응원하는 글과 “NHK는 좌파다” “왜 일부러 (조선인 차별 문제를) 다루는가” 라는 글들이 게시판에 줄을 잊자 제작진은 이 드라마의 제작 의도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1920년대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에서 간토대지진 발생으로 일본 사회가 그 시절에 어떤 상황이였는지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시대 드라마는 판타지로 전락해 버립니다.
따라서 간토대지진으로 수많은 조선인들이 유언비어로 살해 당했다는 걸 이 작품에 분명히 보여 줘야 하고 당시 일본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있었다는 것 역사적 사실입니다.'

2024년 4월 방영되었던 일본 NHK 일일 아침드라마 ‘호랑이에게 날개’는 1938년 일본 최초의 여성 변호사가 된 미부치 요시코의 일생을 다룬 드라마로 일본 법조계에서 남녀 성 차별의 문제 부터 일본이 전 세계로 군사력을 펼치며 한반도를 무력으로 점령했던 일제강점기와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시대 상황이 일본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밀도 있게 펼쳐 보였다.

1923년 9월 1일, 도쿄·요코하마를 비롯한 일본 간토 지방을 진도 7.9 대지진이 발생했다.
단 몇 분만에 사망자 10만명, 이재민이 340만명에 달할 정도로 일본 열도 역사상 최악의 대지진이였다.
지진이 발생했던 동시간 대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시신이 훼손된 조선인들로 넘쳐났다.
괴이한 유언비어가 떠돌기 시작한다.‘조선인이 폭탄을 던져 화재가 계속되고 있다’ ‘우물에 독을 탔다’ 등의 괴소문이 급속도로 퍼지자 가장 먼저 일본 군인과 경찰이 총·칼·죽창을 들고 조선인들을 죽이기 시작하고 민간인들은 조선인들의 사지를 찢어서 산채로 불태워 버렸다.
이렇게 일본인 손에 의해 학살된 조선인의 수가 6661명에 달한다.
당시 상황을 취재 했던 미국 뉴욕트리뷴, 영국 맨체스터 가디언 등 외신 기사는 인종청소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일본의 잔혹함을 강하게 규탄했다.

도쿄 스미다구의 조용한 주택가 지역을 돌아 요코아미초 공원에 들어서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돌비석 같은 것이 세워진 곳이 있다.
그 돌비석에 새겨진 문구에는 주어 없이 이런 비문이 적혀 있다.
‘추모’
이 역사를 영원히 잊지 않고,
재일 조선인과 굳게 손을 잡고 일조친선,
아시아의 평화를 세우겠다.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 사람의 가죽을 벗겨 먹었던 일본 군인들과 경찰들은 국가의 명령을 받아 인간으로서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고 전쟁에서 무조건 승리 하기 위해 일본은 '메스암페타민' 이라는 피로와 졸음을 없애는 마약 성분의 각성제까지 먹여서 반 미치광이 상태로 만들어 살인기계들이 아시아 전역에서 핏물로 물들였다.
‘1923 간토대학살’에 대해 우리는 학교에서도 상세하게 배운 적이 없다.
뉴스나 신문에서 스쳐 지나가듯 언급되는 정도 였지만 최근에 개봉된 영화 '1923 간토 대학살'을 촬영한 감독은 제작에 앞서 사전 조사를 하다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는 자료 열람신청부터 허가까지 6개월이 걸렸다. 일본 정부는 ‘자료가 하나도 없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막상 찾아보니 당시 군대 관련 증거 기록이 적지 않았다.
방위연구소에 보관된 군대보고서에서 간토대지진 당시 계엄군 15연대가 조선인을 총살한 기록을 확인했다. 또 도쿄공문서관서 발견한 ‘관동계엄사령부 상보 제5권’을 통해선 일본 정부의 의도적 기록 삭제 정황이 의심될 정도로 증거가 남아 있었다. 한때 기밀 문서였던 이 자료는 1923년 당시 무기사용 기록 중 제11장 목차와 내용이 잘려나간 상태였다.
이 문서와 보고서에 군대·경찰에 의해 살해된 (조선)사람들도 있었다는 점이 기록되어 있고 1923년 11월 22일 뉴욕타임스가 요코하마 부두 부감독인 미국인 헤드스트롬의 증인을 기사에 인용했는데 그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가능한 많은 조선인을 죽이라는 공식 명령이 내려졌다”
영화 '1923년 간토 대학살'에 증언과 기록 문서에 의하면 1923년 9월 1일 지진이 발생한지 하루가 지난 2일에만 총 250명의 조선인이 5명씩 묶인 채 산채로 불태워졌다.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전 총리는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 자체를 당시 내무성이 유포했다'는 사실을 직접 출연해서 밝히고 있다.
일본은 3·1운동 당시 조선에 대규모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본 지배층의 위기감이 커졌고 간토대지진을 계기로 잔혹함을 보여주어 한국인들의 손과 발을 묶어 버리는데 성공했다.
이듬해 일본은 군국주의화로 나아가서 대륙 중국으로 넘어가 세기의 살육전 난징 대학살을 자행한다.
일본 아사히 신문 사설 <천성인어>에 조선인 대학살이 자행 되었던 <간토 대학살> 발생 당시 역사적 사실을 언급 하며 일본 정부와 도쿄 도지사를 향해 따금한 비판을 날렸다.
“유언비어를 믿은 시민과 군·경찰에 의해 많은 한반도 출신의 사람이 살해된 것은 당시 보고서나 체험자 수기 등에서 분명하다. 학살과 재해는 다르다”며 “고이케 지사 태도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묵살하는 학살 부정론과 통한다”
일본에 남아 있는 상당량의 증거와 증언에 의하면 학살 배경에는 조선인에 대한 경계심과 잠재적 차별 감정이 있었다.
역대 한국 정부의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은 일본에 대해 항상 저 자세로 굴었고 국민들 앞에서나 일본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반사판처럼 내지르기만 하고 있다.
정확한 희생자 숫자도 모른 채 일본은 103년 째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며 사과를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간토 계엄사령부 상보’, ‘도쿄 백년사’ 등 학살 기록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지만 마치 눈 먼 장님이 우물 속에서 바늘을 찾듯이 학살에 대해 정부 내에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만 103년 째 반복하고 있다.
2023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재일조선인 학자로 미술사와 디아스포라 연구에 매진한 서경식 도쿄경제대 명예교수는 이런 말을 남겼다.
'간토 대지진 때처럼 조선인을 죽이자고 이 강의실에 누가 들어왔을 때 이 방에 있는 학생 중 누군가가 나를 지켜줄 것인가. 아니면 학생들도 조선인을 죽이자는 무리에 들어갈 것인가. 그런 생각을 늘 합니다.'
그동안 일본에서 발생한 최악의 지진과 쓰나미로 목숨을 잃은 일본인 사망자 수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인들 손에 잔혹한 죽임을 당했다.
조선인을 향한 대학살을 부정 당한 시간은 103년, 광복을 맞이한 시간은 81년이다.
기록되지 않는 기억은 사라진다.

한국의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은 태극기를 향해 경례를 올릴 자격이 없다.